대기업 마케터인 A 씨(41)는 최근 사무실 컴퓨터 초기 화면을 구글로 바꾸고, 스마트폰에서 국내 포털 앱을 지웠다. 인공지능(AI)이 기사를 편집한 뒤로는 깊이 있는 기사는 왠지 별로 보이지 않았다. 때론 입맛에 맞는 기사가 떴다. 하지만 맞춤형이라 자신과 입장이 다르거나 관심 없는 기사는 추천되지 않아 시각이 좁아질까 봐 걱정도 됐다. 최근 실시간 검색어를 특정 세력의 정치 구호나 기업 제품명이 점령하는 걸 보니 도를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한 점은 의외로 없었다. 소셜미디어에서 관심 분야 전문가가 띄우는 뉴스나 e메일 뉴스레터 등을 통해 정보 갈증을 해결했다. 국내 콘텐츠도 ‘보여지는 것’만 소비하지 않고 필요한 정보를 능동적으로 찾게 됐다. 첫 화면에 검색창만 덩그러니 있는 구글을 쓰니 업무에 잘 집중될뿐더러 원본 자료도 잘 찾아진다고 했다.
A 씨처럼 ‘디지털 이민’을 감행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민주주의 공론의 장이 되리라 기대했던 국내 포털이 상업주의나 정파성에 물들고 있는 것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특히 AI가 기사를 추천한 뒤 심층 기획보다 실시간 이슈 중심의 발생 기사 노출이 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조사 결과 AI의 기사 배치 이후 뉴스 이용이 불편해졌다는 응답자(38.4%)가 편해졌다는 응답자(12.4%)보다 훨씬 많았다. 예를 들면 네이버는 모바일 뉴스 탭에서 기사 5개를 내거는데, 해당 기사를 클릭하면 같은 기사 20∼50개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자동 클러스터링’ 기반이라 할 뿐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으로 대표 기사를 선정하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이런 점에서 최근 최초 보도(original reporting)를 검색에서 우대하겠다고 한 구글은 눈여겨볼 만하다. 심층·탐사·단독보도 등 노력과 시간, 자원을 투입한 기사를 잘 보이게 하고, 실시간 어뷰징·짜깁기 기사는 걸러내도록 알고리즘을 바꾸겠다는 것. 기준을 어떻게 세울지 지켜봐야겠지만 양질의 저널리즘(quality journalism)을 응원하는 철학은 잘 읽힌다.
사실 검색만 하더라도 국내 포털과 구글의 철학은 확연하게 다르다. 국내 포털은 검색 결과를 자체 페이지에 담아 사람들을 가둬놓고 수익 대부분을 챙겨가지만, 구글은 검색 결과가 담긴 사이트로 연결만 해줄 뿐 콘텐츠까지 담지 않는다. 콘텐츠 생산자에 대한 존중이 담겨 있다. 이는 수익 배분 방식으로도 이어진다. 구글이 운영하는 유튜브에서 ‘거부(巨富) 인플루언서’가 탄생하는 건 광고 수익 절반을 파격적으로 받아가는 이들이 콘텐츠에 공들이는 영향도 크다. 유튜버로 변신한 한 파워 블로거는 “블로그할 땐 재주는 내가 넘고 포털 배만 불려준 것 같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이제 궁금한 걸 구글이나 유튜브에 물어보기 시작했다. 전문직 유튜버에게 댓글이나 채팅으로 직접 묻기도 한다. 유튜브가 커뮤니티로도 변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중국, 일본과 함께 구글이 검색으로 1위에 못 오른 몇 안 되는 국가다. 하지만 올해 유튜브는 네이버를 제치고 한국인이 가장 오래 쓰는 앱이 되는 등 균열 조짐이 있다. 사람들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시키는 콘텐츠 플랫폼들도 잇달아 생겨나고 있다. 광장이 걷기 불편하다면 사람들은 언제든 광장을 피해 다른 길로 갈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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