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당 1억 소문 “솔직히 미친 겁니다”
● 서울과 지방 ‘하우스 디바이드’ 심각
● 노무현 정부 부동산 급등 기시감
● 소득주도가 아니라 세금주도성장 비판
● 종부세 최고 3.2%, 1주택자도 신규 대출 금지
● 김 부총리 “투기는 반드시 잡겠다”
9·13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9월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신반포로 A아파트. 얼마 전 3.3㎡(평)당 1억 원에 아파트가 거래된 것으로 알려진 곳이다. 아파트 앞 상가 부동산중개소들은 무척 한산했다. 고가의 아파트 앞이라 그런지 작은 상가건물 안에 부동산중개소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평일인데도 대부분 사무실 전등은 꺼져 있다. 영업은 하는지 사무실 안에 사람들이 있다. 흥미롭게도 사무실 앞에 잔뜩 붙어 있게 마련인 매매·전세·월세 광고 전단지가 아예 없다.
현찰로 집 사는 사람들
“평당 1억 원이 넘는 가격에 아파트가 거래됐다는 언론 기사 때문에 정부에서 세무조사니 전수조사니 한다고 해서 다들 가게 불 끄고 쉬쉬하며 영업하고 있어요. 영업 정지당하면 안 되니까요. 저는 평당 1억 원짜리 계약서를 써본 적은 없지만, 요즘엔 거래가 이뤄지면 정보가 저절로 공개되는데 왜 단속반이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불 꺼진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서 취재 나왔다고 하자 B사장이 볼멘소리부터 했다. 이 지역 집값이 단기간에 급등한 이유를 묻자 그는 자기 나름의 이유를 댔다.
“솔직히 너무 비싸긴 해요. 이거 미친 겁니다. 집 없는 서민들은 어떻게 살아요. 그런데 여기만 오른 게 아니라 이 주변이 다 올랐어요. 오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여기가 강남 8학군이고, 신반포역도 가깝고, 한강변 전망도 좋고, 새 아파트잖아요.”
몇 군데 부동산중개소를 들어갔지만 대부분 취재에 비협조적이었다. 취재에 응한 몇몇 부동산중개인은 9·13대책에 대해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정부가 발표한 내용을 보면 종합부동산세 강화, 대출 억제가 핵심이잖아요. 현찰로 집 사는 부자들은 대출 영향을 안 받아요.”(C 공인중개사)
“종부세 좀 오른다고 겁먹을 사람이 있겠어요? 집값이 얼만데요. 한 달에 1억~2억 원씩 올랐어요.”
주민들도 미친 집값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서 40년째 거주하는 A아파트 주민 이 모(71) 씨는 아파트값 변천사를 자세히 꿰고 있었다.
“노무현 정부 때 한신 1차 아파트 가격이 2억3000만 원이었어요. 그전에 처음 그 아파트를 살 때는 6000만 원이었고요. 그런데 2년 만에 15억 원이 돼 재산세가 10배 이상 올랐지요. 그런데 지금 아파트 한 채 값이 30억 원이 넘는다고 하면 다들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여기 사는 사람들도 이상하다 싶어요.”
A아파트 전 주민 김모(85) 씨는 “저는 40년 전 6000만 원 주고 이곳 아파트를 샀는데, 2016년 재건축해서 45평을 받아 살다가 28억 원에 팔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40억 원 가까이 된다고 하네요. 이게 말이 됩니까”라고 말했다.
만성 공급 부족과 초과 수요
지난해 ‘역대급’으로 표현됐던 8·2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1년이 지났다. 그 사이 서울, 특히 강남3구(강남·서초·송파) 지역 집값은 올라도 너무 올랐다. 무주택자들은 허탈감을 감출 수 없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8·2부동산 대책 이후 지난 7월까지 1년간 서울 아파트값은 6.76%가 올랐다. 대책 이전 1년간 4.74% 오른 것보다 상승폭이 크다. 특히 서울 주택 가격은 7월부터 상승폭이 대폭 커졌다. 5월에 0.21%던 것이 7월 0.32%, 8월 0.63%로 올랐다. 9월 10일 조사 기준 서울 주간 아파트 가격은 서초(0.54%)·강남(0.51%)·송파(0.52%)·강동구(0.80%)에서 여전히 높았다. 하지만 9·13대책을 앞두고 매수 문의가 감소하면서 전주보다 상승폭은 감소했다.
서울 집값 급등 원인은 대체로 이렇게 분석된다. 지난해 ‘역대급’ 8·2부동산 대책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했고, 올해 4월 양도소득세 중과 시행으로 집값은 안정되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 6월 공개된 보유세 개편안이 예상보다 세 부담이 약하고, 7월 싱가포르를 방문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여의도·용산 통합개발 발언을 하면서 가격이 크게 오른 게 사실이다. 박 시장의 의도는 싱가포르를 본뜬 맞춤형 개발이었지만, 부동산 시장은 이를 과거의 초고층 아파트 개발 등으로 받아들인 것. 이후 수요자들이 불확실성이 해소된 것으로 파악하고 매물을 사기 시작했다. 더욱이 정부가 전세자금 대출 규제 번복, 임대사업자 세제 혜택 축소, 공급 확대 정책 선회 등 수시로 방침을 바꾸어 정책에 대한 신뢰도도 떨어졌다.
특히 서울 강남 지역 주택시장은 만성적인 공급 부족과 초과 수요가 존재해왔다. 따라서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가장 안정적인 시장으로 인식되고 있다. 심지어 “강남의 아파트는 서울 사람이 주거 목적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전국에서 여윳돈 있는 사람들이 투자 목적으로 사려고 하기에 가격이 꾸준히 오르는 것”이라는 인식도 팽배해 있다.
서울과 지방 양극화 심화
집값 급등은 그야말로 ‘하우스 디바이드(House Divided·주택 가격 차이로 사회적 신분이 나뉘는 현상)’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 지방 일부는 주택 가격이 오르고 있지만 그 나머지는 오히려 집값이 하락하는 추세다. 서울 일부 지역은 한 달에 1억~2억 원씩 오른다는데, 지방은 전체적으로 집값이 낮을 뿐만 아니라, 경기 불황으로 계속 하락하는 추세다. 충북 청주시 H공인중개사의 말이다.
“여기는 서울과는 다른 세상입니다. 현재 미분양된 곳이 많을 뿐만 아니라 기존 주택들까지 거래가 안 되는 상황이에요. 지난해와 비교해보면 평균 4000만 원 정도 하락한 경우도 있어요. 신규 분양된 주택의 입주 시기를 맞추려면 기존 주택을 팔아야 하는데, 그게 순환이 안 돼요. 집을 사려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최근 발표한 정부의 부동산 대책 중에 종부세 확대에 대해선 이곳 사람들은 크게 상관하지 않아요. 집값이 낮아 종부세 납부 대상이 아닌 사람이 많거든요. 하지만 분양권을 주택 수에 포함하는 건 지방 사람들에게도 불이익을 주는 겁니다. 서울과 지방 양극화 현상이 점점 더 심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 같아요.”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8월 전국주택가격 동향을 보면 지방은 전달에 비해 매매(-0.17), 전세(-0.27), 월세(-0.19) 모두 하락세였다.
집값 상승으로 인한 서민들의 박탈감은 친서민 정책을 펴겠다고 공언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감으로 이어졌다. 아예 집을 살 수 없는 이들뿐 아니라 집을 사려다 못 산 사람들, 지방 거주자들의 실망감이 이만저만 아니다. 서울 강북구에 거주하는 결혼 5년차 주부 이모(38) 씨의 한탄이다.
“저는 요즘 집 사는 걸 아예 포기했습니다. 결혼할 때 얻은 전셋집도 2년마다 전세금이 올라서 힘든 상황인데, 집값은 따라잡을 수도 없이 올라서 이젠 남의 일 같아요. 그 와중에 강남 아파트가 30억 원씩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기가 막힐 뿐이죠. 대한민국에서 아이 키우면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민심이 폭동 수준’
인터넷의 부동산 관련 기사에는 수많은 비판적 댓글이 붙는다.
‘소득주도성장이 아니라 세금주도성장이다.’
‘정부 정책 잘못으로 투기 조장하고, 집값 올려놓고 백성들 세금 왕창 뜯어가겠다네.’
‘당근을 줘야 매물이 나오는데, 당근이 없다. 주택 가격 오른 폭을 보면 10년은 세금 내고 버틸 것이다. 주택 가격이 내려가려면 현재 시세를 형성하고 있는 부동산이 매물로 쏟아져 나와야 하지 않겠나.’
부동산으로 돈 번 ‘강남좌파’에 대한 분노도 크다. 정부는 이것이 정책과는 상관없다고 하지만 국민 정서와는 거리가 먼 말이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9월 12일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서울 송파구) 아시아선수촌 아파트가 1년 만에 4억5000만 원이 올랐다”며 “‘내가 강남 살아봐서 아는데 모든 국민이 강남에 살 필요 없다’더니 남들 연봉의 몇 배가 올랐다. 축하한다”고 비꼬았다. 한국당에 따르면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경우 서울 강남구에 소유한 아파트 시세가 1년 사이에 각각 7억 원, 6억6500만 원 올랐다.
천정배 민주평화당 의원(광주 서구을, 민주평화연구원장)은 9월 11일 부동산 가격 폭등 문제와 관련해 “집값 폭등에 대한 민심이 폭동 수준이라고 느끼고 있다. 이것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실패로, 더 나아가 촛불혁명이 가져다 준 개혁 세력의 집권 자체가 앞으로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부동산 급등에 따른 여권의 위기감도 높아져 국정 운영의 동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내부 목소리도 높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부동산 실패가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초기 ‘버블세븐’으로 불린 강남, 서초, 송파, 목동, 분당, 평촌, 용인 등 7곳의 집값 상승률이 20.7%를 기록했다. 전국 평균 집값 상승률이 1.6%였을 때의 상황이다. 노무현 정부는 2005년 8월 2주택자 양도세 50% 중과, 2006년 3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 고강도 대책을 발표했으나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가격은 57%가 올랐다.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면서 돈의 유동성이 풍부해졌으나 부동산 외엔 달리 갈 곳이 없었기 때문. 이런 상황에서 지지층 이탈이 가속화하기도 했다.
2주택 이상 주택담보인정비율 0%
8월 30일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 관계자들이 고위 당정청회의를 열고 부동산 시장 투기 과열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이날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부동산 값이 급등하는 현상이 있다. 투기로 의심되는 동향이 있으면 즉각 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9·13 대책을 직접 발표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주말부터 3일간 외부 일정을 대부분 취소하면서까지 장고에 들어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9월 13일 서울정부청사에서 김동연 부총리 주재로 ‘주택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했다. 다주택자를 겨냥한 조세 금융 중심의 1차 대책이고, 30만 호 공급 대책은 9월 21일 발표키로 했다. 이에 따라 9월 14일부터 서울 전역과 부산, 경기, 세종 등 청약 조정대상지역에서 2주택 이상 가구와 고가주택 수요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이 금지됐다. 3주택 이상과 조정대상지역 2주택 이상 보유자의 종합부동산세 최고세율은 내년부터 현행 2.0%에서 3.2%로 오른다. 임대주택사업자가 받던 양도세, 종합부동산세 혜택도 사라진다.
우선 조정대상지역에서 집을 사려는 2주택 이상 보유 가구에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 0%가 적용된다. 부부가 각각 한 채씩 집을 갖고 있어도 2주택 이상 가구로 인정돼 대출을 받을 수 없다. 1주택자도 조정대상지역에서 새로 집을 살 때 주택담보대출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기존 주택을 2년 내에 처분하거나 다른 지역에서 거주 중인 60세 이상 부모를 봉양하는 경우엔 조건부 예외다.
다주택자의 종부세 부담도 늘어난다. 기본세율을 0.5~2.0%에서 0.5~2.7%로 조정하고 3주택 이상 보유자와 조정대상지역 2주택 보유자는 과세표준에 따라 0.1~1.2%포인트 추가 과세한다.
시가 18억~23억 원(과표 3억~6억 원)에 세 부담을 0.7%로 늘리는 과표 구간을 신설해 고가 1주택자에 대한 세율도 올렸다. 특히 과표 94억 원 초과 구간의 세율은 노무현 정부 당시 최고세율(3.0%)을 넘어서는 3.2%까지 올라간다.
시가 23억 원짜리 집의 종부세는 현재 187만 원에서 293만 원으로 약 57% 늘어난다. 정부는 21만8000명의 집주인이 4200억 원의 종부세를 더 낼 것으로 내다봤다. 김동연 부총리는 브리핑에서 “증세된 4200억 원은 지방자치단체 등과 협의해 서민 주거 안정에 쓸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주택 수요를 부추긴 임대사업자에 대한 각종 혜택도 폐지된다. 정부는 8년 이상 임대등록사업자에게 주던 양도세 중과, 종부세 합산 배제 혜택을 조정대상지역에서 새로 구입해 임대 등록한 주택에 대해 없애기로 했다.
30만 호 공급 계획
30만 호 공급 계획과 관련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자체와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법에 절차와 시일이 정해져 있으므로 9월 21일에 입지와 수량, 그린벨트 해제와 관련해서도 종합적으로 말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문기 국토교통부 주택토지실장은 “서울시의 개발제한구역을 포함해서 지자체, 관계기관과 협의하고 있고 후보지 조사 절차를 마무리하면 우선 21일에 1차 발표하고, 추후에 협의되면 2, 3차안을 발표할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김동연 부총리는 “이번 대책으로 부동산 시장이 안정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안정화하지 않으면 신속하게 추가 대책을 발표하겠다. 투기는 반드시 잡겠다는 의지를 다시 천명한다”고 밝혔다.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은 이번 대책이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번 대책은 큰 불을 끄는 데는 일단 성공할 듯하다. 세금 규제,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강화 등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어 급등세는 잡힐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공급 부문에서 디테일한 내용이 안 나온 것이다. 또 정부 안이 국회 입법 과정을 통과할 때까지는 관망세가 유지될 수 있다. 특히 강남 지역에선 당분간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유지될 것이다. 잔불이 남아 있다. 끝까지 다 끌 수 있게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반면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이번 대책이 미흡하다고 봤다.
“이번 대책이 주로 종부세 인상 등 조세 대책이어서 단기적 효과가 적을 것이다. 그 이유는 집값이 세금보다 더 오르기 때문이다. 또 세금 부과는 내년이라 당장 부과 효과가 생기는 게 아니다. 규제는 또 다른 왜곡 현상을 만들기 쉽다.”
더 철저히 저소득층에 집중해야
김호철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이번 대책에 대한 시장 반응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금을 올릴 경우 집주인은 그것을 세입자에게 전가할 수 있다. 또 요즘 부동산 분위기가 노무현 정부 때와 비슷하고, 당시 급등 상황에 대한 학습효과도 있어 가격이 또 오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심리가 기저에 깔려 있다. 정부가 반드시 집값을 잡겠다는 의지를 일관되게 보여야 한다. 정책이 오락가락하면 내성만 키워주는 형국이 된다. 그래서 정부는 단기간으로 보기보다는 좀 더 긴 호흡으로 정책을 전개해야 한다.”
김 교수는 또 수요를 억제하고, 공급을 확대하는 교과서적인 처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30만 호 공급 확대 정책이 예고돼 있지만, 중요한 것은 정부가 정말 수요가 많은 지역에 공급 확대안을 발표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정부는 내 집 마련이 어려운 저소득층에 더 집중해야 한다. 서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임대주택 등을 제대로 늘려야 한다. 정부가 어려운 이들을 위해 세심하게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묵묵히 보여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서민의 박탈감은 부메랑이 돼 정부에 부담으로 돌아온다.”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김민주 객원기자 mj77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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