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노 숭배·스탈린주의·기독교 뒤섞인 유사종교국가
● 덴노 생일 천장절(天長節) 닮은 태양절(太陽節)
● 복음주의 기독교 간증과 형식·구조 같은 생활총화
● 뇌수인 수령은 무오류…종교 교리와 다를 게 없어
● 경배의 대상 ‘수령’에서 ‘돈’으로 이동 중
문재인 대통령은 어머니가 선물한 묵주반지를 애장품으로 꼽을 만큼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부산 신선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세례명은 ‘하느님을 공경하는 이’라는 뜻의 티모테오다.
문 대통령 중개(仲介)로 가톨릭 교황 방북이 추진된다.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때 문 대통령이 교황 방북을 제안하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교황님이 평양을 방문하시면 열렬히 환영하겠다”고 밝혔다는 게 청와대 설명이다.
문 대통령은 10월 18일 로마 바티칸 교황궁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만났다. 교황은 문 대통령에게 올리브 가지를 본뜬 작품이 담긴 상자를 선물했다. 올리브 가지는 가톨릭에서 화해, 평화를 상징한다.
문 대통령이 교황에게 북한 방문을 요청했으며 교황은 “나는 갈 수 있다”고 답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교황은 이탈리아어 “disponibilit`a”라고 표현했다. 영어로는 ‘available(시간이 있는)’이라는 뜻이다.
교황 해외 방문은 가톨릭 수장으로서 신자를 찾는 사목 방문(Pastoral Visit)이 원칙이다. 방문하는 나라에 교회와 사제가 존재해야 한다. 북한에도 교회와 신자는 있으나 사제는 없다. 선교의 자유를 포함한 종교의 자유와 인권 문제도 교황 방북의 걸림돌이다.
“진짜 교인 늘어날까 반대한 김정일”
1991년 김일성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20~2005) 평양 방문을 추진했다. 소련·동유럽 사회주의가 붕괴한 상황에서 외교 고립을 탈피하려는 시도였다. 김일성과 달리 김정일은 교황 초청에 부정적이었다. 교인이 생겨날 것을 우려한 것이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는 외무성과 통일전선부 관료로 이뤄진 교황 초청 추진 상무조(영어로 표현하면 TF)에서 일했다. 김정일의 뜻을 파악한 통전부 간부들은 상무조 일을 게을리한 채 책 읽고, 잡담하면서 태 전 공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교황이 조선에 오면 그 이후의 뒷담당은 통전부와 보위부가 해야 한다. 외무성은 지금 조선에 교인이 있는지, 없는지, 있으면 얼마나 있는지 모른다. 교황이 다녀가면 천주교 신자가 무섭게 늘어날 텐데 누가 책임지겠는가.”
태 전 공사는 상무조에서 일하면서 바티칸에 북한 천주교 신자를 데려갔다. 교황청이 “북한에 진짜 가톨릭 신자가 있다면 데려와달라”고 요구해서다. 북한 당국은 인민보안성 주민등록부를 뒤져 6·25전쟁 이전까지 독실하던 신자를 찾아냈다.
“하느님을 믿느냐”고 묻자 할머니는 “수령이 계신데 하느님을 믿는다는 게 무슨 소리냐”고 정색했다. “독실한 신앙인을 찾아내야 국가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하자, 할머니는 그제야 “한번 마음속에 들어오신 하느님은 절대로 떠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북한 노동당이 이때 “종교의 무서움을 절감했다”는 게 태 전 공사 회고다.(태영호, ‘3층 서기실의 암호’ 참조)
김대중(DJ) 정부도 200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북을 추진했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DJ가 김정일에게 교황 방북 초청을 제안했고, 김정일이 수락했다. 평양은 인권 문제가 거론되는 것을 걱정했으며 교황의 북한 방문 의지도 크지 않아 방북은 무산됐다. ‘바티칸 앞잡이로서…’
북한에도 성당과 교회가 있다. 1988년 장충성당과 봉수교회, 1989년 칠곡교회가 평양에 건립됐다. 2013년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한 박창일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에도 신앙의 자유는 있습니다만, 북한 사람들이 종교를 잘 몰라요. 한번은 문익환 목사의 아들이 문규현 신부냐고 묻더군요. 신부가 결혼하지 않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북한에서 결혼 안 했다고 말하면 아가씨들이 거짓말하지 말라면서 웃어요. 통일될 때까지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농담을 해줬습니다.”
박 신부는 1996년부터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해왔다. 평양을 찾은 횟수가 수십 차례에 달한다. 그는 “싸우고 이해하면서 신뢰를 쌓았더니 ‘바티칸 앞잡이’에서 ‘신부님’으로 불리게 됐다”고 했다.
북한 헌법 제68조에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고 돼 있다. ‘신앙의 자유’는 ‘종교의 자유’와 다르다. 종교의 자유는 ‘무종교인 또는 다른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을 포교·개종할 자유를 포함하나 신앙의 자유는 믿고, 기도할 자유만을 의미한다.
북한에 지금 ‘숨 쉬는’ 종교는 없다. 종교는 나쁘다고 배운다. ‘인민의 아편’이다. 교회와 성당은 대외 선전용이다. 한국에서 교회나 성당을 다니는 탈북민은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이 성경을 대신한다”고 하나같이 말한다. ‘조선어사전’은 가톨릭 신부를 ‘바티칸의 앞잡이로서…’라고 정의한다.
장충성당에 출석하는 신자는 70~80명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충성당에 출석하는 이들이 진짜 신자인지 대외 선전용 연출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교황이 평양을 방문하면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할 것이다. 250명 수용 규모로 지어졌다. 제단, 제의실, 고해소를 갖췄다.
‘2017 북한 종교자유백서’에 따르면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 3만1000여 명 중 99.6%가 “북한에서 종교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다”고 응답했다. “평양이 아닌 지방에 북한 당국이 인정한 합법적 예배 장소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98.7%가 없다고 답했다.
미국 국제종교자유위원회(USCIRF) 2018년 연례보고서는 “북한에는 종교의 자유가 없다”면서 “종교가 있는 것처럼 보이고자 허가한 예배당에서도 북한 정권이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지적했다.
신자 수는 적으나 지하 교회는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장로교단에서 북한 선교를 하는 이반석 목사는 “교회는 70년간 핍박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건재하다. 북한 전역에 비공식적 형태로 존재한다”고 했다. 수만 명이 크리스트교를 신봉하다 투옥됐다는 게 기독교 선교사들의 주장이다.
“스탈린주의에 기독교적 요소 섞여”
북한이라는 ‘국가’가 작동하는 방식은 종교 메커니즘과 같다. 신정(神政)국가다. 김일성은 ‘유일신’이자 ‘유일태양’이다. ‘민족의 태양’이라고 불린다. 문명 사회 상식으론 이해하기 어려우나 1945년 광복 이전 비슷한 체제를 겪어봤다. ‘덴노(天皇)제 군국주의 국가’의 패망 직전이 그랬다.
덴노(일왕)는 제국주의 일본에서 ‘사람으로 태어난 하느님’이다. 덴노의 생일을 천장절(天長節)이라고 일컬었다. 김일성 생일은 북한에서 태양절(太陽節)이다. 현인신(現人神)을 숭배하던 일제의 그것을 북한이 이어받은 것이다.
덴노제에서 일왕은 건국신(神) 아마테라스신(天照大神)의 재현이다. 덴노를 우상화하면서 ‘욱일승천하는 태양’을 사용했다. 일본신(神)이 북한식으로 변용돼 ‘민족의 태양’이 된 것이다. ‘황공하옵게도 덴노 헤이카(陛下·폐하)께서는…’은 ‘민족의 태양, 김일성 동지께서는…’으로 변주됐다.
김정일도 종교에 가까운 상징을 가졌다. 1961년부터 북한에서 발견된다는 이른바 ‘구호나무’에는 항일유격대 전사들이 일제강점기에 새겼다고 선전되는 글귀(‘겨레여 백두산에 백두광명성 솟았다’ ‘백두광명성 삼천리를 비친다’ 등)가 적혀 있다. ‘백두광명성’은 김정일이다. 항일유격대 전사들은 ‘선지자’면서 ‘김정일 탄생’을 앞서 말한 ‘예언자’다. 찰스 암스트롱 컬럼비아대 교수는 북한을 ‘스탈린주의에 기독교적 요소가 공명(共鳴)하는 나라’로 본다.
일제강점기 평양이 ‘동양의 예루살렘’으로 불릴 만큼 관서지방은 크리스트교의 세(勢)가 강했다. 김일성은 1989년 문익환 목사를 만났을 때 “삼일예배날(수요일) 어머니와 함께 예배당에 다녔다”고 말했다.
김일성은 평안남도 대동군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형직은 미션스쿨인 숭실중학을 졸업하고, 기독교 계통 명신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어머니 강반석은 장로로서 창덕학교 교장이던 강돈욱의 둘째 딸로 죽을 때까지 기독교 신자였다. 반석(盤石)이라는 이름은 성경의 베드로를 가리킨다.
북한은 ‘생활총화(조직에서 생활을 점검받는 회의)’의 나라다. 총화를 통해 인간을 개조할 수 있다고 본다. 총화에서 자아비판, 상호비판이 이뤄진다. 자아비판은 복음주의 기독교의 간증과 형식, 구조가 같다.
유사종교국가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시작된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가 문선명 총재를 ‘참부모’로 칭하는 것과 스탈린주의에 뿌리를 둔 북한이 김일성을 ‘어버이’로 칭하는 것은, 기독교와 유교식 가부장제가 융합됐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통일교의 ‘참어머니’, 북한의 ‘조선의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북한 사회는 불가분성의 일심동체다. 수령은 ‘어버이’면서 대가정의 ‘가부장(家父長)’이다. 북한은 김일성을 ‘어버이’로 부르는 대가정을 형성해 3대를 이어왔다. “북한 주민이 3대 세습을 문제 삼지 않는 것도 유교식 가부장적 전통 때문”(김형덕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장)이다. 김일성 개인숭배에서 효(孝)라는 덕목도 유교에서 비롯했다.
북한은 스스로를 ‘김일성 민족’이라고 여긴다. 북한에서 민족은 한민족이 아니라 김일성 민족을 가리킨다. 김일성 일가는 경배하는 조상의 지위에 올랐으며 국가 제사의 대상이다.
북한의 가부장제는 모성적이기도 하다. ‘어버이’란 단어엔 부성과 모성이 결합해 있다. 수령은 특별하게 성(性)을 구분할 때를 제외하곤 아버지가 아닌 어버이로 불리는데, 동아시아 샤머니즘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김정일이 내놓은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에 따르면 사람의 생명은 ‘육체적 생명’ ‘사회정치적 생명’으로 나뉘는데 사회정치적 생명은 육체적 생명보다 귀중하고, 육체적 생명은 유한하나 사회정치적 생명은 수령·당·대중이 통일체를 이루면 영생한다.
수령은 거대한 유기체인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뇌수다. 뇌수인 수령은 오류가 없다. 북한은 대중의 유기체적 통일성, 수령의 절대적 무오류성을 강조한다.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은 성경 무류성(無謬性·오류가 없다는 뜻)론을 떠올리게 한다. 종교 교리와 다를 게 없는 것이다.
요컨대 북한은 덴노 숭배와 스탈린주의, 기독교, 유교의 가부장제가 결합해 신정(神政)국가로 나아갔으며 식민지 경험 탓에 민족주의 정서가 강하다. 소련·동유럽 사회주의처럼 붕괴하지 않은 것은 유사종교적 국가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존엄을 위해 현재의 투쟁을 두려워하지 말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79년 공산 정권 치하의 조국 폴란드를 찾았다. 교황은 “인간의 존엄을 위해 현재의 투쟁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외쳤다. 교황의 폴란드 방문은 동유럽 민주화의 촉매제가 됐다.
북한에서 경배의 대상은 수령에서 돈으로 바뀌고 있다. 주체사상의 빈자리를 배금주의가 차지한다. 경제난을 겪는 과정에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면서 유교식 가부장제도 예전 같지 않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한 자들의 아버지’ ‘청빈의 대명사’로 불리는 삶을 살았다. 아르헨티나 군부독재 시절 핍박받는 이들을 위로했다. 교황이 평양을 방문해 빛과 희망을 던져주길 소망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