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뜨는 신설 고교의 실체

  • 신동아
  • 입력 2019년 3월 3일 11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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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 한 학원의 입시설명회 모습.
서울 강남 한 학원의 입시설명회 모습.
대한민국 대학 입시에는 ‘3종 세트’가 있다. 고등학교 3년간의 학업 성적을 보여주는 내신(內申), 봉사활동·특별활동·독서활동·교내수상 경력 등을 포함하는 비교과, 대학에서 수학(修學)할 수 있는 능력을 시험하는 수능이 그것이다. 그중 갑(甲)은 내신이다.

실제 지난해 수험생의 76.2%는 내신을 포함하는 학생부 중심인 ‘수시모집’으로 4년제 대학에 진학했다(한국대학교육협의회 자료). 현재 고3 학생이 치를 2020학년도 대입에서도 수험생의 77.3%를 수시모집에서 선발한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다. 수시모집이 대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인 현행 입시제도에서 내신 성적은 대입과 직결된다.

신설고가 주목받는 이유


학생과 학부모들은 “내신 등급 잘 받는 요령 중 하나가 고등학교를 잘 선택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쟁쟁한 실력자가 모여 있는 특목고,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강남 8학군 명문고에서는 내신 1등급 따기가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학업에 소홀한 학생들이 대거 모인 학교라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 자기 통제력 강한 학생이 아니라면 자칫 ‘공부 안 하는’ 분위기에 휩쓸려 대입 실패의 쓴맛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개교한 지 몇 년 안 된 신설 일반고는 상대적으로 입시 전략 정보가 축적돼 있지 않고, 진로·진학 노하우가 부족한 편이라 보통 학업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은 이곳 진학을 꺼린다. 그 결과 신설고 정원이 미달되기도 하는데 오히려 ‘공부 좀 한다’는 학생의 경우 이러한 미달 사태가 반가울 수도 있다. 실력자가 빠진 상황에서 잘만 하면 특목고나 자사고보다 내신 성적 관리가 한결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요즘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신설고’가 내신 잘 받을 수 있는 학교로 종종 입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내신 성적에 따라 대입의 당락이 좌우되는 만큼 누군가에게는 신설고가 대학 문을 여는 또 다른 열쇠인 셈이다.

자녀가 중학교 2학년인 학부모 김모 씨는 최근 학부모 모임에서 고교 진학 얘기를 듣고 귀를 의심했다. 김씨는 “서울 강남에 사는 아이가 집에서도 멀리 떨어진, 세워진 지 2년밖에 안 된 경기도 소재 신설고로 간다고 해서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거기에서 내신을 잘 받아 대입 수시모집에서 비교과 없이 내신으로만 지원하는 ‘학생부 교과전형’을 노리는 거더라. 우리 아이도 내년에 고등학교 가야 하는데, 진지하게 고민 좀 해봐야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강남에 있는 명문고는 내신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 정말 잘하는 아이면 모를까, 죽어라 하고도 내신이 안 나오면 그런 헛고생이 어디 있겠나. 아이 고생도 덜 시키고 내신도 잘 받을 수 있다면 세워진 지 얼마 안 된 학교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내신 잘 받는 게 장땡”

2명의 대학생 자녀를 둔 안준현(가명·56) 씨는 딸과 아들이 각각 2015년, 2017년 대입 전형을 치렀다. 그런데 두 자녀의 결과는 사뭇 달랐다. 안씨의 큰딸은 자사고에 진학했지만 내신 성적이 줄곧 4등급에 머물러 수시를 포기하고 정시로 선회해 서울 중위권 대학에 진학했다. 반면 누나보다 학업 역량이 떨어졌던 둘째는 집에서 떨어진 신설고에 입학해 내신 1등급을 받아 서울 상위권 대학에 합격했다.

안씨는 “정부가 정시 비중을 높인다고 하지만 여전히 수시 비중이 압도적이다. 요즘 애들은 내신 성적으로 대학 가는 ‘수시 세대’라 내신 등급 잘 받아 대학 가는 게 최고의 전략인 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학부모도 자녀의 입시를 수월하게 치르려면 내신을 잘 챙길 수 있는 학교를 전략적으로 고려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설고 중에서도 신도시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는 학교가 학부모들 사이에서 각광받고 있다. 2년 전 경기 수원시 광교 신도시에 입주하면서 아이를 인근 신설고로 보낸 학부모 김민경(52) 씨는 “아이가 상대적으로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학교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내신 등급을 잘 받고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학군이 집값에 큰 영향을 미치다 보니 신설고를 명문학교로 만들기 위해 지역 주민은 물론 지자체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그에 따라 학교도 입시 지도에 최선을 다한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이어 그는 “‘노력형’인 우리 아이가 신설고에 가서 자칫 노는 분위기에 휩쓸리면 어쩌나 걱정도 했는데, 학기 초부터 담임선생님이 학급 분위기 길들이기에 나선 덕분에 다행히 아이 내신 성적이 1등급 후반대를 유지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 수준을 유지한다면 수시모집에서 서울 상위권 대학 진학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설고를 바라보는 학생과 학부모의 시선은 엇갈린다. 학생들이 깨끗한 새 건물에서 최신식 기자재로 불편함 없이 공부할 수 있다는 장점과 학업 성적이 저조한 학생이 몰려 면학 분위기가 좋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공존한다. 게다가 학교 체계가 잡히기까지 교사들이 잡무에 시달리느라 수업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고, 첫 졸업생을 배출하려면 최단 3년가량 소요돼 입시 정보나 대입 지도 전략이 취약한 측면이 있다.

‘특별반’ 집중 관리… 교과전형 공략

지난해 8월 김상곤 사회부총리겸 교육부 장관이 2022학년도 대학입학제도 개편 방안 및 고교교육 혁신 방향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지난해 8월 김상곤 사회부총리겸 교육부 장관이 2022학년도 대학입학제도 개편 방안 및 고교교육 혁신 방향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내신 성적을 잘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신설고로 진학하는 전략을 고려한다. 김씨 아들이 다닌다는 경기 수원시 광교 K고교 관계자는 “요즘은 신설고도 대입 실적을 내기 위해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을 모아 ‘특별반’을 구성해 집중적으로 관리한다. 교내 경시대회 등 생활기록부에 도움이 될 만한 활동들을 추천해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신설고가 택하는 입시 전략은 뭘까. K고교 관계자는 “학교 동아리 활동과 특성화 활동이 특목고, 자사고에 버금갈 만큼 높은 수준은 아니어서 내신과 비교과활동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학생부 종합전형(학종)보다는 내신과 수능 최저등급을 조건부로 하는 교과전형을 중점적으로 공략해 입시 지도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무엇보다 교과전형은 고교 출신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학생이 신설고에서 내신 성적을 잘 받아 수시모집에서 교과전형으로 대학 가기를 희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일부 학생은 명문고를 다니다 신설고로 전학을 오기도 한다. K고교 관계자는 “명문고에서 신설고로 전학 오는 학생 대부분이 특목고, 자사고 출신이다. 간혹 서울 지역 광역단위 자사고에 운 좋게 입학했다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신설고로 전학 오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명문고에서 신설고로 전학 온 경우에는 대입 전략도 조금 차이가 있다. 1학년 겨울방학 때 자사고에서 신설고로 넘어간 이민수(가명·21) 씨는 전학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학종에서 입학사정관들에게 ‘성적 상승세’를 보여주면 합격 가능성이 더 커질 것이라 판단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전학 이후 이씨 성적은 2등급 중반(1학년)에서 1등급 초반(3학년)으로 상승했다. 고교 전 과목 내신은 1.7등급.

이씨는 이미 자사고 다닐 때 대학에 내세울 만한 특기를 발굴해놨다. 자사고 재학 기간 주요 과목 내신은 2~3등급이었지만, 물리 과목만큼은 1등급을 놓치지 않았다. 교내 물리경시대회에서도 금상을 타며 물리 공부에 매달렸다. 이씨는 “여기에 신설고로 전학 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내신 등급이 상승한 게 대입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2017년 수시모집에서 학종으로 서울 상위권 대학의 전기전자공학부에 합격했다.

실제로 입시 전문가들은 “내신의 경우 고교 3년 내내 내신 성적 평균이 2등급인 학생보다 3등급(1학년)에서 2등급(2학년), 1등급(3학년)으로 상승세를 보이는 학생이 대학 합격에 유리하다”고 밝혔다. 그렇기에 학기 초만 되면 입시 전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신설고 입학 혹은 전학을 두고 학부모와 학생들 간의 갑론을박이 거세다.

수시 포기하고 정시 대비… 이도저도 안 돼

최근 들어 성적 우수 학생의 신설고 지원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경기 K고교의 경우 지난해 성적 상위 20% 이내 학생 수가 전년보다 3배가량 늘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신설고마다 학년별 정원 100명 기준으로 전교 1~4등(1등급) 최상위권 학생들 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내신 경쟁 속에서 중상위권 학생들도 내신 관리의 어려움과 한계를 겪기도 한다.

대전 소재 S신설고 관계자는 “특목고나 자사고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학생들이 내신 1등급을 받으려 신설고로 진학하면서 최상위권 내신 경쟁이 매우 치열해졌다”며 “이제는 웬만큼 공부해서는 1등급 받기가 쉽지 않다”고 귀띔했다. 올해 고3이 된 자녀를 둔 박모 씨 역시 신설고 재학에 대해 “신중하라”고 조언한다. 2017년 7월 당시 고1이던 박씨의 아들은 내신으로 승부를 걸겠다며 신설고행을 결정했다. 중학교 시절 전교 2~3등을 유지하며 자사고에 진학했지만 1학년 1학기 내신 성적이 4등급 초반이 나오자 충격을 먹고는 경기 소재 신설고로 전학 갔다. 하지만 기대한 것만큼 내신등급이 오르지 않았다. 현재 박씨 아들은 3등급 초중반을 유지하고 있다.

박씨는 “신설고는 일반고보다 학생 수가 적어 내신 1등급 받기가 무척 어렵다. 보통 학년별 정원이 100명 내외인데, 2학년 때 문·이과로 나누면 이과의 경우 선택 교과에 따라 학년별 30명이 내신 경쟁을 하게 된다. 단 1명만 1등급을 받을 수 있어 사실상 시험에서 100점을 맞아야 한다. 문항별 배점이 소수점이라 한 문제만 틀려도 소수점 차이로 한 등급 이상 차이 난다”고 하소연했다.

이처럼 신설고에서도 내신 관리가 쉽지 않아 전학 온 걸 후회하는 경우가 적잖다. 내신 경쟁에서 밀리거나 다소 부진한 교육 프로그램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내 다른 학교로 전학 가는 사례도 더러 있다. 부산 소재 B신설고에 재학 중인 김모 군은 “1학년 1학기 중간·기말고사 시험을 치른 후 생각보다 내신 성적이 낮아 일찌감치 수시는 포기하고 정시로 마음을 돌리는 아이가 많다” 밝혔다. 특히 그중에는 수능 대비가 불가능하다고 여겨 정시 실적이 좋고 면학 분위기도 좋은 학교로 전학 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신설고 재학생들은 “신설고가 ‘기회의 땅’이라는 말은 상위권보다 중하위권 학생들에게 해당된다”고 입을 모은다.

“신설고서 상위권 대학 가기 쉽지 않아”

서울 관악구 소재 신설고에 재학 중인 이모 양은 “일반고에서는 내신 5~6등급 받던 친구가 신설고에선 3등급을 받기도 하는데, 이는 공부에 관심 없는 애들이 소위 ‘깔아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중위권 학생에게는 좋은 선택일 수 있으나, 상위권 대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에겐 자칫 ‘도박’이 될 수 있다.

한편 신설고에 ‘내신 점수 따기 좋은 학교’란 꼬리표가 붙으면서 학업 수준에 대한 불신도 커지고 있다. 부산 소재 신설고 한 재학생은 “신설고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내신 등급을 잘 받아 1차 합격하고도 수능시험 최저학력기준에 미달해 탈락하는 학생들이 종종 있다”고 밝혔다. 결국 신설고에서 수시로 명문대에 진학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동아리 활동을 비롯해 특성화 활동이 체계적으로 운영되지 않는 신설고에서는 주로 학생부 교과전형을 집중 공략하는데, 서울대를 비롯한 다수의 상위권 대학이 교과전형이 아닌 학종으로 학생들을 선발하기 때문이다. 또 교과전형을 채택한 대학들은 수시모집에서 수능 최저등급제를 적용하고 있어 수능시험 대비가 필수다. 하지만 신설학교 특유의 어수선한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공부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또 학교가 수시 대비에 열중한 나머지 정시 전략이 부족해 학생들이 이도저도 아닌 상황에 빠져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지난해 청주 소재 H신설고를 졸업한 하민석(가명·20) 씨는 “내신이 3~4등급에 속하는 ‘애매한’ 학생이라면 면학 분위기 좋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비록 내신 경쟁이 치열해 등급이 떨어질지라도 다 같이 공부하는 분위기에 자극받아 열심히 한다면 정시모집에서 뜻밖의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설고 진학을 고수한다면 개교 4년차 이상의 학교를 알아보는 것이 좋다. 하씨는 “신설고마다 학교 역량이 ‘복불복’이기 때문에 수시와 정시 입시 결과를 반드시 확인한 후 신중하게 결정하기를 바란다”고 조언했다.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19년 3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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