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이 대통령 두려워 않아야 자유사회”
● “시장경제 공격의 귀결점은 전체주의”
● “이해찬·유시민 말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사람 많아”
● “한국이 불평등 최악? 어디에도 근거 없어”
● “좌파 선동가들이 사실 왜곡하고 분노 부추겨”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교수 이병태(59)의 언어는 투명하다. 부러 논쟁을 피하지 않고, 애써 결기를 감추지 않는다. 권부(權府)의 위선과 모순을 저격하는 데 이 투명함은 적격이다. 2017년 10월 1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나가 자신의 태도를 문제 삼는 집권당 의원에게 “제가 내일모레면 60이다. 여기 계신 의원님들에게 태도, 표정을 코치받을 나이인가. 제가 의원님 자식인가”라고 되물은 장면은 그의 언어가 때와 장소에 위축되지 않음을 오롯이 증명했다.
이병태는 청주고와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했다. 카이스트에서 경영과학 석사, 미국 텍사스대(오스틴)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애리조나대와 일리노이대에서 교수로 일했고, 테뉴어(Tenure·종신보장)를 받았다. 2001년 귀국해 카이스트 경영대학장과 테크노경영연구소장, 청년창업투자지주 대표이사, SK사회적기업가센터장을 지냈다. 18년간 산학을 망라하며 화려한 이력을 쌓아올렸다.
언뜻 ‘금수저 출신 지식 엘리트’라고 규정짓기 쉽지만 실상 그는 소작농 집안에서 자랐다. 2019년 2월 12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 카이스트 서울캠퍼스에서 그를 만나 대뜸 이렇게 물었다.
“동네 이름이 ‘개천안’”
- 금수저 출신이려니 지레짐작했는데 소작농 집안 출신이라고 들었습니다. 어쩌다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됐습니까?
“2017년 여름,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페이스북에 글을 하나 썼어요. 대선 공약처럼 1만 원으로 올리면 우리 경제 망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어떤 이가 페이스북 메신저로 ‘사람값이 똥값인 나라에서 그거 조금 올려주는걸 문제 삼느냐. 당신이 카이스트 금수저 교수니까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냐’면서 A4용지 절반 정도 분량으로 욕설을 보내왔어요. 그 과정에서 제 개인 배경을 밝히게 됐습니다. 저는 충청북도의 아주 깊은 산골에서 자랐습니다. 저희 시골은 충주댐 생기면서 수몰됐어요.”
- 그럼 지금은 고향이 사라졌나요?
“그렇죠. 고향의 상당 부분이 수몰됐습니다. 부모님은 땅 한 평 없었고 학교도 다니시지 못한 분들이었습니다. 제가 장남이에요. 위로 누이, 밑으로 남동생이 있어요. 제가 자란 동네는 고등학교 때 돼서야 전기가 들어올 정도의 시골이었어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서당을 다닐 정도로 시대에 뒤떨어진 산골이었죠. 저는 중학교 3학년 때 후배 집에 들어가서 입주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래도 저는 사회적 혜택을 누렸어요. 서울대 학부와 카이스트 대학원 다닐 때 국가 혹은 학교가 주는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우리 사회가 부유해지면서 주어진 교육 기회를 받은 겁니다. 누나는 저보다 네 살 많은데도 초등학교 졸업하고 곧장 공장에 가 근로자로 일했죠.”
- 스스로를 ‘개천에서 난 용’이라고 생각합니까?
“저희 동네 이름이 실제로 ‘개천안’이에요.(웃음) 실개천할 때 그 실개천은 아니고, ‘열릴 개(開)’에 ‘하늘 천(天)’, ‘편안할 안(安)’을 쓰는 동네예요. 고려시대 때 정토사라는 큰 절이 있었고, ‘토정비결’을 쓴 이지함 선생이 잠시 기거할 만큼 풍광이 좋은 동네입니다. 저희 시골에서는 저를 두고 그렇게(개천에서 난 용이라는) 생각했죠. 중학교 졸업하고 청주고를 갔는데, 평준화 전이라 충청북도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애들만 갈 때였으니까요. 이후에 대학을 갈 때도 그런 이야기를 가끔은 들었죠.”
- 석사학위를 받은 후 중소기업(신도리코)에 취직했더군요. 서울대·카이스트 학력이면 당시 원하는 대기업에 충분히 취업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이유가 있나요?
“당시 이름은 카이스(KAIS·한국과학원)였는데, 석·박사과정 학비가 무료였어요. 석사과정생 중 성적 상위 3분의 2 안에만 들면 박사과정이 보장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 전두환 전 대통령 집권 후 카이스와 키스트(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가 통합돼 카이스트가 됐는데 지원 예산이 갑자기 줄었어요. 이미 서류상 합격해 박사과정 입학이 결정됐는데, 얼마 후 취소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초법적인 일이죠.
뒤늦게 일자리를 알아봐야 했어요. 그때는 어린 나이니까 ‘대기업은 나쁜 놈들’ 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있어서 대기업은 알아보지도 않았습니다.(웃음) 중견기업에서 찾다보니 카이스트 학생을 받겠다고 하는 기업이 몇 곳 없었고, 그중 하나가 신도리코였습니다. 그런 아주 순진한 생각으로 신도리코를 갔죠.”
- 신도리코에서 몇 년 근무하신 겁니까?
“5년 반을 일했죠. 그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선의의 피해자”
-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오류를 지적하니 저격수 이미지가 강해졌습니다. 부담스럽지는 않습니까?
“저보고 괜찮으냐고 묻는 분이 많아요.(웃음) 기회비용은 있죠. 좋아하는 연구할 시간에 사회에 떠드느라고 시간을 쓰고 있고, 그러면서도 지도학생들에게 ‘교수가 사회문제에 관심 있어 지도에 신경을 덜 쓴다’는 이야기 듣기 싫으니까 주말과 밤에 일해야 하고요. 그간 기업 자문에 많이 응했었어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됨으로써 기업들이 부담을 느낄까봐 그런 관계를 끊었습니다. 약간의 경제적인 손해를 감수해야 하죠. 더 괴로운 건 아무 논리도 없이 욕설을 내뱉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겁니다. 댓글에 내성이 생겨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뭐….”
- 국립대 교수인데 굳이 그런 여러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저는 미국에서 교수로 일하면서 이미 테뉴어를 받았어요. 종신보장을 받은 겁니다. 미국에는 그런 직업이 교수와 대법관 두 개밖에 없습니다. 중세 암흑기를 거친 서구의 경우, 세속권력이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면 사회적인 손해라는 반성을 했습니다. 그래서 테뉴어를 받은 사람은 사회에 지적으로 기여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학문적인 양심에 비춰 사회가 건강하지 않게 흘러가면 꼬집어줘야 합니다. 우리 지식사회에서 대학교수들이 그간 얼마나 많은 혜택을 누려왔습니까. 다행히 집사람도 제가 학자로서 목소리를 내는 데 동의해줘요. 정권 지지율이 더 떨어지면 더 용기 내는 분들이 나오겠죠.”
- 용기까지 내야 할 상황이라고 보나요?
“제 저격에 흔들릴 정부도 아니겠습니다만, 사람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표현의 자유가 위축돼 있는 게 마음이 아픕니다. 정부 스스로는 민주정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절대 민주주의를 하고 있는 게 아니죠. 억압한 적 없다고 하는데 기업에 가보세요. 하고 싶은 얘기 하나도 못 하잖아요.”
- 기업이 말을 못 한다?
“예컨대 광주형 일자리의 경우 저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자유로운 선택이라 보지 않습니다. 그 얘기 처음 나왔을 때 현대차 임원들을 만났는데 굉장히 곤혹스러워했어요. 권력을 누가 잡건 정부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야 하잖아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명시적으로 겁을 줘도 GM은 구조조정한다고 5개 공장 닫고, 할리데이비슨은 유럽으로 공장 옮겼습니다. 기업이 대통령과 정부의 압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가 정말 자유로운 사회예요.”
이병태는 또렷한 자유주의자다. 그의 세계관을 떠받치는 기둥은 시장경제다. 그렇다 보니 비판의 근거가 수미일관(首尾一貫)하다. 그의 화살촉이 진영과 정권을 가리지 않는 이유다. 이병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이 2007년에는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고)를 주창하다 2012년에 경제민주화를 들고 나와 경제철학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단다.
그가 본격적으로 공론장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시기도 박근혜 정부 때다. 그는 당시 정부가 시행한 단통법(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을 두고 ‘과잉규제’의 산물이라고 비판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경제민주화와 동반성장 같은 미사여구도 결국 시장 개입일 뿐”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J노믹스(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저격수 역할은 그에게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을 터.
“공정을 국가가 어찌 정의하나”
전상인 서울대 교수는 ‘신동아’ 2019년 1월호에서 이렇게 썼다.
“시장경제는 인류의 오랜 진화 과정에서 형성된 제2의 자연과 같은 존재다. 국가의 기본 책무는 다름 아닌 이런 시장을 만들고, 키우고, 지키고, 살리는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생뚱맞게도 시장과 이념의 결합에 도전하고 있다.”
이병태 역시 “시장경제를 믿는 사람 대부분은 시장의 자발적인 거래가 정의로운 결과라고 믿는다”고 단언한다. 그에게 물었다.
- 시장에서 정의롭지 못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 않습니까?
“시장에는 그런 결과를 해결하는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시장에는 경쟁과 계약의 자유, 두 가지 메커니즘이 작동해요. 가령 가맹본사가 가맹점주의 사업을 계속 어렵게 하면 능력 있는 가맹점주는 해당 본사와 거래를 끊고 다른 데로 가겠죠. 경쟁과 계약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지속하는 조직은 잘될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 사회는 ‘정의롭다’는 말과 ‘시장이 실패한다’는 말을 너무 함부로 쓰는 것 같아요. 설사 시장에서 정의롭지 못한 일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빚어질 ‘정의롭지 못한 결과’가 훨씬 더 참혹할 겁니다. 히틀러는 ‘시장과 사회가 잘못돼 있다’면서 그 책임을 유대인에게 돌리는 식으로 선동해 권력을 쥐었습니다. 시장을 공격하는 세력의 귀결점은 전체주의이고 국가주의예요.”
때 아닌 ‘정의 담론’을 꺼내든 이유는 그것이 문재인 정부의 집권 레토릭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약속했다. 이병태는 “(대통령의 말에는) 모든 삶에 국가가 개입하겠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면서 “그로 인해 어마어마하게 많은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부연했다.
“지금 이 정부는 저임금 받는 근로자가 다 ‘착취당했다’고 생각하니 최저임금을 올린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순간 자영업자에게는 어마어마한 부정의가 작동한 겁니다. 최근에는 카드수수료를 줄여 자영업자 도와주는 척했는데, 카드사 수익성이 떨어지니 벌써 카드 영업사원들이 짐 싸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를 위한 정의냐는 겁니다.”
- ‘기회는 다양하고 과정은 자유로우며, 결과는 책임지는 사회’를 대안으로 제시하셨더군요.
“그게 시장주의의 본질입니다. 제가 무슨 재주로 ‘아이유’와 노래로 경쟁해 돈을 벌겠다는 기회에 도전하겠어요? 다양한 기회가 인간을 풍요롭게 하지, 기회를 균등하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과정은 법치에 따르면 되는 거죠. 공정함을 국가가 어떻게 정의합니까. 또 기회가 열려 있었고 자기 선택에 의해 무언가를 택했으면 결과는 자기가 받아들여야죠.”
“‘사회주의자야’ 하고 말아버리면…”
이병태가 건넨 명함에는 카이스트 로고와 비슷한 크기로 ‘FEN’이라는 로고가 박혀 있다. ‘Fact-based Economics Network’의 약자다. 그는 지난해 민간단체 경제지식네트워크를 만들어 해외의 주요 경제 아티클(article) 등을 한글로 번역해 제공하고 있다. ‘이병태TV’라는 유튜브 방송도 시작했다. 이병태TV는 얼개를 드러낸 지 한 달여 만에 구독자가 4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 경제지식네트워크에서 어떤 식으로 ‘팩트 반박’을 하는 겁니까?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소득주도성장 덕에 소비가 늘었다면서 이른바 ‘체질개선론’을 주장했잖아요. 저는 2013년부터 이미 소비가 계속 늘고 있었다는 데이터를 보여줬습니다. 또 우리나라 소비는 결국 경제성장률과 같이 간다는 데이터도 내놨고요. 특히 분기별로 소비증가율이 내려가고 있다는 걸 보여줘 이 대표의 얘기가 틀렸다는 걸 증명했어요.”
- 유튜브 방송의 취지도 ‘팩트 반박’이겠군요?
“그렇죠. 제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능력 있는 게 통계를 해석하고 구글에서 글로벌 자료나 논문을 찾는 겁니다. 우리 사회에는 이해찬 씨나 유시민 씨가 이야기하면 그게 사실인 양 앵무새처럼 반복해 떠드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저 사람들 사회주의자야’ 하고 말아버리면 논의를 할 수 없잖아요. 이런 주장에 대해 데이터를 갖고 반박하라고 (시청자에게) 얘기하는 겁니다. 그러니 준비하는 시간이 많이 걸려요. 그래도 젊은 층에게 지적 호기심과 가치, 정보를 제공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방송을 하는 거죠.”
-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경제성장의 혜택이 소수 상위 계층과 대기업에 집중됐고, 어느덧 우리는 부의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이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나라가 됐다”고 말한 것을 두고도 비판하셨더군요.
“경제적 불평등을 측정하는 방법은 수없이 많거든요. 통계에 잡히지 않는 소득도 많습니다. 가령 65세 이상이면 지하철을 무료로 타잖아요. 누가 상대적으로 많은 혜택을 볼까요? 가난한 계층이겠죠. 부자들은 승용차를 타고 다니니까요. 결국 부자가 현물로 공여해주는 거거든요. 또 근로소득이 있는 사람 중 저소득층은 고용주 몫을 빼면 한 달에 1만7000원 건강보험료를 내는데, 고소득자 중 많이 내는 사람은 340만 원 냅니다. 하지만 병원 가면 똑같은 서비스를 받지 않습니까. 이런 통계는 보험료를 낸 지출로 잡히지, 간접적 소득 이전 효과로 안 나옵니다.”
그가 덧붙여 말했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교육 기회가 가장 열려 있는 사회예요. 가난한 나라는 대개 급하니 정치인들이 현금복지를 일삼지, 장기적 투자를 안 합니다. 길과 수도, 전기가 다 안 돼 있는데 왜 교육에만 투자하느냐 하는 말이 나오죠. 선거 때는 고무신 주고요. 반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는데 교육에 어마어마하게 투자했습니다. 우리나라 평균 교육 연한이 일본, 영국보다 높아요. 교육이 있으니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잖아요.
이런 여러 변수를 갖고 포용성지수를 재거든요.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14~16위 정도로 평가받아요. 경제적 불평등지수에서 우리가 최악이라고 하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수십 년 사이에 평균수명을 가장 많이 늘린 나라예요. 현재와 과거를 보고 잘못됐다고 얘기하는 건 사실과 전혀 맞지 않는 얘기입니다.”
1960년대 활발히 활동한 미국 도시빈민운동가 사울 알린스키(Saul Alinsky)는 훗날에 두고두고 인용될 적확한 ‘운동권 비평’을 남겼다. 그는 신좌파를 향해 “세상을 바꾸려면 ‘본인들이 원하는 세상(the world as we would like it to be)’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세상(the world as it is)’을 보라”고 일갈했다. 시장주의자 이병태와 급진주의자를 자처한 알린스키 사이에는 가닿기 힘든 아득한 거리가 있지만 교집합도 있다.
- 집권 세력이 현실을 제대로 보지 않고 있다고 진단하십니까?
“정부·여당은 우리 사회에 압축성장의 유산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어요. 50대 이상에서부터 평균 교육 연한이 9.1년, 즉 중졸이에요. 여성은 더 낮아 거의 초졸입니다. 버젓한 기업에 취업할 수 없는 중장년층, 특히 여성인력이 많았던 겁니다.
그분들은 가발공장이나 식당에 가서 일할 수 있었지만, 반도체나 자동차 만드는 기술자가 될 수는 없었잖아요. 그러니 다 자영업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생산성이 지극히 낮은 불행한 시대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저임금산업에 가서 일할 수밖에 없던 분들이 있었음을 인정해야죠. 이건 복지로 해결해야지, 재벌이 하도급업체 착취한 탓이라고 해버리면 인과관계 자체가 맞지 않잖아요.”
- 청년의 삶이 녹록지 않은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청년들이 절망하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전망이 어두운 데 있거든요. 좌파와 현 정부는 자기들 마음에 안 드는 사실 몇 개를 침소봉대해 온갖 에너지를 쏟아부어요. 실상은 우리가 과거에 누린 글로벌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점 때문에 문제가 빚어지고 있는 겁니다. 강성 노조도 없고 재벌도 없는 일본은 왜 잃어버린 20년을 보냈나요? 사회주의 정부가 분배를 개선한 프랑스에서 왜 노란조끼 운동으로 나라가 흔들리고 있나요? 선진국에서 청년실업률이 우리나라보다 낮은 곳은 일본과 한두 나라 정도예요. 우리나라 청년실업률이 속도가 빠르게 올라서 문제지, 현 수준으로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낮은 편에 속합니다. 미래 세대에게 좋은 일자리를 못 주고 있다는 건 전 세계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 현실에 대한 진단 자체가 잘못됐다?
“소수의 재벌이나 강성 노조의 문제라고만 귀착시키기에는 설명이 안 되는 글로벌 경제의 트렌드가 있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현 정부는 이런 현실은 무시하면서 ‘보수 세력이 정부를 흔들기 위해 경제위기론을 펴고 있다’는 식으로 왜곡해요. 진영논리에 싸여 있는 자폐적 정부죠.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밑의 사람들이 적어주는 통계 왜곡적인 내용을 국민에게 서슴없이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좌파의 선동”
인터뷰 내내 이병태의 말투는 날카로우나 나긋나긋했다. 딱 한 번, 그러니까 “좌파의 경제 선동”을 꼬집을 때만 빼고 말이다. 그는 한국 사회의 경제 선동가들이 “사실을 왜곡해 거짓말을 일삼으며 청년에게 분노하라고 부추기고” “부자를 털면 소득격차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투기꾼만 잡으면 정의를 이루는 것처럼” 고집스레 우긴단다. 그의 말이다.
“재벌이 다 가져가는 게 사실이라면 대기업 다니는 정규직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월급을 받습니까? 솔직히 말해, 현대자동차 조립공의 연봉 1억 원은 생산성과 시장가격에 따라 책정된 건가요? 노조가 있고 대기업에 입사했기 때문에 그렇게 받는 거잖습니까. 그러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조선 산업에서 연 8000만~1억 원 받던 근로자들이 (실직 탓에) 바깥으로 나오는 순간 연 2000만 원 자영업자로 전락합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문제에 대한 진지한 담론은커녕 정치적 이해를 앞세워 공공의 적을 세워놓는 식으로 나가서는 곤란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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