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전 공사 ‘조성길 딸’ 관련 北 발표 반박

  • 신동아
  • 입력 2019년 3월 18일 10시 10분


“미성년 지적장애인이 자진 귀국? 강제 북송 맞다!”
● “북한법, ‘미성년 장애인은 부모가 후견·대리인’”
● “후견인 부모 의견 묻지 않고 즉각 北에 보낸 건 불법 강제송환”
● “지적장애 사유는 세뇌에 의한 北체제 과잉 충성”

‘신동아’ 3월호에 실린 조성길 전 대사대리 딸 강제 북송 증언 보도(왼쪽).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 [홍중식 기자]
‘신동아’ 3월호에 실린 조성길 전 대사대리 딸 강제 북송 증언 보도(왼쪽).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 [홍중식 기자]

‘신동아’ 3월호는 “2018년 11월 잠적한 조성길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 부부의 고교생 딸(17)이 북한에 강제송환됐다”는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의 증언을 보도했다. “조 전 대사대리는 11월 10일 로마 인근 북한대사관을 탈출하면서 딸을 함께 데려나오려고 했으나 실패했으며 딸은 북한 당국에 의해 평양으로 돌려보내졌다”는 게 태 전 공사의 설명이었다.

이 소식은 상당히 많은 외신에 보도돼 파문을 낳았다. 이탈리아 정부는 조성길 딸의 북송 사실을 확인했고, 강제성 여부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이탈리아 영토에서 탈북자의 미성년 딸이 강제송환되는 것을 막지 못한 것 아니냐”는 논란으로 이탈리아 정·관계가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이탈리아 외교부 차관은 “사실로 드러나면 책임자들은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 반박이 오히려 ‘강제성’ 뒷받침

국제 여론이 들끓자 북한은 김천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 명의로 조성길 딸의 북송에 대해 “자발적 귀환이었다”고 반박했다. 김천 대사대리는 “조성길은 11월 10일 딸 조유정의 정신장애 때문에 아내와 부부싸움을 한 뒤 대사관을 나갔고 다음 날 아침 그의 아내도 대사관을 떠났다. 조성길의 딸은 부모가 잠적함에 따라 홀로 남겨졌기 때문에 부모를 증오했고 조부모에게 돌아가기 위해 평양에 가기를 원했다”고 했다.

‘조성길 딸 강제 북송’에 관한 진실 규명 차원에서 태 전 공사의 반박을 소개한다. 태 전 공사는 “조성길 딸은 강제로 북송된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북한의 반박이 이러한 강제성을 오히려 뒷받침한다”고 밝혔다. 태 전 공사와의 일문일답이다.

- 북한 당국의 반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우선, 제가 ‘신동아’에 이 문제를 제기하자 외신이 이를 받았고, 이탈리아 정부가 입장을 발표했고, 이탈리아 주재 북한대사관도 응했습니다. 북한 당국이 이 문제에 반응을 보인 것은 긍정적입니다. 지금까지 북한은 이런 인권 문제에 침묵했으니까요. 이번엔 반응을 빨리 보였죠. 큰 정치 이슈가 됐으니 그랬을 수 있겠죠. 또한 북한이 밝힌 내용 중에 상당 부분은 팩트입니다.”

- 어떤 부분이 팩트입니까?

“조성길의 딸이 지적장애인이라는 점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의 반박엔 모순이 있어요. 먼저, 지적장애인은 그가 표시하는 모든 의사나 결정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을 가리키죠. 그런데 어떻게 지적장애인이 당과 제도에 투철하고 조부모가 있는 평양에 가겠다고 확고히 밝힐 수 있느냐 하는 것이죠.”

“법과 인권에 어긋나”

- 조성길 전 대사대리의 딸은 미성년 지적장애인이죠.

“네. 미성년이죠. 법과 인권의 견지에서도 북한의 반박은 모순입니다. 조성길 전 대사대리는 2018년 11월 10일 대사관에서 나갔고 그다음 날인 11월 11일 조 전 대사대리의 부인이 나갔습니다. 북한은 불과 3일이 지난 11월 14일 조씨의 딸을 북한으로 보냈습니다. 정상적인 법 절차로 보면, 그 딸이 북한으로 가느냐 부모 품으로 가느냐의 결정은 북한대사관 같은 제3자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딸은 미성년이고 지적장애인이므로 부모가 결정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각국 법이 그렇게 돼 있고 북한법도 그렇게 돼 있어요. 딸이 정상적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미성년 지적장애인이라면서 딸의 결정을 반영해 신속하게 북한에 보냈다는 것은 법과 인권에 맞지 않습니다. 북한 당국은 한 달 정도 부모를 기다렸다면 모를까 부모가 나간 지 불과 3일 만에 그 딸을 비행기에 태워 북한으로 보냈어요. 딸의 북송 결정이 너무 신속히 이뤄졌다는 것이죠. 이것은 결국 부모가 안 돌아올 수도 있는 상황에 대비해 강제적으로 데려갔음을 북한 스스로 인정한 것이 됩니다.”

북한의 ‘가족법’에 따르면, ‘미성인과 신체상 결함으로 행위능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에 대한 후견인은 부모가 되도록’ 하고 있다. 후견인은 후견을 받는 사람의 대리인이 된다. 이러한 북한 법률에 의거하더라도, 의사결정능력이나 행위능력이 없는 미성년 지적장애인인 조성길 딸의 행선지는 후견인이자 대리인인 조성길 부부가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 북한 당국이 후견인인 부모의 의견을 묻는 절차 없이 일사천리로 피후견인인 조성길의 딸을 북한으로 보냈으니 강제송환과 다름없다는 게 태 전 공사의 말이다.

“만약 북한이 법과 인권에 따라 조성길의 딸 문제를 처리한다면, 딸을 대사관에 계속 두다가 조성길이 ‘내 딸을 내게 보내달라’고 하면 조성길에게 보내줘야 해요. 며칠 만에 즉시 북한으로 돌려보내 일생을 부모와 갈라놓는 것은 당국이 할 일이 아니죠. 평생 보호를 받아야 할 지적장애인일수록 부모 곁에 가 있게 해줘야 합니다. 조성길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면 북한은 이탈리아 당국에 ‘실종된 우리 사람의 지적장애인 딸이 우리에게 있다. 당신들이 딸의 부모를 찾아 딸을 부모에게 데려다주라’고 해야 합니다.”

태 전 공사는 “북한 스스로가 인권유린 소지가 있음을 노출한 것이다. 북한 내부에서도 좀 치밀하게 준비하지 못하고 공개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딸을 데리고 나가려 한 건 사실”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 조성길 전 대사대리는 대사관 탈출 때 왜 딸을 못 데려왔을까요?

“조성길은 딸을 데리고 나가려고 했는데 지적장애인인 딸이 안 나가겠다고 막 이렇게. 일반적으로 지적장애인들은 부모가 ‘가자, 어디 가자’고 하면 따라 나가기도 하지만 어떤 땐 안 나가겠다고 버티기도 한다고 해요. 대사관을 탈출해야 하는 부모로서는 상당히 당황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조성길이 딸을 데리고 나가려고 했는데 결국 잘 이뤄지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딸이 소리를 쳤는지…결국 그런 이유로 같이 나오지 못했죠.”

- 딸은 왜 안 나가겠다고 한 것이죠?

“부모의 의도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지 않았나 짐작해요. 조성길이 딸에게 같이 탈북하자고 말하진 않았겠죠. 지적장애인이라 그 말을 듣고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까요. 상점에 가자라든지, 놀러 가자라든지, 이런 식으로 이야기했는데 애가 안 나가겠다고 버티면 난감해지는 거죠. 그렇다고 딸을 강제적으로 들쳐 업고 나오겠어요? 옆에 있던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 아닙니까? 결국 불일치가 일어났고 같이 나오는 문제가 계획대로 안 됐어요.”

- 딸의 지적장애가 어느 정도입니까?

“조성길 전 대사대리 옆에 있던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세뇌교육에 의한 과잉 충성 지적장애’라고 합니다.”

“세뇌교육에 의한 과잉 충성 지적장애”

- 과잉 충성이 지적장애일 수 있나요? 과잉 충성은 북한 당국에는 좋은 것 아닌가요?

“예를 들면, 북한에 이런 사람이 좀 많습니다. 세뇌교육을 받다가 거기에 완전히 넘어가서 아침에 출근해 동료들한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내가 어젯밤 꿈에서 김정은 원수님을 만나 뵈었는데, 아, 원수님께서 나를 부르시더라. 그래서 원수님 만나러 가야겠다.’ 그러고는 가방을 들고 김정은이 근무하는 (조선노동당) 중앙당 청사에 가서 ‘원수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해요.”

- 정말 ‘세뇌교육에 의한 과잉 충성 지적장애’라고 할 만하네요.

“(다른 건) 다 정상이에요. 그런 사람들을 보고 북한에서 ‘삔또(지적장애인)’라고 해요. 북한에서 ‘생활총화’를 하는 중에 어떤 사람은 약간 정신적으로 이상하게 되어 벌떡 일어나서 자기비판을 했어요. ‘원수님께선 지금 인민들을 잘살게 해주시려고 밤낮으로 현지지도를 다니시는데 아, 저는 어저께 늦잠을 자다 직장에 늦게 나왔습니다.’ 이러면서 막 엉엉 울었어요. 옆에 있는 사람들은 ‘아, 이 사람은 삔또네’라고 한 거죠.”

- 한국에선 그런 종류의 지적장애인은 상상도 못 하는데요.

“북한엔 이런 사람이 많습니다. 또 어떤 일이 있었느냐면, 한 사람은 집의 벽에 걸어둔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닦다가 아차 해서 바닥에 떨어뜨렸어요. 초상화 유리가 다 깨졌죠. 그러면 새 유리로 갈아 끼우면 되는데, 이 사람이 두려워서 막 떠는 겁니다. 옆에서 ‘일 없어(괜찮아)’ 하면서 진정시키는 데도 머리가 돌아요.”

- 조성길 대사대리의 딸도 그런 유의 지적장애인인가요?

“북한 당국의 발표문에도 나와 있어요. 딸이 대단히 충성심이 높다고요. 그 충성심이 세뇌교육에 의한 지적장애라는….”

- 조성길 대사가 지적장애인 딸을 버린 것이라고 북한 당국은 주장하는데요.

“딸을 버릴 부모가 어디에 있겠어요? 북한은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죠. 그렇게 해서 조성길을 비정한 아버지로 만드는 거죠. 북한은 탈북자를 배반자, 도주자, 변절자로 가져다 씌웁니다. 딸을 강제로 북송한 것을 정당화하려면 결국 부모가 딸을 버렸다는 논리를 끌고 나갈 수밖에 없어요.”

- 조성길 전 대사대리는 부임하면서 지적장애인 딸을 북한에서 이탈리아로 함께 데리고 온 것이죠? 이런 점을 보면 딸을 어느 정도 사랑했기 때문에 데려온 것으로 보이는데요.

“당연하죠. 이탈리아에서 딸의 병을 고쳐보려고 병원도 엄청 다녔다고 합니다.”

들을수록 가슴 아픈 이야기

태 전 공사의 말을 종합하면, 조성길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는 북한대사관을 나와 탈북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지적장애인 딸의 협조를 받지 못해 결국 갈라서게 됐고 자기의사결정능력이 없는 딸은 후견인인 탈북 부모의 뜻과 무관하게 곧바로 북한으로 강제송환된 것이다. 구김살 없이 살아야 할 17세 딸이 세뇌교육에 의해 북한 체제에 과잉 충성하는 지적장애를 앓았다는 점이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한다. 태 전 공사에 따르면, “조성길 부부는 북한에 있는 딸이 피해를 볼까 걱정해 평생 은둔의 삶을 살기로 했다”고 한다.

외교부는 공식 입장을 묻는 ‘신동아’의 질의에 “조성길의 딸이 강제송환이 된 것인지 자발적으로 북한으로 간 것인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혀왔다. 정부는 김정은 정권과의 협력에 도움이 안 된다고 여겨서인지 조성길 문제에 대해선 회피와 침묵으로 일관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언젠가 조성길의 딸에 관한 진실이 밝혀질 날이 올 것이다.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4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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