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비핵화는 불가능한 목표…포기하면 김정은도 무사 못해”

  • 신동아
  • 입력 2019년 3월 22일 14시 42분


‘강철서신’ 김영환이 본 ‘하노이 노딜’ 그 후

● 북한 비핵화는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목표
● 북한 경제 머지않아 한계상황 도달할 것
● 미국도 핵무기 추가 생산 무한정 방치할 수 없어
● 이스라엘식 핵 보유가 북한의 마지노선
● 북한도 제재 해제 절실하지만 미국도 타협 필요해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김영환 ‘준비하는 미래’ 대표는 40년 가까이 평양을 들여다본 손꼽히는 북한 전문가다. 중국을 거점으로 북한 내 반(反)체제 조직 ‘횃불’을 조직하다가 2012년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북한 인사를 포섭하던 중국 내 조직이 와해된 후로는 연구와 교육에 주력해왔다. 북한 내 네트워크를 조직했기에 확보하는 정보가 살아 있다. 당연히 분석의 정확성이 높다.

그는 서울대 법대 82학번이다. 1986년 팸플릿 ‘강철서신’을 썼다. ‘주사파 대부’로 불렸다. 운동권에 반미친북 분위기를 확산했다. 1991년 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해 김일성을 만났다. 이듬해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을 창당했으나 북한의 실제에 환멸을 느껴 1997년 민혁당을 해체했다.

그는 3월 12일 ‘신동아’ 인터뷰에서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할 의지가 1%도 없다”면서 “핵 보유는 북한의 국시(國是)면서 김정은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남긴 유훈의 핵심 중 핵심”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북한 비핵화는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목표”라고 강조한 후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면 당·군 간부들이 국가도 배반하고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배반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核 보유 의지 강력하고 집요”

- 2월 28일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스몰 딜(Small Deal)도 빅 딜(Big Deal)도 아닌 노 딜(No Deal)로 마무리됐습니다.

“표면적 이유부터 살펴보면 김정은이 트럼프가 처한 상황을 오판했습니다. 트럼프가 국내 정치에서의 어려움 때문에 회담에서 성과를 얻어내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고 따라서 자신들의 주장을 집요하게 내세우면 어느 정도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상황은 반대였습니다. 국내 정치가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야당과 언론이 ‘어설픈 합의’를 비판하고자 대기하고 있는데, 그곳에 먹잇감을 제공해주기는 어려웠습니다.”

- 표면적 이유가 그렇다면 본질적 이유는요.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평양은 워싱턴의 요구를 어느 정도까지 들어주고 양보할 의지는 분명히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비핵화를 하려는 의지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 핵 보유에 대한 북한의 의지와 열정이 아주 강력하고 집요하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비핵화를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저는 그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김정은의 의지와도 상관없는 문제예요.”

- 왜 그렇습니까.

“북한의 제1 목표는 체제와 국가를 지키는 것입니다. 원래는 한반도 전체의 공산화 통일이 제1 목표였으나 어느 순간 바뀌었습니다. 남북 간 국력이 역전되자마자 곧 엄청난 격차가 벌어집니다. 자신들의 생존마저도 쉽지 않은 상태가 되자 특별한 논의나 고민도 없이 자연스럽게 체제와 국가를 지키는 게 제1의 목표가 됐습니다. 체제를 지키려면 주민을 잘 통제하는 게 중요하겠지요.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나라를 지키는 게 가능해야 합니다.

“핵무기는 신념이면서 신앙”

북한 당 간부, 군 간부 대부분은 자신들이 과거 남침을 호시탐탐 노린 것처럼 미국과 한국도 조금의 틈이라도 생기면 북한을 침공할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미국이 국가로 인정한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도 공격했는데 국가로 인정하지도 않은 북한을 침공하는 것은 가능성이 더 높은 일이라고 여기는 것이지요.

최근 20~30년 동안 일어난 전쟁들과 최근의 인도-파키스탄 분쟁을 보더라도 무기의 우수성이 승패를 좌우합니다. 북한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많은 돈을 들여 우수한 무기를 사 오거나 스스로의 힘으로 우수한 무기를 개발해야 하는데, 북한의 능력으로는 둘 다 불가능합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기들이 나라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핵무기를 보유하는 길밖에 없다고 굳게 믿기 시작했으며 종국에는 핵무기가 그들의 확고한 신념이자 신앙이 돼버린 겁니다.”

- 김정은이 ‘통 큰 결심’을 해 핵을 포기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김정은이 자기 마음대로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김정은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핵 보유를 추구하는 것은 북한의 국시(國是)면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남긴 유훈의 핵심 중 핵심입니다. 김정은이 아무리 독재자지만 이런 사안을 자기 멋대로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하면 군 지휘관들의 충성심을 이끌어내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김정은이 실제로 핵무기를 포기한다면 당 간부들과 군 간부들이 국가도 배반하고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배반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김정은이 정치 천재라고 하더라도 권력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 될 겁니다.”

“끔찍한 수준의 GDP 대비 국방비”

하노이 협상 결렬 이후 김정은이 북한 주민에게 내놓은 첫 메시지는 “경제 발전과 인민 생활 향상보다 더 절박한 혁명 임무는 없다”(3월 6, 7일 평양에서 열린 제2차 조선노동당 초급선전일꾼대회에 보낸 서한)는 것이다. 김정은은 “전체 인민이 흰 쌀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좋은 집에 살게 하려는 것은 위대한 수령님(김일성)과 위대한 장군님(김정일)의 평생 염원”이라고도 했다.

- 북한은 제재가 풀리지 않으면 경제 발전이나 인민 생활 향상이라는 목표를 이뤄내지 못합니다.

“북한에서 경제 발전은 국가 수호 다음으로 중요한 목표입니다. 핵무기 없이는 경제 발전도 불가능하다는 게 그들의 생각입니다. 현재 북한의 국방비는 국내총생산(GDP)의 25% 전후로 추정됩니다. 한국이 2.5% 전후니까 비율로 따지면 한국의 10배에 달합니다. 한국은 비교적 국방비를 많이 지출하는 편이고 대부분의 일반 국가는 그보다 적다는 것을 고려하면 북한의 GDP 대비 국방비는 비정상적 상황을 넘어 끔찍한 수준입니다.

북한의 인구 대비 군인 수는 한국의 4배, 중국의 33배입니다. 인도,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개발도상국과 비교한다면 이 격차는 더욱 벌어집니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초중반 북한 남성 대부분이 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대뿐만 아니라 30대, 40대의 수많은 엘리트가 군에서 일합니다. 이런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북한이 원하는 경제 발전은 불가능합니다. 국방비도 점차 줄여나가고 군인 수도 점차 줄이려면 핵무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그들은 믿습니다.”

김정은은 3차 핵실험(2013년 2월 12일) 직후인 2013년 3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경제·핵 병진노선’을 내놓았다. 핵 보유로 재래식 무기에 투입될 군사비를 덜게 됐으니 이를 민생경제로 돌려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경제·핵 병진노선을 내놓으면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구현한 독창적 경제·국방 병진노선의 빛나는 계승”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7년간 핵 개발뿐 아니라 경제개발도 성공적”
노동신문은 2월 2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서 제2차 북·미 정상회담 실무대표단의 보고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뉴시스]
노동신문은 2월 2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서 제2차 북·미 정상회담 실무대표단의 보고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뉴시스]

- 그렇다면 핵을 보유한 채 제재를 푸는 게 북한의 최종 목표겠군요. 하노이 협상에서도 ‘현재 핵’ 일부를 내놓고 제재 상당 부분을 풀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식 핵 보유와 파키스탄식 핵 보유를 모두 고려하면서 저울질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 번도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지만 대부분의 나라가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은닉하고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북한도 미국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주고 일부 핵무기를 은닉하는 전략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핵무기 20기를 은닉하든 3~4기를 은닉하든 심지어 1기도 은닉하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북한 정보기관이 자국이 다량의 핵무기를 은닉했다고 여기저기 소문을 내면 북한이 핵무기를 꽤 은닉하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북한이 소문내지 않더라도 다른 나라들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북한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을 역이용하는 것이죠. 대부분의 북한 당 간부, 군 간부도 ‘수령님이 많은 핵무기를 숨겨놓았구나’라고 믿게 될 겁니다. 북한이 이스라엘 수준으로 핵보유국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 파키스탄 모델은 미국이 용납할 수 없습니다.

“북한은 이스라엘식 핵 보유를 넘어 파키스탄식 핵 보유도 가능하지 않을까 욕심을 내고 있습니다. 파키스탄은 공공연히 핵 보유를 선언한 국가로서 이스라엘의 20배에 달하는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북한에 대한 국제적 핵 보유 인정 정도가 파키스탄 수준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파키스탄식과 이스라엘식의 중간 정도까지는 가능하지 않을까 끊임없이 욕심을 내고 있습니다. 하노이 협상에서 북한이 추구한 것처럼 미국의 요구 일부를 수용하고 제재의 핵심을 해제시킨 다음 그다음 협상은 은근슬쩍 뭉개버리고 더는 진척시키지 않으려는 전략입니다. 물론 북한 스스로도 이런 전략이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하지는 못하겠지만, 시도해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의 이런 태도가 이번 하노이 회담 실패의 근본 원인입니다.”

- 북한은 지난해 4월 “경제건설과 핵무력 병진 노선의 위대한 승리”를 선언했습니다. 어떤 의미입니까.

“최근 7년만 따진다면 핵 개발이나 경제개발이나 모두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핵 개발은 널리 알려졌고 경제개발 성과는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도 이견(異見)이 많이 존재하지만 최근 탈북한 사람들이나 북한을 자주 방문하는 외부 인사들,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가의 80% 정도는 최근 7년간 북한 경제 발전 속도가 그전 20여 년에 비해 2~3배 빠르다고 인정합니다. 대북제재가 최고 수준에 이른 최근 2년간 북한 경제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플러스 성장을 했다,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논쟁거리가 되고 있지만 초고강도 대북 제재하에서도 이런 논쟁이 가능하다는 것은 북한 경제가 대단히 성공적이라는 것을 방증합니다.”

“ICBM 폐기해도 다시 만들 수 있어”

- 핵을 뒷배로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전략은 북한이 포기할 수 없는 것이겠군요.

“북한 처지에서 경제·핵 병진노선은 불가피한 선택입니다. 경제를 발전시키지 않고서는 어떤 목표를 추구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핵무기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정상적 국가 운영과 발전이 어려운 상태입니다. 많은 사람이 ‘미국과 한국은 북한을 침공할 의사가 없으니 미국과 한국의 선의를 믿고 핵무기도 포기하고 국방비와 군인 수도 파격적으로 줄이고 평화롭게 경제 발전에 매진하라’고 말하지만 이는 북한을 전혀 모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주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당 간부들과 군 간부들도 어릴 때부터 ‘미제와 남조선이 우리를 침공하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것을 수도 없이 들어 이에 대해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6·25전쟁이 남침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미제와 남조선이 침공해 와 국토가 불타고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 친지가 죽었다’고 굳게 믿고 살아갑니다. 김정은조차 6·25전쟁과 관련해 아버지로부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 경제·핵 병진 외 다른 길은 없다?

“북한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미국을 향한 직접 위협입니다. 북한은 ICBM도 지켜내려고 할까요.

“ICBM과 관련해 북한은 미국이 원하는 것을 대부분 다 들어주더라도 큰 상관이 없습니다. 한번 개발한 ICBM 기술을 ‘없는 것’으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북한이 비핵화를 하고 나서 다시 핵무기 생산 체제로 돌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ICBM을 다시 생산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아주 쉬운 일입니다. 북한이 ICBM을 폐기하더라도 크게 불리해지는 것은 없습니다.”

-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 수준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에 대한 위협만 제거하는 수준에서 합의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으나 하노이 회담의 양상은 달랐습니다.

“미국 정부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미국도, 북한도 특정 지점에서 타협해야 한다는 것을 서로 인지하고 있는 것이죠. 북한이 후퇴할 수 있는 선, 타협할 수 있는 선을 아직 열어두고 있듯이 미국 또한 타협 지점을 명확히 정해놓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김정은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있을 수도 있지만 미국 국내 사정에 따라 북한이 처한 상황이 더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김정은이 죽고, 다른 지도체제가 서도 핵 포기 없어”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은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의 정의를 담은 문건을 북한에 건넸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핵과 생화학무기, 탄도미사일을 포기하는 결정을 하라는 게 미국이 원하는, 광범위하게 정의된 비핵화”라고 말했다.

-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항복 선언’을 원하는 듯도 보입니다. 핵 신고와 검증 및 사찰, 비핵화의 최종 목적지가 담긴 로드맵을 내놓으라는 투인데요.

“미국은 당연히 북한의 항복 선언을 원하나 북한은 뭔가 다른 길이 가능하지 않을까 끊임없이 궁리하고 있습니다. 당분간 미국과 북한은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자 자기들은 별로 급하지 않다는 듯한 태도를 취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북한으로서는 제재 해제가 절실하기에 미국 요구를 100%까지는 아니더라도 80~90%는 들어주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 북한이 핵 보유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면 달성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완전한 비핵화’는 어떤 모습일까요.

“최대로 가능한 목표는 ‘북한의 이스라엘식 핵 보유’입니다. 이를 ‘비핵화’라고 정의한다면 비핵화가 가능한 목표겠지요. 그런데 이것이 ‘비핵화’가 아니라면 북한 비핵화는 애초에 불가능한 목표입니다.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할 의지가 1%도 없습니다. 김정은이 갑자기 죽어 다른 독재자나 집단지도 체제가 들어서더라도 비핵화는 불가능합니다. 김정은보다 약한 권력과 권위를 가진 개인이나 집단이 권력을 유지하려면 핵무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짓은 절대 할 수가 없습니다. 핵무기를 포기하는 순간 당 간부들과 군 간부들의 공격을 받아 권력을 지탱하는 게 불가능해질 테니까요.”

“순진하고 공부가 안 돼 있는 文대통령”
[동아일보]
[동아일보]

- 한국 정부 태도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북한에 핵도 남겨주고, 경제도 주고, 세습 체제도 안정시켜 주는 방향으로 이른바 ‘중재’라는 것을 하는 모습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의도를 잘 알 수 없지만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나 세습 체제의 변경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북한 경제를 발전시키는 길이 북한이 국제사회에 순응하고 국제사회의 규칙을 받아들이고 평화의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맛을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정부의 의도도 알 수 없고 또 그런 노선이 맞는지도 확신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북한과 미국의 협상이 최고 긴장 상태에 있는 지금 이 협상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 정부가 집권 측의 의도대로 대북정책을 펴는 것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건 북·미협상이 어느 정도 진행된 이후에 해야 할 일입니다. 미국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볼 때 협상력을 떨어뜨리는 행위로 보이는 정책이나 행동은 자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 한국 정부가 북한과 미국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고 봅니까.

“북한이나 미국의 의도를 제대로 아는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하노이 회담이 성공적일 것이라고 보고 그 후속 조치를 미리 마련해둔 것만 봐도 제대로 알고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비핵화와 관련해 북한을 신뢰하기 어렵고 미국의 현 정부 역시 이 문제에서 북한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조금만 생각하면 아주 명확한 사실인데 직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 문재인 대통령은 “영변 핵시설 폐기가 불가역 비핵화”라는 황당하게까지 느껴지는 발언을 내놓았습니다.

“문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인식이 아주 나이브하고 공부가 제대로 돼 있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문 대통령이 과거 운동권식 대북 인식을 갖고 있다고 믿지는 않지만 과거 정부들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 의식이 지나치게 강하다보니 객관적이고 냉철한 현실 인식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 한국은 당사자인데도 중재자를 자처하다 북·미 협상에 모든 것을 맡겨버리는 방관자가 돼버렸습니다.

“애초에 비핵화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지 않습니다. 미국 주류의 시각에서 볼 때 북한 핵무기를 핑계로 자체 핵무장을 추진할 수도 있는 고약한 당사자라고 보는 인식이 강한 데다, 한국에서 보수정권과 진보정권이 번갈아가면서 집권하는데 그 대북정책이 크게 바뀌다 보니 안정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한국이 비핵화 프로세스의 핵심에 참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다만 비핵화 프로세스에 북한의 경제 개발도 포함돼 있는 만큼 경제 분야에서는 한국의 역할이 중요해질 겁니다.”

“충격적이게도, 북한 경제 안정적”

- 북한의 경제 상황은 어떻다고 봐야 할까요. 제재를 더 버틸 수 있을까요.

“저를 비롯해 북한 경제를 꾸준히 모니터링해온 전문가들 입장에서 볼 때 최고 수준의 제재가 가해진 최근 2년 동안 북한 경제의 안정성, 주민 경제활동의 안정성 등은 대단히 충격적이고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쌀값을 비롯한 대부분의 물가가 아주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환율도 아주 안정적입니다. 유가도 유류 제재 직후 올랐다가 지금은 그 이전 상태에 근접하게 내려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합니다. 주민들의 경제활동도 극히 일부 탄광 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정상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폐쇄국가라고는 하지만 김정은이 후계자 자리에 앉은 이후부터 무역과 투자 유치, 인력 수출, 하청 생산 등이 비약적으로 늘었고 3년 전 기준으로 북한 경제의 무역의존도가 40%가 넘는다는 것이 일반적 의견이었습니다. 최고 수준의 대북제재의 결과 재작년에는 북한의 대중 수출이 33% 줄어들었고 작년에는 무려 88%가 줄어들었습니다. 무역수지는 재작년에는 16억 달러 적자, 작년에는 20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북한 경제 수준에서는 엄청난 돈입니다. 북한 경제의 규모나 수준을 감안한다면 이 정도 상태가 되면 물가가 폭등하고 경제활동이 엄청나게 위축되는 등의 현상이 나타나야 정상인데 그런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 이유가 뭘까요.

“원인은 어떤 북한 전문가도 아직 정확히 말하지는 못합니다. 굳이 가정해보자면 첫째, 북한 최고위급에 탁월한 거시경제 전문가가 있고 김정은이 경제를 전적으로 그 사람에게 위임하고 있다. 둘째, 최근 10여 년 동안의 하청 생산을 통해 기술이 발전해 자체 생산이 가능한 품목이 크게 늘었다. 셋째, 기업의 자율관리 시스템이 확대돼 공업 생산이 크게 늘었다. 넷째, 관광 등을 통해 부족한 외화를 메우고 있다. 다섯째, 밀무역 등을 통해 부족한 교역을 채우고 있다 등의 상황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모두 사실이라고 가정해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관광이나 밀무역 같은 것은 그를 통해 버는 돈이 그렇게 많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합리적으로 생각해본다면 북한 당국이 그동안 벌어놓은 돈을 풀었거나 기타 임시방편으로 당장의 위기는 모면하고 있지만 내적인 어려움이 축적되고 있으며 점차 버티기가 쉽지 않은 상황으로 가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물론 북한 경제가 최악의 상황으로 가더라도 비핵화와 관련해 완전한 백기를 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은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나 북한 경제가 어려워진다면 북·미협상에서 좀 더 많은 양보를 받아내는 것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경제 개혁 의지는 확고”

- 김정은의 경제 개혁·개방 의지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중국이나 베트남 모델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중국 모델, 베트남 모델을 제대로 이해하는지 의문이 듭니다. 제재 완화를 통해 북·중 교역만 정상화하면 그만이라고 여기는 것은 아닐까요.

“최근 7년간 농업정책, 기업정책, 시장정책, 자본정책을 보면 개혁·개방 의지는 확고하다고 봅니다. 김정일 시대에는 왔다갔다 했지만 김정은 시대에는 일관된 친(親)시장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경제개발뿐 아니라 핵 보유도 북한의 핵심 목표이기에 핵 보유를 위해 일시적으로 제한적인 교역을 감수하는 상황이지만 점차 교역의 범위가 확대될 것이라고 믿고 있을 겁니다.

중국 개혁·개방 초기 10년간 중국에 투자한 외국 자본의 90%가 화교 자본이었습니다. 다른 외국 자본은 리스크를 감수할 의지가 없었기에 투자하지 않은 겁니다. 현재의 북한은 당시의 중국보다 리스크가 더 큰 상태인데 중국 자본과 한국 자본을 제외한다면 누가 그 리스크를 감수하고 투자하겠습니까. 경제개발 과정에서 일정 정도까지는 중국 자본과 한국 자본, 중국과의 교역과 한국과의 교역 이외에는 북한이 별로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고 관심을 갖더라도 잘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북한 처지에서 북·중교역의 정상화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 제재 해제뿐 아니라 핵우산 철수 등 북한이 원하는 게 더 많아진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 처지에서 미국 핵우산의 존재는 핵 보유를 합리화하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최근 30~40년 동안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의 핵심 논리로 핵우산 철폐를 주장해왔습니다. 갑자기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북한은 한미동맹이나 주한미군에 대해 뭔가 변경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협상 전략으로 그것들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이 부분에서 양보하는 척하면서 다른 것을 더 얻어가려는 책략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자신들이 주장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트럼프에 한 방 맞은 김정은

- 김정은이 하노이에서 트럼프에게 한 방 맞았습니다. 북·미 대화가 어떻게 전개되리라고 봅니까.

“김정은이 트럼프 행정부가 처한 상황이나 미국의 전략을 오판해 큰 손해를 봤습니다. 북한에 또 한 번의 기회가 있을 것으로는 보이지만 앞으로는 북한이 더 많은 양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릴 것입니다. 관건은 앞으로 1년~1년 반 정도 북한이 현재와 같은 경제적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에 있습니다. 만약 북한이 계속 경제적 안정성을 유지한다면 핵무기 추가 생산을 무한정 방치할 수 없는 미국이 좀 더 조급해지겠지만 만약 북한 경제의 악화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면 북한이 더 조급해질 겁니다. 북한과 미국 모두 조급함을 내비치지 않고자 노력하겠지만 결국 양쪽 다 절실한 필요가 있기에 협상의 동력을 유지하려고 노력할 겁니다.”

3월 12일 ‘우리민족끼리’ ‘조선의 오늘’ 등 북한 대외 선전 매체들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의 북·미 협상과 관련한 침묵을 깨고 “완전한 비핵화로 나가려는 것은 우리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하나같이 강조했다.

- 중국은 어떤 태도를 보일까요. 북·중 관계는 어떻게 내다봅니까.


“중국은 미국이 국제조약이나 국제기구에서 조금 난폭한 방식으로 이탈해버리는 틈을 타 국제질서의 수호자로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유엔제재를 일방적으로 위반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북한에도 이러한 점을 충분히 설명했을 거예요. 살길은 미국과 타협하는 길밖에 없다는 점을 누차 이야기했을 겁니다. 북·중무역은 크게 줄어들었지만 북·중관계는 오히려 더 긴밀해질 것으로 봅니다. 북한이 어려워질수록 의지할 곳이 중국밖에 없어요.”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미국이 세계 앞에서 한 자기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우리 인민의 인내심을 오판하면서 일방적으로 그 모습을 강요하려 들고 의연히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으로 나간다면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이 부득불 나라의 자주권과 국가의 최고 이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 김정은이 ‘새로운 길’을 언급했습니다. 그건 뭘까요.

“새로운 길이라는 것은 구체성이 없이 그냥 위협하는 말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굳이 의미를 따진다면 ‘미국과 핵 타협을 추구하지 않고 핵무기 생산과 ICBM 생산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경제제재를 감수한 상황에서 자기들 나름대로 자력갱생의 발전 노선을 걷는 길’ 정도로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제재 지속되면 한계상황 도달”

- 워싱턴 조야는 민주당, 공화당을 막론하고 협상 결렬을 반기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미국은 현 상태에 불만이 크게 없어 보입니다. 대북제재가 작동하고 있기에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핵·미사일 실험 중지, 한미 군사훈련 중단, 경제가 빠진 남북 교류 상황이 길게 이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북한 경제는 제재가 현재 수준으로 지속된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한계상황에 이를 것으로 예측됩니다. 앞서 말했듯 미국도 북한이 핵무기를 지금과 같은 속도로 계속 생산하는 것을 방치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현 상황이 길게 지속될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북한도 미국도 협상의 동력이 분명히 존재하는 상황입니다. 만약 현재 상황이 길게 지속된다면 경제가 빠진 남북교류가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자기들이 원하는 뭔가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전략과 책략을 내놓고 이를 실행하는 북한의 관행을 볼 때 정상적이고 평온한 남북관계가 길게 유지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비슷한 형태로 회귀할 가능성은 없다는 말씀이군요.

“북한 핵무기의 위력이 오바마 시절과 현시점은 크게 다릅니다. ICBM 능력도 지금은 성공했거나 거의 성공의 막바지에 와 있다는 면에서 크게 다릅니다. 현재는 ‘전략적 인내’를 정책으로 선택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북한과 타협하고 양보를 얻어내려 할 것입니다.”

- 2018년 김정은 신년사와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로 시작된 이번 대화 국면의 종착점은 어떤 모습일까요.

“북한과 미국 양쪽 모두 타협을 추구해야 할 절실한 필요가 있기에 대화 국면의 종착점은 서로 양보해 적당한 지점에서 타협하는 것으로 끝날 가능성이 80% 정도 된다고 봅니다. 북한이 원하는 지점보다 미국이 원하는 지점에 좀 더 가까운 곳에서 타협이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가능성은 없다고 보지만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도 북한의 핵무기 생산을 무한정 방치하는 것은 국방상 부담이 매우 큽니다.”

“군사행동 책임질 리더십 없어”

- 극단적 대립으로 나아갈 가능성은 낮다?

“극단적 대립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높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협상이 어려워지더라도 미국이 군사적 공격 방법을 선택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북한도 마찬가지고요. 군사행동이 가져올 전개는 너무나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군사행동 이후의 결과를 책임질 수 있을 정도의 리더십을 갖춘 정치인이 미국에도 한국에도 북한에도 없습니다.

북한과 미국의 타협이 이뤄지면 개혁·개방이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개혁·개방이 주는 정치적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연구하겠지만 김정은 스타일상 그렇다고 소극적으로 추진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핵무기만 포기하면 아주 부유해질 수 있다고 거듭 말하는 것도 개혁·개방의 진정성에 대한 정보보고를 충분히 들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4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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