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언·증거 속출
● 여론 나빠지면 탄핵 추진 현실화
● 재선 실패 시 감옥 갈 수도
● ‘러시아와의 내통’ 핵심변수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파투 내고 기분 좋게 미국으로 돌아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험난한 정치 일정이 닥치고 있다. 마이클 코언의 의회 하원 청문회 증언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사업 동료인 펠릭스 새터, 30년 개인 여비서 로나 그래프, 사위 재러드 쿠슈너도 증언을 강요받고 있다. 게다가 3월 중국과 무역협상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데 김정은의 빈손 귀국에 놀란 시진핑이 트럼프와 회담하기를 주저한다.
미국 국민도 백악관과 민주당 주도 하원과의 정쟁에 지친 데다가 트럼프가 미합중국 대통령으로서 품위가 없다고 여기고 있다.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해 스모킹 건(smoking gun·결정적 증거)이 나타나면 트럼프는 탄핵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설령 탄핵을 피하더라도 차기 대선에 낙마할 수 있다.
‘워싱턴 이익집단’의 대반격
지금 백악관과 미 하원의 갈등은 2020년 대선 관점에서 보면 명확하게 이해된다. 2018년 트럼프에게 백악관을 빼앗긴 민주당은 절치부심하고 있다.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는 민주당을 갖고 놀았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사기꾼 힐러리”라고 놀렸다. 민주당을 “워싱턴 이익집단”으로 비난했다. 선거 기간 발표된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는 힐러리가 승리할 것으로 예측됐으나, 트럼프는 보란 듯 뒤집고 극적으로 당선됐다. 거기에다 상하원 선거마저 공화당이 승리해 8년 만에 공화당이 정권을 온전히 차지했다.
이후 민주당은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탈환했다. 민주당의 최대 목표는 2020년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불장군인 트럼프를 먼저 무너뜨려야 한다. 트럼프를 그냥 놓아두면 ‘샤이 트럼프 지지자들’이 언제든지 선거 결과를 뒤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트럼프의 이미지를 ‘성매매 마다않는 반역자’로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지금 이 프레임이 먹혀들기 시작했다. 성매매 스캔들, 러시아 스캔들로 트럼프를 몰아붙여 탄핵에 성공해도 좋고 만신창이로 만들어 대선에서 쉽게 승리해도 좋다는 게 민주당 전략이다.
2016년 미국의 중간선거 결과는 2020년 미국의 대선을 예측하는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이 선거에서 민주당이 공화당에 견주어 선전했다. 일단 민주당은 하원을 장악해 트럼프를 견제할 발판을 만들었다. 무엇보다 ‘러스트 벨트(쇠락한 중부 공업지대)’를 일부 탈환해 트럼프의 가장 중요한 기반을 무너뜨렸다.
공화당과 트럼프로서는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자신을 지지해준 러스트 벨트에서 경제회생 및 일자리 창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트럼프의 러시아 스캔들을 적극 이용했다. 트럼프를 ‘후안무치한 배신자’로 낙인찍으려 한다. 미국의 최대 적국은 과거에는 소련이었고 지금은 러시아·중국이다. 트럼프는 러시아의 재벌들을 위해 불법 돈세탁을 해주고 심지어 대선 과정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측의 도움을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다. 상당수 트럼프 지지자조차 트럼프의 섹스 스캔들은 용납해도 조국을 배신했다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태세다.
2020년 대선 주자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는 민주당 후보들에게 이미 지고 있다. 미국의 체인지 리서치(Change Research)가 2019년 1월 31일부터 2월 1일까지 미국 전국에 걸쳐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민주당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지지도는 52%, 트럼프의 지지도는 45%로 나왔다. 심지어 민주당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2%포인트가량 트럼프에 앞섰다. 군소주자로 분류되는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도 트럼프에 앞섰다. 옵티머스(Optimus)가 같은 시기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바이든은 트럼프를 13%포인트나 이기는 것으로 나왔다.
충격적인 차기대선 여론조사 결과
재선을 준비 중인 트럼프 진영도 여론조사결과에 난리가 났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재선 가도에 빨간불이 켜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보수 성향 ‘폭스 뉴스’의 사장 출신인 빌 샤인 백악관 공보국장을 재선을 위한 선거운동본부의 선임고문으로 지명했다.
트럼프는 빨리 청문회 정국을 탈피하고 미·중 무역전쟁이나 김정은과의 핵 담판에서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2020 대선이 가까워지는데 지지율이 떨어지면 트럼프는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게 된다. 미국 대통령은 기소 등 형사소추를 면한다.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면 그는 험난한 여생을 보낼지 모른다. 러시아 스캔들을 조사하는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에 의해 기소돼 감옥에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정치적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 막다른 골목으로 점점 몰리고 있다.
미국 현직 대통령에 대한 특별검사의 수사는 1998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성 추문(지퍼게이트)을 수사한 이후 처음이다. 결정적 증거가 나오면 단번에 ‘트럼프 탄핵’ 정국이 열린다. 탄핵을 통해 트럼프를 몰아낼 수 있다면 민주당으로서는 대박이다. 결정적 증거 없이 탄핵을 추진하면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는 모함 받은 불쌍한 영웅이 돼 부활할 것이다. 민주당의 전략은 불확실한 탄핵보다는 트럼프를 최대한 파렴치한 배신자로 만드는 쪽에 더 가까워 보인다.
60명 이상 증언대로 몰아
트럼프의 성매수와 러시아 게이트를 쫓는 뮬러 특검은 이미 코언을 통해 상당한 증거를 포착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을 확보했는지는 미지수다. 뮬러는 결정적 증거나 증언을 확보하기 위해 트럼프 측근의 배반을 유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들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에릭 트럼프,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 고문, 트럼프 재단의 ‘금고지기’ 앨런 와이셀버그, 전 법무장관 제프 세션스, 전 백악관 법률고문 돈 맥건, 트럼프 대통령의 ‘오른팔’ 노릇을 한 스티브 배넌 등 60명 이상을 증언대로 몰고 있다.
이들은 증언대에서 쉽게 거짓말을 할 수 없다. 위증이 드러나면 본인이 처벌받기 때문이다. 이미 몇몇 트럼프 측근은 의회 증언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낙마하거나 사법 처리됐다. 뮬러 특검은 2017년 수사를 시작한 이후 마이클 코언, 폴 매너포트 트럼프 선거캠프의 선거대책본부장,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 등 트럼프 행정부와 선거 캠프에서 일한 사람들에 대해 유죄판결을 받아냈다.
이들은 대체로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 인사들과 친했다. 마이클 코언도 모스크바 트럼프타워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코언은 의회에서 트럼프가 2016년 대선 기간 러시아와 결탁했다는 의혹에 힘을 실어줬다. 그는 트럼프가 선거자금법 위반, 위증 교사, 탈세를 저질렀다고도 했다.
트럼프는 코언의 증언을 ‘사기이고 부정직한 진술’이라고 반박했지만 여론은 반대로 흐르고 있다. 미 퀴니피액 대학이 여론조사를 한 결과, ‘트럼프와 코언 둘 중 누구를 더 신뢰하는가’라는 질문에 50%가 코언이라고 답했다. 35%만이 트럼프를 지목했다. 64%는 “트럼프가 당선 전에 범죄를 저질렀다고 믿는다”고 했다.
명줄 쥔 뮬러 보고서
뮬러 특검은 러시아의 2016년 미국 대선 개입, 러시아와 트럼프 대선 캠프 간 공모 의혹’에 대한 2년여간의 조사를 마치고 3월 종료될 예정이다. 관련 법률에 따르면, 특검은 법무장관에게 수사 결과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를 의회에 보고할지 여부는 법무장관이 결정하지만 민주당은 의회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이 보고서가 트럼프의 명줄을 쥐고 있는 것이다.
특검 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불법행위가 적발된다 해도 미국 대법원의 의견에 따라 현재까지는 현직 대통령에 대한 기소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범죄사실을 증명할 만한 직접적 증거가 제시된다면 민주당은 탄핵 카드를 꺼내 들 기회를 얻는다. 직접적 증거가 없어도 트럼프가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해임했다거나 자신의 해결사 노릇을 한 마이클 코언을 도왔다는 증거도 탄핵 명분이 될 수 있다. 미국 법원은 증거인멸, 조사 방해 등 사법제도의 집행을 저해하는 행위를 사법 방해(Obstruction of Justice)로 규정하고 탄핵 사유 중 하나로 간주한다.
뮬러 특검의 최종 보고서에서 러시아와의 내통을 입증하는 객관적 증거가 포함되면 트럼프 탄핵은 수면으로 급부상할 것이다. 공화당이 상원에서 우세한 만큼 탄핵안이 가결될 가능성이 높진 않다.
그러나 탄핵 절차 돌입만으로도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여론이 악화하면 공화당도 트럼프를 무작정 감싸고 돌 수만은 없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대통령이 탄핵되면 바로 보궐선거가 실시되는 게 아니라 부통령이 탄핵된 대통령의 잔여 임기를 승계한다. 공화당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되고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는 것이 나쁜 일만은 아니다. 펜스 부통령이 더 경쟁력이 있는 차기 공화당 후보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은 트럼프를 탄핵할 수 있다면 거침없이 추진하겠지만 그 반대 상황을 두려워한다. 과거 공화당은 빌 클린턴 대통령을 탄핵하려다가 역풍을 맞고 중간선거에서 참패했다. 민주당 상당수는 “탄핵은 국민적 지지와 초당적 협조가 있어야 하는데 증거를 보고 결정하자”는 태도를 보인다. 민주당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하원이 과반 찬성으로 탄핵안을 의결해 상원으로 넘기더라도 상원의 탄핵 의결 정족수인 3분의 2를 채우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탄핵 일보 직전까지만 몰기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 공모한 증거가 나온다면 민주당은 부결의 부담을 안고서라도 탄핵을 추진할 것이다. 조국의 배신자에게 용서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섹스 스캔들이나 비자금 은닉 등 일부 위법 행위만 확보하면 탄핵에 돌입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민주당이 노리는 것은 트럼프를 탄핵 일보 직전까지 몰고 가 향후 정치적 동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다. 미국을 배신하고 러시아와 결탁했다는 이미지만 만들어도 트럼프는 재선 가도에 빨간불이 켜진다.
‘트럼프는 본래 그런 사람이다’라는 게 미국 사람 대다수가 갖고 있는 생각이다. 이 때문에 섹스 스캔들은 트럼프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북·미 협상에서 김정은을 몰아붙이고 미·중 협상에서 중국을 궁지로 모는 트럼프 리더십에 상당수 미국 국민은 박수를 보낸다.
트럼프로선 이번 탄핵 고비를 넘기면 2020년 대통령선거 공화당 경선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화당 유력 후보들은 이미 경선을 포기했다. 문제는 러시아 내통 혐의가 어떻게 작용하느냐다. 그래서 이번 뮬러 보고서가 중요하다. 러시아와의 불법적인 거래가 드러나면 미국 국민은 트럼프를 쉽게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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