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 수명 머잖아 120세 넘는다 ● 다음 세대에 책임 넘기는 연금제도, 곧 큰 위기 맞을 것 ● 아이 키울 때 월급 가장 많이 주는 ‘임금피크제’ ● 50년 넘게 이어질 번식후기, 지금부터 준비하자
최재천(65)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생물학자다.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시간대, 서울대 교수를 거쳐 50대에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됐다. 민벌레, 개미, 까치, 긴팔원숭이 등 여러 동물의 생태를 연구하며 세계적 명성을 쌓았다. 그의 저서 ‘개미제국의 발견’은 미국에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보다 더 많이 팔렸다. 과학 분야 저명 출판사 앨스비어는 최근 나온 ‘동물행동학백과사전 개정판’ 총괄 편집장을 최 교수에게 맡겼다.
이런 최 교수가 요즘 관심을 갖고 분석 중인 생물 종(種)은 ‘인간’이다. 그는 “생태계에서 번식을 멈춘 뒤 수십 년을 더 사는 동물은 인간뿐이다. 번식을 스스로 자제하는 동물도 인간밖에 없다. 생물학자로 동물개체군 변동을 연구하다 이 현상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생물학자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는 뜻이다. 3월 초 최 교수 연구실을 찾은 건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최근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다. 대법원은 2월 21일 육체노동 정년을 만 65세로 올렸다. 1989년 만 55세에서 만 60세로 올린 뒤 30년 만의 일이다. 먼저 이에 대한 의견부터 물었다. “평균수명이 점점 길어지는 상황에서 정년 5년 늘린다고 문제가 해결될까”라는 회의적 답이 돌아왔다.
인간 수명 120세 돌파 후의 미래
“지금까지 인간 수명의 한계는 120세 정도로 여겨졌다. 진화생물학적으로 그 이상은 어렵다고 봤다. 그러나 과학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유전자 단계에서 노화를 막는 약물 개발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런 약이 생산, 판매되면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일단 120세를 넘기는 게 어렵지, 그 다음엔 200세, 300세, 500세까지 사는 게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잘못하면 어마어마하게 오래 사는 세상이 올지 모른다.”
최 교수는 빙긋 웃더니 “만약 10년 더 살게 해주는 약을 2억 원에 판다면 사 드시겠느냐”고 물었다. 잠시 망설이자 “이건 계산할 일이 아니다. 10년을 더 살면서 돈 벌 걸 생각하면 사 먹는 게 무조건 남는 장사”라고 했다. 같이 웃었다.
“가까운 미래에 이런 일이 현실이 될 것이다. 큰 시장이 열리고 연구비가 쏟아져 들어올 거다. 모든 사람이 다 100세까지 살지는 않겠지만,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머잖아 ‘100세인’이 된다. 이 상황에서 노인을 일정 나이에 무조건 은퇴하도록 하면, 그들 생계를 누가 보장하나. 젊은 세대가 내는 세금으로 노인을 부양하는 현재 모델을 고집하면 우리 사회가 지속될 수 없다. 좀 더 혁명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눈가에 여전히 웃음기가 남아 있었지만, 말투는 심각했다. 최 교수는 일찍부터 이런 주장을 펴왔다. 2005년 그가 쓴 책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에는 “공연히 정년 조정 등에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가 없다. 우리 사회에서 은퇴라는 단어를 아예 추방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최 교수는 이 책이 나오고 15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우리 사회가 고령화 해법을 마련하지 못한 걸 안타까워했다. “지구온난화처럼 서서히 다가오는 문제라 위기감이 적은 것 같다”며 “나는 고령화가 우리 사회에 진도 10 수준의 지진 같은 엄청난 충격을 줄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이 사안에 대해 좀 더 겁을 먹어야 한다”고도 했다.
“국민연금과 의료보험 재정이 마침내 바닥을 드러낸다. 세금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퇴직연금과 의료혜택은 대폭 줄어든다. 정부 부채는 극에 달한다. 정치불안, 실업, 노동쟁의, 사상 최고의 이자율, 붕괴된 금융시장….”
로렌스 코틀리코프 미국 보스턴대 교수가 저서 ‘다가올 세대의 거대한 폭풍’에서 전망한 2030년 미국 경제 상황이다. 최 교수에 따르면 이 예측은 과장된 게 아니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고스란히 현실로 닥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하는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2017년 우리 국민 기대수명은 여성 85.7세, 남성 79.7세다. 65세 이상 노령 인구가 15세 미만 유년 인구보다 많은 이른바 ‘가분수 사회’도 현실이 됐다. 2017년 말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전체의 14.2%다. 반면 0~14세 비율은 13.1%에 그쳤다. 2016년에 이어 2년 연속 가분수 현상이 나타났다. 게다가 출산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98명으로 역대 최저치다. 인구 현상 유지를 위해 필요한 2.1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인간이 선택한 고령화
최 교수에 따르면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볼 때 고령화는 갑자기 인류에 닥친 재앙이 아니다. 오히려 오랜 세월에 걸쳐 진행된 인간 진화의 결과물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고령화의 ‘선물’을 즐기며 살아왔다.
인간은 적어도 3만 년 전부터 다른 영장류에 비해 두드러지게 오래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번식을 끝내고도 한참을 죽지 않았다. 그러면서 할머니가 손주를 돌보는 상황이 생겨났다. 이는 유아 사망률 감소와 노동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졌다. 이른바 ‘할머니 효과’다. 최 교수는 “2002년 영국 런던대 연구진이 아프리카 잠비아 인구 통계자료를 분석했다. 할머니와 같이 사는 유아의 사망률이 그렇지 않은 유아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고 소개했다. 인간 수명이 길어진 시기는 인간이 동물 벽화를 그리고 장신구를 사용하며 장례 의식을 시작한 시기와도 겹친다. 장수 세대의 등장이 인류 문화 발달에 기여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자연 생태계에서 인간 종이 가진 큰 경쟁력임에 분명했다.
최 교수는 “생물은 기본적으로 번식하러 태어난다”고 했다. 번식이 끝나면 죽는 게 보통이다. 꽃은 열매를 맺고 나면 시든다. 연어는 알을 낳고 죽는다. 고래나 영장류 가운데 번식기(reproductive period)가 지나고도 한동안 생명을 유지하는 개체가 있긴 하지만, 인간처럼 길게 살지는 않는다.
그런데 인간은 독특하게도 번식기가 아니라 번식후기(post-reproductive period)를 늘리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현대사회에도 여성이 생식 활동을 끝내는 때는 50세 안팎으로 과거와 다르지 않다. 최 교수는 “남성의 번식기는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남성도 대부분 여성이 생식 활동을 마칠 무렵 자식 양육 임무에서 은퇴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100세 시대’는 인간의 번식기와 번식후기가 거의 비슷해지는 시대가 될 전망이다. 인간 수명이 더 늘어나면 후자가 전자보다 더 길어질 수도 있다. 최 교수는 “이는 인간 유전자군이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라며 “이러한 생물학적 변화를 바탕으로 사회구조 자체를 새롭게 정비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공자가 인간 삶을 약관(20세) 이립(30세) 불혹(40세) 지천명(50세) 등 10년 단위로 구분했다면, 이제는 번식기와 번식후기 두 단계로 구별하고, 두 인생을 완전히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게 최 교수 생각이다.
그는 “과거 은퇴는 ‘자식들 다 길렀고 근력도 예전 같지 않으니 편히 쉬라’는 의미였다. 요즘 60대는 건강관리만 잘하면 웬만한 젊은이 못잖게 근력이 좋다. 편히 쉬기엔 남은 인생도 너무 길다. 50세 전후로 제1인생(번식기)을 마감하고 제2인생(번식후기)을 새로 시작하는 방식으로, 인생을 두 번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사회적으로도 득이 되는 모델이라는 게 최 교수 생각이다. 그는 “제2인생 취업은 젊은이 일자리를 빼앗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일이다. 사회통합은 물론 세수 증대에도 도움이 된다. 노인이 일하지 않으면 젊은이가 돈 벌어 그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 세대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제2인생을 시작하는 이가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투자 개념에서 지원하고, 중장년은 재취업에 자긍심을 갖는 게 옳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노인 인구 증가를 위기로 인식하는 건 질병과 노쇠 등으로 사회적 의존도가 높아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나이가 들어도 건강을 잘 관리하고 다음 세대에 의지하지 않으면 사회에 짐이 될 이유가 없다”며 “미래 사회는 근육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다. 지식과 지혜를 갖춘 사회 구성원은 계속 일하게 하는 게 사회 전체로 볼 때 생산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단 노인이 계속 일하는 사회를 만들 때 선결 과제가 있다. 고령자가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각종 혜택을 젊은이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황수경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2005년 연령별 생산성과 임금을 비교 연구해 발표한 자료가 있다. 34세 이하 노동자의 생산성과 임금을 1로 놓을 경우 35~54세 노동자의 생산성은 1.05로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임금은 1.73으로 훨씬 높았다. 55세 이상으로 가면 격차가 더 커진다. 생산성은 0.6으로 뚝 떨어지는데 임금은 3.04로 3배가 넘었다. 젊은 시절 일한 값을 제대로 쳐주지 않고 나이 들어 보상받으라고 하는 이른바 ‘연공임금제’를 잘 보여준다. 최 교수는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사회를 지탱해온 이 제도는 고령화 시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바로 이런 현실 때문에 출산율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번식기를 희생하는 어리석은 동물
그에 따르면 살면서 돈이 가장 많이 필요한 때가 아이를 낳아 기를 때다. 그런데 상당수 젊은이가 이때 수입이 넉넉지 않다. 주거가 안정돼 있지 않으니 아이를 끌고 여기저기 이사 다닌다. 최 교수는 “알을 품는 시기에 둥지를 옮겨 다니는 새를 본 적이 있느냐”며 혀를 찼다. 이러니 생활 안정을 위해 많은 젊은이가 집 장만을 꿈꾼다. 이 목표를 이루려고 아끼고 아낀다. 입으로는 자식을 위해 산다지만 가장 잘 먹고 자식을 잘 먹여야 할 시기에 상대적으로 굶주린다. 이렇게 번식기를 희생한 뒤 번식후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조금이나마 경제적 여유를 얻는다. 이건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는 게 최 교수 생각이다. 그는 “번식후기를 위해 번식기를 희생하는 어리석은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며 “이는 인류 전체에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노인 세대에도 득 될 게 없다. 임금이 높으니 기업이 나이 든 노동자를 부담스러워한다. 평균연령이 한없이 늘어나는데 직장을 그만두는 나이는 오히려 젊어지는 게 현실이다. 나라가 정한 정년 60세를 다 채운다 해도, 그때 받은 임금이 남은 수십 년 삶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최 교수는 “미래 사회에는 연금에 기대 살 수도 없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데 누가 내 연금을 마련해주겠나”라며 “이제는 중장년이 돼도 ‘내가 벌어서 쓰는’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고, 대신 임금을 큰 폭으로 낮춰야 한다”고 밝혔다. 이른바 임금피크제를 더욱 혁신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그는 “과거엔 기억력 감퇴나 체력 저하 등 생리적 노화 증상 때문에 정년 후 휴식을 원하는 이도 많았다. 이제는 다르다. 주저앉기엔 너무 젊다. 많은 이가 임금을 크게 깎아도 일자리를 갖는 데 동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가 제안하는 ‘두 인생 체제’에서 “은퇴 개념을 없애자”는 건 이런 의미다. 노인이 평생 일하는 것과 더불어 최 교수가 강조한 건 젊은 세대가 마음 놓고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도록 양육 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아빠가 육아에 참여하게 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는 “도와주는 게 아니라 육아를 엄마와 같이 담당해야 세상이 변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한민국 남성 중 매우 드물게 ‘자식을 내가 키웠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아빠다. 아들이 중·고교에 다닐 때 아내가 지방대 교수로 일해서 거의 혼자 학부모 구실을 했다. 저녁 약속 안 잡는 걸 원칙으로 삼고 살았다. 그는 이 경험을 얘기하며 “그래서 나는 보통의 한국 남자들이 얼마나 불쌍한지 누구보다 잘 안다”고 했다.
“자식을 키우는 건 동물로 태어나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다. 그런데 상당수 남자가 자기 새끼 어떻게 크는지조차 모른 채 일만 한다. 잠자는 아이 얼굴 보고 출근하고, 퇴근해 돌아와서 또 잠자는 얼굴을 본다. 그렇게 고생하고 살았는데 나중에는 자식과 대화조차 못 한다. 명절 때 식구가 모이면 자식들은 다 어머니 옆에 가 있고 아버지는 혼자 재미도 없는 TV 프로그램이나 본다. 이렇게 안타까운 삶이 어디 있나”라는 것이다. 그가 대중 강연을 하며 이런 얘기를 하면 “자식 키우는 즐거움까지 남자가 빼앗아가려고 하느냐”며 항의성 질문을 하는 여성이 종종 있다고 한다. 그럼 그는 “우리는 왜 하면 안 되느냐”고 반문한다. 최 교수의 말이다.
“집안일이 표도 안 나고 힘든 거 안다. 그런데 여성들이 종종 11시쯤 카페에 모여 재미있게 수다를 떠는 것도 사실 아닌가. 그러다 ‘밥 먹으러 가자’며 다 같이 식당으로 옮겨 맛있는 밥도 먹지 않나. 그러다 3시쯤 되면 ‘애들 올 시간 됐다. 집에 가야 돼’ 하는, 그런 날도 있는 걸 안다. 남자도 그런 거 해보자. 지금은 남자가 아이를 보는 게 힘들다. 내가 집에서 아이를 보고 있으면 옆집 아주머니부터 ‘직장이 없으세요?’ 하며 이상하게 보곤 했다. 사회 분위기를 바꾸고 우리 생각을 바꾸고 아이 키우는 가정 대상 복지 혜택을 파격적으로 늘려야 한다.”
아빠도 아이 키우는 사회
그가 꿈꾸는 건 아내가 3일, 남편이 3일씩 직장 생활을 하는 세상이다. 동시에 남편이 3일, 아내가 3일 집안일을 하는 것이다. 아내가 일하러 나간 뒤 남자들도 카페에 앉아 느긋하게 수다를 떨 수 있는 세상, 주말엔 온 가족이 같이 즐기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남녀 양쪽 다 ‘성’이라는 게 삶을 살아가는 데 아무 지장이 안 되는 시대, 이런 양성평등 양성협력 시대가 열리면 저출산 문제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게 최 교수 생각이다.
그에 따르면 이런 이상적인 삶을 실제로 사는 동물이 있다. 새다. 새는 거의 1부1처제라고 한다. 그리고 육아를 정확하게 반반씩 한다. 알을 낳는 조류와 달리 포유류 암컷은 배 속에서 아이를 키우고 출산 후 수유도 한다. 물리적으로 엄마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이를 인정하되 그 외 부분은 아빠가 적극적으로 담당해야 한다는 게 최 교수 생각이다. 그는 “그러면 일단 아빠 삶이 행복해진다. 육아라는 보람되고 기막힌 경험을 하면, 그동안 여자들만 느꼈던 재미와 기쁨이 뭔지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번식기에 남편과 아내가 모두 일해야 겨우 먹고사는 가정이 많다. 그러니 육아가 부부 모두에게 고역이 된다. 이걸 바꾸지 않으면 우리나라에 미래가 없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노인이 일하자. 복지 혜택은 젊은 층에 몰아주자. 평생 일하려면 적극적으로, 철저하게, 일찌감치 제2인생을 준비하자. 지금부터 공부하고 건강 관리하자. 그리고 아빠가 아이를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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