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아 단독인터뷰]‘新전대협’ 대표 활동가 “‘기·승·전·김정은’ 文정부에 질렸다”

‘김정은 서신-전대협 대자보’ 기획 ‘新전대협’ 대표 활동가 Mr. Q
“북한식 ‘전대협 TV’로 더 강력 풍자”

● 軍 제대 후 ‘이념전선’ 투신…新전대협 조직, 집회 주도
● 대학(원)생, 청년 주축…민주 자유 공화 조화 추구
● “실패한 정책은 잘못 인정하고 바꿨으면…”
● “文 정부, ‘이게 나라냐’더니, 이건 나라냐”
● “文 정부, 中 노예생활 ‘썩은 DNA’ 못 버려”
● “‘표현의 자유’ 수십 년 외치더니, 풍자한다고 수사?”
● 경찰 수사? “王 비판한 격문 붙였다고 의금부 바빠져”
● ‘올드 보수’ 투쟁 탈피, 사울 알린스키式 투쟁 연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가면을 쓰고 인터뷰하는 Mr. Q [김형우 기자]

“우리는 민주 자유 공화의 균형과 조화를 지키려는 사람들이다. 문제를 공론화하고 반민주, 반자유 정책을 풍자했다고 해서 경찰은 대학 내 CCTV를 확인하고 지문 감식을 통해 게시자를 색출하고 있다. 왕을 비판한 격문을 붙였다고 의금부가 바빠진 건가.”

만우절인 4월 1일, 전국 450개 대학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서초구 대법원 등에는 거짓말같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전대협 명의의 대자보 두 장이 나란히 붙었다. 김정은 위원장의 ‘남조선 학생들에게 보내는 서신’과 과거 전국대학총학생회장협의체였던 전대협 명의의 ‘남조선의 체제를 전복하자’는 제목의 대자보였다. 북한식 어투와 디자인으로 언뜻 북한 당국이 제작한 대자보처럼 보였다.

그러나 대자보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과 탈원전, 대북 정책 등을 비판한 내용이었고, 제작자도 과거 학생운동 단체를 패러디한 ‘신(新)전대협’이었다. 패러디와 풍자를 통한 ‘대자보 공론화’는 만우절과 겹쳐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신전대협은 4월 6일 서울 대학로에서 ‘문재인 퇴진 촛불문화제-이건 나라냐’를 열어 정부 비판을 이어갔고, 이들에 대한 궁금증은 인터넷을 달궜다. ‘신동아’는 4월 6일과 9일 신전대협 결성을 주도하고, ‘김정은-전대협 대자보’ 문구를 직접 작성한 활동가 Q씨를 단독 인터뷰했다. Q씨는 신상 비보도를 전제로 어렵게 인터뷰에 응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학생들 ‘알바비’로 대자보 부착

‘문재인 왕 시리즈’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서신, 전대협 명의의 대자보.

- ‘김정은-전대협 대자보’는 어떻게 게시됐나.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들의 정책으로 여러 문제점이 드러났는데도 인정을 안 한다는 거다. ‘기·승·전·김정은’인 문재인 정부에 질려 이런 대자보를 택했다.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 몫이고, 보다 못해 우리가 나섰다. (신)전대협 인사 몇몇이 민생문제를 토론했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내가 직접 문구를 썼다. 수도권에 있는 대학 대부분은 학생들이 붙였고, 우리가 직접 게시한 곳도 있다. 지방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모집한 회원들이 게시했는데, 1만 장의 대자보를 출력하고 게시하는 데 드는 비용은 지지자들이 ‘알바’를 해서 마련했다. 학생들의 수고를 감안하면, 지금이라도 문재인 정부는 잘못을 인정하고 문제가 있는 정책을 수정해주길 바란다.”

- 김 국무위원장의 서신과 북한식 연호(주체), 주사파(主思派) 논란이 된 전대협 명의 등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논란이 있었다.

“가장 눈에 띄고 의미가 있으니까. 김정은과 전대협을 빌려 대한민국의 문제점을 풍자한 거다. 민생과 동맹국은 아랑곳없이 북한에 ‘올인’하는 문재인 정부를 풍자했다.”

- 옛 전대협과 구별하려면 ‘우파 전대협’이라고 해야 하나.

“우파 좌파 논란은 무의미하다. 구분을 위해서라면 신전대협이라고 해달라.”

- 회원은 주로 어떤 사람들인가.

“현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대학생과 대학원생, 청년, 직장인 등이 대부분이다. 그동안 기대를 갖고 정부 정책을 지켜보다가 ‘더는 안 되겠다’ 싶어 모였다. 회원 대부분은 ‘문재인 왕(王) 시리즈’ 대자보를 게시하면서 본격 활동을 시작한 일반 청년들이다. 대표는 따로 없고 신상을 공개한 김정식(32) 대변인 등이 대표적으로 외부와 소통한다.”

그가 말한 ‘문재인 왕 시리즈’ 대자보는 지난해 12월 전국 100여 개 대학에 게시되면서 화제가 됐다. 대자보는 ‘마차가 말을 끄는 기적의 소득주도성장!-경제왕’ ‘나라까지 기부하는 통 큰 지도자-기부왕’ ‘탁현민, 조국, 해고는 없다-고용왕’ 등 문 대통령을 왕에 비유해 도덕성과 정책 문제점을 비꼬았다. 이어지는 설명은 이렇다.

국군은 무력화, 삼권분립은 붕괴 직전

4월 6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문재인 퇴진 촛불문화제-이건 나라냐’ 집회 모습. [김도균 기자]

“‘문재인 왕 시리즈’ 대자보에는 우리가 단체를 결성한 이유가 고스란히 담겼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외교, 교육정책과 도덕성 등에 크게 실망했고,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보면 투기질, 갑(甲)질, 이중국적, 위장전입, 자녀 특혜 등 셀 수 없는 흠결이 있는데도 임명을 강행한다. 청년들은 무엇보다 도덕성을 우선시한 문 대통령을 많이 지지했는데, 대통령이 되고 나니 마음이 바뀌었는지, 우리가 물정을 몰라서인지 몰라도 청년 시각으로는 도저히 이해 안 가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청년 일자리와 ‘알바’가 줄어 고통받는 청년들의 생각과 감정도 ‘문재인 왕 시리즈’ 대자보에 담았다.”

- 3월 1일과 4월 6일 서울 광화문, 대학로에서 각각 열린 ‘문재인 퇴진 촛불문화제-이건 나라냐’도 직접 기획했나.

“그렇다.”

- ‘이건 나라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 당시의 피켓 문구(이게 나라냐)를 연상시킨다.

“그렇다. 문 대통령과 현 정부 창출 핵심 인사들은 ‘이게 나라냐’라는 피켓을 들고 촛불집회를 했다. 그들이 집권하고 2년이 됐으면 그들 말대로 ‘나라다운 나라’가 돼야 하는 거 아닌가. 대자보에도 썼지만 (9·19 군사합의와 한미연합훈련 중단 등으로) 국군은 무력화됐고, 언론은 장악됐고, 마지막 방패인 삼권분립 붕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적폐라는 MB(이명박 전 대통령)는 4대강에 22조 쏟아부어 보(洑)라도 세웠는데, 문 대통령은 일자리 만든다고 54조를 쏟아부었는데 일자리가 생겼나. 소득주도성장한다고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더니 결과는 어땠나. 대학로 식당과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던 학생과 어르신은 다 사라졌고, 그 자리를 중고 식권판매기가 차지했다. 사과하고 수정하면 응원이라도 하겠는데….”

- 평소 정치에 관심이 많았나.

“군 제대하고 뭔가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념 전선’에 뛰어들었다. 이 방식이 옳다고 생각하니까.”

구한말 조선의 질서로 회귀

- 왜 옳다고 생각하나.

“우리가 정부를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이고 집회를 여니까 ‘우파 전대협’ ‘보수 학생운동 단체’라고 하더라. 사실 우리는 자유와 민주, 공화라는 가치들을 균형 있게 조화시키려는 사람들이다. 절대왕정 시절에 자유 민주 공화라는 가치는 왕의 전유물이었지만, 계몽주의 시민운동이 펼쳐지면서 국민은 민주와 자유를 되찾았다. 이후 방만한 자유와 민주가 혼란을 불러오면서 법치, 즉 공화제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 아닌가. 국민 모두가 지켜야 할 가치다. 그런데 오늘날 대한민국은 한쪽은 민주 자유 공화를 지키려고 하고, 다른 한쪽은 반민주, 반자유, 반질서로 대한민국을 끌고 가려고 한다.”

- 한쪽은 누굴 지칭하나.

“우리나라에서 ‘입으로’만 진보를 외치는 사람들은 반민주, 반진보로 간다고 생각한다. 그걸 막아야 할 야당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 이유는 뭔가.

“한반도 운명은 주변 국제 정세에 크게 영향을 받는 만큼 외교가 국가 명운을 좌우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미중(美中)이 패권전쟁을 벌이고 있고, 북핵 해결을 위해선 무엇보다 미국과의 공조가 중요하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혼밥’을 먹고 푸대접을 받으면서도 친중(親中)의 길을 걷고, 완전한 비핵화 때까지 강력한 대북제재가 필요하다는 미국에 금강산관광 등 남북경협을 강요한다. 민주, 자유, 공화의 가치를 공유한 주변국 미국과 일본과의 공조가 중요한데 반일(反日)을 부추긴다. 북한에 대해선 ‘전략’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저자세다. 우리가 1000여 년간 중국 변방으로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광복 이후 자유해양세력에 의해 유례없는 번영을 누렸는데도 현 정부는 ‘썩은 DNA’를 버리지 못하고 구한말 조선의 질서로 회귀하려는 거 같다.”

- 결국은 국민이 판단할 거 같다.

“그래서 우리는 진정한 자유민주시민을 만들려고 한다. 우리 할아버지 세대는 폐허의 땅에서 산업화 민주화를 다 이뤄내 존중받을 만하지만, 반공(反共) 중심 사고 속에서 다음 세대를 진정한 시민으로 키워내지 못했다. 우리 세대라도 자유민주시민이 되어야 하는데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힌 경우가 많다. 우리는 할아버지 세대를 존중하지만, 태극기 부대로 대변되는 ‘올드 보수’ 이미지를 벗어나 새로운 운동을 제시하고 싶다.”

‘표현의 자유’라는 이중잣대

- 그래서 ‘풍자 대자보’ 형식을 택했나.

“그런 점도 있지만 (미국 시민운동의 대부) 사울 알린스키, (이탈리아 정치이론가) 안토니오 그람시 등 많은 활동가를 연구하고 현실에 적용해보고 있다. 소수자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비폭력적이면서 누구에게나 친근한 투쟁 방법을 고심한다.”

체제 전복이 아닌 체제 내부에서의 개혁을 강조한 사울 알린스키(1902~ 1972)는 미국의 빈민지역 공동체 조직운동을 주도한 시민운동의 대부다. 힘없는 다수가 조직화를 통해 힘 있는 소수에 맞서는 방법론을 제시했고, 1960년대 말부터는 중산층 운동을 통한 미국 민주주의의 개혁을 시도했다. 그의책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Rules for Radicals)’은 세상을 바꾸고 싶지만 권력과 돈, 사회적 영향력이 없는 이들에게 교과서 역할을 한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알린스키가 이끈 조직에서 조직가로 일하는 등 미국의 정치·사회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 전국적으로 경찰이 대자보 부착과 관련해 수사 중이라는 기사가 나온다.

“게시자 색출을 위해 폐쇄회로(CC)TV를 뜯어 차량 번호를 확인하고, 대자보에 묻은 지문을 통해 신원을 확인한다는 회원들의 전화가 많이 온다. 경찰은 처음엔 국가보안법 위반을 검토한다고 했다가 북한을 고무 찬양한 내용이 아닌 걸 알고는 모욕죄, 명예훼손 등을 꺼내며 회원들에게 전화를 했다더라. 잠옷 바람으로 집에 혼자 있던 회원은 경찰이 들이닥치자 ‘무단주거침입으로 신고하겠다’고 항의하기도 했고, 경찰 출석요구서를 보내겠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회원도 있다. 그런데 이게 말이 되나. 수십 년간 ‘표현의 자유’를 대면서 정권을 흔들던 사람들이 풍자 대자보 붙였다고 곧바로….”

정치권으로 옮겨간 경찰 수사

미스터 Q는 서울 광화문에서 “김 위원장 답방을 환영한 대진연(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나 노골적으로 김 위원장을 찬양한 백두칭송위원회 수사는 왜 안하느냐”며 목소리를 냈다. 이와 관련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4월 11일 통화에서 “대자보 사건 관련해서는 수사에 착수한 건 아니다. 112 신고가 들어온 각 지방경찰청별로 내사를 진행 중이다”고 했다. 신전대협에 대한 범죄 혐의나 게재 과정의 불법성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전대협 대자보’ 후폭풍은 정치권에 불어닥쳤다.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은 4월 4일 국회 정론관에서 “범죄혐의가 없는데도 경찰에게 대학에 진입해 게시물을 훼손하고 수사하라고 지시한 자가 누구인가”라며 “CCTV를 뒤져 신원을 확인하는 행위는 수사권 남용이며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겁박하는 불법 행위”라고 비판했다. 자유한국당 청년당협위원장들도 4월 6일 서울 미근동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은 대자보를 붙인 학생에게 전화를 걸어 국가보안법과 모욕죄, 명예훼손죄를 언급하며 자백을 종용하고, 한 학생의 주거지를 무단침입하기도 했다”며 “불법 민간인 사찰을 즉각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 경찰 내사로 활동이 위축되는 거 아닌가.

“전혀 그렇지 않다. 만우절에 패러디한 대자보를 벌주겠다면 범죄 혐의가 있어야 하는데 나도 어떤 죄인지 궁금하다. 정부를 비판한 게 명예훼손이라면 청와대 계신 분들 모두 ‘감옥소’에 가야 한다. 조선시대 임금을 비방하는 격문이 나붙으면 의금부에 비상이 걸린다더니, 대통령 비판한 대자보를 써 붙였다고 경찰이 바빠진 거 같다.”

- 참여연합(참여연대), 아름다운사단(아름다운재단), 정의구현사죄단(정의구현사제단) 등 기존 단체를 패러디한 이름을 사용하는 이유는 뭔가.

“그들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외치는 단체로 알고 있는데, 오히려 반민족, 반민주이자 세계 최고의 인권유린 체제인 북한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다. 그것을 풍자, 비판한 거다.”

- 앞으로의 계획은.

“곧 유튜브 ‘전대협 TV’를 개설해 더욱 강력한 풍자를 할 것이다. 탈북 인사들을 초청하고 북한 조선중앙방송 스타일로 현 정부에 대해 신랄하게 풍자할 생각이다.”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19년 5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