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아 인터뷰
● ‘총선·보선 안 나간다’ 해도 안 믿으니 은퇴 선언
● “‘모두의 건강’이라는 블록체인 기반 헬스케어 회사 창업”
● 남 죽여야 사는 ‘정치보복 굴레’ 벗어야
● 여야는 한배 탄 경쟁적 동지
● 경제에서 함께 ‘파이’ 키우기 실험
● 블록체인 공부하니 ‘심쿵’
남경필(54) 전 경기지사는 3월 29일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저는 오늘 제 젊은 시절을 온전히 바쳤던 정치를 떠납니다. 땀 흘려 일하는 청년 남경필로 다시 돌아가 새롭게 도전하고자 합니다”라며 스타트업 창업 소식을 알렸다.
남 전 지사는 고(故) 남평우 의원의 장남으로, 33세이던 1998년 7월 경기 수원 팔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19대까지 내리 5선(選)을 한 보수 진영의 대표적 소장파 정치인이다.
개혁보수 남원정 트리오
이명박(MB) 대통령 집권 초기, ‘만사형통(萬事兄通)’으로 회자되던 MB의 친형 이상득 의원 퇴진을 요구한 ‘초재선 의원 55인의 반란’을 주도했고, 경기도 도지사가 된 뒤로 부지사 자리와 권한을 야당에 내주고 ‘경기 연합정치(聯政)’라는 새로운 정치실험을 펴 주목받았다.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 원희룡 제주지사(무소속)를 묶은 ‘남원정 트리오’라는 별칭은 지금도 개혁 보수의 대명사로 기억된다. ‘내부 총질’이라는 비난도 받았지만 이들의 따끔한 지도부 비판은 내부 정화작용을 했다.
그런 남 전 지사가 20년 넘게 몸담은 정치판을 떠나 사업가로 돌아오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개혁의 꿈은 현실의 장벽 앞에서 좌절한 것일까. 정계은퇴 선언을 한 날 그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이틀 뒤 그는 “막 일본에 도착했다”며 카톡 보이스톡을 걸어왔다. 목소리가 밝았다.
- 오랜만입니다.
“네. 잘 지내시죠? 주말에 한국에 가서 여러 일정을 소화하느라 바빴어요. 이제 막 일본에 도착했는데, 여기 오니 마음이 차분해지네요.” - ‘영원한 소장파’가 퇴장한다니 기분이 싱숭생숭한데요.
“그러세요? 하하하.”
“협치, 경제 쪽에선 잘돼”
- 평소 강조하던 보수 개혁과 소통을 통한 연합정치는 미완(未完)으로 끝나는 건가요.
“그걸 꿈꿨는데 (정치권이) 잘 안 해요. 남을 죽여야 내가 사는, 보복의 굴레에서 계속 돌아가는 게 우리의 정치 현실이잖아요. 그런데 경제 쪽을 보니까 그게 통해요.”
- 협치가 되던가요?
“내가 남을 잡아먹는 형식이 아니라 정치로 말하면 협치(協治)와 연정(聯政) 개념인 공유(共有), 그리고 ‘윈윈(win-win)’ 정신이 통하더라고요.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이 플랫폼, 즉 공유경제잖아요. 일단 내 ‘파이’를 키우면서 남도 띄워줘 ‘파이’를 함께 키우는 거죠. 그러면 내 몫도 훨씬 커지고요. 그런 걸 한번 현실화해보려고 해요. 정치에선 못 했지만 경제에서 이뤄보려고요(웃음).”
남 전 지사는 지난해 6·13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지방자치단체 행정에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해 정책 결정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블록체인은 블록에 데이터를 담아 이를 체인 형태로 연결하고 수많은 컴퓨터에 동시에 복제해 저장하는 분산형 데이터 저장 기술이다. 해킹이나 위·변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암호화폐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기반 기술이다.
- 일본 도쿄대에서 블록체인기술을 연구 중인 것으로 아는데요. 평소 이 분야에 관심이 많았나요?
“지난해 늦가을에 일본으로 갈 때만 해도 도쿄와 독일 베를린에서 6개월씩 공부하고 다음 선거 준비를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블록체인을 공부하면서 스타트업을 하는 한국 젊은이들과 국내외 글로벌 인사들과 교류해보니 생각이 바뀌더군요. ‘아, 이렇게 하면 내가 추구하려는 공유와 투명성, 안정성이 가능하겠구나’ ‘시장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새로운 방법을 통해 찾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경제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 뛰더군요. 그래서 정치권에서 이쪽으로 옮겨왔어요. 블록체인을 통하면 공유라는 가치, 투명성, 개인의 자유 보호라는 가치들을 실현할 수 있다고 봐요. 사실 그런 가치들이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미래 방향이기도 하고요.”
“이미 양극단의 정치로 갔어요”
- 블록체인 사업 아이템은 정치나 행정과 관련돼 있나요?
“그쪽은 아니고요. 조만간 스타트업 회사를 론칭할 겁니다. 조금만 지켜봐 주세요.”
이와 관련해 남 전 지사의 한 측근은 “남 전 지사의 사업 아이템은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헬스 케어 플랫폼 사업으로 보면 된다. 이미 ‘모두의 건강’이라는 회사를 설립한 걸로 안다”고 귀띔했다. 남 전 지사는 ‘정치에서 못다 한 공유와 협치를 비즈니스 영역에서 하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에 “실제로 이뤄지고 있다. 서로 파이를 키워 크게 나누자고 합의만 되면 정치와 달리 협력이 너무 잘된다”고 말했다.
- 정치권에 미련은 없나요.
“미련보다는 아쉬운 건 있죠. 타협과 소통에 기반을 둔 연정을 대한민국 작동 원리로 삼아 서로 윈-윈 하는 정치를 해보고 싶었어요. 경기도에서 작지만 (연정) 실험을 했고, 절반의 성공을 했기 때문에 이제 이 가치를 다른 분들이 실현해줬으면 해요.”
- 한국처럼 권력을 독점하는 대통령제하에서는 오히려 연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여야는 ‘국정 발목잡기’ ‘적폐청산은 정치보복’이라며 서로를 공격합니다. 고소고발이 난무합니다.
“맞아요. 정치권에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여야(與野)는 적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란 배를 함께 탄 경쟁적 동지 관계라는 겁니다. 지금 정치권은 서로를 죽이려고 하는데 그러면 안 돼요. 보수진영도 마찬가지예요. 작은 차이는 접어두고 크게 연대해 서로 윈-윈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게 안돼요. 아쉽죠. 사생결단식의 적대적 정치 현실에선 제3지대라든지 연정, 협치 이런 게 안 되거든요. 이미 양극단의 정치로 갔어요. 그런 점에서 보면 문재인 정부가 연정과 협치를 할 수 있는 굉장히 좋은 상황에서 시작했는데 결국은….”
큰 그림, 빅 텐트
- 연정과 협치, 협력적이고 생산적인 정치 문화는 요원한 걸까요.
“저는 다음 대통령까지는 안 된다고 봐요. 그건 차차기 대통령이 되는 사람이 새로운 정치를 통해 이러한 극단의 정치, 반복되는 보복정치를 끊어줘야죠. 그런 때면 가능할 거예요.”
- 내년 4월에 총선이 있는데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친형 강제입원 시도 등으로 기소(직권남용·공직선거법 위반)돼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최종 선고 결과에 따라 보궐선거를 치를 수도 있는데, 총선과 지방선거 관련 제안이나 언질을 받았을 거 같은데요.
“사실 제가 (정계은퇴 선언) 마음먹게 된 큰 이유입니다. 이재명 경기지사 재판 결과가 쉽지 않을 거 같다며 정치권 여기저기에서 제게 ‘큰 그림을 그리자’ ‘빅 텐트를 만들자’는 얘기를 해요.”
- 그래서요?
“몇 분이 연락을 주셨기에 ‘나는 안 합니다’라고 했는데, 그런데 잘 안 믿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아, 내가 빨리 결정을 안 내리면 혼선이 오겠구나’ ‘나를 (차기 선거에서 후보) 명단에서 제외시키려면 (정계은퇴 소식을) 알려야겠다’는 마음에 공개적으로 알렸어요.”
- 갖은 명분을 대면서 ‘한자리’ 하려는 정치인들을 보다가 5선에 도백(道伯)을 한 50대 초반 정치인의 정계은퇴 소식은 생소하네요.
“주변 분들도 다들 좋아하시네요.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하면서 ‘잘하셨어요’라고 해요. 그런데 꼭 뒤에 붙이는 말이 뭔지 아세요? ‘그래도 다시 (정치권으로) 오셔야죠’(웃음).”
- 연정과 협치가 가능하면 ‘컴백’할 수도….
“아뇨. 지금은 경제 공부를 해야죠. 아, 이 사업이 얼마나 어려운데요. 조만간 사업가로 ‘컴백’할게요. 준비도 많이 했으니 올해 가기 전에 가시적 성과를 내면 내년에는 회사 법인카드로 밥 살 수 있을 겁니다. ‘법카’로 밥 살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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