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와 같은 운명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의 지속가능한 삶

  • 신동아
  • 입력 2019년 11월 30일 16시 32분


["생태문명 전환의 열쇠는 민주정치"]
● “공정·합리 사회 되려면 부동산 불로소득 잡아야”
● “물질문명과 탐욕 벗어나 영성 살려야”
● “지식인의 서양 사대주의·냉소주의 안타까워”
● “남북 문제 매달리다 개혁 못한 문재인 정부”
● “대통령 주변 우수한 브레인이 없어, 너무 무능”
● “기후변화 파국 앞으로 10년 대응에 달려”
● “농경적 감수성, 예의, 샤머니즘 윤리 소중”
● ‘샘터’와 비슷한 운명, 2년 뒤 30주년 맞는 ‘녹색평론’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44세 출가, 그리고 28년간의 수행.’ 엉뚱한 비유이겠으나 이 사람의 삶을 달리 표현하기 어려울 듯하다. 44세 때인 1991년 11월 그는 생태·인문 잡지 ‘녹색평론’을 ‘출가하듯’ 창간했다. 이후 사재를 털어 넣으며 28년 동안 결호 한 번 없이 이 잡지를 ‘수행하듯’ 발행해왔다. 어느덧 고희를 넘어 72세. 혈기방장했던 중년의 영문학자는 이제 노년의 완숙한 철학자가 됐다. 지금도 하루하루가 배움과 깨달음의 삶이고, 그 결정체인 ‘녹색평론’을 제작하는 데 청년 같은 열정을 쏟아 붓는다. 날카로운 지성과 열정을 가진 김종철 발행인(전 영남대 교수) 얘기다.

지난 6월엔 생태주의와 민주주의에 관한 에세이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도 출간했다. 이 책도 ‘녹색평론’이 지향하는 가치의 연장선에 있다. 그 가치는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가 당연하게 수용해온 삶의 관행, 즉 서구식 근대의 논리에 따른 산업경제와 그것에 의존한 문명을 근원적인 각도에서 의심해보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사상적 토대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심각한 이념갈등,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 이제껏 없었던 환경적·사회적 위기 앞에서 ‘우리는 과연 지속 가능한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11월 6일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근처 골목길에 있는 커피숍에서 김 발행인과 마주 앉았다. 지금 왜 생태문명이 필요한지, 그것을 이루는 데 필요한 합리적 정치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듣고 싶었다. 김 발행인의 직설은 끝이 없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감에서부터 한국 사회의 천박함, 지식인들의 오만과 무지, 기후변화 대응의 절박함 등 불편한 진실을 끝없이 이어갔다. 생태적 사회로 가는 초석을 놓기 위해 농민기본소득제를 당장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샘터’와 비슷한 운명, 2년 뒤 30주년 맞는 ‘녹색평론’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연단 오른쪽)은 2018년 11월 독자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녹색평론사 제공]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연단 오른쪽)은 2018년 11월 독자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녹색평론사 제공]

김 발행인은 1947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중·고교를 졸업했고, 서울대 영문학과에 진학해 졸업 후 영문학과 교원으로 살았다. 그러다 1983년 뉴욕주립대에 체류하면서 당시 세계 지식 사회의 새 테마로 대두하던 ‘에콜로지(생태학)’에 큰 흥미를 갖게 됐다. 현대 문명의 관행이 그대로 지속된다면 세계의 파국이 필연적이라는 에콜로지의 메시지에 전율하면서 시커멓게 오염돼 죽음의 바다가 된 마산 앞바다를 떠올렸다. 이후 그는 에콜로지 사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영남대 재직 시절인 1991년 가을 ‘녹색평론’ 발간을 시작했다.

- 2019년 11/12월호가 ‘녹색평론’ 169호입니다. 28년간 만들면서 그사이 결호가 한번도 없었는데요.

“대단한 것 아닙니다. 잡지 만드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결호가 나오면 장사가 안 되기 때문에 꾸준히 출간해야 합니다, 허허.”

- 전반적으로 인쇄 문화가 쇠퇴하고 있고, 책을 보는 독자도 급격히 줄어드는 상황입니다. 출간을 계속할 정도로 수익은 나는지요.

“아마도 오래 못할 것 같습니다. 일단은 30주년이 되는 180호까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발간할 계획입니다. 아마도 기적적인 반전이 없는 한 ‘녹색평론’도 결국은 문을 닫게 될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 안 보는 데는) 참 극단적입니다. 구미나 일본에는 100년, 150년 된 잡지가 아직도 건재합니다. 그런 게 제일 부럽지요. 잡지 위주로 지식인들이 서로 소통하고, 사회에 필요한 지적 담론을 깊이 있게 형성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 문화가 다 사라졌습니다.”

“방향 전환 더 늦으면 문명 존속 어려워”

김 발행인은 한때 잡지 내용이 너무 근본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받았다. 하지만 ‘녹색평론’에 실무적 제안보다는 지속 불가능한 현대 산업문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생태문명으로 방향을 바꾸는 내용들을 담고자 했기에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갔다. 그런 의지가 지난 169권의 잡지에 오롯이 담겼다. 지금도 그는 “성장 논리와는 무관한 질적으로 전혀 다른 삶, 즉 ‘비근대적’ 방식으로 방향 전환하려는 급진적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파국적 결과에 대한 그의 우려는 절박하다. 방향 전환이 더 늦는다면 아예 문명 자체가 존속 불가능할 수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김 발행인은 직접 그린 도표 2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관세청이 발표한 2018년 우리나라 10대 수입·수출 품목이었다.

“1~10위 모두 석유 관련 품목들입니다. 수입 품목 1위가 원유, 2위가 반도체, 3위가 천연가스, 4위가 석유제품입니다. 수출 품목 1위는 반도체, 2위 석유제품, 3위 자동차입니다. 이 표가 뜻하는 것은 석유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우리나라는 속된 말로 ‘폭망’한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이런 것을 걱정하는 경제학자들이 있나요? EROEI(Energy Returned on Energy Invested·에너지투자수익률) 지표라는 게 있는데요. 1980년대엔 석유에너지 1을 투입했을 때 30의 결과가 나왔는데 2010년대엔 1대 5까지 하락했어요. 이것을 유추해보면 석유를 사용할 수 있는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겁니다. 미국에서 셰일오일이 2010년대부터 공격적으로 생산되면서 이런 우려가 좀 들어갔지만, 앞으로 석유를 이용하는 시기가 20, 30년도 남지 않았어요. 더욱이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비(非)석유경제로 하루빨리 가야 해요.”

- 지진이 오기 전에 먼저 알아차리고 이동하는 동물들처럼 직관적인 얘기를 하시는 거군요.

“그렇지요. 제 이야기가 바로 그겁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정치 극우화

김 발행인이 던지는 불편한 질문 가운데는 원자력 문제도 있다. 일반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은 실익 없는 공허한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김 발행인은 오히려 문재인 정부가 탈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 당장 사라지는 원전은 없고, 정부 방침대로 해도 2050년에 가야 원전이 사라지게 돼 있어 너무 더디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 사례를 들면서 탈원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베 일본 총리가 한국에 대해 적대적 조치들을 취하고 있는데,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후유증도 하나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히로시마 원폭 때보다 100배, 1000배나 많은 방사능이 유출됐고, 지금도 나오고 있습니다. 아베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 관련 보도를 못 하게 하는 비밀정보보호법을 만들어 언론을 통제할 정도입니다. 절망적인 상태지요.”

-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본 정치의 발목 잡았다는 건가요.

“일본 정치의 극우화가 가속화했습니다. 이전의 우익 세력과 달리 지금은 광범위하고 본격적입니다.”

- 어떤 형태의 극우화를 말하는지요.

“언론자유를 통제하고, 민주주의를 우습게 보며, 외국 문화와 물건, 사상을 배격하는 배외주의(排外主義)가 강화됐습니다. 중국과 한국이 경제적으로 부상하면서 일본이 심리적으로 위축됐어요. 더욱이 후쿠시마 사고로 일본의 국력이 굉장히 약해졌습니다. 일본 국민이 전반적으로 무기력하고 체념 상태에 빠졌습니다. 장기적으로 일본이 살 만한 곳인지 의문을 품는 이도 많다고 해요.”

- 미국이나 유럽 환경주의자들 가운데 기후변화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온실가스가 가장 적게 나오는 에너지원인 원전을 위험을 줄여가는 방식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하는데요.

“지구를 환경과 생물로 구성된 하나의 생명체로 여기는 가이아 이론의 제임스 러브록이나 가디언 칼럼니스트 조지 몬비오 같은 이들이 그런 주장을 하고 있지요. 그런데 그들의 주장은 현재와 같은 현대인의 생활수준을 낮추기 어렵다는 것을 전제한 것입니다. 그리고 원자력은 원전폐기물 처리 문제도 심각하고, 원전 재앙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기후변화를 저지하려면 우리 생활 규모를 대폭 줄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자력이나 화석연료 의존도를 계속 낮춰야 해요. 기계문명의 안락함을 어떻게 뿌리칠 수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경제개발이 시작된 1970년대 이전이 결코 원시사회가 아니었습니다. 나름대로 품위 있고 문화적인 사회였어요. 얼마든지 생활 규모를 줄일 수 있는 겁니다.”

농민기본소득제로 인구 분산, 지방경제 부활

‘녹색평론’ 11/12월호는 ‘농민기본소득이 나라를 살린다’는 특별좌담을 머리기사로 내세웠다. 기본소득이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모든 개인에게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소득을 뜻한다. 김 발행인은 이것을 우선 농민들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농민에게 지급하는 농민기본소득이 농사뿐 아니라 나라를 살릴 수 있는 최적의 방책이라며 최근 매우 강조하고 있다.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농민기본소득은 생태문명으로의 전환,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 정부 정책의 실패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 농민의 권리를 되찾아 땅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는 것”의 의미가 있다고 좌담에서 말했다. 현재 몇몇 지자체에서는 미약하나마 농민기본소득제를 실시하고 있고, 마침 경기도도 내년 하반기부터 농민기본소득을 도입할 것이라고 11월 8일 밝혔다.

- 농민기본소득제를 한다면 우리 사회에 풀릴 수 있는 문제가 무엇인가요.

“우선 농사를 살리고, 생존의 근본 터전인 땅과 농촌공동체를 살리고, 지방경제를 부활할 수 있습니다. 또 농민기본소득이 본격화하면 도시민들이 시골로 대거 이주할 것입니다. 그러면 수도권에 밀집된 문화·정치·경제가 분권화할 수 있습니다.”

- 농민기본소득 지급액이 어느 수준이 되면 도시민이 시골로 가고픈 유혹을 느낄까요.

“최소한 인간적 생활이 가능할 정도는 돼야 합니다. 시골은 물가가 싸고 먹을거리는 자급이 가능하니까 도시민의 최저생계비보다는 적을 겁니다.”

- 예산 마련이 쉽지 않을 텐데요.

“정치적 의지의 문제입니다. 농어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부동산 거래 시 부과되는 농어촌특별세가 있지만, 그게 과연 농민에게 얼마나 직접 가는지 모르겠어요. 농민은 경제 사정이 열악한데 농민 관련 기관들은 번창하고 있습니다. 농림부가 있어서 농민에게 기여하는 게 뭔가요. 장기적으로 민족의 생존 터전을 살려나가는 것이 중요한데, 농림부는 당장 눈앞에 돈 되는 일만 찾고 있습니다.”

김 발행인은 또 농민기본소득제에 의해 도시인구가 농촌으로 유입되면 농촌에서 새로운 농경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저는 지금 제일 큰 문제가 우리 사회에 농경적 감수성이 소멸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엔 농촌 삶을 경험한 이들이 있었고, 도시인의 친척 가운데 몇몇은 농촌 출신이어서 농경적 감수성이 일반화돼 있었지요. 그런데 요즘은 지식인 엘리트 대부분이 농촌과 관련 없이 자랐고, 심지어 외국 도시에서 태어난 이들도 있습니다. 해외는 뻔질나게 다녀도 우리나라 농촌에는 가보지 않은 이가 많아요.”

지식인의 서양 사대주의와 냉소주의
김종철 발행인은 요즘 농민기본소득제 도입을 특히 강조한다. [조영철 기자]
김종철 발행인은 요즘 농민기본소득제 도입을 특히 강조한다. [조영철 기자]

이 대목에서 김 발행인은 오래 생각해오던 말을 꺼냈다. 열등감. 서양이 산업문명을 일으켜 지구를 이렇게 파괴하고 더럽혀놓았는데, 이제는 서양인들이 생태문명을 앞서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동양은 이제야 겨우 산업문명을 따라잡았는데, 눈앞이 절벽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지식인이 아무런 각성도 없다.

“서양은 동양에 병도 주고 약도 주는 것 같아요. 저는 이게 아주 기분이 나빠요. 예전에 고려대에서 동양철학을 강의한 김충렬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어요. ‘인류가 문명생활을 유지하려면 생태문명으로 가야 하는데, 그것은 동양 사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즉 앞으로 동양사상이 세계를 구원한다는 것은 맞는 얘기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문명의 담지자가 동아시아인인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내가 보기엔 현재 동양사상도 제대로 연구하고 이해하는 것은 서양 사람들이다’라고요.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까. 여기에 대해 한국 지식인들은 아무런 자각이 없어 안타깝습니다. 신문의 서평란에는 서양 서적이 대부분입니다. 한국의 젊은 지식인들이 이전보다 더 지적으로 서양에 대한 사대주의에 젖어 있는 것 같습니다. 생태문명에 대해선 지극히 냉소적이고요.”

그는 메르켈 독일 총리가 탈핵과 관련한 ‘안전한 에너지 미래를 위한 윤리위원회’를 만들었을 때의 일화를 언급했다. 당시 윤리위원회엔 과학자, 철학자, 환경운동가 등 여러 부문의 사람들이 참가했는데, 그 결정문에 ‘이것은 유럽 문화와 기독교 윤리에 입각한 결정이다’라고 언급했음을 상기했다.

“당시 저는, ‘그러면 우리는 어떤 윤리적 입각점을 갖고 원전 반대 운동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우리의 행동과 사고를 좌우하는 근본적 기준, 윤리적 잣대는 무엇인지 고민해봤는데, 내 생각에 그것은 샤머니즘 전통이었습니다. 우리가 고난을 겪을 때, 억울함을 느낄 때, 현실에서 아무리 애써도 해결되지 않을 때 물을 떠놓고 빌던 그 행위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농경적 감수성, 예의, 샤머니즘 윤리 소중

- 샤머니즘을 윤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윤리라기보다는 행동을 규율하는 근본적 잣대인 거지요. 넓은 의미에서 윤리라고 할 수 있지요. 서양의 기독교 윤리 전통에 대응할 만한 것이 결국 우리에게는 동양사상이고, 동아시아의 원초적 농경문화 정서입니다. 공자와 맹자의 사상도 그 뿌리는 농경문화에 토대를 둔 윤리입니다. 오랫동안 동양사회를 지배해온 상부상조의 정신이나 절제와 예의 등등, 인간다운 생활에 꼭 필요한 기본적인 가치 규범은 공자나 옛 성현들의 머릿속에서 나온 게 아니라 근원적으로는 농경문화 전통에서 나온 겁니다. 동아시아인으로서 우리가 이 전통을 망각하면 어떻게 될까요. 걱정입니다.”

- 교수님은 늘 소농 중심 사회를 얘기해왔는데요. 우리 사회에 소농 비율이 어느 정도되면 좋을까요.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생태철학자 루이스 멈퍼드는 한 사회가 생태적으로 건강하게 지속되려면 농민이 최소한 50~60%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미국의 경우에도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230만 명)의 두 배인 10%라도 된다면 좋겠습니다. 농민이 500만 명 정도 되면 소상공인도 늘어나고, 학교 병원 책방 도서관, 기타 문화시설도 생기면서 인구가 늘어 생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안정될 수 있습니다. 김영삼 정부 들어설 때만 해도 우리나라 농민이 1000만 명이 넘었고, 노무현 정부 초기엔 500만 명이었습니다.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농촌인구가 급속하게 줄어들었지요.

우리의 식량자급률은 겨우 40%대이지만, 유럽 산업선진국은 거의 다 100%입니다. 영국은 제국주의 시대 해외 식민지에 식량을 의존했다가 제2차 세계대전 때 큰코다쳤습니다. 히틀러가 해상을 봉쇄하면서 국민들이 식량을 배급받는 경험을 했지요. 그때 식량 자급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기후변화 탓에 농사 작황은 계속 나빠지고 있는데, 특단의 대책이 필요합니다.”

문재인 정부 2년 반에 대한 평가

2017년 촛불시위에 매번 참가한 김 발행인은 지금 문재인 정부에 실망이 크다. 당시 김해자 시인은 “대통령 하나 갈아치우자고 우리는 여기에 모이지 않았다”(‘여기가 광화문이다’ 중에서)라고 노래했다. “정말로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세상을 보고 싶다”고 열망했다. 문재인 정부 2년 반, 그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현재 우리나라 농지 임대차 비율이 50%가 넘습니다. 광복 후 농지개혁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물론 그때처럼 착취 정도는 심하지 않지만 이는 우리 사회가 인간적으로 발전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됩니다. 또 부동산 가격을 통제하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쉽습니다. 어느 인간 사회에서든 재산 문제가 가장 중요합니다. 아테네 민주주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보니 기원전 6세기는 부유층과 평민층의 격차가 너무나 커 준전시 상태였습니다.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독재관(獨裁官)이라는 관직이 생겼습니다. 솔론이라는 떠돌이 시인이 양측의 합의에 의해 독재관이 돼 전권을 행사하며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는 노예 신분으로 전락한 사람들의 빚을 탕감해주고 극심한 빈부격차를 해소한 다음, 그 자리를 떠납니다. 그것이 바로 아테네 민주주의의 초석이 됐습니다.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는 데는 그처럼 강력한 사회 개혁이 필요합니다. 재산의 격차가 정치권력의 격차이고, 모든 불평등의 원인이므로 농지개혁에 준하는 일을 민주 정부가 해야 한다고 봅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농지개혁에 준하는 일이 될까요.

“가장 현실적인 문제이고, 반발에 덜 부딪힐 수 있으며, 문재인 정부라면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것이 바로 농민기본소득제입니다. 그런데 아무 생각이 없으니 걱정입니다.

토마 피케티가 최근에 내놓은 저서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주장하는 것도 핵심은 기본소득과 부유세입니다. 초부유층에게 부가 너무나 많이 집중돼 있다며 자산세를 90%까지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피케티는 저 같은 사람 이상으로 급진적이에요. 물론 이게 현실이 되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기본소득도 월급식으로 주는 게 아니라 생애 25세에 한 번 1억5000만 원 정도를 종잣돈으로 준다는 방안입니다. 사실 이건 토마스 페인이 18세기에 주장한 내용과 비슷합니다. 인간 역사나 현실을 보면 특별히 더 나은 다른 방안이 나올 수가 없어요. 그런 정도의 급진적 방법이 아니면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공정사회 이루려면 부동산 불로소득 잡아야

문재인 정부가 가장 잘못한 게 무엇이냐고 묻자 김 발행인은 “남북 문제에 매달려 있다가 실질적 개혁을 한 게 아무것도 없다”고 답하면서 부동산 정책을 다시 언급했다.

“우리 가족이 15년 전에 대구에서 서울로 이사할 때 북한산 아랫동네에 낡은 빌라를 사서 살고 있는데 지금도 집값이 그대로랍니다. 그런데 당시 같은 가격으로 강남에 집을 샀더라면 지금은 3배는 올랐을 겁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매우 불쾌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평범한 이들이 무슨 의욕으로 살겠어요. 이 정부가 민주 정부라면, 공정하고 합리적 사회라면 지대(地代) 불로소득은 반드시 잡아야 해요. 대통령 주변에 정말 우수한 브레인이 없는 것 같아요. 내가 보기엔 너무 무능해요. 이것은 우리 지식 사회의 전반적 수준이 그만큼 낮다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 어떤 영역의 브레인을 말하는지요.

“나라의 장래가 세계와 맞물려 장단기적으로 어떻게 돌아갈지에 대해, 바둑에서 포석(布石)하듯이 큰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 해요. 포석은 끝이 어떻게 될 건지 생각하면서 바둑을 두는 거잖아요. 문재인 정부는 눈앞의 것만 보고 더 큰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 같고. 남북통일이 되면 뭐 합니까. 기후변화 탓에 생존이 불가능해지면 어떻게 하려고.”

김 발행인은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한국 최초의 ‘녹색당’ 창립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생태적 삶의 패턴을 회복하는 것이 긴급한데, 그 길로 방향을 전환하자면 우리 사회의 정치가 합리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파국 앞으로 10년 대응에 달려

- 2020년 총선에는 무엇을 기대합니까.

“지난 2년 반 동안 국회가 완전 마비 상태였어요. 특히 기후변화 상황을 보면 앞으로 10년이 우리나 세계에 마지막 남은 기회입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에서는 2030년까지 화석연료 사용량을 지금보다 절반 이하로 줄여야 한다고 합니다. 말이 쉬워 그렇지, 산업의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친환경산업, 순환적인 농업을 중시하는 사회로 가야 합니다. 그걸 정치가 결정해줘야 해요. 그래서 합리적으로 사고할 능력이 있는 정치 세력이 꼭 등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시민의회를 1년에 두 차례 정도 소집해 농민기본소득이나 부유세 등 진짜 국회에서 풀기 어려운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면 좋겠습니다. 제가 꿈같은 소리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 정도 급진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희망이 없습니다.”

시민의회는 추첨으로 뽑힌 시민대표들이 직접 권력기관을 감시하고, 국가의 중대사를 토의·결정하도록 설계된 대표적인 ‘숙의민주주의’ 제도다. 2016년 10월 아일랜드가 낙태 합법화 문제 등 몇 가지 현안을 토의하기 위해 시민의회를 출범시킨 적이 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성장 논리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는 우리 사회가 꼭 경제성장을 해야만 살 만한 사회가 된다는 생각에 반대한다. 성장에 대한 강박관념보다는 오히려 살 만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본이 30년간 성장이 멈춘 사회였다지만 일본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안정되게 살고 있잖아요. 일본도 세계경제와 맞물려 있고, 성장을 위해 노력해왔지만 세계경제 자체가 성장이 안 되는 시대가 됐습니다. 저는 이것이 결국 석유 문제라고 봅니다. 이전처럼 석유를 펑펑 쓰기 힘든 시대입니다. 일본에서는 성숙사회니 축소균형사회니 하는 말을 관료들까지 합니다. 우리도 새로운 시대의 문법에 맞게 그동안의 관행을 탈피해 사고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그러면 인구 감소도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 교수님이 번역하신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는 책 제목이 떠오르네요.

“물질문명이 어느 수준으로 높아야 풍요로울 것인지는 상대적인 거죠.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인 2012년 일본에서 마음의 풍요와 물질의 풍요 가운데 무엇이 더 중요한지 묻는 여론조사가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5년 전 같은 내용의 조사와는 반대의 결과가 나왔는데 마음의 풍요가 중요하다는 이가 60%, 물질적 풍요가 더 중요하다는 반응이 30%로 나왔습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무엇이 더 중요한지 확실히 알게 된 겁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통해 물질 수준을 끌어올려야 사회주의가 된다고 했는데, 과연 어느 정도까지 끌어올려야 하는지는 아무도 객관적으로 얘기할 수 없어요. 한이 없는 겁니다.”

물질문명과 탐욕 벗어나 영성 살려야

- 현대인이 대체로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사는데, 그런 삶을 멀리하고 자발적 가난의 삶을 취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낭비적이어선 안 된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우리는 식민지와 전쟁과 군사정권 시대를 겪으면서 마음의 중심을 잃은 듯합니다. 일본은 가정집에도 신단을 모시고, 늘 뭔가 초월적 존재에 대해 비는 마음이 있어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재해를 끊임없이 당해왔기 때문에 인간의 한계를 느끼고 체념하는 정서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인은 저마다 다 자기가 제일이라고 생각해요. 뭔가 마음속에 섬기는 게 없어요.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너무나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종교인이 얼마나 많습니까.”

- 우리가 마음의 중심에 둬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안다는 데서 비롯합니다. 물러나야 할 때는 물러나서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연과 신과 대화하며, 세상의 온갖 생명체와 미물과도 내가 연결돼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해요. 세상 만물이 영성적으로 교감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야 참다운 인간이 됩니다. 시와 철학, 예술, 삶의 풍요가 거기서 나옵니다. 영성적으로 죽은 인간은 자연을 보고도 감동할 줄 모르고, 꽃을 보고도 아름다움을 모르며, 사람의 우정을 높이 평가할 줄 모르고, 물질생활만 찬양합니다. 그런 천박함이 혐오스러워요.”

'신동아 12월호'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19년 12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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