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끝났다” 외쳤으나…“푼수, 오지랖, 삶은 소대가리”로 끝나

  • 신동아
  • 입력 2020년 1월 18일 20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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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어록으로 본 ‘비핵화쇼’ 2年

● 평창發 봄바람 부나 했더니 ‘핵미사일 엔진 바람’만
● 김정은 ‘스피커’ 노릇하며 ‘동맹’ 미국만 압박
● 종전선언·평화경제·한반도 신경제체제… 北·美는 ‘침묵’
● 답방 요청 ‘친서’ 보냈더니 北언론이 “갈 이유 없다” 답변
● 북한 ‘불평·불만’ 알려주는 ‘메신저’ 자처
● ‘내가 북한 마음을 좀 아는데…’ 되레 국제사회 변화 촉구
● 올해도 되풀이되는 ‘김정은 답방’ ‘한반도 구상’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2월 9일 강원 평창 군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2월 9일 강원 평창 군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빛나는 꿈을 꾸었으나 깨보니 기억나지 않아 허망하다. 최근 2년간 문재인 정부의 대북 행보가 그렇다. “평창 이후 찾아올 봄을 고대한다”(2018년 2월 9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바람은 “곧 머지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발언으로 일단락됐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후 11년간 경색돼 있던 남북관계가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으로 순풍을 맞은 듯했으나 문 대통령은 북한으로부터 ‘삶은 소대가리’라는 모욕적 언사마저 들어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북한 관련 발언을 전수 분석해 2년을 되돌아봤다.

봄은 오지 않았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려는 문 대통령의 구상은 취임 초부터 가동됐다. 문 대통령은 2017년 7월 ‘베를린 선언’에서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공식 제안한다. 북한은 그해 11월 29일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김정은은 2018년 신년사를 통해 국제사회와 협상할 뜻을 내비쳤다. 평창 구상에 청신호가 켜진 듯했다. 2018년 2월 9일 문 대통령은 ‘한반도에 찾아올 봄’을 기대했다.

“유엔 총회가 열렸던 지난해 9월을 잠시 떠올린다. 당시 한반도 정세는 차갑게 얼어붙고 있었다. 그러나 저와 국민들은 봄은 반드시 온다고 믿었다. 저는 평창 이후 찾아올 봄을 고대한다. 평창에서 열린 남북 간 교류가 다양한 대화로 확대되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렸다. 김정은은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 집’ 방명록에 “새로운 력사(역사)는 이제부터. 평화의 시대, 력사의 출발점에서”라고 썼다.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문’ 공동 발표는 ‘한반도의 봄’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문 대통령은 “오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나는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는 것이 우리의 공동 목표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무엇보다 온 겨레가 전쟁 없는 평화로운 땅에서 번영과 행복을 누리는 새 시대를 열어갈 확고한 의지를 같이하고 실천적 대책에 합의했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북부(풍계리) 핵실험장 5월 중 폐쇄를 선언했으며 문재인 정부는 화답하듯 군이 운용하던 대북확성기 전면 철거를 결정했다. 2020년 1월 현재 풍계리 핵실험장에서는 재가동 움직임이 한창이다. 수주에서 수개월 내 복구가 가능하다는 게 정부 당국의 판단이다.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은 2019년 3월 복구 움직임을 나타낸 후 9개월 만인 12월 엔진 연소시험을 진행했다. 평창발(發) 봄바람이 불어오나 했더니 그것은 핵미사일 엔진 바람이었다.

‘평화의 시대’는 오간 데 없이 오히려 미국만 ‘압박’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자유의 집에서 회동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오른쪽은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자유의 집에서 회동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오른쪽은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

“전쟁 없는 한반도가 시작됐다.”

문 대통령이 2018년 9월 19일 평양에서 한 말이다. 문 대통령은 2019년 7월 2일 김정은-도널드 트럼프 판문점 면담을 섣부르게도 사실상의 종전선언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남북에 이어 북·미 간에도 문서상의 서명은 아니지만 사실상의 행동으로 적대관계의 종식과 새로운 평화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선언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남북 간에도 북·미 간에도 적대관계는 종식되지 않았다. 김정은이 평화의 집에 써놓은 ‘평화의 시대’는 오지 않았다. 김정은은 방명록 문구를 잊은 듯 올해 초 “이제껏 우리 인민이 당한 고통과 억제된 발전의 대가를 깨끗이 다 받아내기 위한 충격적인 실제 행동에로 넘어갈 것”이라고 선포했다. ‘전쟁 없는 한반도’ ‘사실상의 종전선언’은 어디로 간 것일까.

문 대통령은 일관되게 북한보다 미국을 압박했다. 2018년 4월 26일 류옌둥 중국 국무원 부총리에게 “미국은 대화의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으며, 2018년 6월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이 난항을 보이자 “지금의 소통 방식으로는 민감하고 어려운 외교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정상 간 보다 직접적이고 긴밀한 대화로 해결해 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국에 태도를 바꾸라고 주문한 것이다.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북·미 간 신뢰 수준이 거의 제로인 상황에서 선(先)비핵화 후(後)제재해제를 내걸고 있는 미국과 북한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는다”면서 “지난해 미국이 병행 조치를 시사하기도 했으나 과감한 기조 변화는 없었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의 미국 압박이 통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익명을 원한 외교안보 분야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미국의 태도를 변화시킬 유인책도 없는 상황에서 압박한다고 무엇이 바뀌겠나. 오히려 한·미관계만 악화시켰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첫 정상회담 이후 한 달이 지난 2018년 5월 26일 판문점에서 김정은을 다시 만났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기 싸움이 벌어지면서 김정은-트럼프 회담이 무산될 분위기가 형성됐을 때였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를 결단하고 실천할 경우 북한과의 적대관계 종식과 경제협력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다’는 점을 북측에 전달했다. 김정은은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통해 전쟁과 대립의 역사를 청산하고 평화와 번영을 위해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북한 ‘불평 · 불만’ 알려주는 ‘메신저’ 자처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2월 10일 청와대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방남한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을 비롯한 북한 고위급대표단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ꃫ뒕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2월 10일 청와대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방남한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을 비롯한 북한 고위급대표단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ꃫ뒕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담보하고 알리는 역할을 했다. 북한의 불평·불만을 외부에 알리는 메신저도 자처했다.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미 관계가 교착 상태에 빠지자 문 대통령은 미국의 행동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문 대통령은 2018년 9월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원로자문단과의 오찬에서 “북한은 핵·미사일을 더 발전시키고 고도화시키는 작업을 포기했다고 할 수 있다. 미래 핵을 포기하고 그런 조치를 했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은 생각엔) 북한이 좀 더 추가적인 조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미국에서 상응하는 조치가 있어야 되겠다라고 하는 것이다. 북한은 자신들이 취한 조치는 하나하나가 다 불가역적인 조치인데, 우리 (한미) 군사훈련 중단은 언제든 재개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게 북·미 교착의 원인이다”라고 말했다.

북한은 행동으로 실천하는데 미국의 결단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사실상 북한 편을 든 것이다. 문 대통령의 어록 속이 아닌 현실의 북한은 최근 2년간 핵미사일 능력을 더욱 고도화했으며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신형 단거리미사일과 신형전술유도무기, 초대형 방사포 등을 시험 발사했다. 북한은 2019년 12월 7일 국방과학원 대변인 담화에서 “7일 오후 서해 위성발사장에서는 대단히 중대한 시험이 진행됐다. 이번 중대한 시험의 결과는 머지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략적 지위를 또 한 번 변화시키는 데서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다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엔진 시험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내가 북한 마음을 좀 아는데…’ 되레 국제사회 변화 촉구

남북, 북·미 대화 불씨가 거의 사라진 2019년 말에도 문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행동 변화를 요구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6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보낸 기고문의 한 대목을 읽어보자.

“저는 베를린에서 북한을 향해 평화 메시지를 전했고, 이에 호응한 북한이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면서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의 물꼬가 트였다. 지금 한반도는 ‘평화 만들기’가 한창이다.”

이 발언은 북한이 연말을 앞두고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지칭한 도발 위협을 가했을 시기에 나왔다. “‘평화 만들기’가 한창”이라는 발언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어땠을까.

북한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1월 6일 “얼마 전 남조선의 청와대는 현 당국자가 어느 한 국제 언론 매체에 게재하였던 ‘무수한 행동들이 만들어내는 평화-한반도 평화구상’이라는 제목의 기고문 내용을 공개했다”면서 “(남조선 당국자는) 눈에 보이는 사건들은 없지만 지금 한반도에서는 물밑에서 평화 만들기가 한창이라고 횡설수설했다. 말 그대로 가소로운 넋두리, 푼수 없는 추태라고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말하는 ‘남조선 당국자’는 문 대통령을 가리킨다.

문 대통령이 북·미 사이에서 일관되게 북한 편을 들어주는데도 평양은 문 대통령을 비핵화 협상의 당사자는커녕 중재자로도 인정하지 않는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솔직히 말해 북한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우리 정부는 아무런 힘이 없다. 비핵화를 견인할 수단도 없는데 북한이 우리말을 듣겠나. 오로지 미국밖에 할 수 없는 일인데, 그 한계를 알고 일을 해야 하는데 이걸 참…”이라며 답답해했다.

정치적 행위일 뿐인 ‘종전선언’에 매달린 文

“정전체제를 평화협정으로 전환해 전쟁 상태를 종식시키고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모멘텀이 필요하다. 그것을 종전선언으로 시작하고 국제적인 합의를 해나가자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당시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와의 ‘10·4 남북 정상선언 기념’ 대담에서 이같이 밝혔다. 종전선언 구상은 2018년 4월 청와대에서 다시금 제기되며 7월 구체화한다. 싱가포르를 국빈방문한 문 대통령은 7월 11일 ‘스트레이츠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종전선언의) 시기와 형식 등에 대해서는 북한, 미국 등과 긴밀히 협의해 나갈 것이며, 현재 남북 및 북·미 간 추가적인 협의가 지속되고 있다.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대로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이 되는 올해 종전을 선언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목표”라고 밝혔다.

2018년 9월 7일 인도네시아 일간지 ‘콤파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은 “신뢰 구축의 실질적 단계로서 정전 65주년인 올해 한반도 적대관계 종식을 선언하는 종전선언이 이뤄진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올해 말까지 되돌아갈 수 없을 만큼 진도를 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 달인 10월 12일 유럽 순방을 앞두고 영국 BBC와 한 인터뷰에서 북한의 약속을 소개하면서 종전선언을 낙관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말하는 완전한 비핵화는 추가적인 핵실험과 핵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서 핵을 생산하고 미사일을 발전시키는 시설들을 폐기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현존하는 핵무기와 핵물질을 없앤다는 약속을 했다. 종전선언은 시기의 문제일 뿐 반드시 될 것이라고 믿는다.”

앞선 발언들과 마찬가지로 2018년 말까지 종전선언과 관련해 되돌아갈 수 없을 만큼 진도를 내겠다는 발언 역시 허언(虛言)이 됐다. 북한과 미국은 현재 종전선언에 대해 거론조차 하지 않고 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종전선언은 정치적 행위일 뿐”이라면서 “현재는 북·미가 접점을 찾지 못해 과거로 역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질적 내용의 진전이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평화경제’ 내거니 오히려 ‘면박’

문 대통령은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도 풀리지 않는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고자 새로운 구상을 내놓았으나 참여해야 할 당사자들의 무응답과 면박이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2019년 2월 25일 “역사의 변방이 아닌 중심에 서서 전쟁과 대립에서 평화와 공존으로, 진영과 이념에서 경제와 번영으로 나아가는 신한반도체제를 주도적으로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는 “한반도 운명의 주인은 우리다. 우리는 지금 식민과 전쟁, 분단과 냉전으로 고통받던 시간에서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주도하는 시간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우리 손으로 넘기고 있다”면서 ‘신한반도체제’라는 용어를 공식 사용했다.

‘평화경제’ 구상도 등장했다. 2019년 8월 5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이번 일(일본의 경제 보복)을 겪으면서 우리는 평화경제의 절실함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남북 간의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 경제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밝혔다. 8월 15일 제74주년 광복절 축사에서는 “평화경제에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붓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평화경제를 강조하자 북한은 “삶은 소대가리가 앙천대소할 노릇”이라고 비웃었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문 대통령의 경축사를 비난하는 담화를 8월 16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내보낸 것이다.

“우리는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 이상 할 말도 없으며 다시 마주 앉을 생각도 없다. 대화 분위기니, 평화경제니, 평화체제니 하는 말을 과연 무슨 체면에 내뱉는가. 정말 보기 드물게 뻔뻔한 사람이다.”

윤영관 전 장관은 “대북제재 범위 밖에 있는 영역의 활동과 관련해 최선을 다했는지부터 정부에 묻고 싶다. 예컨대 보건, 의료, 환경 협력 등은 제재 범위 밖에 있어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를 설득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분야마저 지금은 완전히 닫혀 있다”고 말했다.

서울 ‘답방’ 원하다 ’망신’ 당해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9월 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 합의서에 서명한 후 발표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9월 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 합의서에 서명한 후 발표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

남북 정상은 2018년 9월 평양회담에서 김정은의 남측 방문을 명시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12월 4일 뉴질랜드를 국빈방문해 양국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연내에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시기가 연내냐 아니냐보다는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북한의 비핵화를 더욱 촉진하고 더 큰 진전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답방 계기에 김 위원장으로부터 비핵화에 대한 약속을 받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어질 2차 북·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보다 큰 폭의 비핵화 진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촉진하고 중재하고 설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김정은은 2018년 12월 30일 남측을 방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연내 답방 가능성을 언급한 문 대통령에게 2019년을 이틀 남겨둔 시점에 보내온 거절 의사였다.

문 대통령은 2019년에도 김정은을 연거푸 초청한다. 8월 29일 동남아시아 3개국 순방을 앞두고 태국 ‘방콕포스트’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개국이 모인 자리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함께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매우 의미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5일에는 답방을 요청하는 문 대통령의 친서가 북한에 전달된다. 같은 달 21일 북한은 ‘모든 일에는 때와 장소가 있는 법이다’라는 조선중앙통신 기사로 거절 의사를 밝힌다. 동등한 형식의 친서로 거절한 게 아니라는 점에서 문 대통령에게 공개적인 창피를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중앙통신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11월 5일 남조선의 문 대통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께서 이번 특별수뇌자회의(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해 주실 것을 간절히 초청하는 친서를 정중히 보내어왔다. 하지만 흐려질 대로 흐려진 남조선의 공기는 북남관계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며 남조선 당국도 북남 사이에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의연히 민족공조가 아닌 외세의존으로 풀어나가려는 그릇된 입장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엄연한 현실이다. 무슨 일에서나 다 제 시간과 장소가 있으며 들 데, 날 데가 따로 있는 법이다. 과연 지금의 시점이 북남 수뇌 분들이 만날 때이겠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때에 도대체 북과 남이 만나서 무엇을 할 수 있으며 그런 만남이 과연 무슨 의의가 있겠는가.”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원장은 “북한이 원하는 것은 비핵화 협상이 아니라 핵 군축 협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문제는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는 거다. 김정은 답방에 목을 매면서 탈북 어부를 강제 송환한 것은 그야말로 최악의 수를 둔 거다. 친북(親北) 행위를 했으면 북한으로부터 뭔가 얻어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김정은이 文정부를 ‘들었다 놨다 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2월 28일(현지시간)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 회담장에서 확대 양자 회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2월 28일(현지시간)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 회담장에서 확대 양자 회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김정은은 2018년 3월 대북 특사단과 만난 자리에서 한미 군사훈련을 이해한다는 취지로 발언했으나 2019년 1월 신년사에서는 “외세와의 합동군사연습을 더 이상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외부로부터의 전략자산을 비롯한 전쟁장비 반입도 완전히 중지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 안보를 약화시키라고 공개적으로 주문한 것이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북한은 ‘행동’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3월엔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재건 움직임이 포착됐으며 같은 달 22일에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철수를 남측에 통보했다. 4월 1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4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은 “자력갱생의 기치를 높이 들고 사회주의 건설을 더욱 줄기차게 전진시켜 나감으로써 제재로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혈안이 돼 오판하는 적대세력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문 대통령을 향해 “남조선 당국은 추세를 보아가며 좌고우면하고 분주다사한 행각을 재촉하며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북한은 무력 도발도 재개했다. 지난해 5월 4일 원산 호도반도 일대에서 동쪽 방향으로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는 2017년 11월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이후 18개월여 만이었다. 5월 9일에는 단거리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북한은 문 대통령의 모친상에 조의문을 보낸 다음 날인 2019년 10월 31일 평안남도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 발사체 2발을 발사했다. 2019년 11월 11일에는 금강산 개발에 남측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며 남측 시설 철거를 단행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사실상 최후통첩을 보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당시 문 대통령의 국정지지도는 80%에 육박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은 창당 이래 최고치인 50%를 넘었다. 지방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했다. 문 대통령 지지율은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반토막 났으며 북한의 태도도 180도 바뀌었다. 김정은은 2019년 12월 28일부터 나흘간 진행된 노동당 제7기 5차 전원회의 보고에서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끝까지 추구한다면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는 영원히 없을 것이다. 곧 머지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도 되풀이되는 ‘김정은 답방’ ‘한반도 구상’

문 대통령은 1월 7일 신년사에서 독자적인 남북관계 개선 구상과 5대 남북협력 사업을 제시했다. 5대 남북협력 사업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비무장지대(DMZ) 일대의 국제평화지대화 △접경 지역 협력 △남북 간 철도 및 도로 연결 △스포츠 교류다. 특히 문 대통령은 “올해는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로 평화통일의 의지를 다지는 공동행사를 비롯해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을 위한 여건이 하루빨리 갖춰질 수 있도록 남과 북이 함께 노력해 나가길 바란다”고 했다. 김정은 답방으로 남북 관계뿐만 아니라 북·미 대화의 모멘텀을 살려보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김계남 북한 외무성 고문은 1월 11일 조선중앙통신 담화문에서 “남조선 당국은 이런 마당에 우리가 무슨 생일축하인사나 전달받았다고 하여 누구처럼 감지덕지해하며 대화에 복귀할 것이라는 허망한 꿈을 꾸지 말고 끼여들었다가 본전도 못 챙기는 바보 신세가 되지 않으려거든 자중하고 있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며 면박을 줬다. 김정은에게 보내는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 전달과 관련한 내용이지만 사실상 북·미 대화에서 ‘문재인’의 자리는 없다고 공언하며 남북관계도 기대하지 말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종인 전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김정은이 한국에 오지 못할 것으로 본다. 와서 얻어갈 게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무엇을 주겠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니 뭐니 하는데 진척된 게 있나.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나 지금의 ‘평화 프로세스’나 말만 다르지 똑같은 이야기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결국 북한이 반응해야 한다.”

조규희 객원기자 playingjo@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20년 2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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