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 연안의 특산물 중 하나인 대게(Dungeness Crab)를 잡는 어부들은 이번 겨울 시즌을 푸념으로 시작했다. 대게잡이 대목인 11월 넷째 주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 전에 시작됐어야 할 대게잡이가 12월 중순까지 늦춰졌기 때문이다. 멸종위기종 고래가 대게잡이 어구에 걸려 죽을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해양동물보호단체가 제기한 ‘고래 보호 소송’에서 주 정부와 어민 단체가 사실상 패소한 데 따른 것이다. 고래 보호를 위해 어민의 조업권을 규제하면서 시작된 갈등을 들여다봤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자동차로 4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태평양 연안 도시 하프문베이(Half Moon Bay). 도시 이름이자 이 지역 해안을 가리키는 명칭이기도 한 하프문베이를 대표하는 항구는 필라포인트 하버(Pillar Point Harbor)다. 실리콘밸리 인근에서 어부가 잡은 싱싱한 생선을 갑판에서 판매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매년 11월 찬바람이 불면 미국 서부 태평양 연안 특산물 중의 하나인 대게(정확한 명칭은 던저니스 크랩, Dungeness Crab)를 먹으려는 주민들 발길이 이어진다.
미국 게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주로 동부 대서양 연안에서 잡히는 블루 크랩과 서부 태평양 연안에서 잡히는 던저니스 크랩이다. 푸르스름한 빛깔을 띤 블루 크랩은 크기와 맛이 한국 꽃게와 유사하다. 시애틀이 있는 워싱턴주 어촌 이름(던저니스)을 딴 던저니스 크랩은 모양은 다르지만 크기는 한국 대게와 비슷하다. 지역 별미로 손꼽힌다.
2019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오전 11시 46분. 이따금 쌀쌀한 바람이 지나칠 뿐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필라포인트 하버는 가족 단위 관광객으로 붐볐다. 일행 중 한 명의 손엔 대부분 커다란 비닐봉지가 들려 있고, 그 안에는 꿈틀대는 대게가 담겨 있었다. 던저니스 크랩이었다.
봉지를 든 한 중년 백인 여성과 마주쳤다. 손질된 게 몇 마리가 들어 있는 봉지를 들여다보며 “어라, 살아 있는 게가 아니네요?”라고 말을 건넸다.
“집에서 손질하는 게 번거로워서 어부 아저씨에게 부탁했어요. 이러면 집에 가서 그냥 찌기만 하면 돼요. 저기 보이는 저 배에서 샀어요. 아저씨가 아주 친절해요.”
아주 근사한 만찬이 되겠다고 했더니 ‘고맙다’며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건넨다.
대게잡이 어부의 푸념
근처에서 한 중년 아시아계 여성이 갑판에 서 있는 어부에게 대게 말고 생선도 파느냐고 물었다. 구릿빛인지 짙은 붉은빛인지 헷갈리는 피부의 어부는 “연어도 두 종류 판다”며 열심히 설명했다. 그렇지만 찾아오는 손님은 대부분 대게를 샀다. 어부들이 판매하는 대게 가격은 1파운드(약 450g)에 7달러로 어느 배를 가든 차이가 없었다.
필자도 어디서 게를 살까 잠시 고민하다가 맘씨 좋아 보이는 한 어부에게 갔다. 필라포인트 하버의 어부들은 딱히 호객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오는 손님 환영하고 가는 손님 붙잡지 않는다. 큰놈으로 한 마리 달라고 부탁했더니 “큰 놈들만 따로 보관한다”며 게를 가둬둔 망을 물속에서 꺼내 든다. 이 정도면 크지 않으냐며 너스레를 떠는데 딱히 커 보이진 않는다. 큰 놈들은 진즉에 팔려나가고 중간 사이즈 정도 돼 보이는 녀석들만 남아 있었다. 큰놈이라며 보여주길래 “그걸로 달라”고 하고 말을 건넸다.
“그런데 올해 대게잡이가 상당히 늦어졌네요?”
“고래 때문이라네요. 쳇.”
“고래요?”
“여기 해안에 고래가 오거든요. 걔들이 게 잡으려고 놓아둔 어구에 걸릴까봐 늦췄다는 거예요.”
그의 말처럼 당초 11월 15일로 예정돼 있던 이 지역 어부들의 대게잡이 시즌은 12월 15일에야 시작됐다. 어부들은 최소한 11월 넷째 목요일인 추수감사절 전에 대게잡이가 시작되길 기대했지만 결국 대목을 놓쳤다. 캘리포니아주 정부 담당 부처에서 조업 허가를 늦췄기 때문이었다. 최근 해양동물보호단체가 주 정부와 어민 단체를 상대로 진행한 소송에서 사실상 승소하면서 조업 규제가 강화된 데 따른 것이었다.
1년 중 절반은 조업 금지
생물다양성센터(Center For Biological Diversity)가 어업과 수렵 등을 관리하는 캘리포니아주 정부 담당 부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건 2017년 10월 초였다. 주 정부가 대게잡이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아 멸종위기에 있는 혹등고래, 대왕고래, 장수거북 등이 대게잡이 어구에 걸려 죽고 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미국 멸종위기종보호법(ESA)에 따라 이들 동물을 보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눈에 띄는 건 소송 시점이다. 미국해양대기청(NOAA)이 ‘미국 서부 해안에서 고래가 어구에 걸린 경우가 2014년 41건에서 2016년 71건으로 급증했다’고 발표한 이후였다. 이는 NOAA가 서부 해안에서 관련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대였다고 한다. 특히 그중 22건이 던저니스 크랩을 잡고자 설치한 어구에 의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대게잡이에 비상이 걸렸다.
소송이 진행되면서 주 정부뿐 아니라 지역 어민 단체까지 피고인에 포함됐다. 소송은 약 1년 6개월 만인 2019년 3월 양측 합의로 일단락됐다. 원고인 생물다양성센터의 사실상 승리였다. 법원이 센터의 손을 들어줄 게 분명해지자 주 정부와 어민 단체가 끝까지 소송을 진행하는 것보다 법정 밖에서 합의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합의 결과 당장 조업 기간이 크게 줄었다. 하프문베이와 샌프란시스코 주변 해안에선 통상 11월부터 다음 해 6월까지 대게잡이가 허용돼 왔다. 이후 4개월 정도 금어기를 두고 다시 8개월가량 조업을 허용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2019년엔 4월 15일, 예년보다 두 달 이상 빨리 대게잡이 시즌이 끝났다. 2020년부터는 4월 1일 조업이 종료될 예정이다. 특별한 문제가 생기지 않아 11월 다시 조업이 허용된다고 해도 금어기가 6개월로 늘어나는 셈이다.
생태계에 피해를 줄 경우 받는 처벌은 크게 강화됐다. 조업 기간이라고 해도 이 동네 해안의 대게잡이 어구에 멸종위기종 고래와 장수거북이 한 마리라도 걸린 것으로 확인되면 해당 지역 전체 조업을 즉시 중단하도록 했다. 이번 가을 대게잡이 시작이 1개월 정도 늦춰진 것도 고래가 대게잡이 어구에 걸릴 위험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괜히 무리해서 조업하다가 고래가 어구에 걸리기라도 하면 대게잡이 자체를 접어야 할 수도 있었다.
1000억 원 산업보다 고래 보호
어부들이 합의문, 즉 법원 명령을 이행하려면 앞으로 대게잡이 도구도 바꿔야 한다. 소송 합의문에 따르면 하프문베이, 샌프란시스코 지역 어부들은 2021년 4월부터는 대게잡이 통발을 바다에 던져둘 때 밧줄로 부표에 묶어두지 못한다. 통발에 위치추적장치를 부착하고 바다 밑에 놓아뒀다가 나중에 수거하는 등의 방식으로 밧줄 없는 어구를 사용해야 한다. 통발에 묶어둔 밧줄 때문에 멸종위기종 고래와 거북 등이 해를 입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새로운 도구를 갖춰야 하는 만큼 조업비용은 상승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캘리포니아 연안 어부들이 대게를 잡아 팔고, 음식점들이 그 대게를 요리해 파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매우 크다. 저스틴 필립 기자가 현지 신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2019년 11월 22일자에 쓴 기사를 참고할 만하다. 이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전체로 볼 때 대게잡이 산업(어부와 도매상, 식당 등 관련업계 총 매출) 규모는 한 해 최다 9500만 달러에 이른다. 어림잡아 우리 돈 1100억 원 수준이다. 같은 신문의 과거 기사를 보면 대게잡이 시작이 늦어진 해엔 매출 규모가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고 한다.
대게잡이 어부들은 최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몇 해 동안 운이 좋지 않았다. 2015년 대게잡이 시즌 허가에 앞서 주 정부 관련 기관에서 실시하는 표본조사 결과 대게에서 도모산(domoic acid) 수치가 높게 나왔다. 도모산은 어패류에서 검출되는 신경독의 일종이다. 그 때문에 조업 허가가 늦어지면서 타격을 받았다. 이런 일이 몇 년간 이어졌다. 또 2018년엔 표본검사에서 대게 씨알이 기준보다 작게 나오면서 조업이 미뤄졌다. 이어 2019년 이어진 고래 소송은 대게잡이 산업에 큼지막한 충격을 안겨줬다. 하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어부들의 하소연에도 법원은 고래 보호 쪽에 힘을 실어줬다. 멸종위기 동물을 보호하는 건 결국 함께 사는 인간을 위한 일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어부와 잠시 수다를 떨다가 2019년 마지막 날 저녁 밥상에 오를 대게 한 마리를 16달러에 샀다. 어부는 비닐봉지에 담아주며 집게에 물리지 않게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제 막 시즌이 시작됐으니 자주 사러 오라”고 했다. 빙 둘러보니 대게를 파는 배가 어림잡아 열 척은 넘어 보였다. 갑판마다 놓여 있는 커다란 통에 어부들의 속을 태우며 기대보다 늦게 온 대게가 그득했다.
글·사진 황장석 ‘실리콘밸리 스토리’ 작가·전 동아일보 기자 suro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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