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아정책 흑역사 (마지막회)
● 2001년 초저출산국 진입 이후 14년째 못 헤어나
● 사라지는 산부인과…피부미용으로 전공 바꾸기도
● 10년간 출산장려예산 150조, 효과는 ‘미미’
우리나라의 가족계획사업은 전 세계 산아정책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가족계획 시행 초기인 1960년대 3%대였던 출산율이 70년대 2%로 하락하더니 90년대 초 1%대로 떨어졌다. 서구에서는 100~150년 걸린 일이 30년 만에 실현된 것이다. 국제가족계획연맹은 우리나라를 성공적인 가족계획 국가로 선정하기도 했다.
문제는 인구 감소 추세를 더는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최하위 수준. 합계출산율은 가임여성(15~49세)이 평생 출산하는 평균 자녀수를 말하는 것으로 그 나라의 인구 동향을 가늠하는 수치다. 합계출산율이 1.5명 미만인 나라는 저출산국, 1.3명 미만이면 초저출산국으로 분류된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2010년 주최한 출산장려UCC 대회 대상 ‘meWe'
2001년 1.29명으로 떨어지면서 초저출산국에 진입한 우리나라는 2005년 역대 최저치인 1.08명을 기록하는 등 14년째 바닥을 헤맨다. 지난해 출산율은 1.24명. 이런 추세라면 2030년부터 우리나라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할 전망이다. 신음소리, 피 냄새…전쟁터 방불
출산율 저하는 우리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당장 산부인과가 크게 줄었다. 저출산에 의료수가까지 낮다보니 폐업하는 산부인과가 속출한 것. 이는 인구가 급격히 줄어든 산간 도서 벽지 등 특정 지역에만 한정되지 않고 전국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아예 산부인과가 없는 지역도 많다. 예전에는 시골에서도 거주지 주변에서 출산하고 산후 조리도 가능했지만 이제는 산부인과를 찾아 주변 도시로 나가야 한다.
과거 예비 의사들 사이에서 최고 인기를 누렸던 산부인과 지원율도 급감했다. 필자의 전공은 비뇨기과지만 인턴 시절 산부인과에서의 경험을 잊을 수 없다. 1970~80년대에만 해도 산부인과는 출산을 앞둔 임신부가 줄을 섰다.
분만실은 출산 직전 극심한 통증을 참다못해 앙다문 이빨 사이로 흘러나오는 신음소리와 출산의 고통에 남편의 머리카락을 움켜쥔 채 질러대는 괴성, 여기에 양수냄새와 피 냄새까지 뒤섞여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계속되는 출산에 산부인과 의사들은 퇴근도 못하고 당직실에서 항상 대기해야 했다.
그때는 산부인과가 존폐의 위기에 몰릴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요즘 산부인과의 분만실은 텅 비었다. 일부 산부인과 원장들은 버티다 못해 아예 피부미용 쪽으로 전공을 바꾸기도 한다. 사후피임약 ‘모닝필’까지 등장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출생·사망통계(잠정)’를 보면 출생아 수에서 사망자 수를 뺀 자연증가 인구수가 16만3000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2014년 16만7700명보다도 4700명이 더 줄어든 것이다. 초등학생의 경우 45만7517명으로 20년 전의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고등학교 졸업생도 비슷하게 줄어 든 62만 명. 이런 추세라면 2030년 고교 졸업생은 39만 명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대학 정원 54만 명보다 15만 명 정도가 모자란 만큼, 상당수 대학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반면 노령인구는 빠르게 증가했다. 우리나라는 이미 2000년에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7% 이상인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고령화 속도는 점점 빨라져 내년에는 ‘고령 사회(14% 이상)’에 들어서고, 2026년에는 ‘초고령 사회(20% 이상)’가 될 전망이다.
인구 추이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보여주는 잣대다.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면 복지지출 증가와 성장률 하락으로 국가의 재정건전성이 크게 위협받을 수 있다. 연금 수령자는 늘어나는 반면 세금을 내야 할 경제활동 연령대의 인구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가족계획 정책이 폐지된 지 20년 가까이 지났다. 그런데도 출산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반적으로 결혼 연령이 올라간 것과 관련이 깊다. 취업난으로 남녀 모두 맞벌이를 선호한다. 어려운 경제 환경은 결혼한 이후에도 임신과 출산을 꺼려하는 풍토를 만들었다.
육아 부담이 커지면서 자녀 출산시기가 많이 늦춰진 것도 출산율 감소 요인이다. 이미 30세 이상 여성 출산율이 29세 이하 출산율을 앞질렀다. 피임도 크게 늘었고, 사후피임약인 ‘모닝필’까지 등장해 예기치 못한 임신 가능성마저 줄였다. “육아도 직업”…지원금 줘야
비상이 걸린 정부는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단계별로 각종 정책을 쏟아냈다. 임신·출산 단계에서는 출산 전후 휴가·급여, 배우자 출산 휴가, 산모신생아 도우미 서비스, 출산 육아기 고용지원금, 아이돌봄 지원서비스, 출산장려금 지급 등이 대표적이다. 육아 단계에서는 영·유아 무료예방접종, 보육료 및 유아학비 지원, 3∼5세 연령별 누리과정 등이 있다.
정부는 불임부부를 위한 시험관 시술비용 지원과 맞벌이 부부 임대주택 지원 등 출산장려 환경조성을 위한 지원대책도 세웠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아이를 낳으면 일정 금액(출산장려금)을 지원하는 등 정부의 출산장려정책에 공조했다. 하지만 초기의 의욕적인 모습과는 달리 지원금을 축소하거나 아예 없앤 곳도 있다.
정부가 지난 10년간 출산장려를 위한 정책에 쏟아 부은 예산은 자그마치 150조 원에 달한다. 그런데도 출산율은 아직 요지부동이다. 가시적인 효과가 없었다는 것은 정부 예산이 그만큼 효율적으로 사용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도대체 해법은 뭘까. 대표적 저출산국이었던 프랑스는 과감한 정책으로 저출산 위기를 극복했다. ‘육아와 교육은 정부가 책임진다’는 대원칙 하에 정책을 마련하고 국민에게 신뢰를 줬다. 이를 참고해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먼저 아이를 출산하면 무조건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육아비를 지원한다. 육아도 여성의 직업과 동일시해 국가가 보조해주는 것이다. 여성은 그 지원금을 받고 육아에 전념할지, 아니면 유아원에 보내고 직장생활을 할지 선택하면 된다. 여성의 육아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유아원 바우처 제도’다. 정부의 유아원 지원금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좀더 많은 원생을 유치하기 위한 유치원들 간 경쟁으로 교육환경 개선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세 번째는 남편이 가사 및 육아에 동참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출산한 부인을 둔 남편에게는 퇴근 후 집에 일찍 들어갈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남편이 부인의 육아와 가사에 도움을 준다면 둘째를 낳을 확률이 2배 이상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네 번째는 획기적인 교육정책 개혁으로 사교육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다. 사교육비 부담은 저출산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다. 국민이 외면하는 저출산 대책은 효과가 없다. 정부가 저출산 위기 극복을 위한 확실한 의지를 갖고, 예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윤수 한국성과학연구소장(이윤수·조성완 비뇨기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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