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D]
산아정책 흑역사 ④ 피임 무지의 시대
● 루프시술과 난관수술 구분 못해
● 정관수술 받자마자 공사판 나갔다가 음낭 터질 뻔
● 수술 받는 사실 ‘쉬쉬’하다 가정 파탄 날 뻔하기도
1970~80년대 많은 부부가 피임에 대해 무지했다. 성관계 후 바로 소변을 보면 임신이 안 된다고 믿을 정도였다. 하긴 피임 방법을 알고 싶어도 제대로 된 교육기관이 없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나마 콘돔이라도 있었던 게 다행이다.
콘돔은 정충의 통로를 차단하는 데 효과적이다. 그러나 당시 우리나라의 콘돔 사용률은 20~30%를 넘지 못했다. 남성은 성감이 떨어진다며 기피했고, 여성은 남성에게 콘돔을 사용하라고 차마 말하기 어려웠다. 자칫 몸 파는 여자로 오해받을 수도 있었던 시절이었다. 결국 이런저런 사정으로 본의 아니게 임신하는 사고가 자주 일어났다.
반대로 일시적 피임을 하려다 영구 피임수술을 받는 웃지 못 할 일도 벌어졌다. 피임방법에는 일시적 피임과 영구 피임이 있다. 일시적 피임법으로는 콘돔을 비롯해 질외사정, 배란주기 이용, 자궁 내 루프 삽입 등이 있다. 영구 피임법으로는 정관수술이나 난관수술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당시엔 이런 기본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루프시술’ 대신 ‘난관수술’ 해프닝
한번은 한 임신부가 피임수술을 원한다며 대한가족계획협회 부속의원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예비군 훈련 시즌에는 정관수술 희망자가 몰려 5일장처럼 혼잡하지만, 훈련이 없는 여름이나 가을에는 한가했다. 이 시기에는 주로 불임수술을 하려는 여성이 많았다. 임신한 여성의 경우 대부분 임신중절수술을 하면서 영구 피임이 가능한 난관수술을 함께 받았다.
병원을 찾은 임신부는 의료진으로부터 난관수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수술승낙서에 사인을 했다. 병원에서는 이미 자녀를 3명이나 둔 상태였기 때문에 당연히 난관수술을 원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수술 직후 난리가 났다. 임신부는 자신이 원했던 건 난관수술이 아니라 루프시술이었다는 것. 루프시술은 자궁 내에 장치를 삽입하는 것으로 피임효과가 3년 정도 유지되는 일시적 피임법이다. 피임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임신부는 이 두 가지 피임법에 대한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에 난관수술을 받으면 자칫 건강이 나빠지는 게 아닌지 하는 걱정까지 겹쳤다.
뒤늦게 자초지종을 들은 남편은 ‘차라리 잘됐다’며 오히려 고마워했다. 그렇지 않아도 자녀가 너무 많아 다음번 예비군 훈련기간에 정관수술을 받을 참이었다고 했다. 어찌됐든 아내 덕분에 남편은 수술을 받지 않아도 됐다. 헉, 아이 머리만큼 커진 음낭
모든 수술에는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정관수술도 예외는 아니다. 출혈에 의한 혈종이나 균 감염, 정자육아종, 정관재개통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가장 흔한 게 출혈로 인한 혈종이다. 그동안 학계에 보고 된 자료에 따르면 발생빈도는 적게는 1.6%, 많게는 4.6%로 나타났다. 정관 주변에 혈관이 많다보니 수술 후 출혈이 생길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출혈을 피하기 위해서는 수술 후 하루 정도는 무리한 활동이나 운동은 피해야 한다. 하지만 의사가 아무리 경고해도 듣지 않는 사람이 있다.
전국적으로 정관수술이 한창 이뤄지던 때의 일이다. 저녁 퇴근 무렵 보건소에서 급하게 전화가 왔다. 낮에 정관수술을 받은 환자인데 음낭이 아이머리 크기만큼 커졌다는 것이다. 곧바로 병원으로 호송해 환자의 상태를 확인해 보니 역시 우려했던 대로 출혈에 의한 혈종이었다.
응급수술이 필요했다. 음낭 내 혈종을 제거하고 출혈부위를 찾아 피를 멈추게 했다. 혈종을 제거하더라도 음낭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한동안 커져있던 음낭은 서서히 아래로 처지면서 붓기가 빠졌다.
이 환자는 의사로부터 정관수술을 받은 후 바로 일을 하지 말라는 주의사항을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막노동으로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던 처지인데다 통증도 별로 느껴지지 않아서 곧바로 일을 나갔다는 것. 공사판에서 벽돌을 지고 계단을 오르내리면 자연히 하체에 힘이 집중되고 혈압이 높아져 혈관이 터질 수밖에 없다. 다행히 이 환자는 수술 이틀 후 출혈이 멈추고 혈종도 다 빠져나왔고, 일주일 뒤 순조롭게 일터로 복귀했다. “잘못하면 성기 잘릴 수 있어요”
그 시절 정관수술 대상 예비군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 많았다. 이미 결혼해서 자녀 2~3명을 뒀더라도 혈기왕성한 나이다. 수술을 받으려 누워 있다 여자 간호사를 보고 본능적으로 ‘아랫도리’가 기상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일부 남성 환자는 간호사에게 ‘매일 남자의 그것을 봐서 결혼하면 별 감흥이 없겠다’느니 ‘비뇨기과에 근무하다보면 남자가 모두 성병 걸린 줄 알겠다’는 등 짓궂은 농담을 해댔다. 민망함을 감추기 위해서나 색다른 감정을 느껴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대한가족계획협회 부속의원이나 비뇨기과 병원에서는 젊은 미혼 간호사보다 나이든 유부녀 간호사를 선호했다.
미혼 간호사라면 민망해할 상황에서도 경험 많은 유부녀 간호사는 넉살좋게 대응했다. 심지어 수술을 앞두고 ‘아랫도리’가 발기된 한 남성에게 “수술 중 출혈이 될 수도 있고 수술 칼에 성기가 잘려 나갈 수도 있다”며 잔뜩 겁을 준 간 큰 간호사도 있었다. 그 덕분(?)에 수술실 여기저기서 웃음을 참느라 ‘킥킥’ 거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수술 중 성기가 발기되면 여러모로 불편한 건 사실이다. 소독하기도 힘들고 수술하는 내내 거추장스러워 수술시간도 지연된다. 하지만 필자가 의사가 된 이후 지금까지 수술 중 성기가 잘렸다는 이야기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수술을 아내에게 알리지 말라’
정관수술을 하다보면 별의별 사연을 접한다.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부인 몰래 수술하려는 사람도 있고, 수술 기록 자체를 남기기를 꺼려하는 사람도 있다.
1990년 초, 5년 전 정관수술을 받았다는 한 남성이 찾아왔다. 국내외 출장이 잦았던 그는 혹여 모를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정부의 가족계획 사업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수술을 받겠다고 했다. 그는 수술 받는 것을 아내에게 알리지 않았다. 아내는 아이를 더 갖기를 원했지만 임신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임신을 했다는 것 아닌가. 만일 사실이라면 아내의 외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만에 하나 끊어진 정관이 시간이 지나 다시 이어진 경우라면 다행이겠지만. 곧바로 정액검사를 해봤지만 정자는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아내가 진짜 임신한 건지 확인해보라며 돌려보냈다.
며칠 뒤, 다시 찾은 이 남성은 대뜸 정관복원수술을 해달라고 했다. 아내가 몹시 아이를 갖고 싶은 나머지 ‘가상임신’을 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하마터면 한 가정이 파탄 날 뻔했다. 기수련하려면 정관 뚫어야?
필자는 정관복원 수술을 하기 전 항상 그 이유를 물어본다. ‘하나만 낳아 잘 키우면 되겠지’ 하고 정관수술을 받았다가 동생을 하나 만들어주고 싶다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는 높은 이혼율을 반영하듯, 재혼한 부인이 아이를 원해 복원수술을 희망하는 경우도 많다.
간혹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를 대는 이도 적지 않다. 한때 기수련이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다. 그 시기, 기수련을 받으려 정관복원수술을 해달라는 남성이 많이 찾아왔다. 기수련 책자에 전신에 막힌 곳이 있으면 수련에 지장을 준다는 내용이 있다고 했다. 정관수술 받은 사람은 기가 돌다가 수술한 부위에서 멈춘다는 것. 기수련도 제대로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효과도 반감된다고 했다.
정말 기수련과 정관수술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기수련 전문가들에게 물어보자, 대부분 어떤 관계도 없다고 했다. 그날 이후 기수련을 이유로 정관복원수술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정부가 1988년 가족계획 실천 홍보용으로 제작한 동영상 ‘사랑의 여로’ 중 ‘아내의 임신과 낙태’ 부분. 출처 : 한국정책방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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