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에 쓰일 거라 굳게 믿고 비영리 민간단체(NPO)에 기부한 돈, 과연 올바로 쓰였을까. 개인 기부자가 이를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비영리 분야의 투명성 제고는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한 요건이지만, 기부자는 물론이고 NPO조차 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동아일보 ‘Magazine D’는 비영리단체 재정내역 공개에 앞장서는 공익법인 한국가이드스타와 함께 올바른 기부 문화 확산을 위한 ‘똑똑한 기부’ 캠페인 기사를 기획했다.
한국가이드스타(이사장 송자)는 국내 처음으로 기부 활성화를 위해 국세청이 공시한 공익법인 결산 서류를 제출받도록 지정된 공익법인이다. 국내 유수의 회계법인, 한국공인회계사회 등에 소속된 회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비영리법인으로, 7년에 걸친 노력 끝에 지난해 국세청으로부터 국내 비영리 민간단체(NPO) 7484곳의 결산 공시자료를 제공받았다. 한국가이드스타는 이를 홈페이지(www.guidestar.or.kr)에 공개, 관련 정보를 비교·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른바 ‘도너비게이터(Donorvigator)’ 서비스다.
한국가이드스타 박두준 사무총장은 “정보가 쌍방으로 흐르지 않으면 불신이 생긴다. 기부자는 내가 낸 돈을 NPO에서 어떻게 썼는지 알 수 있고, 단체는 회계장부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기부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다. 한국가이드스타는 이 같은 연결 통로가 되어주는 곳”이라고 말했다. 한국가이드스타 역시 기부금과 회비로 운영되는 공익법인으로, 홈페이지에 최근 3년간 고유목적사업 수입과 지출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해놓았다.
“이제 도너비게이터를 통해 NPO의 사업 효율성을 파악하고 비교 분석할 수 있어요. 단순히 정보 자체를 주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기부자 개개인이 그걸 하나하나 분석하기도 어렵고요. 평소 우리는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온라인 비교 사이트를 통해 가격을 비교하고 제품 평가를 꼼꼼하게 살펴보잖아요. 기부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유형의 사업자들을 비교해서 따져봐야 해요. 그런 정보를 개인 기부자들에게 제공해 주는 게 목표입니다. 올 하반기부터는 홈페이지 외에도 모바일과 앱을 통해 손쉽게 정보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죠.”
미국, 영국에 이어 2007년 설립된 한국가이드스타는 2005년부터 미국 가이드스타와 교류해왔다. 1994년 미국에서 처음 설립된 가이드스타는 NPO의 운영 및 재정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민간자율기관이다. 1999년 20만 건의 회계 보고서를 PDF 파일로 홈페이지에 공시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도 꾸준히 미 국세청의 면세단체 정보, 비영리 회계양식 이미지, 디지털화된 비영리 회계양식, 비영리분야 종사자 정보 등의 데이터베이스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가이드스타가 만들어질 당시에는 국내에서 NPO의 투명성에 대한 관심이 낮았다. 정부의 협조를 얻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박 총장은 “스티브 잡스가 정보기술(IT) 분야 게임의 법칙을 바꾼 것처럼 자선 분야 게임의 법칙을 바꾸고 싶었다. NPO들이 좋은 일 할 테니 덮어놓고 우리를 믿어달라고 하는 건 한계가 있다. 장기적으로 기부를 활성화하려면 신뢰가 필요한데, 결국 기부자들에게 정보를 주는 것이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를 위해 끊임없이 정부에 건의했고, 비로소 결실을 맺었다”고 말했다.
국내에는 수많은 NPO가 있다. 지난해 12월말 기준으로 국내에 등록된 NPO는 1만2894개에 달한다. 비슷한 사업을 하는 곳도 상당하다. 그렇다면 올바른 기부를 위해 제일 먼저 살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박 총장은 “NPO마다 설립 목적이 있다. 제일 먼저 그것을 살펴보고, 그걸 수행하기 위한 사업을 제대로 하는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NPO만큼이나 기부를 많이 받는 곳이 종교단체다. 그러나 종교단체는 세금을 내지 않기 에 재정 관리감독이 이뤄지지 않아 상대적으로 투명성이 떨어진다. 지난해 국세청이 2013년 귀속 소득공제용으로 거짓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한 63개 단체를 공개했는데 이 중 95%(60개)가 종교단체였다. 종교단체의 기부금 투명성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박 총장은 “결국 기부자들이 달라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종교단체가 회계 정보를 공개할 의무는 없어요. 그런데 2004년부터 많은 종교단체들이 자발적으로 정보를 공개해왔고, 2008년 데이터를 보면 30만개의 종교단체가 자발적으로 정보를 공개한 것으로 나와요. 이렇게 바뀔 수 있었던 건 기부자들의 압력 덕이에요. 신도들이 ‘내가 낸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공개하지 않으면 십일조를 내지 않겠다’고 버티자 종교단체들도 정보를 공개할 수밖에 없었죠. 국내에서도 비영리 분야 전반이 투명해진다면 종교단체만 이 같은 흐름을 피해가기가 어려울 거예요.”
국내 상당수 NPO는 양적 성장에 급급해 투명성 확보 등 질적 향상에는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감성 마케팅, 스타 마케팅에 치우쳐 소위 ‘감성 팔이’ 기부 문화를 조성했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 박 총장은 “앞으로도 감정에 호소하는 사진, 힘든 표어를 붙이는 모금 활동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방법이야 어찌됐든, 그렇게 기부 받은 돈은 잘 써야 한다. 투명성이 시대의 흐름인 지금은 언제든 정보 공개를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올해 한국가이드스타는 NPO 정보 제공 기관을 넘어 NPO 평가 기관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미국 심플리파이, 파운데이션센터, 채러티 네비게이터, 일본 캔팬처럼 내실 있는 NPO 정보를 기업에 맞춤 제공하고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가교 구실을 할 계획이다. 박 총장은 “국내 NPO들은 이 시점에서 외연 늘리기를 잠시 멈추고, 조직의 존재 이유를 달성하기 위한 목적사업을 제대로 수행했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동안에는 기부자가 알아서 기부금을 내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기에 NPO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이제 시대 흐름이 바뀌었습니다. 빅데이터 시대에는 대중이 소수를 감시합니다. 이 흐름에 맞추지 못하면 단체가 망할 수도 있어요. 실제로 정보 공개가 이뤄지면서 미국에서도 사라진 NPO가 꽤 있었고요. NPO는 사람과 사회를 바꾸기 위해 존재합니다. 사회문제 해결은 NPO만이 할 수 있어요. 이들이 다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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