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한국식당 사장이자 쉐프인 P씨는 저녁 손님을 맞아 궁중전골을 정성스레 준비했다. 종업원 소피아가 디저트인 약과, 결명자차까지 내갔을 때 휴대전화가 부르르 떨었다. 한국의 4촌 형님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국회의원 금배지 단 기분이 어떠세요?” P씨가 개구일성 그렇게 물었더니 20대 국회의원이 된 형님의 대답은 의외였다. 환성 대신 울음 섞인 목소리였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 카더만… 컥!” “형님, 왜 그러세요?” “아부지… 돌아가셨다!” “큰아버지가요?” “그래. 니도 만사 제치고 빨리 오이라.”
P씨는 얼마 전 한국에 갔을 때 뵌 백부의 노쇠한 모습이 떠올랐다. 그 상면이 마지막일 줄이야. 인생무상(人生無常), 이 단어가 P씨의 머리 속에 퍼뜩 떠올랐다. 밤에 인천으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려면 서둘러야 한다. 급한 마음에 소피아에게 식당 문단속을 부탁하지도 못하고 냅다 집으로 달렸다.
여권과 옷가지를 대충 챙기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전철 안에서 소피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긴급한 일로 한국에 가야 하니 1주일 휴업합니다. 소피아도 1주일 쉬세요.” “유급 휴가인가요?” “유급이니 안심하세요.” “감사합니다. 그렇잖아도 나폴리에 가야 하는데 잘 됐네요. 제 남자친구가 오라 해서요.” “더벅머리 그 친구?” “예. 그리고… 혹시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졸업하셨어요? 어느 손님이 물어보던데요.” “거기 나오긴 했는데 요즘 노래를 하지 않으니….”
P씨는 이번에 생애 처음으로 퍼스트클래스에 탔다. 이코노미, 비즈니스 좌석이 모두 만석이었다. 퍼스트 클래스 1좌석만 남았다는데 비즈니스 좌석 요금으로 할인해주겠단다. 화려한 특등석에 들어서니 ‘하늘의 궁전’이란 말이 과장되지 않았음을 실감했다. 의자는 크고 안락했고 서빙 되는 물 한잔, 과자 하나도 ‘럭셔리’했다. 손님들의 때깔도 번드르르하다. 회장님, 사장님, 사모님? 푹신한 좌석에 앉으니 ‘성공한 인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먼 친척 어른이 해외여행 때마다 돈 쓰는 맛을 느끼려 특등석에 탄다는 심경에 공감이 갔다. “대한민국에서 사업한다는 기(게) 머꼬? 치질 걸린 할망구 똥구녕 빠는 것보다 더 치사한 겡우( 경우)가 수두룩한 기라. 고객이 왕이라꼬? 그라모(그러면) 사업가는 종놈 아잉가? 정부 사업에 나서모(나서면) 공무원은 항제(황제)라카이. 그거 치사해서 못하겠다 하모 사업 말아야제. 그리 해서 번 돈을 쓸 때는 내가 항제가 되는기라!”
승무원이 건네주는 각국 신문 가운데 이탈리아 신문 몇 개를 집어 들었다. 달콤한 뽀르뚜 와인을 마시고 천사 같은 승무원의 시중을 받으며 신문을 읽는 재미! 무릉도원이 여기 아니겠는가. ‘위대한 챔피언 알리 별세!’ 프로복싱 헤비급 세계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의 사망 기사였다. 그의 생애를 미주알고주알 소개했고 사진도 여러 장 실었다. 알리라면 프로복서 출신인 백부에게서 자주 듣던 이름이다. 백부는 알리가 한국에 왔을 때 안내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P씨는 일단 제목만 훑어보고 뒤로 넘겼다.
사회면에는 이탈리아 마피아 조직이 교도관 채용시험에 부정행위를 저지르다가 들킨 사건이 보도되었다. 교도관을 매수하느니 차라리 마피아 조직원을 교도관으로 합격시켜 수감된 마피아 조직원들을 보살피려 한 것이다. 황당무계한 사건이다.
스포츠 면을 보니 마라도나 관련 가십성 뉴스가 눈길을 끈다. ‘마라도나, 다이어트에 성공?’ 이런 제목의 기사와 함께 큼직한 사진을 실었다. P씨의 옆자리 손님도 마침 그 신문 그 면을 펼쳐 보고 있었다. 그 중년 남자는 나이답지 않게 키득키득 웃으며 그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P씨도 같은 신문을 펼쳤음을 눈치 채고 고개를 돌려 말을 걸었다. “혹시 이탈리아 신문을 읽을 수 있으신지요?” “예. 이탈리아에서 10년 가까이 살아서 대충 이해합니다.” “그럼, 여기 마라도나 관련 기사 좀 읽고 해석해 주시겠습니까?” “음… 대강 이런 뜻입니다. 산파올로 구장에 오랜만에 나타난 마라도나가 종전보다 몸이 가볍게 보인다… 콧날이 낮아졌다… 일설에 의하면 이날 나타난 마라도나는 진짜가 아니다….”
그 남자는 계속 킥킥 웃으며 가방에서 가발을 꺼냈다. 그는 곱슬머리 가발을 쓰고 선글라스를 끼고는 P씨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어때요? 마라도나 같나요?” P씨가 보기에도 마라도나와 꽤 닮았다. 팔뚝에 털이 부숭부숭 났고 짙은 눈썹에 딱 벌어진 어깨 하며 얼핏 봐서는 마라도나 같았다. “진짜 같습니다!” “이 신문 사진의 마라도나가 바로 저입니다. 나폴리 축구장에 갔다가 엉뚱한 일이 벌어진 거죠. 친구가 준 이 가발을 쓰고 들어갔더니 관중들이 기립 박수를 치며 환호하지 않겠습니까.” 그 남자가 실없는 사람으로 보였다. 명함을 받으니 모 그룹의 S회장이다.
P씨는 알리에 관한 기사를 정독했다. 5개면에 걸쳐 자세히 보도했다. P씨는 수첩을 꺼내 그 내용을 연보(年譜)처럼 정리해보았다.
-1942년 1월 27일 미국 켄터키 주 루이빌 출생. 본명 캐시어스 클레이. -14세 소년 시절에 흑인을 무시하는 백인 건달을 응징하기 위해 복싱을 배움. -1960년 로마 올림픽 복싱 헤비급에서 금메달 획득. 인종 차별에 항의해 금메달을 강물에 던져 버림. -1960년 10월 29일 프로 데뷔. 신장 190.5cm, 팔길이 200cm. -1962년 11월 15일 아치 무어와 시합하기 직전에 대기실 칠판에 ‘4회에 KO시킨다’고 쓰고 예언대로 4회 KO승을 거둠.
-1964년 2월 25일 세계챔피언 소니 리스턴과 대결에 앞서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는 명언. 리스턴을 7회 TKO로 물리치고 챔피언이 됨. 이 경기 후 이름을 무하마드 알리로 바꿈. 이후 9차례 방어. -1967년 베트남 전쟁, 징집영장이 발부되자 “나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베트콩과 싸우느니 흑인을 억압하는 세상과 싸우겠다”며 양심적 병역거부, 징역 5년 선고 받음. 헤비급 타이틀을 뺏기고 프로복서 자격도 박탈당해 3년간 복싱 공백.
-1970년 10월 26일 백인 복서 제리 쿼리와 붙어 3회 TKO승을 거두며 재기에 성공. -1971년 3월 8일 WBC, WBA 헤비급 챔피언 조 프레이저에 도전했다가 15회 레프트 훅을 얻어맞고 다운당하고 판정패. 생애 첫 패배. -1973년 3월 31일 켄 노턴에게 판정패. 생애 두 번째 패배. -1973년 9월 10일 켄 노턴에게 판정승하며 설욕.
-1974년 10월 30일 WBC, WBA 헤비급 타이틀전에서 조지 포먼을 8회 KO로 이김(킨샤사의 기적). 이후 10차 방어 성공. -1975년 10월 1일 조 프레이저에 14회 TKO승. -1976년 6월 26일 일본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와 격투기 대결. -1976년 6월 27일 한국 방문
-1978년 2월 15일 리언 스핑크스에 판정패, 타이틀 상실. -1978년 9월 15일 리언 스핑크스에게 판정승, WBA 타이틀을 되찾으며 3번째 타이틀 획득. -1979년 9월 6일 알리 은퇴 선언, 타이틀 반납. -1980년 10월 2일 컴백. 과거 스파링 파트너였던 래리 홈즈의 WBC 타이틀에 도전했지만 10회 TKO패. -1981년 12월 11일 트레버 버빅에 10회 판정패, 현역 은퇴. 통산전적은 56승(37KO) 5패.
-1996년 7월 19일 애틀랜타 올림픽 개막식에서 최종 성화 점화자로 등장, 오른손을 떨면서 성화대에 점화함. 금메달을 다시 받음. -1999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잡지와 BBC, 알리를 ‘20세기의 스포츠맨’으로 선정. -2005년 11월 9일 백악관에서 민간인에게 주어지는 최고 훈장인 자유훈장을 받음. -2016년 6월 3일 파킨슨병에 대한 합병증 호흡기 질환으로 사망.
이슬람교 신자인 알리는 미국에서 저항의 아이콘이었다. 베트남 전쟁 참전을 거부하고 흑인 인종차별에 저항한 독설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신의 헤비급인데도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천재 복서였다.
P씨는 기내에서 제공되는 영화 가운데 알리의 삶을 다룬 영화 ‘더 그레이티스트(The Greatest)’를 골라 감상했다. 알리 본인이 주연배우로 출연한 이 영화는 1977년 작품이다. P씨의 귀에는 조지 벤슨이 부른 영화 주제가 ‘그레이티스트 러브 오브 올(Greatest Love Of All)’이 또렷이 들려왔다. 이 노래는 훗날 가수 휘트니 휴스턴이 리메이크하면서 1986년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지 않았는가.
P씨는 화장실에 갔다 돌아오면서 옆자리 손님인 S회장도 같은 영화를 보는 것을 알았다. “복싱 좋아하세요?” 이렇게 물었더니 S회장은 P씨의 질문에 반색하며 대답했다. “물론이지요. 어릴 때 골목길에서 친구들과 놀이삼아 권투도 많이 했답니다. 제가 축구를 할 땐 마라도나로 불렸고 복싱을 하면 타이슨이었지요. 목이 짧아 그렇게 보이지 않아요?” S회장은 눈을 찡긋하며 앉은 자세에서 두 주먹을 가볍게 앞으로 뻗어 복싱 포즈를 취하며 그렇게 말했다. 얼핏 보니 ‘핵주먹’ 타이슨을 닮기도 했다.
“복싱 경기를 실제로 많이 보셨는지요?” “과거에 복싱이 인기 종목일 때 세계챔피언 타이틀전이 열리는 문화체육관, 장충체육관에 구경하러 자주 갔답니다.” “세계 타이틀전 입장료는 엄청 비쌌지요?” “링사이드 좌석은 아무나 못 앉았는데 저는 거기에서 봤답니다.” “그때는 청년 시절이었을텐데 당시에도 재력이 좋았는지요?” “가난한 대학생이었습니다. 가정교사로 있는 집 회장님이 재력가인데 제게도 VIP 입장권을 주신 덕분이지요.”
P씨보다 나이가 10여 세 많은 S회장은 알리 대 포먼 경기에 대해 입에 거품을 물며 신나게 설명했다. “정말 ‘세기의 대전’이었답니다. 1974년 아프리카 자이르의 수도 킨샤사에서 열린 이 경기는 ‘정글의 혈전(The Rumble In The Jungle)’이라 불렸지요. 당시 조지 포먼은 무시무시한 강펀치를 휘두르며 상대방을 추풍낙엽처럼 KO로 물리치던 복싱 최강자였답니다. 알리는 한물간 떠버리로 치부됐는데 공이 울리자 예상대로 포먼은 일방적인 공격을 퍼부었지요. 알리는 코너에 몰린 채 죽도록 얻어맞았지요. 정말 애처로울 정도로! 그러다 8회전에 대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순간 알리의 원투 스트레이트가 포먼의 얼굴을 가격했고 포먼은 그야말로 썩은 고목처럼 풀썩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기적과 같은 승부였죠.”
S회장은 톡 쏘는 맛이 나는 탄산수를 벌컥벌컥 마시고 말을 이었다. “1996년 <우리가 왕이었을 때>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만들어졌어요. 알리의 ‘정글의 혈전’과 이 대결이 가져다 준 정치, 사회적 의미를 밝히는 작품입니다. 알리는 ‘아프리칸 아메리칸(아프리카 출신 미국인)’으로 미국에서 인종 차별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아프리카 대륙에서 경기를 펼치고 그곳에서 뿌리를 확인하고 영웅으로 추앙 받지요. 알리는 아프리카에서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만나는 것이지요.”
S회장은 침을 튀기며 복싱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홍수환 선수가 ‘지옥에서 온 악마’라는 별명의 카라스키아에게 4번이나 다운당하고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상대방을 통쾌하게 KO시키는 대역전극과 ‘독일병정’ 김태식이 세계챔피언 루이스 이바라를 폭풍처럼 몰아세워 2회 1분 11초 만에 KO시키는 장면 등을 입에 거품을 물고 이야기했다.
P씨도 이에 질세라 백부와 4촌 형님이 프로복서였다는 점을 내세우며 그들에게서 주워들은 복싱 일화를 자랑했다. “저희 큰아버지는 김기수 챔피언과도 맞붙었고 알리가 한국에 왔을 때 알리와도 친선 스파링을 했답니다.” “알리와 스파링을? 대단하군요. 알리가 미8군 병사와 스파링을 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공교롭게도 큰아버지께서도 알리와 같은 날 별세하셨답니다. 그래서 제가 급히 귀국하는 것이지요.” “알리와 백부께서는 각별한 인연을 지녔군요. 백부의 유품 가운데 알리와 관계되는 것이 있는지 찾아보세요. 혹시 발견하시면 제게 연락하세요. 저도 구경하고 싶네요.”
P씨는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택시를 타고 S대 병원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현역 국회의원 부친상답게 빈소 입구부터 조화가 빈틈없이 빽빽이 들어섰다. 무명인사가 보낸 화환은 이름표만 뗀 채 줄줄이 걸려 있었다. 문상객들의 행렬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P씨는 백부의 영정 앞에서 재배(再拜)한 다음 한동안 일어서지 못하고 오열했다. 터져 나오는 울음이 그칠 줄 몰랐다. “고마(그만) 해라.” 4촌 형이 P씨를 일으켜 세우지 않았더라면 하염없이 엎드려 울 뻔했다. 백부는 TV를 시청하다 알리의 별세 사실을 알고는 ‘알리, 알리’를 외치다 눈을 감았다는 것이다.
삼우제까지 마친 후 P씨는 4촌 형님의 집에 들러 백부의 앨범을 샅샅이 뒤졌다. 알리와 함께 찍은 사진이라도 있을까 하고 펼쳤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도련님, 뭘 그리 열심히 찾으세요?” 형수가 그렇게 묻기에 알리 사진을 찾는다고 대답했다. “진작 말씀하시지… 아버님이 지갑에 넣어 다니며 자주 꺼내 보시던 사진…” 형수는 백부가 요양원에 가실 때까지 간직했다는 그 사진을 서랍에서 꺼내 보여주었다. 백부와 알리가 주먹을 섞으며 포즈를 취한 장면이었다. 누렇게 바랜 흑백 사진 속의 백부는 얼핏 보기에 알리와 덩치가 엇비슷할 정도로 건장한 체격이었다.
P씨는 S회장의 명함을 꺼내 휴대전화 번호를 확인하고 잠시 망설였다. 비행기 옆자리에 앉았다는 인연으로 대기업 총수에게 전화를 해도 될까. 알리 관련 유품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먼저 말한 사람은 S회장이었기에 ‘밑져도 본전’이라는 심경으로 번호를 눌렀다. “저희 백부와 알리가 복싱 포즈를 취하며 함께 찍은 사진을 찾았습니다!” “아! 그래요? 그런 희귀 자료는 신문사에 제보해야지요.” “신문에 나게 한다는 말씀입니까?” “알리 사망소식에 충격 받아 쓰러져 그날 별세한 한국인 프로복서! 그가 남긴 알리와의 스파링 사진! 흥미진진한 스토리 아닙니까?”
S회장은 달뜬 목소리로 P씨에게 그 사진을 들고 당장 광화문 네거리로 나오라고 했다. 함께 신문사에 찾아가 제보하잖다. P씨는 전철을 기다리며 자투리 시간에 이탈리아에 있는 소피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 곧 로마로 돌아갈 테니 출근 준비를 잘 하라고 독려할 참이다. “소피아, 잘 지냈나요?” “잘 지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나폴리에서 악몽 같은 1주일을 보냈답니다.” “남자 친구와 싸웠나요?” “싸운 게 아니고… 남자 친구가 경찰서에 붙잡혀 가는 바람에 유치장에서 딱 두 번 면회했답니다.” “무슨 일로?”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만… 신문에도 났잖아요. 마피아 조직원들이 교도관 시험에 응시하다 들킨 사건… 그것 같아요.”
정장 차림의 S회장은 비행기 안 캐주얼 복장 때와는 다른 절제된 풍모를 보인다. 홍보실장과 수행비서를 대동하니 만만찮은 ‘포스’를 풍긴다. “이 호텔이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이 세기의 바둑 대결을 벌여 유명해진 곳이랍니다.” F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S회장은 주문한 커피가 나오기 전에 바둑이 공간지각력 함양과 수리적 지능향상에 큰 도움을 준다며 5분가량 열변을 토했다. 미국 MIT에 유학할 때 논문을 쓰다 맥이 막히면 바둑을 두어 판 두었단다. 그러면 상상력의 물꼬가 터져 논문이 술술 쓰였다고…. 그는 애써 자제하다 커피가 나오자 사진을 보자고 재촉했다. “아! 대단한 사진이네요! 백부의 흰 피부와 알리의 꿈틀거리는 검은 근육! 흑백의 대비와 조화! 사진예술로도 경지에 오를 명작입니다!”
S회장은 대학생 시절 범(汎)대학 축구 동아리 멤버였다는 D일보 편집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흥분을 폭발시켰다. “특종거리 갖고 지금 찾아가겠네!” P씨는 신문사에 들어가기가 꺼림칙했다. 10여 년 전 D일보 주최의 음악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은 자신이 음악과는 무관한 일로 간다는 게 죄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망설임도 S회장의 재촉 때문에 소용없었다. 혹시 안면이 있는 음악담당 기자와 마주칠까봐 고개를 푹 숙이고 편집국장실에 들어섰다.
“꼬라도나! 자네, 나폴리에서 한 건 했더군!” “자네가 어떻게 알았나?” “여기 앉아서도 지구촌 곳곳 소식을 파악하는 게 신문쟁이 일 아닌가? 그 사진을 보자마자 자네임을 척 알았지. 자네가 가발만 쓰면 마라도나라고 내가 말했잖아?”
P씨가 사진을 꺼내자 S회장은 마치 자신의 사연인 듯 사진 속의 주인공 이야기를 풀어냈다. 편집국장은 귀를 쫑긋 세우고 듣더니 스포츠부장과 사진부장을 부른다. S회장은 더욱 신이 나서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스포츠부장은 열심히 메모했고 사진부장은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편집국장은 국제부장도 불렀다. “외신에 알리 영결식 관련 뉴스도 많이 들어오나요?” “오바마 대통령은 딸 졸업식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답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참석해 추도사를 한다고 합니다.” 그런 대화 속에 사진을 살피던 사진부장이 입을 열었다. “컴퓨터로 스캔해서 확대해 보겠습니다.” 사진부장이 사진을 들고 사진부 사무실로 간 후 편집국장과 S회장은 한국경제의 암울한 상황에 대해 의견을 나누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사진부장이 돌아왔다. “이 사진, 못 씁니다!” 사진부장의 일갈(一喝)에 편집국장, S회장, P씨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 왜 못 쓰는가? 묻지 않아도 사진부장이 곧 이유를 말할 터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사진부장은 손가락을 곧추세워 정수리 부분을 훑고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을 이었다. “합성 사진입니다.” 적요(寂寥)가 이어졌다. 사진부장은 표정이 일그러진 편집국장의 얼굴을 살피며 설명을 덧붙였다. “알리의 사진에다 이 분이 자기 사진을 맞붙여 조작했군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