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D/Topic]군부대에 피어난 해바라기…“관심병사들이 달라졌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1일 10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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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군부대에 피어난 해바라기


《경기도 부천예비군훈련장을 관리하는 육군 17사단 507여단 48대대. 부대 정문을 통과해 오르막길을 오르자 노란 해바라기와 파란 하늘, 흰 구름으로 채색된 건물 벽화가 눈에 띈다. 칙칙한 국방색으로 도배된 여느 군부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일까.》
육군 17사단 507여단 48대대 예비군 교육관. 벽화를 그리지 전(위)과 후(아래)가 확연히 다르다. 사진 문정덕 화백 제공
육군 17사단 507여단 48대대 예비군 교육관. 벽화를 그리지 전(위)과 후(아래)가 확연히 다르다. 사진 문정덕 화백 제공

이 부대는 조금 특별하다. 부대원의 절반 이상이 ‘관심과 배려를 요하는 용사’다. 예전 ‘관심병사’에서 호칭이 바뀌었다. 조효건 부대장(중령)의 설명.

“상근예비역 120여 명, 현역 60여 명 등 모두 180여 명의 부대원이 복무 중인데, 이 중 58%가 특별 관리가 필요한 병사들이다.”

그러다보니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뭔가 변화의 계기가 필요했다. 조 부대장이 가장 효과적인 방안으로 떠올린 건 부대 환경을 개선하는 것. 도움의 손길을 찾아 수소문한 끝에 한 외국계 민간기업과 연결됐다. 이 기업도 마침 사회공헌사업(CSR)을 위한 지원대상을 찾던 중이었다. ‘아프리카 돕기 자선 전시회’ ‘벽화그리기 재능기부’ 등 국내외에서 활발한 자원봉사 활동을 벌여 온 문정덕(49) 화백이 연결고리가 됐다.

꿈과 희망의 상징 ‘해바라기’
예비군 식당 전과 후. 칙칙했던 벽면(위)에 해바라기가 활짝 펴 한결 분위기가 밝아졌다(아래). 사진 지호영 기자, 문정덕 화백 제공
예비군 식당 전과 후. 칙칙했던 벽면(위)에 해바라기가 활짝 펴 한결 분위기가 밝아졌다(아래). 사진 지호영 기자, 문정덕 화백 제공

문 화백을 중심으로 부대원과 자원봉사자가 의기투합해 벽화작업을 시작한 것은 4월 초. 부대원 5명과 자원봉사자 10여 명이 투입됐다. 비정기적으로 참여한 인원까지 합하면 30명이 넘는다. 예정된 작업 기간은 6월 초까지 두 달 정도. 문 화백은 대부분의 시간을 부대 안에서 숙식을 해결할 정도로 벽화 작업에 공을 들였다. 물론 이 또한 순수한 자원봉사다.

시간이 흐르면서 부대가 서서히 변해갔다. 부대 건물 벽면에 해바라기가 활짝 피고, 파랗게 펼쳐진 하늘에 구름이 떠다니기 시작했다. 문 화백의 설명이다.

“현 사회가 너무 각박하고 꿈을 잃어가는 것 같아서 희망을 상징하는 해바라기 정원을 만들고자 시작했다. 희망을 찾고 파란 하늘 속으로 날아서 비전을 찾으라는 의미로 파란 하늘에 해바라기를 그린 것이다.”

부대 환경이 변하자 부대원들도 눈에 띄게 변해갔다. 누구보다 부대장이 그 변화를 가장 크게 느꼈다.

“(병사들이) 처음 벽화 작업을 시작할 때는 시간 때우기 식이었다. 그런데 문 화백의 진실성 있는 모습과 우리 부대에 대한 애착과 사랑으로 벽화를 그려주는 모습에 병사들의 마음이 변해갔다. 문 화백이 온 이후 우리 부대에서 폭행, 구타, 가혹 행위 이런 것들이 사라졌다. 얼마나 큰 변화인지 모르겠다.”

‘덕후’ 김 일병의 軍 적응기

벽화 작업 중인 병사들. 사진 지호영 기자
벽화 작업 중인 병사들. 사진 지호영 기자

그렇다면 실제 작업에 투입된 병사들은 어떤 변화를 느꼈을까. 대학에서 게임그래픽을 전공하다가 지난해 입대한 김주원(21) 일병은 할 줄 아는 게 그림 그리는 것과 게임하는 것밖에 없다. 요즘 유행하는 신조어 ‘덕후’에 해당한다.

하지만 첫 부대 배치를 받은 김 일병에게 주어진 임무는 군 차량 운전병. 운전도 잘 못하는데다 눈치도 없었으니 군 생활이 고달플 수밖에. 군 생활 자체가 우울했다. 결국 첫 부대 적응에 실패해 전출된 곳이 지금 근무하는 48대대다.

김 일병은 마침 시작된 벽화작업에 투입됐고, 그의 뛰어난 소질을 알아본 문 화백과 부대장은 그에게 PX(군부대 매점) 건물 외벽 전체 벽화작업을 맡겼다. 그림 스케치부터 색칠까지 모든 작업이 오롯이 그의 몫. 그곳에는 해바라기 대신 김 일병이 직접 만든 귀엽고 독특한 캐릭터가 그려졌다.

“각개전투 교장에서 예비군들이 훈련하는 것을 그린 것”이라고 말한 김 일병은 “내가 전역해도 남을 그림을 하루 종일 그리니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그의 얼굴에 우울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뛰어난 그림 소질을 한껏 뽐낸 김주원 일병. 사진 지호영 기자
뛰어난 그림 소질을 한껏 뽐낸 김주원 일병. 사진 지호영 기자

비슷한 시기에 입대한 김상훈(20) 일병은 “빨리 철들기 위해” 입대했다고 한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공부보다는 노는 걸 좋아한 ‘열혈’ 청소년이었던 것. 친구들끼리 어울려 온 몸에 도깨비와 호랑이 문신을 새겼을 정도. ‘하고 싶은 대로 살자’는 게 그의 인생관이다.

때문에 군 입대 초반 부대 상급자와 주먹다툼 직전까지 치닫는 상황이 종종 발생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일이 없다고 한다. 그는 “(군 입대 초반에는) 사회 물을 못 버려 그랬던 것 같은데 지금은 참군인”이라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역시 벽화 작업에 참여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벽화를 하나하나 채워가면서 뿌듯했다. 참을성은 진짜 많이 배운 것 같다. 더운 날씨에도 스카이차 기계를 타고 높은 곳에 올라가 (벽화 작업을 하면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미래 설계도 벽화처럼 그릴 것”

벽화 작업을 통해 위안을 얻은 차지수 상병(왼쪽)과 김상훈 일병. 사진 지호영 기자
벽화 작업을 통해 위안을 얻은 차지수 상병(왼쪽)과 김상훈 일병. 사진 지호영 기자

차지수(22) 상병은 지난해 군 입대 직후 힘든 가정사를 겪었다. 5~6년 전 암 수술을 받았던 아버지에게 암이 재발하면서다. 아버지 병간호는 물론 부양할 수 있는 가족이 자신뿐이어서 차 상병은 곧바로 의가사(依家事) 전역을 신청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서류 심사 등 처리 절차가 자꾸 미뤄졌다.

결국 차 상병은 올해 초 부대에서 아버지의 임종 소식을 들어야 했다. 아버지의 임종으로 부양가족이 사라졌으니 전역 대상자 자격도 상실했다는 소식과 함께.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던 차 상병에게 벽화 작업은 큰 위안이 됐다.

“아버지 장례를 치를 때 비가 왔다. 그래서 비가 올 때마다 울적해진다. 그런데 (벽화를 그리는 게) 마음을 편안하게 하지 않았나 싶다. 아무 생각 없이 그림을 그리다보면 어느 순간 끝난다. 다 되면 뿌듯하고.”

차 상병은 벽화작업이 제대 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벽화를 그릴 때) 전체적 구도를 보고 거기에 하나하나 채워 넣는 것처럼, 미래도 전체적인 설정을 하고 하나하나 달성하면서 퍼즐을 다 맞추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람 있고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기에도 민망한 컨테이너 막사(위)가 하늘과 구름이 그려지면서 새롭게 태어났다(아래). 사진 지호영 기자, 문정덕 화백 제공
보기에도 민망한 컨테이너 막사(위)가 하늘과 구름이 그려지면서 새롭게 태어났다(아래). 사진 지호영 기자, 문정덕 화백 제공

이 같은 부대원 개개인의 변화는 부대 전체의 변화로 이어졌다. 조 부대장은 “이번 벽화 활동은 외부적인 환경뿐 아니라 우리 군 부대 내부적으로도 단결과 화합을 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군부대 담장에 벽화가 그려진 경우는 많았지만 내부 막사에 벽화가 그려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벽화작업을 이끈 조효건 부대장(아랫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문정덕 화백(아랫줄 가운데), 그리고 함께 작업한 병사와 자원봉사자들. 사진 지호영 기자
벽화작업을 이끈 조효건 부대장(아랫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문정덕 화백(아랫줄 가운데), 그리고 함께 작업한 병사와 자원봉사자들. 사진 지호영 기자
한편 48대대는 6월 3일 부대 개방행사를 통해 그동안 작업한 벽화를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이날 행사에는 임종득 17사단장(소장)과 강명훈 507여단장(대령), 후원사 관계자를 포함해 벽화작업에 참여했던 자원봉사자, 일반 시민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해바라기#군부대#관심과 배려를 요하는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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