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만표 변호사 구속을 두고 뒷말이 많다. 여러 얘기가 있지만, 핵심은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에 대한 비판이다. 검찰은 홍 변호사를 구속기소하면서 5억 원대 변호사법 위반과 15억 원대 탈세혐의만 적용했다. 법정에서 유무죄를 다툴 사안이라 형량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이 나온다. 사람들이 궁금해 한 로비 의혹과 전관예우 의혹에 대해 검찰은 “사실로 드러난 게 없다”고 부인했다. 연간 100억 원이라는 ‘역대급’ 수수료를 받아 챙기고 실제로 몇몇 수임 사건에서 ‘특별한 실적’을 올렸는데도 말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황운하 경찰대학교 교수부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눈길을 끈다. “검찰 발표대로라면 홍 변호사는 있지도 않은 자신의 전관예우 약발을 과신하게 만들어 의뢰인들을 기망해 턱없는 수임료를 받아 챙기는 희대의 사기행각을 일삼았다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의뢰인들은 ‘현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기대하고 거액을 갖다 바쳤다가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는데도 ‘끽소리’ 못하고 있었던 ‘호갱’들이었다는 결론이 된다.”
홍만표 사건을 개인비리나 법조비리로만 간주해서는 중요한 점을 놓칠 수 있다. 이 사건의 진짜 교훈은 검찰 개혁 혹은 수사구조 개혁의 관점에서 조명할 때 드러난다. 공교롭게도 홍 변호사는 2011년 검경 수사권 조정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며 사표를 냈다. 당시 그의 직책은 검찰총장의 핵심 참모인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이었다.
검사들에게는 그의 사직이 조직을 위한 희생이나 의로운 행동으로 비쳤는지 모른다. 그런데 2011년 수사권 조정은 매우 제한적이고 선언적 성격이 강했다. 경찰을 수사주체로 인정하는 조항이 들어가긴 했어도 수사권과 수사지휘권의 분리, 수사와 기소 분리 등 근본적 개혁안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경찰 강경파들은 조현오 당시 경찰청장의 사퇴를 요구할 정도로 강하게 반발했다. 그럼에도 검찰은 검사의 수사지휘 사항을 법무부령이 아닌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는 조항을 문제 삼아 집단행동에 나섰다. 대검 간부 전원이 사표 소동을 벌인 데 이어 김준규 검찰총장이 등 떠밀리듯이 옷을 벗었다. 수사권 조정 합의안 번복에 따른 책임을 진다는 명분이었지만,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감하는 국민은 많지 않았다.
잘 나가던 ‘특수통 검사’ 홍만표가 검찰을 떠난 것도 그 시점이다. 두 사람의 항의성 사직은 역설적으로 검찰이 왜 개혁돼야 하는지, 왜 수사구조가 개선돼야 하는지를 잘 말해준다. 검찰의 조직이기주의는 정평이 나 있다. 국민을 위한 검찰이 아니라 검찰을 위한 검찰로 비칠 때가 너무 많았다. 수사권 조정은 소비자인 국민의 관점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임에도 독점적 공급자 시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검찰은 왜 이렇게 기득권에 집착할까. 오래 전 나는 ‘삼성과 검찰’이라는 제목의 기사(‘신동아’ 2005년 9월호)에서 대한민국에는 두 개의 공화국이 더 있다고 썼다.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Republic of Korea)’와 별도로 존재하는 삼성공화국과 검찰공화국. 사건이 터지면 잠시 흔들리긴 해도 근간과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한국 검찰의 권한은 비대하고 임무는 과도하다. 직접적 수사권과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은 기본이고, 압수수색 및 구속영장 청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다. 경찰과 검찰이 수사권과 수사지휘권을 나눠 갖거나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무소불위 권력이다. 일선 검찰청 형사부 검사들은 업무량이 많아 허덕거린다. 경찰 선에서 끝내도 아무런 지장 없는 경미한 사건이나 일반 고소 사건까지 처리해야 하는 탓이다.
검찰 출신 전관 변호사의 위력이 큰 데는 이런 구조적 원인이 있다. 인신 구속 여부가 판가름 나는 수사 초기나 범죄의 경중이 결정되는 기소 단계에서 이들의 존재가치는 단연 돋보인다. 재직 시 홍 변호사처럼 특수통으로 날리고 검사들에게 ‘의로운 사람’이라는 이미지까지 남긴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일부 검사들에게 홍 변호사는 롤 모델 혹은 미래의 바람직한 자화상으로 비쳤을지도 모른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몇몇 전직 대통령의 주요 공약이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만약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져 검찰의 권한과 위상이 많이 축소됐다면, 스타검사 출신 홍 변호가가 그토록 엄청난 전관예우를 누릴 수 있었을까.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남달리 수임을 많이 하고 수임료가 비싼 데는 브로커의 활약 등 다른 이유도 있을 테니. 그걸 감안해도 홍 변호사처럼 전대미문의 수임료 수입을 올린 경우는 선후배 검사에 대한 영향력 행사나 로비 덕분이라고 짐작하는 게 상식일 것이다. 수사구조가 개혁됐다면 전관예우의 약발이 많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7~8년 전 나는 검찰에 차관급이 지나치게 많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취재에 나선 적이 있다. 검찰총장은 장관급이고, 검사장(고검장, 지검장)은 차관급으로 예우 받는다. 3000cc급 관용차가 나오고 전속 기사가 배속된다. 그 수가 자그마치 50명에 육박한다. 다른 부처 차관급이 기껏해야 한두 명인 점을 감안하면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다른 부처들 사정을 한창 취재하던 중 법무부 대변인이던 홍 검사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어떻게 알았는지 내 취재 내용을 훤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나를 만나 검찰 조직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한편 보도 자제를 요청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그의 설득에 넘어가 취재 및 보도를 유보했다. 당시 그가 어떤 논리로 설명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의 언행에서 조직에 대한 강한 충성심을 느꼈던 점은 잊히지 않는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검찰과 경찰 간 견제와 균형 원리가 작동한다. 검사 출신 금태섭 의원은 “수사는 경찰이 하고 검찰은 지휘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독일, 프랑스 식 수사구조다. 이들 나라에서 검찰은 자체 수사 인력이 없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수사와 기소가 분리돼 수사는 경찰이, 기소는 검찰이 맡는다. 많은 유럽국가가 이런 이원적 수사체제를 운영한다.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검찰이 자체 수사 인력을 갖고 수사도 하고 기소도 한다. 그런데 일본 검찰은 완료된 경찰 수사에 대해 필요할 경우 2차적·보충적 수사를 할 뿐이다. 독자적 수사는 독립성이 요구되는 대형 정치적 사건 등에 국한된다.
경찰이 독자적 수사권을 가질 경우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다. 권력기관 간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의 폐해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이 검찰과 경찰의 권한과 역할을 나눈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홍만표 사건은 개인 비리이자 구조적 비리다. 수사구조 개혁은 제2의 홍만표 사건을 막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이중수사로 고통 받는 국민에게 양질의 수사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이는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검사들의 불필요한 수고를 덜어주는 길이기도 하다.
지금 검찰은 한 검사의 자살로, 경찰은 스쿨폴리스 추문으로 시끄럽다. 개별 사건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근본 처방을 생각할 때다. 홍 변호사 사건은 몹시 불행한 일이지만, 그의 구속을 계기로 검찰이 거듭나는 길이 제시된다면 국가적으로는 유익한 일이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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