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우화에 나오는 바람과 태양, 나그네 이야기를 잘 알 것이다. 모두가 안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건 바람이 아닌 태양이었다는 걸. 여기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있다. 바람보다는 태양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개고기 식용 금지!”라는 호전적 구호를 앞세우기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반려동물에 대한 사회적 의식을 변화시킴으로써 개고기 식용 풍토를 바꿀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는다.
8월 22일 오후 7시.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SAC) 아리랑홀에서 선진 반려견 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다큐멘터리 영화 ‘또 하나의 사랑(제작·감독 김영언·촬영감독 김미라)’ 시사회와 '생명존중 동물사랑'을 캐치프레이즈로 한 '반려동물 영화제' 발대식이 열렸다.
올 하반기 개봉 예정인 영화 ‘또 하나의 사랑’은 주인에게서 버림받고 떠돌다 유기견 보호소로 옮겨진 유기견(점순이)과 결코 행복하지 못한 가정에서 항상 그늘진 모습으로 지내는 어린 소녀가 함께 만나서 행복을 되찾는 과정을 그린다. 점순이 역은 KBS2 ‘해피선데이-1박 2일’에 나와 인기를 끈 그레이트 피레니즈 ‘상근이’의 친구로 알려진 ‘줄리’가 맡았다. 지난해 방송한 TV조선 단편 드라마 ‘수상한 애견카페’를 제작한 다인콘텐츠컴퍼니가 총괄제작을 맡았다.
김영언 다인콘텐츠컴퍼니 대표는 “말을 못하는 동물들은 견해를 대변해줄 사람이 없는데, 그런 동물들의 대변인을 자처하며 만든 작품”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촬영하다 보면 아이와 동물 촬영이 가장 힘든 법인데 이번 작품에서 두 가지를 다 했다”며 웃었다.
“국내에서 개고기를 먹지 말자고 하면 찬반 여론이 뜨겁게 이는데 지나치게 강성이에요. 주장하는 과정에서 다툼과 갈등만 일어나죠. 사람끼리 다투다 보면 동물을 위할 수 없어요. 개고기를 먹지 말자는 구호만 외치는 건 이런 논쟁을 키울 뿐이에요. 반려동물 영화와 영화제, 국토대장정 등이 윤활유 구실을 해 사회적인 분위기를 바꿔나가리라 믿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배우 김양우, 심하은, 장민영과 ‘견(犬) 대통령’으로 불리는 이웅종 연암대 교수, 이찬종 이삭애견훈련소장, 마라토너 이봉주, 가수 진시몬, 메이린,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방송인 지상렬 등이 참석했다.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으로 뭉친 만큼 촬영에 임한 배우 대부분이 실제로 반려견이나 유기견을 키우고 있다. 배우 송하윤은 유기견 2마리와 함께 살고, 이용녀는 유기동물 100여 마리의 대모를 자처한다.
이용녀는 “어릴 때부터 동‧식물을 가까이하고 자라 동물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는데, 10여 년 전 동물들이 버려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말이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에 유기된 동물들을 보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남에서 거주하는 그는 80여 마리의 유기 동물과 함께 생활한다.
“정신없이 아이들을 돌보는 10여 년간 1000여 마리 가까이 입양을 보냈더라고요. 그러면서 개인이 한두 마리 입양해서 돌보는 것보다 동물보호법이 개정되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올해 들어 동물보호법 개정안 통과에 대한 마음을 모아 매주 수요일 저녁 국회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는데, 전국의 많은 사람이 각자의 지역에서 동참하겠다고 연락해 왔죠. 개 식용이 근절되기 전까지는 투쟁하고 항의하는 대신 단 한 명이 나오더라도 따뜻한 마음으로 우리의 의사를 전달할 거예요.”
그는 “개 식용 근절은 억지로 한다고 될 일이 절대 아니다”라며 그보다는 “‘왜 개를 먹으면 안 되는가’를 영화를 통해 저절로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씨는 극 중에서 동물들을 안락사시키는 수의사 역할을 맡았다. 그는 “평소 제일 싫어하던 역할인데, 연기하며 이 사람들도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한 행동임을 알았다”고 말했다.
작품에 특별 출연한 가수 진시몬은 한쪽 팔이 없는 유기견 밤톨이를 돌본다. 그는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십시일반 돈을 걷어 900만 원 정도의 수술비를 대고 학대당한 밤톨이의 생명을 구했다. 함께 살아 보니 굉장히 똑똑하고 자기 관리도 잘하는 녀석"이라며 애정을 표현했다. 그는 "반려동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한데 한두 명씩 모여 인식을 개선해 나가다 보면 분위기가 바뀌지 않을까 싶어 기쁜 마음으로 작품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반려동물은 말없이도 사람에게 굉장한 위안을 주는 존재예요. 길러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죠. 동물도 말만 못할 뿐 사람과 똑같은 감정을 가졌고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걸 작품을 통해 느끼면 좋겠어요.”
같은 날 현장에서는 '반려동물 희망 국토대장정(원정대장 이웅종)' 해단식도 진행됐다. 반려동물 희망 국토대장정은 8월 5일 부산 해운대에서 출발해 울산 애견공원~대구시청~이삭훈련소~대전시청~세종호수공원~충북대학교~독립기념관~천안시청~평택시청~오산시청~경기도청을 거쳐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도착하는 15일간 일정으로 진행됐다.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총 507.9㎞ 구간을 릴레이 형식으로 참가한 국토대장정에는 이 교수 외에 마라토너 이봉주, 방송인 지상렬, 지역단체 자원봉사자가 동참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첫 번째 구간 참여자로 합류했다. 이들은 한 걸음(1m)당 300g씩 사료를 후원받아 총 11t의 사료를 동물보호센터 12곳에 기부했다.
이 교수는 “보호소 설립이나 사료 기증은 지속해서 이뤄지기가 쉽지 않다. 유기견 보호보다도 유기견이 생기는 것을 막는 게 더 중요하다”며 교육 프로그램 개발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많지만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는 잘 모른다. 나만의 강아지라고 여기고 이웃과는 별개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은데, 타인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며 장기적인 반려동물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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