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산골 마을 아마트리체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300명 가까운 주민 및 관광객이 목숨을 잃었다. 폭삭 무너진 건물 더미 속에서 구조되는 피투성이 부상자들의 처참한 모습이 전 세계에 TV로 방영됐다. 고대(古代)나 중세 같으면 지구의 자연현상에 의한 사상자(死傷者)들이 동정을 받기는커녕 음란하고 타락해서 절대자에게 단죄(斷罪)됐다고 손가락질을 받았으리라. 엄마 품에 안겨 함께 숨진 젖먹이 아기도 음란하고 타락했을까.
충북 단양의 부초미술관 게스트하우스에서 한가로이 인삼차를 마시며 TV를 보던 줄리아나는 조국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참상(慘狀)에 이를 덜덜 떨었다. 지진 피해지역인 아마트리체, 아쿠몰리 등 유서 깊은 도시는 줄리아나와 마르티노 박사가 고미술품 구입 차 자주 들르던 곳이 아닌가. 줄리아나는 마르티노의 근황이 궁금하여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신호음은 들리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잠시 후 다시 걸었으나 마찬가지였다. 문자를 넣어 잘 지내는지 물었다. 역시 응답이 없었다. 낌새가 이상했다.
줄리아나는 이탈리아에 있는 학계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마르티노 박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수소문했다. 한결같이 모른다는 대답이었다. 줄리아나는 고민 끝에 자기를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던 중년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이탈리아 정보기관의 간부이다. 그에게 물어보면 온갖 시시콜콜한 정보를 알 수 있었다. 누가 어느 병원에서 비아그라 처방을 받았다거나 누가 언제 무슨 레스토랑에서 비프스테이크를 사먹었다는 사실까지도….
“웬 일이양? 새침데기 줄리아나가 내게 먼저 전화를 걸공?” 그의 느끼한 비음(鼻音)은 여전하다. “마르티노 박사가 어디 계신지?” “내 안부는 묻지 않고 개뼈다귀 같은 마르티노를….” “당신이 그렇게 옹졸해서 내가 싫어하는 거예요!” “아니 농담이었엉. 그래, 코레아에서 재미 좋앙?” “내가 코레아에 간 걸 어떻게 알아요? 아직도 나를 스토킹해요?” “가만 가만! 마르티노와 줄리아나는 우리 기관에서도 동향을 항상 체크하는 VIP 아닌강? 그래서 아는 것이징.” “그럼 마르티노의 행방을 알 것 아녜요?” “사실은… 마르티노가 마피아 조직에 납치된 것 같아. 문화재 전문털이 조직 같은데 아직 우리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 “내 사랑 줄리아나도 몸 조심행! 녀석들이 코레아에까지 원정갈지 모르니깡.”
줄리아나는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놈들이 이 심심산골 부초미술관의 소재지를 알까? 클레오파트라의 왕관과 브루투스의 명검을 여기서 소장한다는 사실을 눈치챘을까?
줄리아나는 O관장에게 사정을 털어놓았다. 왕관과 명검을 K교수의 손에 쥐어준 것도 마피아의 손길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육책(苦肉策)이었고 왕관을 넘기던 그날도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졌다고 밝혔다. “관장님, 마피아들이 이곳을 습격할 가능성이 있어요.” “설마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찾아오겠어요? 줄리아나님이 너무 예민한 것 아니에요?” “마르티노 박사가 납치돼 고문을 받으면 미술관 위치를 자백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미술관에 오실 때 눈을 가렸는데도?” “그래도 다녀온 곳이 어느 지점인지 나중에 파악할 수 있답니다.” “음….”
O관장은 J회장에게 이 상황을 보고했다. “마피아 세력이 들이닥칠지 모릅니다.” “이태리 마피아가?” 겁에 질리기는커녕 ‘한 판 붙겠다’는 듯 복서처럼 두 주먹을 불끈 쥐는 J회장의 배짱에 O관장은 압도됐다. O관장이 얼굴이 노랗게 돼 입술을 떨며 묻는다. “그자들이 온다면 어떻게 대처할까요?” “걱정 말라카이! 부초겔사대 할배들만 동원해도 쫓가(쫓아)낼 수 있응께.” “부초결사대라뇨?” “요줌(요즘) 이 언저리에서 약초 캐는 할배들이 보이지요? 얼핏 보모(보면) 어수룩한 늙다리들이지만 왕년에 한 가락씩 하던 자들이오. 공수부대 출신, 해군 유디티 교관 제대자, 태껀도(태권도) 사범, 유도 금메달리스트, 뽁싱 참피온, 멧도야지 사냥꾼, 조폭 헤칼(회칼)쟁이… 이 양반들이 겔사대를 겔성(결성)했으이 울매나(얼마나) 막강하겠소?”
O관장은 이탈리아 청년 무기고가 이탈리아 특수부대원 출신이라는 사실이 떠올라 일부러 상경해 그를 만났다. “마피아 조직원들이 저희 부초미술관을 습격할지 모르는데 어떡하면 좋을까요?” “너무 걱정하지 마이소! 저는 마피아 때려잡는 걸 인생 목표로 삼은 놈입니더. 한국땅에서 그놈들을 만난다니 흥분되네예!” “그럼 그자들과 맞서 싸우시겠다고요?”“당연하지예. 그놈들은 총기를 갖고 오지는 못할 낍니더. 칼이나 철봉이 주로 사용될 낀데 칼싸움이라카모 제가 자신 있습니더예.”
무기고 옆에 앉은 소피아는 혀를 내밀어 바싹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그녀는 무기고의 옆구리를 찌르며 묻는다. “영화 촬영이 아니고 진짜 칼싸움인데 무섭지도 않아?” “무서우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해. 이를 악다물고 이겨내야지!” 옆에서 대화를 듣던 Y감독도 덩달아 들떠 말문을 연다. “싸움판이 벌어지면 제가 모조리 촬영하겠습니다. 실제 상황이어서 흥미진진하겠군요.”
줄리아나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는 이탈리아 정보기관의 그 ‘느끼 남’. “줄리아나! 내 추측대로 마피아 행동대원 20명이 코레아로 가는 것 같아.” “정말이에요?” “다음주 토요일 로마 발, 인천 행 여객기에 단체손님 20명이 예약했는데 관광여행객들로 위장했지만 마피아 조직원으로 추정되는 인물들이야.”
O관장은 줄리아나의 보고를 받고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했다. 미술관 부관장이자 창업주의 딸인 J여사는 얼굴이 새파래져서 허둥거린다. “얼른 경찰에 신고해서 신변 보호를 요청해야지요!” 그러나 J회장은 빙그레 웃으며 딸의 발언을 묵살한다. “머(뭐) 대단한 일이라고 호들갑이고? 우리 할배들이 나서도 하루아침에 해장꺼린데.” “그러다가 왕관을 탈취당하면 어떡하시려구요?” “경찰에 신고하모 미술관 존재가 노출될 꺼 앙이가? 난 그기(그것이) 딱 싫다!” “로마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인천에 도착해 그자들이 단양까지 온다면 혹시 일요일이 ‘D데이’가 아닐까요?”
며칠이 흘러 일요일 아침, 부초미술관 건물 앞에는 큼직한 군기(軍旗)가 걸려 산골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군기의 치우천왕 그림은 J회장이 그렸다. J회장, O관장, J여사, 줄리아나 등 미술관 관계자들은 얼룩무늬 군복을 입고 도열했다. 무기고, 소피아, 매니저 P씨, Y감독 등은 군복 대신 ‘추리닝’ 차림이다. J여사의 남편인 B그룹 S회장은 보안경호 계열사의 정예 직원 10명을 차출해 이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나타났다. 미술관에 왕관과 칼을 가지고 왔던 K교수는 ‘군의관’ 자격으로 하얀 가운을 입었다. 부초결사대 대원 20명은 똑같은 얼룩무늬 군복을 입었지만 손에 든 무기는 각각 달랐다. 사냥총, 회칼, 도끼, 활, 야구 방망이…. Y감독은 오합지졸(烏合之卒)풍 결사대원들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웃음이 나왔지만 꾹 참고 그들의 우스꽝스런 모습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았다.
줄리아나의 휴대전화가 부르르 떨었다. ‘느끼 남’이 이탈리아에서 건 전화다. “마피아 놈들, 쳐들어왔나?” “아직 안 나타났는데요.” “놈들은 인질로 잡은 마르티노 박사를 앞장세워 공격할 거야.” “지구 반대편에 있는 당신이 어떻게 그리 훤히 아세요?” “이탈리아 정보기관의 최고 분석관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안 그랭?” “유능하시네요!” “거기 무기고라는 청년도 있징?” “그것도 아세요?” “줄리아나 마음 빼곤 내가 모르는 게 뭐가 있겠엉?”
부초결사대원들은 땡볕 아래 오래 대기하고 있으려니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다. “시원한 막걸리라도 마시며 기다립시다!” 누군가 그렇게 목청을 높이자 총사령관격인 J회장이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전투가 임박해 아루꼬루(알콜)는 금지요! 나중에 승전 잔치 때 실컷 마십시다!” 막걸리 대신에 인근에서 용출되는 탄산수가 공급됐다. “커! 천연 사이다 맛이네!”
점심 식사로는 주먹밥, 닭다리, 바나나 등이 나왔다. 노인들이지만 활동량이 많아서 먹성이 좋다. 대부분이 테니스공 크기만한 주먹밥 두세 개, 통통한 닭다리 서너 개를 먹어치운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도 시간이 길어지면 무료해지기 십상이다. 결사대원들은 잡담을 나눈다. 점심을 먹은 지 서너 시간이 지나자 먹는 게 관심사다.
“이 산골짝에도 자장면이 배달될까유?” “그렇구말구! 우리가 누구여? 배달의 민족 후손들 아녀?” “피자도 배달되겄네유?” “그렇쥬!” “시원한 생막걸리두?” “당연하쥬!” “그럼 주둥이로만 씨부리지 말구 주문 혀 봐!” 이들의 대화를 엿들은 O관장이 추임새를 넣는다. “자장면 곱빼기 50그릇, 피자 20판, 막걸리 100병 주문하세요. 제가 쏠게요.” O관장은 이 심산유곡(深山幽谷)에 음식이 배달될 리가 없다고 보고 농담 비슷하게 말한 것이다. 스마트폰 다루기에 능숙한 ‘실버 컴퓨터 강사’가 스마트폰을 문질러 O관장이 말한 분량대로 주문한다.
한가롭게 객담을 나누는 사이 해가 서쪽으로 지려고 했다. 저 멀리서 뭔가 꿈틀거리며 미술관 언덕 쪽으로 올라오는 모습이 보인다. “적이다!” 척후병의 고함이 터졌다. J회장은 쌍안경으로 적들을 살피곤 득의(得意)의 미소를 짓는다. “전원 제자리에!”
적들이 시야에 들어오자 J회장은 당황했다. 인원은 30여 명으로 무기를 들지 않고 다가왔다. 한바탕 살육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했는데 맨몸이라니…. 결사대원들도 김이 새는지 쯧쯧, 혀를 찬다. 미술관 입구까지 온 그들을 보니 대여섯은 한국인으로 보인다. 마피아와 연계된 국내조직원? 그들은 말쑥한 정장 차림이어서 주먹질을 벌이러 온 것 같지는 않다. 영화배우 휴 잭맨을 닮은 소(小)두목이 잇몸이 드러날 정도로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훌륭한 곳에 자리잡은 미술관에 오게 돼 영광입니다. 여기 대표자를 뵙고 싶습니다.” O관장의 통역으로 그 말을 알아들은 J회장이 직접 나선다. “원로(遠路)에 수고가 많았소.”
적의(敵意)를 잔뜩 품고 그들을 기다린 J회장이었으나 막상 웃는 얼굴로 접근하는 소두목 앞에서 인상을 쓸 수는 없었다. 소두목은 결사대원 등을 휘익 둘러보더니 싱긋 웃으며 묻는다. “지금 영화 촬영하십니까?” J회장은 그 질문이 비아냥거리는 말투임을 알아차리고 역정을 내며 대답한다. “영화 촬영이라니! 우리는 전투 준비 중이오!” 소두목은 다시 미소를 지으며 이죽거린다. “오! 귀하는 돈키호테 장군이시군요!”
J회장은 자칭 ‘서울 돈키호테’지만 막상 제3자가 자신을 돈키호테라 부르니 조롱하는 소리로 들린다. J회장은 부산에서 서울로 사업 터전을 옮기고 남들이 가지 않은 ‘나홀로’ 길을 걸으면서 돈키호테를 자처했다. “이 놈이!” 흥분한 J회장이 권총을 빼들자 소두목은 능글맞게 웃으며 손을 싹싹 빈다. “장군님, 용서해 주십시오. 돈키호테보다 훨씬 위대한 장군이시죠?” “음… 그래, 무슨 일로 왔소?” “약탈당한 문화재를 환수하려고 왔습니다.” “약탈당하다니? 뭘?”“왕관과 보검!”
그때 줄리아나가 나섰다.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 우리 가문이 2000년 동안 보관해온 가보인데!” 소두목은 얼룩무늬 군복 차림의 줄리아나를 스윽 훑어보더니 빈정거린다. “호! 아가씨가 줄리아나 박사구만! 그래 그 잘난 가문이 요즘 파산을 눈앞에 둔 거렁뱅이라며? 2차 대전 때 당신 증조부는 무솔리니의 충견(忠犬)이었어. 그 파시스트에게 헌금하려고 우리 ‘코사 노스트라’ 조직에게서 왕관과 보검을 담보로 내보이고 거액을 빌려갔어. 돈을 못 갚았으니 그 물건은 우리 것이야!” “범죄조직 마피아의 말을 누가 믿겠어요?” “그럼 당신 가문에서 오래 집사 노릇을 한 마르티노의 증언을 들어볼까?”
검은 양복 사나이들 무리 속에서 마르티노가 걸어나왔다. 줄리아나는 반색을 하면서도 마르티노가 배신한 것으로 의심했다. 마르티노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왕관과 보검은 코사 노스트라 조직에 소유권이 있는 게 맞아. 내가 계약서에서 증조부의 서명을 확인했고 대부님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셨어.” “증조부는 마피아에게 납치돼 살해당하셨잖아요? 마피아가 납치한 증조부에게 강제로 서명을 종용한 게 뻔하잖아요. 그 계약서가 있다 해도 나는 인정할 수 없어요.”
이들의 입씨름을 지켜보던 J회장이 눈을 부릅뜨며 대갈(大喝)한다. “와(왜) 이리 시끄럽노! 왕간(왕관)하고 보검은 우리 끼(것)다! 당신들, 빨리 꺼져!” 소두목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험상궂은 표정으로 바뀌더니 J회장을 향해 삿대질을 한다. “정신 나간 똥끼호테 영감쟁이, 당신이 왜 끼어들어?” 분통이 터진 J회장이 소두목의 멱살을 잡자 소두목도 맞잡는다. 두 사람이 멱살잡이를 벌이자마자 무기고가 용수철처럼 튀어나와 소두목의 옆구리를 발로 걷어찬다. 소두목이 쓰러지자 마피아 조직원들은 일제히 소매에서 30cm 길이의 철제 봉(棒)을 꺼낸다. “공격 개시!” 소두목의 고함과 함께 마피아 조직원들은 쇠막대를 휘두르며 부초결사대원들에게 달려들었다. 인원 수로 보아 양측이 얼추 비슷했다. 싸움은 대체로 1대 1로 맞붙는 양상으로 전개됐다.
공수부대 출신 김씨는 이소룡이 휘두르던 쌍절곤을 대여섯 달 연습했는데 실전에 사용하려고 들고 나와 마피아1과 맞붙었다. 마피아1이 쇠막대로 내려치자 김씨는 잽싸게 쌍절곤을 돌려 쇠막대를 잡아챘다. 빈손의 마피아1은 쌍절곤 공격을 피하려 뒤로 물러서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김씨가 요란하게 쌍절곤을 돌리자 마피아1의 머리통이 터지면서 시뻘건 피가 흘러나왔다.
해군 유디티 교관 제대자 홍씨는 스킨 스쿠버 수경(水鏡)을 쓰고 작살을 마피아2에게 쏘았다. 마피아2가 엉겁결에 휘두른 쇠막대에 작살이 부러지면서 홍씨는 무방비 상태가 되고 말았다. 홍씨가 마피아2의 몽둥이질에 어깨를 난타 당하면서 쩔쩔 맨다.
태권도 사범 류씨는 마피아3이 휘두르는 쇠막대를 날렵한 발놀림으로 몇 번 피했으나 숨이 가빠지면서 방어하기에 한계에 도달했다. 류씨는 뒷걸음질을 하면서도 기합을 지르며 계속 발차기를 시도한다.
유도 금메달리스트 정씨는 마피아4의 공격을 피하면서 다리를 잡아 넘어뜨렸다. 정씨는 마피아4의 목을 졸라 실신시켰다. 정씨는 마피아4의 뺨을 찰싹찰싹 때려 정신을 차리게 했다. 마피아4가 눈을 뜨자 정씨는 또 목을 조른다.
복싱 챔피언 구씨는 선수 시절에 펀치력 키운다고 연습하던 도끼를 들고 나와 마구 휘둘렀는데 마피아5는 겁을 먹고 계속 도망 다녔다. 험준한 절벽 앞에 도달하자 마피아5는 철봉을 버리고 몸을 돌려 구씨 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했다.
멧돼지 사냥꾼 윤씨는 베넬리 엽총을 갖고 오긴 했으나 미처 총알을 장전하지 못해 쏘는 시늉만 했다. 총알이 없음을 간파한 마피아6이 쇠막대를 휘두르며 달려들자 윤씨는 총검술 포즈를 취하며 상대방을 물리쳤다. 윤씨가 당구채로 당구공을 찌르듯 마피아6의 목울대를 가격하자 그 금발청년은 눈에 흰자위를 드러내며 뒹굴었다.
조폭 출신 장씨는 시퍼런 ‘사시미 칼’을 마피아7에게 휘둘렀다. 칼과 쇠막대가 수십 차례 부딪치면서 칼이 부러졌다. 마피아7이 무기를 상실한 장씨의 머리, 몸통을 난타했다. 장씨는 그런 상황에서도 정신줄을 놓지 않고 마피아7의 낭심을 걷어찼다.
J회장은 미술관 앞 작은 바위 위에 올라가 전투 장면 전체를 내려다 본다. 그는 권총을 빼들고 작전 지휘를 한다. 눈앞에서 해군 유디티 교관 제대자 홍씨가 마피아2의 몽둥이 세례를 받고 땅바닥에 쓰러지자 J회장은 마피아2를 향해 발사한다. 탕! 마피아2가 총을 맞고 벌러덩 자빠진다. 태권도 사범 류씨도 J회장에 의해 구출됐다. 덩치가 산더미만한 마피아3의 몽둥이질에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류씨를 보고 J회장은 마피아3 옆에 바짝 다가가서 방아쇠를 당겼다.
그런 J회장을 발견한 마피아 소두목이 J회장 등 뒤에서 철봉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퍽! 둔탁한 충돌음과 함께 쓰러진 사람은 소피아의 매니저 P씨였다. 그가 J회장의 보디가드라도 되는 양 몸을 날려 J회장을 감싸 안는 바람에 마피아 소두목이 휘두르는 철봉을 머리에 맞았다.
무기고의 활약상은 눈부셨다. 긴 칼을 들고 나섰으나 마피아7, 마피아8의 동시 공격을 받고 칼이 부러지자 아예 이소룡처럼 맨손으로 이들 둘과 맞붙었다. “아뵤오!” ‘이소룡 괴성’을 지르며 발질, 주먹질을 퍼붓는 무기고의 반격에 마피아7, 마피아8은 혼비백산(魂飛魄散)했다. 마피아7은 무기고의 돌려차기를 맞아 코뼈가 내려앉았고 마피아8은 얼굴에 정권(正拳) 가격을 받아 졸도했다.
60대, 70대 노인 결사대가 이렇게 죽기살기로 싸우는데 비해 보안경비회사의 젊은 직원들은 엉덩이를 뒤로 빼고 관망(觀望)하는 자세다. 난투 경험이 없는데다 유혈 낭자한 진짜 싸움판을 목도하고 겁에 질린 탓이다.
타타타타, 타타타타…. 기계음을 내며 하늘에 비행물체가 나타났다. 싸움에 열중하던 결사대원과 마피아 조직원은 잠시 머리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결사대원들이 쑥덕거린다. “저게 말로만 듣던 UFO 아닌겨?” “대명천지에 UFO가 어디 있겄슈?” “마피아 넘(놈)들이 공군력도 동원했는감?” 비행물체는 고도를 낮추더니 서서히 미술관 쪽으로 다가온다. “어! 저건 드론 아녀?” “하나, 둘, 셋… 세 개나 되네!”
푸르르륵…. 엔진 꺼지는 소리와 함께 대형 드론 3개가 미술관 앞 공터에 착륙했다. 호기심으로 드론을 보던 결사대와 마피아 청년들은 잠시 결투를 멈춘다. J회장도 육안으로는 드론을 처음 보는 터여서 호기심이 만발했다. “전투 중지! 잠시 쉬고 합시다!” O관장이 마피아 소두목에게 이탈리아어로 통역해 알렸더니 그도 줄줄 흐르는 코피를 닦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결사대 대원들이 드론 주변으로 우르르 몰려간다. 복싱 챔피언 구씨, 멧돼지 사냥꾼 윤씨, 조폭 출신 장씨가 각각 드론 뚜껑을 열었다. “이게 뭐유? 자장면 아녀유? 수십 그릇이네유!” “이건 피자! 도대체 몇 그릇이유?” “햐! 생막걸리! 시원하라고 얼음을 깔았네유!”
마피아1이 손수건으로 머리통에서 흐르는 피를 닦으며 자장면을 가리키며 묻는다. “시커먼 스파게티? 맛있겠네요!” 마피아4는 피자를 보고 군침을 삼킨다. “이탈리아 본토 피자보다 훨씬 크고 먹음직스럽게 보이네요!” 마피아7은 아픈 아랫도리 때문에 엉거주춤 서서 막걸리 병을 이리저리 살핀다. 그에게 소피아가 막걸리에 대해 설명한다. “코레아 전통 곡주인데 맛이 기막히고 영양도 풍부해요.”
마피아 소두목은 코피를 다 닦고 J회장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비굴한 웃음을 짓는다. “뭐 좀 먹고 싸웁시다! 우리는 배가 고파 못 싸우겠소.” 적의 황당한 제안에 J회장은 허허, 하고 실소(失笑)를 터뜨렸다. 그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면 이적(利敵) 행위 아닌가. 거절하는 게 당연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측은하게 보였다. “좋소! 당신들도 참 고약한 사주(四柱)를 타고 태어났네! 이 먼 나라에 와서 대갈빡(머리)이 터지도록 싸웅께네(싸우니까). 인심 좋은 코리아 돈키호테 장군이 하사하는 자장면, 피자, 막걸리를 먹고 팔자를 고치시오!”
적과 적이 새참을 나눠 먹으려 둘러앉는 진풍경이 펼쳐질 참이다. 마피아 소두목은 자기 부하들에 대한 인원 점검을 하더니 마피아2, 마피아3가 보이지 않자 그들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한 똘마니 조직원이 울먹이며 보고했다. “형님 둘이 전사했습니다.” 마피아2, 마피아3는 J회장의 총격을 받고 미술관 정문 앞에 쓰러져 있었다. 소두목은 그들을 발견하고 후닥닥 달려간다. 시신을 부둥켜안고 오열을 터뜨린다. J회장이 소두목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토닥인다. “울지 마소!” “부하가 둘이나 죽었는데 울지 않겠습니까?” “그대는 부활을 믿소?” “그딴 건 성경에나 있는 이야기….” “당신 부하 둘이가 살아난다카모 우찌 할낀데?” “그럼 장군을 하늘처럼 떠받들겠습니다.” “그래?”
J회장은 O관장에게 말했다. “사람을 살릴라카모 하늘에 제사를 지내야 항께네 쿠에오파트라 왕관하고 부루투스 보검을 갖고 오소!” 그는 또 J여사에게는 맑은 물 두 대야를 갖고 오라고 지시했다. J회장은 브루투스의 보검을 들고 O관장은 클레오파트라의 왕관을 쓰고 마피아2, 마피아3 앞에 섰다. J회장은 칼등으로 그들의 이마를 가볍게 톡톡 치며 무슨 주문(呪文) 같은 것을 중얼거렸다. O관장은 클레오파트라 여왕처럼 우아한 손길로 그들의 뺨을 쓰다듬었다.
J회장은 J여사에게는 그들의 머리에 물을 끼얹는 일을 시켰다. “으, 으….” 마피아2, 마피아3는 신음을 내며 눈을 떴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결사대원들과 마피아 조직원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부활했도다!” “기적이 일어났도다!” “영생을 누리소서!”
마피아 소두목은 J회장 앞에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했다. “장군님, 아니 하늘님! 아우들을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늘과 맞서 계속 싸우겠소? 항복하시오!” “항복? 그건 좀 곤란합니다만….” “패배를 깨끗이 승복하는 것도 진정한 용기요!” “저희는 왕관과 보검을 찾으러 왔습니다. 제발 돌려주십시오! 저것 없이는 저희는 이탈리아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소두목은 눈물을 훌쩍이며 읍소(泣訴) 작전으로 나왔다. J회장은 소두목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저 보물들을 준다카모 이태리에 가서 서민들 게(괴)롭히는 치사한 범제(범죄) 안 저지르겠다고 맹세하겠소?” “맹세하겠습니다!”
J회장과 소두목 사이에 돌연 이탈리아 청년 무기고가 나타났다. “회장님, 이놈의 말을 믿으모 안 됩니더예! 마피아 놈들은 면종복배(面從腹背), 말 뒤집기, 사기, 협잡, 폭력을 일삼는 양아치들입니더! 영화 <대부>와 다릅니더!” “청년이 마피아에 대해 우떻게 그리 잘 아시능교?” “지가 유복자로 태어났심더. 마피아 소탕작전을 지휘하던 검사인 아부지가 마피아 놈들에게 폭사당했심더. 바로 저 ‘코사 노스트라’ 조직 놈들에게!” 무기고는 분노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피를 토하듯 고함쳤다. 그 기세에 짓눌린 소두목이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저희도 먹고 살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제가 저 청년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겠습니다.” 소두목은 무기고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마피아2, 마피아3도 같은 동작을 취했다. 해는 서쪽으로 넘어가 사위(四圍)가 어둑어둑해졌다.
복싱챔피언 출신 구씨가 벌떡 일어나 J회장을 향해 외친다. “장군님, 자장면 불어 터져유. 피자는 식어빠졌구유. 얼른 먹구나서 싸우든지 놀든지 합시다유!” J회장은 결단을 내린다. “좋심더! 이렇게 하입시더. 코쟁이 이태리 양반들, 묵고 살라꼬 여까지 와서 대가리 터지고 코뻬(뼈) 내리(내려)앉았는데 내가 크게 인심을 쓰겄심니더. 왕관, 보검 돌려드리겄심더! 그라모 더 이상 서로 싸울 필요도 없심더! 지금부터 막걸리 마시멘서 잔치 벌입시더!” 양측 진영 사람들은 일어나 환호했다. “와!” 무기고는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소두목을 노려본다. 소피아가 나서서 무기고의 팔을 잡아끌며 속삭인다. “여기는 코레아 땅이야. 우리 이탈리아 사람들끼리 화해하지 못하면 무슨 망신이야? 너도 마음을 좀 풀어!” “…….”
군의관 가운을 입은 K교수는 피자 한 조각을 입에 물고 환자 치료에 땀을 흘린다. 아무리 자칭 돌팔이 의사라지만 자상(刺傷), 타박상 따위 치료는 기본 아닌가. 막걸리 맛에 취한 마피아4가 술기운을 빌려 나폴리 민요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부른다. 마피아7은 아랫도리를 만지작거리며 훌라춤을 춘다. 다른 마피아 청년들은 삼삼오오 어깨동무를 하고 원무(圓舞)를 즐긴다.
이윽고 훤한 보름달이 떴다. J회장은 땀투성이 O관장과 머리를 다쳐 붕대를 맨 P씨를 불러 막걸리 한 사발씩을 따라준다. J회장은 취중인데도 조심스레 O관장에게 말을 건넨다. “부탁이 있는데….” “뭐든 말씀하십시오!” J회장은 큼직한 양푼이에 든 막걸리를 벌컥벌컥 마신 후 말을 잇는다. “나를 아부지라고 부르면 안 되겄소?” “예?” J회장을 바라보는 O관장의 눈빛이 달빛을 받아 번쩍인다. “내 피붙이 같아서….” “…….” O관장은 J회장의 빈 잔에 막걸리를 가득 따른 후 큰절을 올린다. J회장은 입을 크게 벌려 웃으며 절을 받는다. O관장은 절을 마친 후 고개를 들고 말한다. “아버지!”
또르르, 또르르….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이렇게 부녀(父女) 결연 의식이 벌어진다. J회장은 싱글벙글거리며 P씨과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 “아까 내 살릴라꼬 머리 다쳤지요? 아이고, 고마버라(고마워라)!” “별 말씀 다 하십니다.” “긴 말 필요 없고… 내 사우(사위) 안 할끼오?” “예?” P씨와 O관장은 서로 마주보며 민망스럽다는 듯 웃는다. O관장의 눈이 별빛을 받아 반짝인다. P씨는 O관장의 손을 슬며시 잡고 일어서 J회장 앞에서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알겠습니다. 장인어른… 아버님! 축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들의 앞날을 축복하듯 컴컴한 하늘에서 유성우(流星雨)가 쏟아진다. 한동안 하늘을 바라보던 P씨가 J회장에게 묻는다. “아버님, 아까 마피아 둘을 어떻게 살리셨습니까?” “그거, 벨 거 앙이다. 내 총은 살상용이 앙이라 마치(마취)총이다! 하하하!” O관장도 궁금증을 못 이겨 질문한다. “왕관과 보검, 어떻게 순순히 내주셨습니까?” “그것도 벨 거 앙이다. 요전앞시(요 전번에) 중국서 온 천재 기술자들 있었제? 그 양반들이 만든 복제품이다. 진짜배기와 똑 같이 보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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