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D/ Opinion] ‘사드’ 후폭풍에 메말라가는 한류

  • 동아닷컴
  • 입력 2016년 11월 30일 12시 02분


조진혁의 B급 살롱

중국에서 방영 금지처분을 받아 국내에서만 방송 중인  SBS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
중국에서 방영 금지처분을 받아 국내에서만 방송 중인 SBS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


문화계에서 한류는 돈이 넘쳐흐르는 유일한 강이었다. 한류에 두 손을 담그면 현찰뭉텅이가 쥐어졌다. 특히 중국 기업들이 촬영장에서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은 상상을 초월했다. 현금이 들어있는 포대자루를 끌고 와 촬영이 끝나면 감독과 스텝들에게 현찰로 제작비를 지불했다. 이 때 받는 금액은 국내에서 보다 두 배 많게는 서너 배 이상의 금액이었다. 물론 오래 전 촬영장에서 돌아다니는 ‘카더라 신화’다.

하지만 그 신화가 완전 거짓은 아닌 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중국 문화계에서 대접받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중국 방송팀은 한국인 제작진을 고용하기 위해 ‘따블’에 ‘따따블’을 불렀다. 그들에게 한국인 스텝은 선진 기술과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었으니까. 중국인들은 한국의 효율적인 시스템 운영법과 유행을 선도하는 감각을 갖고자 했고, 시간이 지나자 따라잡게 됐다. 카피캣 전략을 통해서다.

최근 대륙은 적극적으로 한국 예능프로그램 포맷을 수입했고, 한국에서 유행하는 헤어메이크업과 스타일링 등을 한국인 스텝을 고용해 만들어갔다. 이제는 사진만으로 한국과 중국 모델의 차이를 구분하기 어려운 시점이다. 중국의 문화 콘텐츠 사업은 한류의 퀼리티에 근접하게 됐다. 그러니 한류 본고장에서 온 사람들의 값어치가 점점 떨어졌다. 그리고 지난여름, 사드 배치가 결정됐다.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는 레이더를 통해 날아오는 미사일을 감지하고, 요격하는 무기이다. 문제는 이 사드의 레이더 범위인데, 약 1800km를 감지한다. 탐지거리에는 베이징을 포함해 중국 주요지역이 속한다. 중국은 한국의 사드 배치에 유감을 표시했고, 이후 한국에 보복성 경제 조치들을 강행 중이다.

그 조치 중에 한류 콘텐츠도 있다. 중국은 한국 연예인의 자국 활동과 한국 콘텐츠의 방영을 금지했고, 한류 스타들의 중국 광고도 크게 줄었다. 국내에서 방영중인 SBS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은 내년 2월 중국 방영을 계획하고 중국 측과의 계약을 진행 중에 있다. 이영애의 ‘사임당’도 한·중·일 3개국 동시 방영을 목표로 했으나, 현재 중국의 허가만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한류를 기반으로 산업 규모를 키워가던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크게 가라앉는 모양새다. 여기에 중국의 한한령(한류금지령)까지 주식시장에 퍼지자 YG, SM, JYP, CJE&M 등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의 주가는 크게 떨어졌다. 한류는 메마르거나 늪지화 되고 있다.

얼마 전 척박한 한류에 발을 담갔던 사람들을 동시에 만날 일이 있었다. 한 여배우의 화보 촬영장에서였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A. 그녀는 최근 중국에 다녀왔다고 운을 뗐다. 두 달간 머무르며 중국 연예인들의 얼굴을 매만졌다고 한다. 주로 드라마 촬영장이었지만, 가끔 화보 촬영장에도 나갔다. 한국인 스텝은 자신이 유일했다고 한다.

우리는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먼저 물었다. “그래서 얼마나 받았어?” 사실 중국 스타는 누가 누군지 모르고, 궁금하지도 않다. A가 중국에서 무슨 일을 했고, 업무 방식이나 과정들이 국내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도 알고 싶었지만, 그 보다 더 궁금한 것은 돈이었다. 대체 월급을 얼마나 받았는지 말이다.

A가 중국에서 받은 금액을 말해줬다. 목소리가 작았다. 국내에서 열심히 일하면 받을 수 있는 금액과 비등했다. A는 해외에서 작업해보고 싶었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었다며 말꼬리를 흐렸다. 중국 다녀왔으니 한 턱 쏘라던 사람, 차 바꾸는 거 아니냐며 농을 던지던 사람 모두 숙연해졌다.

사실 다들 조금씩 체감하고 있었다. 중국에서 떼돈을 벌어왔다는 사람들이 요즘에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런 사람들은 신화에만 존재했다. 부르는 게 값이던 한국인 전문가들의 시대는 갔다. 그럼에도 중국에서 여전히 한국인 스텝은 선호하는 것은 비슷한 가격에 조금 더 실력이 좋은 인력이기 때문이었다.

A는 팀장도 강사도 아니었다. 메이크업 팀의 일원이었다. 황금이 흐르는 한류라는 강은 메말랐다. 인정하기 싫지만 받아들여야만 했다. A는 한 동안은 국내에서 활동하겠다고 덧붙였다. 음식과 날씨가 몸에 맞지 않는다면서 말이다.

스타일리스트 B는 몇 차례 중국인 사업가와 미팅을 했다. 그 사업가는 막무가내였다. 거대한 쇼핑몰을 운영했는데 오프라인과 온라인 플랫폼 모두 큰 성공을 거뒀다고 한다. 그는 쇼핑몰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한국인 스타일리스트들을 고용하고, 한류 스타들의 이미지를 활용하기로 했다.

문제는 한류 스타 섭외였다. 광고비용을 책정해야하는데, 그 사업가는 그런 사소한 부분에 연연하지 않았다. 화보를 촬영하지 않고, 인터넷에 떠도는 한류 스타의 화보를 자사의 온라인 쇼핑몰에 게재했다. 무단으로 사용한 것이다. B는 그런 행태에 기겁을 하고 손발을 모두 뗐다고 한다. 해당 한류 스타가 쇼핑몰을 고소한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사업가 역시 그와 같은 소송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해 둔 것 같다고 했다.

조진혁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에디터
조진혁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에디터
한류에 투자하지 않고도, 한류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 보였다. B는 그 사업가와 결별하고 독자적으로 중국 시장을 개척하겠노라 선언했다. 한류 스타들과 협력 하겠다는 것. 하지만 이미 한류 스타들의 이미지가 무단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는 중국 시장에서 B의 도전이 큰 수익을 낼 수 있을까? B는 사업제안서를 고치는데 여념이 없었다.

2000년 들어 중국은 문화에 투자를 많이 했다. 문화 발전을 위한 시장 환경 개선, 문화 산업과 문화 사업 분리, 문화 개혁의 중요성을 파악하는 등 기반을 다지는 작업을 오랫동안 해왔다. 그리고 201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문화콘텐츠에 집중했다. 중국 정부는 문화 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차근차근 문화 산업을 성장시키는 중이다.

또 중국은 한류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시도를 2020년 이전에 할 것이다. 사드 문제가 아니었어도 중국은 자국의 연예 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한류를 경계했을 것이 자명하다. 그걸 알면서도 내 주변의 몇은 다시 중국으로 향했다.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은 로또를 사는 심정과 비슷하다. 안될 걸 알면서도 자꾸 사게 되는 그 마음 말이다.

조진혁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에디터 radioplayer@naver.com

*사춘기 이전부터 대중문화에 심취했다. 어른이 되면 고급문화에 심취할 줄 알았는데, 더 자극적인 대중문화만 찾게 되더라. 현재는 인터넷 문화와 B급 문화뽕까지 두루 맞은 상태로 글을 쓴다.
#사드#한류#매거진d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