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7일 오전 국회에서 ‘최순실 게이트’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2차 청문회가 열렸다. 이날 청문회에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해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 김종 전 문체부 차관, 송성각 전 콘텐츠진흥원장, 고영태 더블루K 이사 등 이번 게이트의 핵심 인물들이 출석했다.
그러나 정작 국정농단의 주역인 최순실 씨를 비롯해 이른바 문고리 3인방(안종범, 정호성, 안봉근), 최순득 씨 등 핵심 증인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이날 여야 의원들의 집중 질문 공세를 받은 건 김기춘 전 실장이었다. 김 전 실장은 최순실의 존재가 수면으로 부상하기 전까지 왕실장, 부통령, 기춘대군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박근혜 정권의 2인자로 알려진 인물.
이날 그의 전략은 ‘부인’과 ‘모르쇠’였다. 청문회에서 최순실 게이트의 배후에 자신이 있다는 세간의 의혹 제기나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알았는지에 대한 질의가 이어졌으나 김 전 실장은 부인하거나 모른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이 때문에 이날 청문회장에서 국회의원들이 가장 많이 한 말은 “비서실장님이 그걸 모르세요?”였다.
청문회 전날인 12월 6일 한겨레는 ‘세월호가 가라앉던 2014년 4월 16일 박 대통령은 승객 구조 대책을 마련하는 대신 강남의 유명 미용사를 청와대로 불러 ‘올림머리’를 하는 데 90분 이상을 허비했다’고 보도했다. 청와대는 머리손질을 했던 사실 자체는 인정했으나 소요시간은 20여 분에 불과했다고 해명했다.
해당 내용을 알고 있었느냐는 질의에 대해 김 전 실장은 “알지 못했다”라고 답했다. ‘세월호 7시간’ 동안 박 대통령이 무엇을 했느냐는 질의에는 “청와대에 있었다고만 알고 있다”라고 짧게 답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이 의료 진료를 받지 않았냐는 질의에는 “청와대 관저 일은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세월호 당일 의료 행위 의혹에 대해 ‘여성 대통령이라 묻지 못했다’고 한 자신의 발언과 관련해서는 “적절치 않은 표현이었다. 죄송하다”라고 사과하며 “(박 대통령이) 주사를 맞았느냐 안 맞았느냐 왜 안 물어봤냐고 해서 그런 것을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그랬다”라고 덧붙였다.
김 전 실장은 정무수석실에서 참사 당일 7차례 대통령에게 서면보고를 한 것과 관련해서 “수석이 한 경우도 있고 해당 비서관이 한 경우도 있고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 난다”라고 말했다. 당시 대면보고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김 전 실장은 “지금 지나고 보면 좀 더 대면보고도 하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회한이 맞습니다마는 현장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현장에 지시를 한 걸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까지만 해도 그는 “긴박한 상황 하에서는 유선과 문서 보고로도 충분히 보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인 바 있다.
2014년 9월호 월간 신동아 ‘정국의 핵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최초 인터뷰&인물연구’ 기사에는 ‘세월호 7시간 미스터리’에 대해 그가 답한 내용이 나온다. 그는 4월 16일 당시 “(박 대통령은) 경내에 계셨고, 경호관과 비서관이 수행했고 21회에 걸쳐 보고를 받으시고 지시를 하셨음을 국회와 언론에 이미 밝혔다”며 “유선보고와 문서 보고로서도 충분히 보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고, 국가안보실장과는 통화한 사실이 있다. 긴박한 상황 하에서는 문서와 전화보고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보다 신속하고 효과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또한 “4월 16일 대통령께서 외부 인사를 접견한 일은 없다고 알고 있다”며 “비서실장이 넓은 청와대 경내의 많은 집무실 중에 (대통령이) 어느 곳에 위치하고 계시는지는 만나 뵙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고, 따라서 추측해서 말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답했다. 수시로 대통령과 상의하고 지시를 받아야 할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평일 동선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김 전 실장이 “외부 인사를 접견한 일은 없다”라고 잘라 말하는 대신 “접견한 일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유보적으로 표현한 점도 눈길을 끈다. 돌이켜 보면 김 전 실장의 유보적 표현은 무언가를 숨기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신동아는 재차 그에게 세월호 참사 당시 오전 10시부터 5시까지 박 대통령이 청와대 경내 어떤 장소(본관 집무실, 관사, 안가 등 제3의 건물)에 있었는지 물었다. 이에 그는 “대통령께선 외부 행사가 없었으므로 줄곧 청와대 경내에 있었다”며 “청와대 경내에는 곳곳에 집무실이 산재해 있어 언제 어디서든 보고를 받고 지시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국가원수인 대통령의 경호 필요성 때문에 위치와 동선은 비밀로 되어 있어 말씀드릴 수 없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드러난 사실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이날 본관 집무실이 아닌 관저에 머물렀다. 그가 숙소인 관저에서 제대로 보고받고 제대로 지시했는지 확인된 바 없다. 이날 대통령의 행적 중 유일하게 확인된 건 낮 시간에 미용사를 불러 올림머리를 했다는 사실이다. 오후 5시 반, 이미 세월호가 물속에 잠긴 지 몇 시간이 지난 뒤 중앙재난대책안전본부에 나타나서 “아이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는데 왜 구조하지 못했느냐”는 생뚱맞은 소리를 한 걸 보면 과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는지 의문이다.
“우리 대통령께서는 가족이 없으므로 기침(起寢)하셔서 취침하실 때까지 근무시간이며 경호관과 비서관이 언제나 근접 수행하고 있습니다.” 당시 김 전 실장이 신동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러나 가족이 없다는 박 대통령의 곁에는 최순실 일가가 있었고, 기침해서 취침할 때까지가 근무시간이라는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동안 뭘 했는지에 대한 의혹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김 전 실장은 정녕 7시간에 대해 모르는 것일까, 모르고 싶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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