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명 ‘엑소더스 1’.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박옥순(53) 사무총장이 공개한 기습점거 암호다. 임대료를 내지 못해 쫓겨날 처지에 몰린 장애인단체 살림꾼이 숙명적으로 떠맡아야 하는 악역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대인들이 가나안 땅을 찾아가듯이 장애활동가들이 일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투쟁’이다. 꼭 건물이 아니더라도 바람만 막을 수 있다면 그는 마다하지 않는다.
‘서울 은평구 불광역 주변에 좋은 자리가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것은 10월 중순이었다. 그는 땅을 보러 다니는 복부인처럼 서울시 도시재생센터를 조용히 방문해 현장 답사를 마쳤다. 그가 가장 먼저 확인하는 건 언제나 휠체어 경사로와 장애인 화장실이다. 인근 민주노동서울본부에 장애인 편의시설이 있는 걸 확인한 그는 곧바로 이삿짐을 쌌다. 10월 27일 새벽의 일이었다.
“갑자기 들어가서 농성을 시작하면 건물 주인이 대개 화를 내고 경찰을 부르고 싸움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민주노총 사람들은 같이 천막을 쳐주고 커피도 타주면서 ‘불편한 건 없느냐?’고 묻더라고요. 전기 코드까지 만들어주고 ‘있는 동안 마음 편하게 지내라’고 하는데 눈물이 왈칵 솟았어요.”
아스팔트 바닥에 텐트를 치고 컴퓨터를 설치했지만 실제 일하기는 어려웠다. 좁은 천막에 필요한 물품을 쌓다 보니 모여서 얘기할 자리조차 없었다. 게다가 강풍이 수시로 불어 텐트가 날아가고 컴퓨터가 망가지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어쩔 수 없이 서울시 부시장을 만나 지원을 요청했는데, 그 자리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2017년 초부터 이곳이 재개발된다는 얘기였다.
박 사무총장은 눈앞이 캄캄했다. 이제 와서 수개월째 임대료가 밀린 사무실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설상가상 함께 공간을 썼던 다른 장애인단체들도 머지않아 건물 밖으로 나가야 할 처지다. 시민들이 모아준 후원금으로 6년을 악착같이 버텼지만, 이제 활동가 임금도 제 날짜에 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박 사무총장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현실을 아파한다. “우리가 이러려고 장애인 운동을 했던가?”
6년 전, 8개 장애인 단체가 의기투합해 서울 당산동에 공동 사무실을 마련했을 때만 해도 꿈이 있었다. 빠듯한 재정이지만 조금씩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정부의 장애인 정책이 역주행을 지속하면서 장애인 활동가들은 ‘정상화를 위한 불법 투쟁’을 감수해야 했다. 누군들 자동차가 달리는 아스팔트에 드러눕고 위험천만한 철로에 들어가 쇠사슬을 묶고 싶었겠는가. 박 사무총장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도 우리를 돌아보지 않았다”고 말한다.
실정법 위반의 대가는 혹독하다. 처음엔 도로교통법 위반과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벌금 고지서가 날아왔다. 벌금을 낼 수도 없고, 내지도 않겠다는 일부 활동가들은 스스로 구치소에 들어가 노역을 살았다. 그러나 몸이 불편한 중증장애인들은 노역조차 감당할 수 없었다. 장애인 편의시설이 취약한 구금시설에 입소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선택이었다.
연말이면 미납 벌금이 수천만 원에 달했다. 빨리 갚지 않으면 동료가 감옥에 들어가야 하는 긴박한 상황도 수차례 겪었다. 이럴 때마다 장애인단체 활동가들은 특별 후원금을 모으거나 일일호프를 열어 목돈을 마련했다. 이쯤에서 이 바닥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이 있다. “불법 행위를 안 하면 벌금을 낼 일도 없지 않느냐?” 매우 슬픈 진실이지만, 이 나라 장애인들의 이동권과 교육권은 거지반 제도권 밖에서 이루어졌다.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른바 장애등급제 및 부양의무제 폐지가 쟁점이었다. 장애등급제 폐지는 장애인 당사자의 요구에 따른 복지 체계를 수립하자는 주장이고, 부양의무제 폐지는 복지 사각지대 해소가 주목적이다. 전장연은 이 문제가 향후 한국 장애인 복지정책의 쟁점이라 보고 서울 광화문역 지하도에 ‘불법’ 농성장을 차렸다. 당시 여야 대선후보는 전장연의 주장을 사실상 수용했으나, 지금까지도 정부 정책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2012년 8월 21일, 전장연이 광화문 지하도에 농성장을 마련한 지 4년이 넘었다. 그 사이 장애인 13명이 자살 또는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장애 등급이 낮다는 이유로 활동보조인을 쓰지 못해 화재 현장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이 있었고, 연락도 되지 않는 가족이 어딘가에 있다는 이유로 사회복지 서비스를 받지 못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있었다. 박 사무총장은 이런 비극적 사건을 접할 때마다 패러다임의 전환 필요성을 실감한다.
“6개월 동안 단 한번만 전화통화를 해도 복지 혜택이 사라지는 시스템, 복지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가족관계도 끊어야 하는 역설, 이런 참극이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현실에 대해 국가는 진지하게 답해야 합니다.”
이제 전장연이란 단체의 실체는 거리의 천막이다. 불광동과 광화문, 양쪽 모두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비합법 시설물이다. 거리에서 잔뼈가 굵은 백전노장이지만 2개의 야외 사무실을 유지하려니 심사가 복잡하다. 당장 문서를 만들고 보낼 사무기기부터 마련하기로 했다. 방식은 장애인단체 스타일의 연대문화제로, 박 사무총장의 남편인 이상엽 씨가 기획했다. 가수 이상은, 노래패 꽃다지, 마임아티스트 조성진 등이 열정페이를 약속했다.
11월 20일, 서울시청 8층에서 ‘전장연 연대문화제, 함께 소리쳐 우장창창’이 열렸다. ‘장애인이 거리로 나가면 세상이 시끄러워진다’는 세간의 편견처럼, ‘우장창창’ 문화제는 시종 시끌벅적했다. 수년 전 건강이 악화돼 춤을 배웠다는 박 사무총장도 말쑥한 유니폼을 입고 댄스그룹 ‘크러쉬 퀸즈’의 멤버로 무대에 올랐다. 박 사무총장은 이번 공연을 위해 춤곡 ‘댄싱 퀸’을 ‘투쟁 퀸’으로 직접 개사했는데, 중간에 등장하는 ‘오늘도 노숙이다’란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박 사무총장은 요즘 불광동과 광화문을 분주하게 오간다. 그가 일하는 불광동 천막엔 “죄송합니다. 이곳에서라도 일하고 싶습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는 한 달 활동비 120만 원으로 전국의 투쟁 현장을 누빈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래도 10만 원씩 적금 들고 시어머니 용돈도 꼭 챙긴다”고 말했다. 박 사무총장은 벌써부터 작전명 ‘엑소더스 2’를 구상한다. 겨울이 오기 전이었으면 좋겠으나, 아무래도 여의치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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