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극장가에는 두 영화가 주목 받는다. 한 영화는 포스터에 쓰인 문구가, 또 한 영화는 인물이다. 두 영화 모두 개봉 시기 때문이다.
“기막힌 이야기 좀 써봐.” 소설 수업을 들었을 때의 일이다. 누군가 이야기의 힘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써보라고 나무랐다. 그의 말에 수긍했다. 사람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니까. 분명하다.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새로운 이야기만이 사람들을 주목시킬 수 있다. 소설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나 만화도 그렇다. 다른 세상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상상력을 더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이야기. 그러니까 ‘뻥’을 그럴듯하게 잘 치는 것은 작가의 능력 중 하나인 셈이다.
비교적 자본 규모가 큰 영화나 드라마 분야는 이러한 ‘뻥’을 흥미롭고 재미있게 치기 위한 기획 단계를 거친다. “아, 이 정도 ‘뻥’이면 많은 관객을 끌 수 있을 것 같군요.” 제작자가 오케이를 하면 투자가 이뤄지고, 구체적인 스토리보드 제작이 시작된다. 지난 주 방영된 SBS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은 상상력에 박수쳐주고 싶은 드라마다. 상상의 뿌리는 명확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야담집인 어우야담의 인어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무에서 유는 없다.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작가나 기획자들은 새로운 이야기 소재를 발굴하려 취재를 한다. 기담이나 야담은 소재의 보물창고다. 또 있다. 바로 뉴스다. 현실의 사건사고는 언제나 우리의 상상력을 짓뭉갤 정도로 기가 차고, 말문이 막힌다. 수업시간에 혼나고 기막힌 소재를 찾으려 뉴스를 검색했을 때, 호랑이를 물어 죽인 인도의 한 남자 뉴스를 발견했다. 댓글이 많지 않은 평범한 해외토픽이었다. 현실은 그렇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수시로 벌어진다. 현실이 말이 안 되면, 기막힌 소재를 필살기로 한 영화는 힘을 잃는다. 그 소재를 만든 ‘뻥’이 초라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뻥’치지 않는 영화가 주목받는 시기도 있다. 현실의 거대한 부조리를 마주했을 때다. 거대한 규모의 사건에 지친 사람들은 자극적인 소재의 ‘뻥’보다 ‘사실’을 알고자 한다.
요즘 극장가에는 두 영화가 화제가 되고 있다. 한 영화는 거대한 사건을 소재로 삼았고, 다른 영화는 실제 인물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쫓았다. 그리고 두 영화를 관통하는 것은 작금의 현실이다.
표어가 걸림돌. 영화 ‘마스터’
영화 ‘마스터’는 제작 단계에서부터 화제가 됐다.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 대한민국에서 각 세대를 대표하는 가장 뜨거운 배우 셋이 뭉쳤다. 세 배우의 조합만으로도 이 영화의 화제성은 충분하다. 게다가 사건의 규모도 거대하다. 조 단위 천문학적 액수의 사기사건이 배경이다. 사기범을 쫓는 지능범죄수사대와 사기범의 브레인이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다. 당연히 통쾌한 복수극과 반전의 반전을 기대하게 만든다. 강동원은 지능범죄수사팀장을 연기했고, 이병헌은 정관계를 넘나드는 네트워크를 가진 희대의 사기꾼을, 그리고 김우빈은 이 둘 사이를 오가는 브레인을 맡았다.
여기까지는 참 좋다. 하지만 영화 포스터에서 이 세 배우는 ‘건국 이래 최대 게이트’라는 표어 아래 뭉쳤다. 기대는 거기서 반감된다. 만약 지난 여름에 개봉했더라면, 저 표어는 충분히 힘을 가졌을 것이다. 자극적이고 거대한 소재니까. 하지만 현 시국에서 ‘정관계를 넘나드는 네트워크를 가진 사기꾼이 벌이는 사기’는 뉴스 헤드라인을 차지하기에는 다소 부족해 보인다. 일기예보 앞에 나오는 토막 뉴스 정도이거나 혹은 다뤄지지 못할 수도 있다. 저 글귀 하나로 영화의 상상력과 소재는 초라해진다.
물론 포스터의 표어와 소재만으로 영화를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 꽤 잘 만들어진 탄탄한 이야기 전개와 배우들의 연기력, 화려한 영상미 등으로 ‘마스터’는 충분히 흥행할 수 있다. 영화 ‘마스터’가 개봉 전에 부딪친 것은 영화 자체에 대한 문제가 아닌 시기에 대한 문제다. 영화보다 더 거대한 게이트를 현실에서 마주한 관객들이 영화의 소재에 동할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다시 주목 받는 가치. 다큐멘터리 ‘무현, 두 도시 이야기’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다큐멘터리다. 영화의 제목은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에서 따왔다. 소설의 두 도시가 파리와 런던이라면,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배경은 부산과 여수다.
카메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0년 총선에 출마했던 부산과 백무현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4‧13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여수를 오간다. 16년이라는 시간 차이가 있고, 지역도 다르다. 하지만 두 주인공의 이름이 같다. 또 낡은 정치를 타파하고 새로운 정치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도 같고, 낙선하는 것도 동일하다. 시간은 흘렀고 시대는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동일한 가치를 주장하며, 어려운 싸움에 도전하고 실패하는 사람들을 현실에서 목격한다. 그리고 스크린에서 우리를 대신해 싸웠던 사람과 그 사람의 용기를 깊이 들여다본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구성과 시도가 흥미롭지만, 다큐멘터리 자체로만 봤을 때에는 잘 만들어졌다 하기에는 다소 감상적으로 치우쳐져 아쉽다. 이 다큐멘터리의 화제성에는 개봉 시기도 한몫했다. 공교롭게도 최순실 게이트가 불붙기 시작한 10월 26일 개봉했다. 현 정부에 대한 반발이 거세진 시점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현 시국에 야당에 정치적 힘을 더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날을 예견하고 개봉일로 정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가 나올 수 있던 이유는 분명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대중이 많아지고 참여정부에 대한 그리움이 사회 전반에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 시국이 과거의 정부를 불러왔고, 16년 전의 가치를 되새기게 만들었다. 한 달 가까이 상영 중인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잔잔한 행보를 보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앞으로 나아갈 ‘기막힌 상상력’만이 아니란 것을 느끼게 된다.
조진혁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에디터 radioplayer@naver.com
*사춘기 이전부터 대중문화에 심취했다. 어른이 되면 고급문화에 심취할 줄 알았는데, 더 자극적인 대중문화만 찾게 되더라. 현재는 인터넷 문화와 B급 문화뽕까지 두루 맞은 상태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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