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D/ Opinion]“그날 그들은 지옥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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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년 12월 6일 13시 33분


육성철의 Human Space(2)
한 맺힌 사투 벌이는 밀양 송전탑 노인들


행정대집행 현장을 다시 찾은 박순연 씨. 최근 무죄 판결을 받았다.
행정대집행 현장을 다시 찾은 박순연 씨. 최근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14년 6월 11일 경남 밀양시 765kv 송전탑 건설 예정지에 대한 행정대집행이 있었다. 하늘엔 헬리콥터가 날아다니고 산등성이마다 경찰기동대가 진을 쳤다. 노인들은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쇠사슬로 몸을 묶었고, 용역 직원들은 절단기를 들고 차례차례 움막을 철거했다. 산골짜기에 비명이 울렸고 쓰러진 노인들은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

박순연 할머니(72)는 그날 새벽부터 765kv 송전탑 진입로를 지켰다. 수년 동안 산길을 오르내리느라 다리에 탈이 났지만 이날만큼은 현장에 머물고 싶었다. 장비를 갖춘 용역 직원과 경찰이 나타나자 박 할머니는 오물이 든 페트병을 길바닥에 던지며 저항했다. 아픈 다리를 지탱하던 지팡이로 외부인의 침입을 저지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노인들의 바리케이드는 곧바로 무너졌다.

박 할머니는 그날 행정대집행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경찰 조사를 받고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은 지루했고 그 사이 집으로 벌과금이 수차례 날아들었다. 밀양에서 태어나 농사만 짓고 살아온 노인에게 형사절차는 낯선 경험이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그날의 트라우마는 좀처럼 씻기지 않았다. “세상에 이런 법은 없다”며 마을이장인 남편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의문의 화재로 전소된 청도 대책위 컨테이너 박스 위로 송전탑이 지나간다.
의문의 화재로 전소된 청도 대책위 컨테이너 박스 위로 송전탑이 지나간다.


2016년 11월 3일 창원지방법원 밀양지원은 박 할머니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할머니가 경찰관의 머리채를 잡아당긴 사실은 인정되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 행정대집행을 고려할 때 칠순 노인의 저항을 처벌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비록 유죄를 면했으나 할머니가 지극정성으로 보살핀 문중의 선산 위로 철탑이 박혔다. 유죄를 면했으나 웃을 수 없는 이유다.

해질 무렵, 박 할머니를 모시고 765kv 송전탑을 찾았다. 흐린 날씨 탓인지 송전탑에 접근하자 ‘지르륵 지르륵’ 하는 전기의 요동이 바닥까지 느껴졌다. 이따금씩 송전탑과 고압선이 이어진 곳에서 불빛도 보였다. 한국전력이 공개한 자료 등을 종합하면 아직까지 목표치의 절반만 실어 보내는 상태다. 76만5000볼트의 전기가 완전히 탑재된 뒤 이 산골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가늠하기 어렵다.

2013년 5월 22일, 박 할머니는 그날도 이 자리에 있었다. 할머니들은 용역직원들이 포클레인을 몰고 들어온다는 첩보를 입수하자 기습적으로 공사 예정지를 먼저 차지했다. 용역과 경찰들은 겹겹이 둘러싸고 할머니들이 지치기를 기다렸다. 날은 뜨거웠고 목이 탄 할머니들은 수박과 냉수로 목을 축였다. 경찰은 할머니들이 화장실에 가는 길을 열어주었으나 돌아오는 문은 굳게 닫았다. 할머니들은 할 수 없이 농성장을 지키기 위해 손자뻘 되는 청년들 앞에서 옷을 벗고 소변을 보았다.

대집행이 시작되자 지옥이 보였다. 경찰과 용역은 노인들을 담요에 말아 한 사람씩 끌어냈다. 노인들은 악을 쓰며 버티다 기운이 빠져 나가 떨어졌다. 박 할머니는 끌려나오지 않으려고 거친 몸싸움을 벌이다 땅바닥에 벌겋게 수박을 토한 뒤 혼절했다. 뒤늦게 현장으로 달려온 박 할머니의 남편 권영길 이장(74)은 부인이 피를 쏟고 죽은 것으로 오해하고 노끈으로 자기 목을 조이며 자해를 시도하다 쓰러졌다. 목숨을 건 노인들의 투쟁으로 밀양 행정대집행은 1년 가까이 지연될 수 있었다.

예로부터 밀양의 명소로 이름을 날렸던 화악산이 이들의 터전이다. 송전탑이 묘지와 농토를 가르고 지나간 땅에서 농부는 상처를 이기지 못한다. 싸울 때는 다른 것들이 보이지 않았는데 싸움이 끝나고 나니 잃어버린 게 눈에 들어왔다. 고구마 몇 개만 삶아도 이웃과 나누던 사람들이,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앙숙이 되었다. 밥도 따로 먹고 목욕탕도 따로 다닐 만큼 마을 공동체는 심각한 위기다.

농사 말고는 아는 게 없었다는 박 할머니의 입에서 세상에 대한 원망이 쏟아졌다. “도시 사람들은 송전탑이 필요하고 안전하다고 말합디더. 그렇게 중요하면 자기들 동네에 가져가라고 해요.” 송전탑이 아니었다면 손주들 재롱이나 보면서 노후를 보냈을 노인이 정부 인사정책까지 성토하는 시절이 되었다. “행정대집행 잘했다고 경찰서장은 청와대 들어가고, 지방경찰청장은 경찰청장 승진하고, 이게 말이 되는 이야깁니까?”

비닐하우스에서 지내는 송전탑 반대 노인들.
비닐하우스에서 지내는 송전탑 반대 노인들.


밀양 지역 행정대집행으로부터 40여 일 뒤 이번엔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에서 유사한 싸움이 벌어졌다. 밀양보다는 약한 345kv 송전탑이라지만 논과 밭을 횡단하는 루트여서 주민 반대가 격렬했다. 그러나 청도는 밀양만큼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밀양의 경우 2012년 이치우 노인이 분신하고, 1년 뒤 유한숙 노인이 음독자살하면서 전국의 희망버스가 몰려들었으나, 청도는 지역주민과 소수의 자원활동가들만 현장에 상주했다.

2014년 7월 25일 새벽, 삼평리로 통하는 길이 차단됐다. 주민들은 “아침에 일어나 문밖에 나가보니 어제까지 없던 망루가 생겼다”고 그날의 황당함을 기억한다. 청도 또한 밀양처럼 할아버지보다는 할머니들이 맨몸으로 맞섰다. 포클레인으로 파놓은 구덩이에 떠밀려 들어간 노인과, 망루를 살펴보러 올라간 부녀회장은 업무방해로 체포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삼평리 노인들은 형사 사건보다 민사 소송이 더 힘들다고 고백한다. 주민 책임이 아닌데도 마구잡이로 소송을 제기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얘기한다. 돈으로 인한 고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송전탑 찬성 주민에게만 돈 봉투와 선물이 전달되는가 하면, 언제부터인가 마을회관에서도 찬성파와 반대파가 사납게 맞섰다. 시간이 흐를수록 찬성파 주민이 늘어나면서 반대파 노인들은 마을회관을 떠나야 했다. 팔순의 할머니는 “자식 또래 젊은이가 인사도 안하고 지나가는 모습이 슬펐다”고 털어놓는다.

삼평리 노인들은 구멍이 숭숭 뚫린 비닐하우스 구석 평상에 전기담요를 깔고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한국전력에서 전기요금을 할인해주겠다는 제안조차 단호히 거절한 그들이었다. “시집 와서 60년을 살면서 그날처럼 서러운 날이 없었다”는 할머니는 “철탑이 뽑힐 때까지 싸움은 끝난 게 아니다”고 말했다.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다는 몸부림으로 보였다.

겨울이 목전이다. 삼평리 노인들을 돕기 위해 찾아온 외부인들이 지내던 컨테이너 박스가 최근 의문의 화재로 전소됐다. 경찰은 화재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고, 노인들은 외부와 만날 창구를 잃었다. 무엇보다 아쉬운 건 컨테이너에 보관돼 있던 각종 자료가 모두 사라진 점이다. 아침저녁으로 비닐하우스를 오가며 노인들을 보살피는 이은주 부녀회장은 “할머니들의 싸움이 헛되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버짐이 가득한 노인들의 손등을 바라보며 ‘전기가 피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생각을 되새겼다.

*청도 삼평리 후원 : 508-11-009397-5(대구은행 변홍철)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
#육성철#밀양#송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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