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D/ Opinion]시한부들의 48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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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년 12월 14일 14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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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혁의 B급 살롱

tvN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내게 남은 48시간’. (tvN 제공)
tvN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내게 남은 48시간’. (tvN 제공)
TV를 켜자 연예인이 나왔다. 그에게는 48시간이 남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48시간 뒤에는 사망한다는 것이다. 죽음을 48시간 앞둔 그는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정리하려고 든다. 웃기 어렵지만 감동을 자아내기에는 괜찮은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tvN ‘내게 남은 48시간’은 리얼리티 예능이다. 출연자는 시한부 체험을 하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현재의 삶에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댓글을 찾아보니 시청자 역시 자신의 삶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방송에서는 출연자들의 진심도 느낄 수 있었다. 너무 진지해질까봐 MC들이 웃음도 선사했다. 연출 또한 과도한 자극을 피하며 웰다잉이라는 소재를 적절히 다뤘다. 나 역시도 웰다잉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그러니까 건강하게 죽는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다. 그러다 보니 부럽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죽음을 앞둔 시한부가 저 출연자처럼 건강하다면 삶을 정리할 수 있을 것, 주변 사람에게 감사함을 되돌려 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고 겪어온 시한부들도 마음만은 저 출연자들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시한부들은 고맙다는 말조차 하기 힘들어 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으니까.

죽음을 앞둔 시한부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방송에서 메이크업으로 만든 가짜 시한부가 아니라 진짜 시한부에 빙의해 보자는 것이다. 대부분의 중환자가 그렇듯 발목을 살짝만 움직여도 뼈가 시리는 고통을 느낄 것이고, 대소변도 스스로 가릴 수 없는 처지일 것이다. 소변줄을 요도에 끼우고, 침대에 누워서 내 소변이 비닐백에 노랗게 가득 차는 걸 지켜 봐야할 것이다. 만일 내가 그걸 지켜볼 만큼 의식이 있다면 말이다.

그걸 지켜보는 것은 무력함이 아니라 부끄러움과 죄책감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무표정하게 그 소변백을 비우는 모습을 봐야하기 때문이며 그것이 더럽지 않다고 연기하는 모습까지 봐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병실 가득 구린내가 감돌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내 기저귀를 들춰볼 것이다. 성인 남자의 무거운 다리를 들고, 아니 혼자 하지 못할 테니 간호사나 간병인에게 도움을 청할 것이다. 두세 명의 사람이 내 기저귀를 갈고, 엉덩이에 붙은 변 찌꺼기를 닦아낼 것이다. 냄새가 지독하기에 마스크를 쓰고, 인상을 찌푸린 사람들이 다시 기저귀를 채워줄 것이다. 그때마다 구역질나는 냄새가 코를 찌르겠지만 그게 신경 쓰인다면 다행일 것이다. 기저귀를 채우느라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뼈가 시리는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건 하루에도 여러 번 반복되는 과정 중 하나일 뿐이다. 하루의 대부분은 그러니까 48시간의 절반은 약물에 취해 자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 잠에서 깨면 그 짧은 순간 동안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정신 차리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것은 정말 엄청난 노력일 것이다. 내 삶에서 그보다 더 노력한 적을 없을 정도로. 경구진통제는 소용이 없을 상태일 것이고, 진통제는 혈관에 직접 투약하는 상태일 것이다. 그럼에도 뼈가 부서지고 머리가 터질 듯한 고통을 완벽히 덜어낼 수 없을 것이다.

입안은 텁텁하고, 물 한 모금 넘기는 것도 눈물이 날 정도로 괴로울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사랑하는 이를 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정신을 놓지 않으려는 노력을 말이다. 더 이상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테니 눈을 가늘게 뜨고, 그 사람의 얼굴을 쳐다 볼 것이다. 그 순간 내 혀가, 내 턱이 고맙다는 말을 할 수 있게 움직인다면 정말 고마울 것이다. 그게 내가 보아온 시한부들의 48시간이다.

그들에게 48시간은 너무 길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분단위로 쪼개져 엄습하는 고통을 2880분 동안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48시간 그러니까 2880분이란 거대한 고통의 규모는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그런 상태에서 웰다잉이란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무엇을 떠올릴까? 뉴스에서 보았던 안락사? 사랑하는 사람에게 죽음이라는 영원한 상처를 주는 것에 대한 면죄부? 무엇일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어쨌든 48시간 남은 죽음이란 저런 모습일 것이다.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주변 사람들을 만나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것이라면 차라리 48개월 시한부라고 하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물론 프로그램의 의도는 이해된다. 자신을 되돌아보자는 취지인 것도 잘 안다. 그것이 많은 시청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지켜야할 선이 있다. 현재 시한부이거나 시한부의 가족, 시한부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불편할 수도 있겠다. 죽음이라는 끝이 보이는 싸움을 하는 사람들에게 고난을 극복한 사람들의 자기 자랑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화재 현장 옆에서 담배빵을 자랑하는 꼴이다. 그리고 문제는 주변에 시한부를 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병마와 싸우는 환자를 지켜보며 마음 아파하는 사람도 꽤 많다. 그들에게 죽음이나, 시한부라는 단어는 무심코 듣기만 해도 심장이 떨어질 정도로 무거울 것이다.

조진혁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에디터
조진혁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에디터
이 프로그램은 웰빙과 힐링의 연장선에 있다. 대중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자는 것. 그것이 따뜻한 무언가를 전해줄 수 있다고 제작진은 믿는 것 같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그 방송을 보지 않아도, 뉴스에 검색되거나, 광고를 보는 것만으로도 슬픔과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죽음을 진정성 있게 다루는 것은 위험한 시도다.

죽음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에 추상적으로 다룰 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암, 시한부 등 죽음의 방식을 구체적으로 사용하면 문제가 된다. 누군가의 트라우마를 자극하기 때문이며, 리얼을 표방하기에 기만으로 해석될 가능성도 높다.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타인의 슬픔을 무시하는 태도는 도시로 소풍 나온 고질라와 다를 바 없다. 고질라는 빌딩을 부수며 힐링 받겠지만, 겁에 질린 시민들에게 고질라의 미소는 아무런 위로도 되지 못 한다.

조진혁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에디터 radioplayer@naver.com

*사춘기 이전부터 대중문화에 심취했다. 어른이 되면 고급문화에 심취할 줄 알았는데, 더 자극적인 대중문화만 찾게 되더라. 현재는 인터넷 문화와 B급 문화뽕까지 두루 맞은 상태로 글을 쓴다.
#시한부#내게남은48시간#매거진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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