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D/ Opinion] 설리의 ‘로리타 컨셉’ 논란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

  • 동아닷컴
  • 입력 2017년 1월 4일 11시 09분


박세회의 Outsight/Infight

설리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설리 인스타그램)
설리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설리 인스타그램)


2015년 사진작가 로타와 작업을 같이한 이후 설리에게 붙은 꼬리표는 ‘로리 컨셉’이다. 최근 설리는 이런 비판이 계속되는 게 끔찍했는지 ‘로리타 로리타 적당히 해라. 알맞은 데 가서 욕 하렴. 내 이쁜 얼굴이나 보고’라는 포스팅을 올렸다가 2만 개의 댓글을 받았다. 설리의 인스타그램은 지금 전장이다. 설리의 인스타그램에 달린 2만 개 이상의 댓글 중 가장 눈에 자주 띄는 건 “로리 자체가 범죄”라는 말이다.

이 기회에 용어를 잠시 정리해야겠다. 여기서 말하는 ‘로리’가 뭘까? 아마도 소아성애증이나 아동 성폭력을 염두에 두고 나온 말일 테다. 그런데 이 둘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뉴욕 타임스의 2014년 기사 ‘소아성애증 : 범죄가 아닌 장애’에 따르면 인구의 1%(대부분 남성)가 성인이 된 후에도 사춘기 전의 이성 또는 동성에게 성적으로 끊임없이 끌리는 소아성애증을 가졌다. 다만 이는 장애의 ‘증상’이지 ‘행위’가 아니어서 ‘범죄’라 할 순 없다. 소아성애증을 옹호하자는 게 아니다. 최근 뇌과학 연구에서 소아성애증이 태생적인 장애일 수 있다는 증거가 속속 발견돼 더욱 조심스러운 구분이 필요하다는 뜻일 뿐.

소아성애증을 가진 사람이 사회에서 절대 받아들여질 수 없는 자신의 욕망을 행동으로 표출하면 그때 ‘아동성범죄’가 된다. 그러니 ‘로리 자체가 범죄’라는 말이 전자를 가리켰다면 틀린 말이고, 후자라면 동어 반복, 장애는 범죄가 아니고, 아동 ‘성범죄’는 당연히 범죄다. 그런데, 설리가 인스타그램에서 아동성범죄를 저질렀나? 소아성애증인가? 아마 그런 뜻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로리가 범죄’라는 건 ‘외국이었다면 로타와 설리가 손잡고 감옥에 가야 한다’는 또 다른 댓글과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성적인 감흥을 일으키는 어린 여성의 콘셉으로 이미지를 만들면 아동성범죄를 부추기기 때문에 이 역시 처벌받아야 한다는 의미. 일단 일개 사진집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포스팅보다 그 기준이 훨씬 더 엄격한 해외 광고의 영역에서도 범죄는 아니다.

다코타 패닝은 16살이던 2011년 마크 제이콥스의 향수 ‘오! 롤라’ 광고에 등장한 적이 있다. ‘롤라’는 소설 속 롤리타의 별칭이라 이보다 더 직접적으로 ‘로리 컨셉’일 순 없다. 그런데, 사진을 찍은 사람은 감옥에 갔을까? 아니다. 잘 활동한다. 이 광고는 영국의 광고자율심의기구에서 향수를 다리 사이에 둔 게 ‘성적으로 자극적’이라며 금지됐는데, 오히려 다수의 언론은 영국의 심의기구가 대체 왜 저렇게 엄격하게 구는지 이상해했다. 다코타 패닝도 2013년 한 인터뷰에서 ‘당시에 놀랐다’며 ‘그런 연상을 한 게 오히려 이상하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마일리 사이러스가 16세에 배너티 페어 표지에 거의 반라로 등장한 걸 생각하면, 우리뿐 아니라 영미에서도 ‘심의의 기준’은 갈린다.

그럼에도 설리의 사진이 아동성범죄를 부추길 수 있다는 문제 제기는 정당하다. 성적인 함의를 담은 사진이 아동을 연상케 하고, 이 사진이 별 문제 제기 없이 받아들여진다면 자칫 사회가 아동의 성적 대상화에 너그러워졌다는 사인으로 오인될 수 있기 때문. 다만, 인터넷에 떠도는 ‘설리가 아동 성범죄를 부추긴다’는 단정적인 결론은 사실이 아니다. 미성년으로 보이는 피사체가 등장하는 시각 이미지가 아동 성범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제대로 연구된 바가 거의 없고 연구하기도 쉽지 않다.

가장 근접한 것으론 포르노가 성범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들이 있는데, 이 연구를 문제 제기의 근거로 삼거나 반론의 배경으로 가져올 순 없다. 일단 설리의 사진이 포르노가 아니고, 사회과학이 대부분 그렇듯 연구에서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구분해 증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반대 입장에선 노출의 수위로만 따졌을 때 설리의 반바지 사진이 그렇게 위험하다면 TV는 핵폭탄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왜 그런지는 아이돌 그룹의 안무와 의상을 굳이 묘사하지 않더라도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대체 왜 아이돌 그룹들의 선정적인 의상과 안무보다 설리의 사진이 위험해 보일까? 그리고 어쩌면 이게 핵심이다.

설리의 사진이 위험해 보이는 이유는 로타가 찍었기 때문이다. 로타의 사진, 특히 작가가 ‘미소녀 시리즈’라고 이름 부르는 일련의 사진에는 공통으로 읽어낼 수 있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일단 그는 여성을 정물 피사체처럼 다룬다. 공기도 없이 햇살만 있는 듯한 진공의 공간에 특정한 포즈로 멈춰있는 ‘미소녀’(로타의 표현), 주름이 없는 돌핀 쇼트나 수영복을 입고 살짝 벌리거나 가볍게 다문 입. 빛이 팔방에서 들어오기라도 하듯, 잡티 없는 피부에는 그림자도 지지 않고, 셔터를 꽤 오래 열어놓은 것 같은데도 흔들림 없는 그녀들은 렌즈 앞에서 아무런 말이 없다. 아무리 오래 들여다봐도 로타의 사진 속에 있는 그녀들은 생각하거나 감정을 갖거나 말을 걸지 않는다. 로타가 일본 그라비아 사진첩이나 포르노 만화 표지에 나올 법한 클리셰를 모두 모아 만든 사진 속의 피사체는 그래서 한없이 수동적이고 순종적이다.

박세회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뉴스 에디터
박세회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뉴스 에디터
“사진 속의 여자들은 자아를 삭제당하고 오로지 성적으로만 대상화된 ‘이성애 남성의 환상’처럼 보여 불편하다.” 로타의 사진을 본 한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이런 수동성이 성적인 긴장을 알 리 없는 아동의 심리상태와 겹쳐 보이기 때문에, 아동성범죄의 피해자라면 이 사진이 불쾌할 수도 있다.” 로타의 사진을 본 또 다른 여성의 말이다. 로타는 ‘설리 측에서 먼저 작업하자고 제안했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런데, 설리는 자신의 사진이 이렇게 받아들여질 것이란 사실을 알고 렌즈 앞에 섰을까?

‘설리를 공격하는 건 다 페미니스트’라는 오해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페미니스트 중에 로타가 찍은 설리의 사진을 보고 성범죄 피해자의 처지에 더 심하게 공감해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에 좀 더 방점을 두는 쪽에선 그 사진을 제외한 다른 사진들을 보며, 설리가 다른 20대의 스타 중에서 여성으로서 가장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건 또 다른 여성의 견해다.

설리는 2015년의 작업으로 지금까지 욕을 먹지만, 로타는 그 후로도 걸그룹 스텔라, 배우 도희, 프로듀스 101의 정채연 등과 비슷한 콘셉의 화보를 촬영했다. 수많은 모델이 그의 렌즈 앞에서 표정을 지워가며 화보를 찍었다. 그는 전례 없이 사진 전시회에 피사체가 된 모델들을 참석케 하고 사인회를 개최했는데, 20~30대 남성이 몰렸다. 설리의 인스타그램에는 악성 댓글이 난무하지만, 로타의 인스타그램에는 최근에도 ‘와 작가님 짱 역시 대박’이라는 매우 정겨운 댓글이 달린다.

박세회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뉴스 에디터 rapidmove81@hotmail.com

*연예, 음악, 영화, 섹스의 영역에서 정치와 사회적 이슈를 읽는 데 관심 많은 그냥 사람. 가장 좋아하는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와 생일이 같은 선택 받은 팬이자, 가장 좋아하는 밴드 틴에이지 팬클럽의 한국 수행을 맡았던 성공한 덕후.
#설리#로리타#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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