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해외입양 시인 눈물의 향수곡「너의 창을…」

  • 입력 1996년 12월 11일 20시 17분


「鄭恩玲기자」 「내 이름은 김현영, 한국의 서울에서 태어났다. 생일은 71년2월4일. 하지만 이 날짜는 확실치 않아. 불행하게도 내가 태어난 날을 정확히 알 수 있는 길이 없으니까…」. 오빠의 손을 놓치고 고아가 되었던 한국소녀. 파란눈의 양부모에게 입양됐지만 뿌리를 뽑힌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통곡 대신 시를 썼던 현영 타라니(25·이탈리아 피렌체 거주)가 모국에서 시집 「너의 창을 두드리며」(우석 간)를 펴냈다. 옮긴 이는 주한 이탈리아대사관 공보관 김홍래씨. 『아직도 저 자신을 시인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를 통해 저나 다른 사람들이 가진 고통을 공유할 수 있다는 생각때문에 날이 갈수록 시 쓰는 일에 애착을 갖게 됩니다』 현영씨는 95년 「전쟁」이라는 시로 피렌체의 권위있는 문학잡지 「일 파우노」가 주는 문학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현지 평론가들은 현영씨의 작품을 「고통과 사랑이 짙게 배어있는 동양적인 시」라고 칭찬했다. 그러나 「너의 창…」에 수록된 40여편의 작품은 시인을 꿈꾸는 젊은이의 습작이 아니라 현영씨가 눈물로 쓴 「향수곡(鄕愁曲)」이다. 「나는 생애의 한순간에 너를 잃었다/그리고 다시 눈을 뜰 때까지/너는 나의 모든 세계를 갈기갈기 찢은 일상의 생각이었다…」(「잿빛 공허 속에서」중) 시속의 「잃어버린 너」는 한 순간도 잊을 수 없었던 오빠. 오빠는 한국말도 잊어버린 현영씨에게 고향을 기억하게하는 유일한 실마리였다. 미아가 된 뒤 고아원에서 자라다 76년 이탈리아로 입양된 현영씨는 양부모의 극진한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사춘기시절 자폐에 가까운 고립속으로 빠져든다. 그러나 침묵에 빠져있다가도 솟구쳐오르는 고통을 참기 어려울 때는 펜을 들고 닥치는 대로 끄적거렸다. 「시를 쓴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대인기피 때문에 고등학교도 중도포기한 자신의 글이 「시가 될 수도 있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다니던 성당의 신부가 현영씨 몰래 투고한 시가 「일 파우노 문학상」을 받자 현영씨는 모국에서 시집을 펴낼 계획을 세웠다. 시집이 발표되면 가족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한가닥 기대 때문이었다. 기적이 일어났다. 지난9월 시집출간계약을 위해 한국을 찾은 현영씨의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뒤 생모 김선옥씨와 오빠 표진, 남동생 표석씨가 달려왔다. 가족들을 통해 자신이 「김현영」이 아닌 「이표숙」이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생부(生父)가 현영씨를 잃어버린 뒤 시름에 잠겨 몇해만에 세상을 떠났다는 가슴아픈 얘기도 들었다. 애끊는 심정으로 「표숙이」를 기다려온 가족들에게 시집 「너의 창을 두드리며」는 현영씨가 주는 최고의 선물이 됐다. 『제 시를 읽는 분들에게 자신의 존재에 대해 용기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고통을 가졌다 하더라도 자기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하는데 두려움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현영씨는 현재 이탈리아에서 양부모와 함께 살며 봉사단체 「하느님의 자비」에서 병든 노인들을 돌보는 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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