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작가]설치작가 홍수자씨

  • 입력 1997년 8월 18일 07시 29분


여류 설치작가 홍수자씨(32)는 작품을 통해 일상생활의 「순간을 낚아채는」 작업을 한다. 언젠가 외국여행중 급하게 여권사진을 찍었다. 촬영이 끝난줄 알고 표정을 누그러뜨렸는데 연속해서 자동 카메라가 터졌다. 사진속에는 놀라고 찡그린 표정이 들어있었다. 「거울을 보고 놀란 여우」 「순간을 옷 입기」 「티 스푼으로 눈물을 재며 우는 여자」 등은 이같은 찰나의 생각들을 포착하고 있다. 평론가 심상용씨는 『일상의 아이디어를 다의적이고 입체적인 의미로 형상화해 뚜렷이 정의될 수 없는 특이한 작품세계를 보인다』고 했다. 홍씨는 서울대 대학원1학년 시절인 지난 89년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인 조각가 문주씨(36)와 지난해까지 뉴욕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주부생활과 작품생활을 병행하면서도 열정과 기발한 상상력으로 평단의 기대를 받고 있다. 최근까지 그의 일관된 관심사는 「욕망」. 욕망으로 인한 상처와 고통, 그 상처에 대한 연민, 자기성찰 등을 표현한다. 표현소재는 동물의 해골, 잘라진 다리 등 뜻밖의 것들. 그는 25일부터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그는 이를 위해 최근 서울 마장동 우시장에서 사온 소 머리뼈를 삶았다. 골수에까지 파고든 벌레들이 나왔다. 그처럼 영혼 깊숙이까지 파고 든 욕망. 『이들을 벗겨야 그 순수한 평온에 도달할텐데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와 멧돼지의 머리뼈를 늘어놓고 그 이빨 사이에 일기와 편지, 시 등 여러 글을 끼워 놓은 「되새김질하지 못했던 말들」. 최근 그는 어릴적의 체험을 떠올린다. 끈에 묶여 나무주위를 돌며 놀던 아이는 끈이 풀려 옆에 있던 황소 곁으로 간다. 황소는 어린 아이의 가슴을 밟고 지나간다. 하지만 어린아이는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그 아이가 황소를 적대적으로 바라보거나 그 발굽을 의식했을 때도 상처를 입지 않았을까. 그는 이 때의 무의식적 순수가 개인을 보호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러한 순수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이러한 상태에서 구원은 무엇일까. 욕망을 인정하거나 거리를 두거나 무시하거나…. 그는 욕망에 지나치게 저항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마음의 상처를 피하는 것을 모색하고 있다. 〈이원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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