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한국을 덮친 경제위기. 국가부도란 말이 나올 정도다. 언제 안정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상실감 패배감에 젖어있을 수만은 없다. 이미 가정이나 기업현장에서 새로운 작은 노력들이 시작됐다. 시련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서려는 몸부림들이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거품을 빼고 제모습 제자리를 찾으려는 실천들이다. 그 현장을 매주 월∼금요일 찾아가 본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용수철을 만드는 삼원정공. 아직 주위가 어스름한 오전 7시. 작업복 차림의 직원들이 깡통을 하나씩 들고 줄을 지어 서 있다.
깡통 이름은 ‘현금통’. 규격에 다소 어긋나는 불량품들이 들어있다. 이 자리에선 각 부서별로 전날 불량품을 얼마나 만들었는지 검사를 받는다.
“불량품을 하나 내는 것은 결국 그만큼 돈을 낭비하는 겁니다. 단 한개의 불량품이라도 허용하지 말자는 거죠.”
왕철석(王鐵錫·37) 제조1부 계장의 설명.
국제통화기금(IMF)한파 속에 기업마다 경비절감운동에 나서고 있지만 삼원은 이미 10여년째 ‘자린고비 정신’을 체질화해왔다. 대기업들도 맥없이 나가떨어지는 극심한 불황기에 삼원의 ‘흔들리지 않는 경영’ 비결이 바로 이것이었다.
자산 1백60억원, 부채비율은 불과 20%. ‘무분별한 차입경영’이란 말과는 거리가 멀다. 지출 장부에서 ‘접대비’ 항목은 찾아볼 수 없다.
“우리기업들은 어려울 땐 ‘경비 절감’을 외치뉨立도 잘되면 금세 잊어버리고 말아요. 근검정신이 생활화돼 있지 않으면 IMF는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몰라요.”
양용식(梁龍植·51)상무의 철학은 확고하다. ‘낭비요인 제로’에 도전하는 삼원의 노력은 회사 설비와 기계 하나하나에 철두철미하게 배어 있다. 무조건 아끼자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게 돼있다.
화장실 앞엔 ‘사용중’표시 자석판이 달려있다. 마지막 사용자는 자신 외에는 사용자가 없다는 것을 쉽게 확인하고 화장실내 전등을 끄게 된다. 건물의 각층을 연결하는 ‘서류수송관’ 덕분에 서류 전달하는 사람이 필요없고 시간도 대폭 줄였다. 사무실 벽에 걸린 ‘외출판’을 보면 직원들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한번 쓰고 버리기 쉬운 서류봉투. 이곳에서는 무려 24번이나 재활용한다.
줄인 경비는 직원들의 과실로 분배된다. 1백70명의 직원들은 대기업 이상의 급여 복지수준을 누린다. 대기업보다 20여일 많은 연 94일의 유급휴가도 꼭 써야 한다.
신바람 난 직원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봇물처럼 쏟아내고 있다. ‘방문자에게 회사약도를 팩스로 보낼 때 수신자 이름을 연필로 써서 재활용하자’ ‘회사 무선호출기가 4개 지역에 가입돼 있어서 세금계산서가 4건으로 처리된다. 한 지역으로 이관해 용지를 절약하자’….
“하찮아 보이지요. 그러나 최후의 1%까지 낭비 요인을 없애는 것, 그것이 바로 최고의 경쟁력 아닐까요.”곽명장(郭明墻·36)관리과장이 소개하는 ‘IMF 탈출’의 길이다.〈이명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