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경찰서에는 대조적인 두 공간이 있다. 하나는 건물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서장실. 20평이 넘는 널찍한 방에 큼직한 책상. 10여명이 앉을 수 있는 푹신한 소파. 카펫을 깐 바닥에는 먼지 한점 없다. 방문객이 주눅들 정도다.
반면 주민들이 상담하거나 고소장을 접수하기 위해 찾는 민원실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5,6평 가량 되는 비좁은 실내에는 변변한 의자 하나 없다. 바닥도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아 지저분하다.
경찰서만이 아니다. 관공서 기업체 대학 어디든 기관장의 방을 가장 화려하게 꾸며놓아야 체면이 선다는 ‘의전 거품’이 잔뜩 끼여 있다.
경영위기의 일부 은행도 사정은 똑같다. 은행장 집무실에 들어가보면 전혀 부실 징후를 느낄 수 없다. 접견실 비서실 집무실을 합쳐 초등학교 교실만한 넓이에 최고급 원목 책상, 갖가지 장식물들로 치장돼 있다.
지나치게 넓은 집무실을 고집하는 국내 기관장들이 한번 찾아가 볼 곳이 있다. 바로 미국 아칸소주 벤튼빌에 있는 세계최대의 유통그룹 월마트 본부다.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은 ‘실망’을 금치 못한다. 창고를 개조한 허름한 단층건물에 회장과 사장의 집무실이 있기 때문. 네평 남짓한 사장실엔 안락소파 하나 없다. 책상과 의자 소형TV 컴퓨터만이 놓여 있을 뿐이다.
다행히 국내에서도 ‘회장 방 크기와 경쟁력은 결코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월마트의 교훈을 따르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에서 두드러진다. 선거로 뽑힌 단체장들은 종래의 ‘군림’자세에서 벗어나 자신의 집무실을 새롭게 뜯어고치고 있다. 부산 수영구청장, 대구 동구청장, 전북 정읍시장 등 단체장들은 주민들의 의견을 생생히 듣기 위해 집무실을 민원실 옆으로 옮겼다. 집무실 벽을 아예 터버린 단체장도 있다. 몇몇 단체장들은 관사를 팔거나 임대해 주민복지기금으로 쓰거나 복지시설로 활용할 계획이다.
대학가에서 검소하기로 소문난 심상필(沈相弼)홍익대총장의 집무실은 여느 총장님 방과는 사뭇 다르다. 5평쯤 되는 작은 방엔 책상 하나만 달랑 놓여 있다. 커피도 직접 타서 마신다. 홍익대가 사립대학으로는 드물게 재정이 우수한 대학으로 꼽히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명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