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관에서 잠을 자고 밤이 되면 일어나 살아있는 여자의 피를 빨아먹는다는 드라큘라. 창백한 얼굴과 뾰족한 송곳니의 이 흡혈귀 백작은 할리우드 공포영화의 단골 메뉴다. ‘드라큘라’는 원래 유럽과 아시아에 널리 퍼져있는 흡혈귀(뱀파이어) 전설을 브람스토커가 각색한 동명소설(1897)이 원작이다. 1931년 브라우닝의 고전 영화 ‘드라큘라’가 크게 성공하면서 그 후 수십 편의 아류 흡혈귀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최초의 드라큘라 백작이었던 벨라 루고시는 이 배역으로 단번에 대스타가 되었고, 최근에는 키아누 리브스나 톰 크루즈, 브래드 피트까지 흡혈귀로 등장하기도 했다.
드라큘라 백작은 과연 사람의 피만으로 살 수 있을까. 혈액에 다양한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있는 것은 사실이다. 혈액은 폐에서 흡수한 산소나 장에서 흡수된 음식물의 영양 물질들을 필요한 조직에 공급하는 운반체이므로 인체에 필요한 영양소들이 모두 들어있다.
그러나 혈액의 78%는 물이다. 열량을 내는 단백질과 지방, 탄수화물은 각각 4%, 0.5%, 1.3%밖에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피 1백g에 포함된 열량은 27㎉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50㎏ 성인 여성의 경우 체중의 8%인 4㎏, 즉 3.8ℓ정도의 피가 몸에 흐르고 있다. 그러니까 사람의 몸에 들어있는 혈액이 가진 총 열량은 1천25㎉ 정도인 셈이다.
드라큘라에게 하루 필요한 열량은 어느 정도일까. 드라큘라가 몸무게 65㎏의 남자라면 2천5백㎉ 정도의 열량이 필요하다. 따라서 드라큘라 백작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한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최소한 2명의 혈액을 매일 먹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영화에서처럼 드라큘라 백작이 여인의 목을 타고 흐르는 피를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며 폼이나 잡을 여유가 없는 것이다. 한방울도 아껴가며 핥아 먹어도 모자랄 판이다.
사실 혈액은 좋은 열량원이 아니다. 피를 빨아먹고 사는 동물들이 작은 곤충류나 거머리류인 것도 바로 이 때문. 몸이 커지면 피부에서 뺏기는 열에너지가 많아져 충분한 영양 공급 없이는 생활하기 힘들다. 피를 빨아먹는 유일한 포유류인 흡혈박쥐도 몸통이 10㎝를 넘지 않는다. 드라큘라 백작도 최근 국내 CF처럼 밤새워 컴퓨터를 하기 보다는 소의 피라도 찾아다녀야 영양실조를 면할지 모른다.
정재승(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 박사과정·jsjeong@ sensor.kaist. ac. 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