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21세기 ③]「가타카」,인간주문시대 경고

  • 입력 1998년 4월 15일 07시 27분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의 배경은 사람이 인공부화로 태어나는 ‘행복한’ 미래사회다. 미처 살아보기도 전에 운명은 정해져 있고 사회의 안정을 위해 격렬한 감정이나 불만은 그 싹부터 제거된다. 사랑과 섹스? 야만인의 유물일 뿐이다.

곧 개봉(5월2일)될 영화 ‘가타카’가 보여주는 21세기에서도 사랑으로 아이를 잉태하는 일은 바보같은 짓이다. 우수한 유전자를 사서 완벽한 아이를 만드는 ‘인간의 주문생산시대’가 바야흐로 도래했다.

유전자 정보로 앞으로 걸릴 병과 수명까지 내다볼수 있게 되면서 불투명하지만 가슴 설레는 인간의 미래는 이제 옛말이 되어버렸다. 훌륭한 피아니스트를 꿈꾼다면 손가락 수가 더 많은 육손이를 선택하면 그 뿐.

우성 열성 유전자의 차별이 인종과 성차별을 대체하는 새로운 계급사회에서 열성 유전자를 지닌 사람에게는 하층 계급의 운명이 주어진다. 노력하면 잘살 수 있다는 꿈은 정말 꿈조차 꿀 수 없다.

부모의 ‘사랑’에 의해 열성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빈센트(에단 호크 분)에게 우주항해사는 가당치도 않은 꿈이다. 그러나 ‘멋진 신세계’에서 신세계와 끝내 화해하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한 존과 달리 ‘가타카’에서 빈센트는 우성 유전자를 가진 사람의 DNA를 사들여 자기 운명을 개척한다.

완벽한 인간으로의 위장에 성공한 듯하지만 우연한 살인사건 이후 빈센트는 피 한 방울, 머리카락, 피부 각질로 인간의 증명을 읽어내는 사회를 속이고 진짜 자신을 은폐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을 벌이게 된다.

‘가타카’가 보여주는 미래는 한낱 영화속의 이야기에 불과한 걸까.

현재 진행중인 ‘휴먼 게놈(염색체)연구계획’이 인체의 설계도를 밝혀내고 언젠가 그것이 상품화된다면 인간의 미래는 ‘가타카’와 무엇이 다르랴. 인간과 분리될 수 없는 노동이 이미 상품이 된 데 이어 매혈, 장기매매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유전자를 사고파는 일은 과연 먼 미래에 속한 일일까.

다행히 ‘가타카’는 우리에게서 희망을 앗아가지는 않는다. 사랑하는 여자 아이린(우마 서먼)에게 꿈꾸는 자의 힘을 역설하는 빈센트, 사고로 불구자가 된뒤 빈센트에게 우성 유전자를 제공한 제롬(주드 로)이 DNA의 나선구조 모양을 한 계단 한계단 힘겹게 기어 올라가는 장면은 인간이 옹호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가타카’의 싸늘한 세계는 결점투성이의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가능성에 대한 믿음, 희망을 지닌 인간만이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설(逆說)이다.

팁 하나. 영화속 우주항공사의 이름이자 미래사회를 상징하는 ‘가타카(Gattaca)’는 염색체 코드에 쓰이는 철자를 뽑아 만든 조어다.

〈김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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