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재벌체제의 3대 버팀목은 자금의 내부거래와 비서실조직 상호지급보증. 이것도 이젠 옛날 얘기.
상호지급보증은 4월1일부터 전면 금지됐고 비서실조직은 명목상 해체되고 그 기능이 대폭 축소됐다. 내부거래도 정부의 엄중한 감시와 소수주주들의 견제로 쉽지 않은 지경에 처했다.
그동안 부실 재벌계열사들은 재벌의 보호막속에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우량 계열사가 제공한 지급보증으로 금융기관에서 대출받는 것은 물론 우량 계열사가 빌린 자금을 재차 꿔다 쓸 수도 있었다.
LG종금은 1월 액면가(5천원)로 5천4백억원어치의 유상증자에 나섰으나 주주들이 인수를 거부하는 바람에 2천6백89억원(실권율 49.7%)어치를 배정하지 못했다. 부실 종금사 퇴출을 앞두고 다급했던 LG그룹은 실권주 전량을 LG석유화학 등 계열사를 포함한 21개사에 배정했다. LG종금은 재벌체제에 힘입어 살아남은 것.
증권거래소 조사로는 작년 한햇동안 재벌 계열상장사 1백51개사의 내부거래 비중은 전체 매출액의 27.7%(1백60조5천억원). 이를테면 아남산업과 오리온전기의 경우 각각 전체 매출액의 90.2%, 86.5%가 내부거래로 이뤄졌다. 두 회사 생존자체를 계열사거래에 의존하고 있는 셈.
앞으론 이것이 불가능해진다. 퇴출대상 55개 기업 선정에 가장 중요한 기준이 바로 기업의 자생력이었고 2차 퇴출땐 이것을 더 엄격히 적용한다는 게 정부 방침.소수주주의 존재도 옛날과는 달라졌다. 그동안 거수기에 불과했던 소수주주들의 경영참여가 법에 의해 보장돼 기업주가 옛날처럼 전횡을 일삼기는 어렵게 됐다.
지난 3월의 삼성전자 주총은 소수주주의 ‘반란’으로 13시간의 기록을 남겼고 참여연대의 제동으로 SK그룹 최종현(崔鍾賢)회장 일가가 인수한 대한텔레콤 주식을 원상태로 돌려놓기도 했다.
외국인 주주들도 기세가 등등하다. 외국자본이 5%이상 지분을 갖고 있는 국내기업이 30개를 넘고 일부 외국계 펀드의 경우 마음만 먹으면 단독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가 있게 되어 있다.
그동안 그룹의 신용을 보고 돈을 대준 금융기관들도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 5대 재벌 계열사라도 개별기업 차원에서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기업은 대출을 해줄 수가 없게되어 있다. 정부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여차하면 은행이 퇴출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대우경제연구소 이한구(李漢久)소장은 “앞으로 자생력없는 부실 계열사들은 금융기관들의 대출중단으로 인해 도태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희성기자〉lee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