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내 안정효가 영문소설 출판이야기와 자신의 문학적 편력을 담은 에세이집을 펴냈다. 에세이는 미국행 비행기 속에서의 갖가지 상념으로 시작한다. 떠남과 돌아옴 같은 것이다. 그리곤 텍사스의 적막 속에서 타자기와 출판사 문을 두드리며 기대반 걱정반으로 보냈던 하루하루 이야기로 계속된다.
그러나 한국에서 미국으로, 그 공간의 넘나듦은 슬며시 시간의 넘나듦으로 이어져 자신만의 내밀했던 기억의 창고 속으로 들어간다. 6·25 피난길 가난 추위 그리고 그보다 더 무서웠던 아버지의 폭력…. 쓰라린 기억의 편린들, 그래서 늘 안정효 소설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어 왔던 이야기들이다. 이는 또한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기도 하다.
상흔으로 교직된 그물이지만 그것은 맑고 투명하다. ‘전쟁과 가난이 전부였던, 전혀 아름답지 못했던 도시의 기억 속에서도 어느 겨울 용산에서 동막으로 가는 기찻길에 소복히 쌓였던 백설은 보석처럼 빛났다’는 대목처럼. 거기 ‘아픔은 곧 힘’이라는, 흰눈보다 더 뽀얀 메시지가 담겨있음은 물론이다. 디자인하우스. 7,500원. 안정효 지음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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