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가을비가 내리는 정동길을 찾았다. 아스팔트길은 1차로만 남고 나머지 길 양편은 보도블록이 단정하게 깔린 널찍한 보도다. 종전 보도 폭은 5m. 그러나 지금은 11.5m다. 그 넓은 보도가 차로 양편으로 정동길을 덮었다. 그리고 보도에는 은행나무를 비롯해 느티나무 상수리나무 살구나무가 심어져 아늑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갈림길에 있는 로터리 분수대, 곳곳의 벤치로 정동길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정동길은 겉모습만 변한 게 아니다. 정동길 옆의 정동극장을 중심으로 호암아트홀과 갤러리, 문화일보홀을 연결하는 ‘정동 문화 네트워크’가 형성되면서 문화의 거리가 되었다.
그 모습을 곧 볼수 있게 된다. 정동극장은 7∼15일 낮12시반부터 30분동안 극장안 쌈지마당에서 ‘정오의 예술무대’를 펼친다. 남미의 에콰도르에서 온 3인조 거리의 악사 ‘시세이’ 밴드가 출연할 예정. 정동길은 그 자체가 근대사의 풍상(風霜)에 시달린 ‘역사의 뒤안길’이다. 정동길의 중심은 ‘경운궁’으로 불리던 덕수궁. 아관파천(1896년) 이후 고종은 1년만에 환궁했지만 그곳은 경복궁이 아닌 덕수궁. 러시아 미국 프랑스 등 외국공사관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일본의 견제를 막아보자는 계산이었다.
정동길은 또 젊은이의 거리였다. 덕수궁 돌담길 주변의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에서는 신교육이, 한국 최초의 감리교회인 정동교회(사적 제 2백56호)에서는 청년운동이 펼쳐졌다. 80년대 반미시위는 미대사관저가 있는 정동길에 전경버스를 상주시켰다. 이제는 90년대를 마감하는 시기. 정동길은 문화의 시대를 맞게 됐다.
95년 정동극장을 열고 정동길을 문화거리로 가꿔온 홍사종(洪思琮)극장장. “정동길은 문화의 향기를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다. 정동 문화 네트워크를 통해 정동길을 과거와 현재가 잘 어우러지는 문화명소로 만들고 싶습니다.” 모두가 반길 만한 이야기다.
〈이진영기자〉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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