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의 심리학]심영섭/엄지손가락 절단

  • 입력 1999년 3월 14일 18시 37분


어제 한 내담자(來談者)의 꿈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와 엄마와 형, 내가 택시를 탔는데 타이어가 펑크 났죠. 기사가 있는데도 아버지가 택시를 몰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아버지의 엄지가 부러졌죠.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그만하시라고 했어요.”

재미있게도 내담자의 꿈과 유사한 장면이 영화속에도 종종 등장한다. ‘피아노’에서는 부정을 저지른 아내의 손가락을 남편이 도끼로 절단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내가 처음부터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음을 깨달은 남편은 절규하며 아내의 손에 도끼를 내리친다.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나 ‘바운드’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왜 손가락일까? 왜 발가락이나 귀, 코는 아닌가? 손가락은 외부환경과 가장 먼저 접촉하고 마음을 가장 미묘하게 실어내는 신체의 한 부분이다.

사람의 욕망과 죄의식, 분노가 가장 먼저 실리는 통제의 본산이다.

특히 엄지 손가락은 남근의 상징이기도 하다.

‘잉글리시 페이션트’에서 배우 윌리엄 데포의 엄지를 자르는 장면은 그가 여러 여자를 울린 바람둥이였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엄지를 자르는 것은 거세의 불안이 현실화되는 순간이다.

앞의 상담사례에서 아버지의 엄지가 꿈속에서 부러졌다는 사실.

그것은 내담자가 의식이 깨어있는 현실에서는 끊임없이 권위적인 인물의 승인을 원하고 있지만 자신의 꿈속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적의, 남근으로 상징되는 권위에 대해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손가락 절단은 가장 강력한 처벌의 상징, 상대 생명의 핵심을 도려내는 거세의 의식이기도 하다.

죄 지은자의 생명을 앗고 싶다면 목을 자르라. 그러나 평생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어디서 왔는가를 괴로워하게 하고 무능력과 상실의 늪에서 헤매게 하고 싶다면, 그의 손가락을 자르라.

심영섭<임상심리전문가·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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