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영화협회 잭 발렌티회장이 방한, 스크린쿼터 축소를 요구하는 바람에 영화인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왜 미국의 주장에 반대하나.
“스크린쿼터는 자동차로 치면 배터리에 해당한다. 폐쇄적인 보호정책이 아니라 자유경쟁시장을 위한 독과점 방지책이다. 또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을 25%대로 유지해 수입대체효과도 크다.”
―우리 정부가 반대를 분명히 했다. 지켜지겠는가.
“일단 정부를 믿겠다. 그러나 5월9일 시행될 개정 공연법의 내용을 보면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이 공연법은 영화인들이 싸워 지켜낸 스크린쿼터를 유명무실하게 만들 것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가.
“스크린쿼터 위반 극장에 대한 처벌규정을 현행 영업정지에서 5백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로 낮추는 독소조항이 있다. 정부가 통합영상진흥법을 제정할 때 보완하겠다고 했지만 지금 시급히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대안이란.
“티켓 예매를 원활히 할 수 있는 통합전산망 구축도 대안중 하나다. 직장인이나 주부들이 은행에서도 예매할 수 있도록 전산망이 깔리면 관객이 현재보다 2,3배 늘어날 수 있다. 정부가 결심만 하면 되는 문제다. 서울시극장협의회도 반대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열악한 한국영화제작환경 개선을 위해 지난해 아이찜 시나리오 창작기금, 영화투자전문회사인 유니코리아를 세우기도 했다.
―정부가 갖가지 영화진흥책을 내놓고 있는데.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실효성이 떨어지는 정책들이 있다. 새로 제정된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을 보자. 영상진흥을 위한 투자전문조합의 자본금을 1백억원 이상이어야 한다고 정해놨다. 부채비율이 3백%까지이니 운영자금이 4백억원에 달한다. 1년 한국영화 전체를 만들고도 남는 돈이다. 그렇게 규모가 큰 투자조합에누가뛰어들겠느냐. 만들 이유가 없는 법을 만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높아만 갔다. 영화계 현안을 논의하는 영화인 모임 ‘충무로포럼’의 대표인 그의 요즘 활동은 아버지 고 문익환 목사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의외로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은 음울했다.“DNA에 그림자가 낀 것처럼 삶에 대한 혐오와 자기학대가 심하다. 내가 위선적이지 않을 수 있는가에 대해 늘 자신이 없다.”
―그런데도 ‘적극적인 발언’에 나서게 된 이유는.
“97년 가을, 생각이 달라졌다. 순간순간 위선이라고 느껴질지언정 큰 흐름이 옳다면 뛰어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지금도 나는 나를 믿지 못하지만….위선적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생각을 바꾸게 된데는 그해 그가 출연한 ‘초록물고기’ 흥행실패의 영향도 컸다. “이런 영화도 안되는데 무슨 영화를 하겠다고, ‘에이, 안할래’하고 주저앉았다. 문득 구더기처럼 꼼지락거리지만 말고 환경을 바꿔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15년간 배우가 되려고 발버둥을 치며 고통스러웠지만 이제는 연기가 재미있어졌다는 문성근. 하지만 ‘환경을 만드는 일’이 지금의 그에겐 훨씬 더 중요하다. 한국영화 발전을 위한 든든한 토대가 마련될 때까지 연기에 대한 그의 열망은 계속 보류상태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