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집중진단/남성노출시대]남자는 또 왜 벗나?

  • 입력 1999년 4월 26일 19시 32분


《 남자의 ‘벗은 몸’이 갑자기 시선을 끌고 있다. 공연무대에서 TV의 가요 광고에까지 ‘벗은 몸’이 인기다. 왜 벗나, 현상과 이유를 살핀다.한동안 ‘부드러운 남자’의 이미지가 남성 연예인의 미덕이자 경쟁력으로 주목받던 세태와는 딴판이다. 여성의 성적 이미지를 강조해온 대중문화의 흐름과도 대치된다. 마침내 남성도 성상품의 대상이 됐나, 아니면 남성다움(마초·Macho)에 대한 찬양인가.》

▼누가 어떻게 벗나▼

그동안 말라깽이, 마마보이의 이미지로 각인돼 온 탤런트 겸 가수 구본승은 최근 몰라볼 정도로 우람해진 상반신을 드러내고 청바지 광고모델로 나섰다.

구본승을 캐스팅한 C사 마케팅팀의 신정현씨는 “이번 제품이 거칠고 남자다운 스타일이어서 육체미가 돋보이는 구본승을 등장시켰다”며 지난해보다 매출액이 40%나 늘었다고 말했다.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조성민선수도 가슴과 배를 드러낸 G제품 청바지광고 모델로 나섰다.

대중음악에서도 힙합(Hiphop), 즉 엉덩이(Hip)가 펄쩍 뛴다(Hop)는 어원을 지닌 흑인음악이 전지구적 유행을 타면서 국내 힙합가수들도 약동하는 육체, 군살하나 없는 근육미를 과시하고 있다.‘클론’은 검게 그을린 피부와 ‘람보급’의 우람한 근육을 자랑하는 구준엽의 몸을 보여주는 화보집을 우리나라와 대만에서 동시에 냈다. 구준엽은 “콘서트 중 팬들의 반응을 보아가며 언제 웃통을 벗을지 계산한다”고 할 만큼 몸을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

태권도로 단련한 근육질의 이미지로 10∼20대 여성팬들을 열광시켰던 가수 유승준은 최근 신보와 함께 내놓은 뮤직비디오를 아예 권투경기 장면으로 꾸몄다.

▼왜 옷을 벗는가▼

몸에 대한 관심과 학문적 논란은 90년대 후반들어 포스트모더니즘과 폭발적인 소비문화가 맞물리면서 뜨겁게 일기 시작했다.

플라톤 이래 서양철학사에서 육체는 진리를 위해 극복돼야할 대상, ‘영혼의 감옥’정도로 비하돼 왔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성에 억압당했던 낭만적인 감성과 육체를 주요 테마로 내세웠다. 후기자본주의가 찬양해 마지않는 소비는 물질과 육체에 대한 욕망으로 나타난다.

서양철학사에서 신체론은 60년대 전후 메를로 퐁티, 미셸 푸코 등을 중심으로 프랑스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실제 일상생활에서는 다이어트 성형수술 썬탠 헬스 건강에 대한 관심 등 육체관리의 형태로 나타났으며 특히 여체는 상품화의 대상으로 곧잘 이용되어 왔다.

▼일그러진 남성들의 초상?▼

그러나 대중문화 속에 남성의 벗은 몸이 등장하는 것은 성의 상품화와는 거리가 있다. 사회 경제적으로 30,40대 ‘고개숙인 남성’에 대한 사회적 보상심리가 주된 요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신대 김종엽교수(사회학)는 “최근 남성의 근육질 육체가 상품화되는 것은 남성들이 상상 속으로만 그리던 ‘강한 남성의 이미지’를 육화시킨 것”이라고 진단했다. 부대끼는 현실을 헤쳐나갈 수 있는 원초적인 힘에 대한 향수를 구체화시켰다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유지나(동국대교수)도 “남자가 몸을 드러낸다는 것은 단순한 ‘성적 대상화’가 아니라 ‘사회성’을 강하게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말한다. 영화 ‘풀몬티’에서 실직한 남성들이 자아정체감을 회복하는 방법으로 스트립쇼를 벌이는 것이 그 예다.특히 IMF사태 이후 남성은 유능해야 할 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강한, 그래서 여차하면 몸으로라도 가족들을 먹여살려야 하는 의무가 강조되고 있다는 지적. KBS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강력한 왕이자 가부장적 이미지의 화신으로 거듭났던 중견탤런트 유동근이 최근 내의 광고에서 과감하게 상반신을 드러낸 것도 이제는 ‘강한 남자가 살아남는다’는 메시지를 띠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성을 겨냥 전략▼

날로 증가하는 여성의 구매력을 노린 전략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삼성정신건강연구소 정현희박사는 “IMF이후 가정경제의 구매력이 여성에게 집중되면서 20,30대 여성들을 겨냥한 상품에 남자의 몸이 더욱 활발하게 등장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박사는 지난해 미국 광고전문지 에드에이지(AD Age)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전체구매의 80% 이상은 여성의 몫이고 이는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조사결과를 덧붙였다. 즉 여성의 호감을 사기 위해 남자의 옷을 벗기는 것일뿐, 남성다움을 과시하려는 의도는 아니라는 풀이다.‘연구실 밖으로 나온 심리학’의 저자 최창호박사는 “더이상 힘을 쓸 필요가 없는 시대, 남자들의 강건한 육체는 TV화면이나 광고전단에서나 쓸모있는 것 같다”고 씁쓸해 했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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