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씨는 95년부터 사비를 털어 서울 은평구 불광동의 15평짜리 빌라에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중복장애아들을 모아 가족처럼 돌보는 그룹 홈(Group Home)이다.
강씨의 8남1녀는 모두 고아와 빈곤가정 출신 장애아들. 이들은 이곳에서 ‘이모’로 불리는 특수교사 3명과 함께 살고 있다. 6세가 될 때까지 대소변을 못 가리던 시각장애아 기선이(10)는 지난해부터 시각장애인학교에 다닌다. 무턱대고 달리는 차앞으로 뛰어들곤 하던 정신지체아 경현이(12)는 이제 곧잘 글을 읽고 쓴다. 인근 집앞에 버려진 갓난아기였던 막내 석준이(3)는 다운증후군지체아. 지금은 여느 세살배기 아이들처럼 귀엽고 튼튼하게 자라고 있다.
그러나 외동‘딸’ 민희(12)를 보면 늘 안타까움이 앞선다. 5세 정도에서 성장이 멈춘 민희는 뇌성마비로 목도 제대로 못가눈다.
강씨가 장애아들의 삶에 눈뜨게 된 것은 90년부터. 전북 고창출신으로 전주우석대 영문학과를 야간으로 졸업한 뒤 일자리를 찾아 상경한 강씨는 개봉동성당에서 만난 한 신자의 소개로 장애인복지시설 ‘라파엘의 집’에서 일하게 된 것.
강씨는 이내 장애아들을 돌보는 데 빠져들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어릴때부터 군고구마와 아이스크림 행상 등을 하며 고학해 불우한 이들의 삶에 깊은 연민의 정을 느낀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늘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다. “30, 40명의 아이들은 정성들여 씻기고 따스한 밥을 지어먹이기엔 너무 많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는 장애아들에게 따스한 가족의 품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딴 살림’을 차리고 나섰다.
‘가장’이 된 후 그는 아이들을 위해 발이 닳도록 뛰어다녔다. 이른 아침과 점심시간에 인근 특수학교인 은평복지학교에 아이들을 등하교시키고 낮에는 닭꼬치를 배달하러 다녔다. 저녁에는 다시 아이들 밥 먹이고 옷 갈아입히는 등의 일로 늘 하루해가 짧았다. 닭꼬치배달로 번 돈과 후원금으로 마련한 매월 4백만여원으로는 아이들을 위해 쓰기에도 늘 빠듯해 자신을 위해서는 한푼도 지출할 여유가 없다.
“결혼은 어떻게 할거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지요. 그러나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현재의 생활도 충분히 행복한걸요.”
그는 이 아이들을 위해서는 더 열심히 뛰고 아껴야 한다고 다짐한다.
“봐요. 티없이 착하고 맑은 이 아이들을. 그저 평범한 이웃 아이들이잖아요.”
9명의 아이들과 그 아이들에 둘러싸인 채 환하게 웃는 강씨 모두 티없이 맑은 우리의 이웃이었다.
〈선대인기자〉eod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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