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을 닷새 앞둔 10일 오후 경기 의정부시 고산동 의정부교도소(소장 박청효·朴淸孝교정감)내의 한 감방. 차디찬 쇠창살이 둘러쳐진 5평 남짓한 공간에서 푸른색 수의차림의 박모씨(23)는 고등학교시절 수학선생님에게 띄우는 엽서의 서두를 이렇게 시작해나갔다.
폭력죄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27XX’란 이름으로 1년째 복역중인 박씨. 선생님과의 추억과 감동을 되새기며 한자한자 써내려가던 박씨의 펜 끝으로 한줄기 눈물이 떨어졌다.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참회의 눈물’이었다.
고교시절부터 그는 말썽만 피우던 ‘문제아’였다. 모든 선생님들이 그를 ‘포기’했지만 수학선생님만은 달랐다. 항상 그를 불러세우고 훈계하는 것을 잊지않았다. 늘 짧지만 이해와 사랑이 깊게 배어있었다.
그가 학업을 마치고 졸업장을 받아들 수 있었던 것도 수학선생님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
“교도소까지 찾아와 ‘잘못 가르친 내 탓’이라며 눈물을 보이셨던 선생님…. 이제서야 그 깊은 사랑과 은혜를 알 것 같습니다.”
강도행각을 벌이다 징역 6년형을 선고받고 2년째 복역중인 송모씨(25)도 이날 고교시절 음악선생님께 ‘참회’의 글을 올렸다.
그 역시 모두가 포기한 ‘사고뭉치’였지만 선생님은 “메마른 정서 탓”이라며 밤늦도록 피아노를 가르쳐줬다.
송씨는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은혜에 꼭 보답하겠다”고 다짐했다.
수인(囚人)의 몸이어서 스승에대한 존경과 보은(報恩)의 마음이 더 강한 것일까. 교도소측이 스승의 날을 앞두고 마련한 ‘가장 기억에 남는 은사께 엽서쓰기’ 행사에 2천2백여명의 재소자들은 거의 모두 참가해 스승의 기대를 저버린데 대한 뼈저린 회한의 심정을 담았다.
6개월째 복역중인 서모씨(46)는 중3때 수돗물로 허기진 배를 채우던 자신에게 몰래 도시락을 건네주셨던 담임선생님께 펜을 들었다.
서씨는 “한때 뒤틀린 욕망에 사로잡혀 차디찬 감방에 갇혀버린 지금, ‘세상의 소금이 되라’던 선생님의 말씀이 가슴이 저미도록 쓰리게 다가온다”고 고백했다.
방황하던 제자에게 질책을 아끼지 않았던 스승에 대한 그리움도 짙게 배어있다. 강도죄로 1년째 복역중인 박모씨(35)는 “고1시절 말썽꾸러기에게 회초리를 내리치시며 눈가가 붉어졌던 담임선생님이 너무 보고싶다”며 글을 맺었다.
교도소측은 이날 재소자들이 쓴 2천여장의 엽서중 우수작 10여편을 선정해 도서상품권을 상품으로 전달했다.
의정부우체국(소장 김정일·金正一 서기관)도 행사 취지에 공감하고 재소자들이 쓰는 엽서를 무료로 제공했다.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