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재판, 회의로 건조한 하루하루를 보내다 그런 자리에 함께 하면 모질어진 마음의 굳은 살이 풀어진다. 요사이 조울증에 빠졌다는 선배가 한 문인에게 마지막 울어본 것이 언제냐고 묻는다. 문인은 글쓰는 사람답게 매일 운다고 말한다. 자기 일로 우는 게 아니고 책, 영화 그리고 연속극을 보다 운다고 한다. 심지어 신문을 보다가 운다니 남의 불행에 끼여들어 밥벌이를 하는 속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경지다. 나는 무엇을 보며 우는가.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을 보다 운 것이 책때문에 운 마지막 기억이고 이후로는 모두 영화때문이었다.
영화관은 내 눈물의 유일한 해방구다. 어둠을 틈타 실컷 눈물을 흘리고 나면 그 영화의 무엇이 나를 울게 했는지 생각하게 된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보면서는 눈물샘이 마를만큼 울었다. 그 영화가 좋은 영화인지, 그저 그런 영화인지는 아직도 모른다. 그저 전태일 이야기라는 것만으로 울었다. 10여년전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평전’을 보면서도 울었는데, 어렴풋이 어떤 다짐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영화를 보며 공장으로 가버린 대학선배와 내게 무언가를 기대하던 씩씩했던 노동자들을 그리워했다. 그리고, 지키지 못한 다짐과 내 헝클어진 삶을 혐오했다. 그 눈물은 기껏해야 자기연민이었겠지만 이 누더기같은 영혼이 세상에게 무엇을 양보했고, 무엇을 아직 내주지 않았는지를 알게 했다.
조광희(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