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의 우리문화-건축]패스트푸드店, 그 너머엔…

  • 입력 1999년 11월 21일 20시 28분


상추쌈을 쌀 때는 품위는 접어 두어야 한다. 논두렁에 바지를 걷고 앉아 맨손에 든 상추 위에 된장, 찬밥을 얹어 놓는 점심은 양반의 식사는 아니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안 가득 상추쌈을 우겨 넣는 것은 양반가의 며느리가 시어머니 앞에서 보일 모습이 아니었다.

논두렁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세워지면서 상추쌈 대신 햄버거가 들어왔다. 빵 위에 양상추와 고기와 오이절임을 얹어 상추쌈처럼 먹는 시대가 온 것이다.

유명한 상표를 과시하는 외국의 햄버거점들이 햄버거빵에 얹힌 참깨처럼 도시 곳곳에 들어섰다. 패스트푸드점이라는 이름으로 피자와 치킨도 들어왔다.

건축가들이 도시를 건물의 집합으로 본다면 이들은 상권의 분포로 보았다. 인파가 모일 만한 자리에는 기민하게 들어섰다. 이들은 새로운 도시에 맞는 생존전략을 찾아 나갔다. 강을 건너면 귤이 탱자가 되고 탱자가 귤이 되는데 이들도 원래 모습 고스란히 바다를 건널 수는 없었다.

한국의 햄버거 메뉴에는 불고기와 밥이 추가되었다. 건물도 달라졌다. 미국에서는 가장 값싼 음식이어도 한국에서는 외식산업이라는 이름의 품위있는 음식으로 자리잡다보니 도심의 빽빽한 건물 안으로 비집고 들어섰다.

우선 비싼 임대료 때문에 1층에는 최소한의 공간만 할애되었다. 주문 받는 카운터 외에 좌석은 없든지 최소화되었다. 햄버거를 먹고 가려는 이들은 위층이나 지하층으로 이동해야 한다. 위층 지하층은 임대료가 싼 만큼 좀 넓게 마련되었다.

건물 자체는 판매를 위한 광고판이 되어야 했다. 주문 카운터는 입구에 가깝게 그리고 평행하게 배치되었다. 큼직한 햄버거와 콜라의 사진이 유리창 너머 거리에서도 훤히 보이도록 계획되었다. 건물은 투명해졌다. 입을 큼지막하게 벌리고 햄버거를 먹는 모습을 논둑길도 아닌 도시 한복판에서, 시어머니도 아닌 거리의 대중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햄버거의 무게와 크기, 굽는 시간까지 치밀하게 계산해서 그만큼 치밀하게 판매전략을 세워나갔다. 한국의 수요 계층을 조준한 실내장식은 당연한 것이었다. 외국에서와 달리,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햄버거를 주문하는 공간은 없애버렸다. 어린이가 아닌 청소년을 타깃으로 하기 위해 놀이터 대신 청소년 생일모임 공간을 집어넣었다.

좀 비싼 햄버거점은 10대가 아니라 20대를 겨냥했다. 벽에는 네온사인을 붙이기도 하고 복고적인 미국 영화사진으로 장식하기도 했다.

햄버거가 건강식품이라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거리에 나앉아 음식을 먹는 것은 품위 없는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다. 환하게 트인 공간은 다 먹었으면 숨어있지 말고 일어서라는 상업적 장치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몸매에 자신이 없으면 속이 비치는 옷을 입지 못한다. 자신있게 깨끗하고 정돈된 내부가 아니면 투명한 건물을 만들 수 없다. 도시의 관점에서 본 투명한 건물은 그래서 건강하다. 내부의 움직임을 보여주면서 도시를 그만큼 활력 있게 만든다.

부정적인 이야기도 있다. 우리 고유의 입맛을 빼앗아간다는 불만이 있다. 먹는 만큼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는 우려도 있다. 일회용 쓰레기를 양산해서 이 산하를 오염시킨다는 비난도 있다. 그러나 애국심만으로 치즈 대신 김치를 먹게 할 수는 없다. 질문은 치즈가 아닌 김치에게 해야 한다.

우리는 자랑했다. 한정식을 주문하면 반찬만 서른가지가 넘게 나온다고. 그것을 사진에 담아 큼직하게 소개하곤 했다. 그러나 한두 번 젓가락이 오가다 만 그 반찬들이 고스란히 쓰레기가 되어 얼마나 환경을 오염시키는지, 얼마나 적당히 손질되어 다른 밥상에 다시 오르는지는 묻지도 말고 대답하지도 말자고 했다.

우리의 음식점은 모두 닫혀 있었다. 복도를 돌고 지나 닫힌 방 안에서 건네주던 봉투가 얼마나 은밀하고 비밀스런 것인지는 보여주지 않았다.

꽁꽁 닫힌 부엌 안에서는 무슨 사건이 벌어지는지 절대 묻지도 말고 주는 밥만 먹으라고 했다. 오히려 감춰야 할 것은 내 보여줬다. 외국인에게 소개하자는 전통 음식점에는 창고 하나도 변변히 없어서 온갖 잡동사니가 식당 구석구석에 쟁여졌다.

그 식당의 매출이 어느 정도이고 얼마나 세금을 내야하는지는 식당 주인이 적당히 계산했다.

그러나 햄버거 점에서는 콜라 한잔을 주문해도 영수증을 준다. 이 곳은 새로운 시대의 사교장이 되었다. 청소년들이 창문도 가린 방에서 맥주를 마시다 화재의 희생이 되게 하는 사회가 햄버거점 로열티를 개탄할 자격은 없다.

햄버거가 바다를 건널 때 따라오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주문을 몇 곳에서 받든지 줄은 한 줄을 서게 하는 장치는 가져오지 못했다. 먼저 온 사람이 아니고 카운터 앞에서 눈치껏 기다리다 약삭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이 가장 먼저 주문을 하는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모습. 햄버거점의 큼직한 유리창은 이 모습까지 여과 없이 보여준다. 투명한 건물은 그래서 가치가 있다.

▼'유리' 열린 세상을 위한 도전▼

중세 유럽의 성당은 어둡다. 돌을 쌓아 만든 건물에서는 넓은 창을 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신 창은 위 아래로 길게 뚫렸다.

더 넓은 창을 내기 위해서는 재료와 기술의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그 기폭제를 마련해준 것이 바로 강철과 콘크리트였다. 기존의 돌이나 벽돌보다 강도도 훨씬 높은 새로운 재료 덕분에 건축가들은 원하는 크기의 창을 마음대로 낼 수 있게 되었다.

다음은 빛은 들여오되 바람은 막는 재료, 유리였다. 유리산업계는 점점 더 넓은 판유리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제 건축가에게넓은 창은 더 이상 도전의 대상이 아니다.

건축가들은 유리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나갔다. 벽과 창의 구분을 허물기 시작했다. 아예 유리로 된 집을 짓기도 했다. 1949년 미국의 건축가 필립 존슨은 자신의 집을 지으면서 화장실 이외의 부분은 유리를 써서 완전히 투명하게 노출시켰다. 필요하면 커튼을 치면 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이제 건축가들에게 투명함이 새로운 화두로 등장했다.

그러나 유리산업은 아직 건축가들이 만족할 만큼 넓은 유리는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창이 크면 창틀을 끼우고 유리를 이어야 한다.

건축가들은 유리 네 면의 창틀 두께마저 투명함을 저해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기존의 창틀 대신 유리의 네 모서리 부분에 작은 구멍을 뚫어서 이 부분으로만 유리를 잡아매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이 방법은 지금까지 등장한 것 중 가장 투명하게 유리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 투명한 매력으로 이 방법은 현대 건축 기술의 상징이 되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포스코센터 로비를 필두로 하여 한국에서도 이 방법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서현<건축가>hyun1029@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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