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원진도 그대로
이로써 쌍용정유는 쌍용그룹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회사가 됐다. 그러나 아람코사는 ‘쌍용’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임원진이나 경영체제 고용 등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최근 한솔PCS의 새 주인이 된 캐나다 통신업체 벨캐나다사는 한국에 대한 외국기업의 투자 형태를 단적으로 보여준 경우다.
벨캐나다는 1000억원 상당의 전환사채를 보통주로 전환해지분이10.33%에서 23.30%로 높아져 한솔그룹을 제치고 한솔PCS의 최대주주가 됐다.
그러나 벨캐나다는 지난해 8월 투자 당시 한솔측에 이사회 멤버 16명 중 10명을 선임할 수 있는 권리를 위임해 경영권을 장악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핵심기술만 장악
한솔PCS에 파견한 벨캐나다의 임원은 재무와 기술을 담당하고 있는 부사장 2명. 복잡한 경영에 간섭하기 보다는 ‘돈줄과 핵심 기술’만을 장악해 최대한의 이익을 뽑아내면 된다는 계산이다.
이처럼 외국기업이 한국기업을 인수한 뒤 회사이름과 경영 고용체제 등을 그대로 유지하는 ‘문패만 한국회사’인 기업들이 크게 늘고 있다.
이들은 한국시장 진출 후 제도 문화 등 ‘비경제적 장벽’을 뛰어넘기 위해 ‘투자는 하되 경영권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전략을 구사한다.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10월말 현재 722개 상장기업 중 외국인이 최대주주인 회사는 27개사. 국민은행외환은행서울증권한라공조 KNC 한국전자 아남반도체 대동 국도화학 등이 여기에 속한다. 외국인이 지분 5% 이상을 소유한 회사는 107개사로 상장기업 전체의 14.8%에 달한다.
올해 5월 삼성물산의 유통부문을 인수해 삼성태스코를 설립한 영국 태스코사도 지분은 81%나 되지만 운영담당 부사장을 포함한 2명의 임원만을 파견하고 경영 일체를 삼성측에 일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에 대해 한국시장에 투자하고 있는 외국펀드의 성격이 장기투자 목적이 아니라 시세차익이나 배당금을 노린 단기 펀드라는 점을 첫번째 이유로 꼽는다. 기업문화와 고용관행, 정부와의 관계 등 비경제적 장벽 때문에 한국을 사업하기 어려운 나라로 생각하는 것도 주요 원인 중 하나.
이같은 이유 때문에 외국 투자자들은 경영에 직접 간섭하기보다는 시세차익이나 배당금을 보전하는 선에서 제한적으로 경영에 참여한다는 것.
프랑스계 할인점 한국까르푸는 한국시장의 비경제적 장벽 때문에 곤욕을 치른 대표적인 경우. 프랑스 까르푸사가 100% 투자한 한국까르푸는 97년 할인점시장 경쟁에 뛰어들었으나 E마트의 ‘토종 할인점’ 전략에 말려 고전했다.
〈이 훈기자〉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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