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생생한 야생 호랑이의 모습. 호랑이의 몸통 털 한올 한올을 놓치지 않고 그려낸 듯 정교한 붓터치. 만화가 안수길(36)이 그리는 늠름하고 위풍당당한 백두산 호랑이가 일본만화계를 쩌렁쩌렁 울리고 있다.
그는 90년 ‘매주 만화’에 ‘수해(樹海)’를 연재하면서 호랑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루에 호랑이 2마리 밖에 그려내지 못할 정도로 정교한 붓터치가 필요한 작업은 국내 만화 현실에 어울리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일본 시장을 두드렸다. 일본 잡지에 연재하면서 한 페이지당 3만엔(약 30만원)씩 받는 원고료는 그에게 완성도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의 일본 진출 첫작품 ‘호랑이 이야기’는 94∼98년 일본 고단샤(講談社)에서 발행하는 유명 만화잡지 ‘슈칸 모닝(週刊 Morning)’에 연재됐다. 사람처럼 울고 웃는 호랑이가 등장하는 이 만화는 최근 대만에도 진출했다.
두번째 연재작 ‘호이(HOY)’는 시베리아 백호(白虎)에게 어미를 잃은 백두산 호랑이가 성장해 백수의 왕이 되는 과정을 그린 장편만화. 척박한 시베리아 동토와 백두산의 웅장한 자연을 배경으로 호랑이 곰 표범 산양 독수리 등 야생 동물들의 삶을 그린 대자연 드라마다. 새끼 호랑이 ‘호이’는 최근 일본에서 공중전화카드와 엽서에도 등장해 인기다.
경기 안양시 호계동 집에서 작업하는 안씨는 일본측 편집부와 수시로 팩스를 교환하며 내용을 상의한다. 대사는 안씨가 한국말로 쓰면 전문번역가가 일본어로 번역한다. 안씨는 최근 미국의 만화잡지 ‘헤비메탈’에도 작품 샘플을 보내 연재를 협의하고 있다.
그는 동물들의 생태와 습성을 알기 위해 1주일에 3,4일씩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을 찾는다. TV에서 녹화해 놓은 동물다큐멘터리 비디오도 100편이 넘는다. 그의 유일한 문하생은 부인 김보희씨(29). 안수길은 “백두산 호랑이는 한민족의 혼(魂)이 담긴 상징물”이라고 말했다.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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