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웨이브2000]에코아나키즘/'환경공동체' 만들기

  • 입력 1999년 12월 31일 19시 05분


《세기가 바뀌면 인류문명의 큰 흐름도 바뀐다. 새 문명은 과연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또 인간의 ‘이성’만 믿고 달려온 지난 날에 대한 반성 위에 21세기는 과연 새로운 실천적 대안을 내놓을 것인가? ‘뉴웨이브 2000’ 시리즈는 문화 예술 각 분야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새로운 흐름을 살펴본다.》

독일의 물리학자 에른스트 울리히 바이츠제커는 “20세기가 경제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환경의 세기”라고 말했다. 인류의 미래가 환경에 달려 있다는 절박한 인식에서 나온 표현이다.

이제 막 문을 열고 모습을 나타낸 새로운 밀레니엄. ‘에코(eco·생태)밀레니엄’이 될 것인가?

한국에선 1990년대 중반부터 이론적 실천적인 면에서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논란도 적지 않다. 환경 제일주의가 에코파시즘(Ecofascism)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 환경론자들이 환경을 지나치게 정치적 권력적으로 이용한다는 지적 등등.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할 때다. 새 천년엔 인간 자연 과학 모두가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이 나와야 한다.

에코아나키즘(Ecoanarchism)은 주목받는 대안 중 하나다. 에코아나키스트들은 “이 이론이 21세기와 새 천년 이 땅에 유토피아의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유럽에서 에코아나키즘이 사회이론으로 정착된 것은 60,70년대. 한국은 아직 태동기지만 관심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 핵심은 역시 환경문제와 공동체주의 등.

▼90년대중반 새롭게 조명▼

▽한국 에코아나키즘 등장〓한국에서 아나키즘이 새롭게 조명되고 동시에 에코아나키즘에 대한 관심이 생겨난 것은 1990년대 중반.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에서의 아나키즘은 무조건 공산주의의 아류, 무정부주의 테러리즘 정도로 분류됐다.

에코아나키즘의 등장엔 사회주의의 몰락, 생태주의의 등장, 포스트모더니즘의 유행이라는 배경이 깔려 있다.

사회주의권의 몰락, 이념 대립의 붕괴는 거대한 하나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신념을 흔들어 놓았다. 그 공백은 따라서 실질적으로 삶을 바꿀 수 있는 것들로 채워져야 했다. 환경문제는 그 맨 앞에 있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의 환경운동은 너무 정치적 급진적이었다. 1990년대 중반 들면서 이에 대한 반성이 일었고 환경문제를 이론적으로 논의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이때 독일에서 귀국한 구승회 동국대교수가 아나키즘 시각에서 환경윤리를 다룬 ‘에코필로소피’를 펴내면서 환경윤리 에코아나키즘 논의에 불을 댕겼다. 곧이어 대구아나키즘연구회 생태문화연구회 등을 만들면서 서울 대구 부산을 중심으로 아나키즘을 새롭게 조명하고 이를 생태주의이론과 접목해 나갔다. 현재 한국의 에코아나키스트들은 30명 내외. 환경공동체를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이론적 밑받침이 되어 왔다.

아나키즘의 반(反)권위적 다원적 자유주의적 가치관은 당시 열병처럼 번져가던 한국사회의 탈(脫)중심 포스트모더니즘과 어울리면서 더욱 세를 확장해나갔다.

▼협동과 연대 실천理性 추구▼

▽에코아나키즘과 환경〓에코아나키즘은 환경 문제를 논함에 있어 인간 과학 자연 어느 하나도 우위에 놓으려 하지 않는다. 다원성과 평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에코아나키즘은 그래서 환경문제를 모두 인간의 탓으로 돌리는 심층생태론(Deep Ecology)을 거부한다. 인간에 대한 불신은 매력적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대안을 제시하는데는 적절치 못하다고 말한다. 동양적 전통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거라는 소박한 믿음, 환경문제를 신비주의로 해결하려는 시각도 거부한다. 비현실적이라는 말이다. 또한 과학을 철저히 신뢰하거나 배격하는 태도도 모두 반대한다.

환경문제 해결에 있어 에코아나키즘은 사회 정치 시스템의 문제, 즉 인간과 인간의 관계 문제를 핵심으로 꼽는다. 인간 사회의 위계서열, 억압과 착취, 선진국과 제삼세계간의 불균형 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 대목에서 에코아나키즘은 신휴머니즘을 제창한다. 인간의 이성에 기초한 휴머니즘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을 긍정한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과의 차이를 갖는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인간 이성은 협동과 연대의 공동체를 추구하는 실천적인 의미의 이성을 말한다.

에코아나키즘이 인간 이성을 중시하는 것은 환경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높은 도덕 규범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그 도덕은 개인적 차원이 아닌 공동체적인 도덕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욕망의 통제, 기술의 공유, 사적(私的) 영역의 축소 등과 같은 도덕. 이런 도덕은 환경친화적 공동체생활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다.

▼낭만-공상으로 끝날 우려도▼

▽에코아나키즘의 미래〓환경문제는 탈국가적, 전지구적 사안이다. 크로포트킨이 이미 지적한대로, 시민사회 차원의 공동체주의를 지향하는 아나키즘은 탈국가 글로벌시대의 환경문제 해결에 있어 매우 유효하다고 에코아나키스트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에코아나키즘에 대한 비판도 있다. 글로벌시대의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방안, 세계적 차원의 협동과 관용을 만들어낼 조직화된 실천전략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자칫 낭만과 공상으로 끝나버릴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에코아나키스트들은 이렇게 반박한다. “실천을 위해 무언가를 거대하게 조직화하면 그 순간부터 아나키즘이 아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은 작은 단위에서 하나둘 탑을 쌓아간다.”

바로 이 대목. 여기에 21세기 에코아나키즘의 미래가 달려 있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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