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윤계섭/정치개혁 해야 선진국 도약

  • 입력 2000년 1월 9일 19시 54분


새해, 새 천년과 같이 시간을 정하는 이유는 변화를 깨닫기 위해서이다. 달력이 다른 이유로 모든 인류가 함께 축하한 것은 아니지만 새 천년의 달력을 넘기는 순간은 감회가 새로웠다.

우리 세대는 혁명기의 세대이다.

농업에서 공업으로 발전하는 산업혁명은 선진국에 비해 200년이나 뒤졌지만 이제 정보지식 혁명은 거의 같은 시기에 모든 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다.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후진국이라는 만년의 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난 셈이다.

위대한 발명은 모르고 있는 사이에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변화와 발명을 인식한 사람은 승자가 되고 이를 모르는 사람은 패자가 되는 것이 냉혹한 세상살이의 원리이다.

최근 변하는 상황을 보면 경제학이나 경영학 교과서를 일부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를 들어 증권시장에서 투자를 하는 기준은 순이익 규모인데 창업 이후 순이익이 없어도 주가가 계속 오르고 있는 인터넷 기업을 설명할 길이 없다.

원가에 밑지고 판다는 상인의 이야기는 거짓말이라고 하지만 인터넷 거래를 해보면 도대체 원가 개념이 무엇인지 걱정이 된다. 과거에는 생각할 수 없는 가격으로 집에 배달까지 하기 때문이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라는 산업혁명기에는 남을 생각하는 공리주의가 기본 윤리였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나 먼저, 나 혼자만이라는 이기주의가 배척받을 이유가 없이 인터넷 사회에서 대접받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결국 인류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프랑켄슈타인의 저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갈수록 과학기술의 격차는 벌어지고 세상은 더욱 반이성의 시대로 되어가고 있다.

학생들이 경험도 없이 기술만 가지고 벤처 창업을 하고, 사장 노릇을 하려고 한다. 과거의 직업 기준으로 선망을 받는 변호사나 공인회계사가 되기 위해서 전 대학이 고시열풍 속에 있다고 하지만 막상 변호사가 된 이들은 비법조계로 향한 취업이 늘어가고 있다.

증권회사에서는 사장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 사람이 4분의 1이 넘는다고 한다. 직급과 월급이 비례하지 않아 지점장이 자리를 바꾸어 상담사가 되는 경우가 있다. 이 모두가 과거 기준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일들이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우리는 과연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세기의 변환기에서 과거의 평가를 음미해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변화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의 병폐로 흔히 지적되는 ‘빨리 빨리’ 정신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새 세기에는 이 정신 때문에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인터넷시대에는 세계 최초와 ‘빨리 빨리’ ‘너도 나도 하는 정신’이 필수요건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국내경쟁이 아니라 세계에서 제일 빠르고 가장 편리한 인터넷 상품이 온 세상을 지배하게 되고 하루 아침에 역전되기도 한다.

이제 2등은 존재할 수 없다. 다윗과 골리앗 싸움은 덩치의 싸움이 아니라 칼과 조약돌이라는 무기체계의 평가결과이다.

이렇게 세상이 변하고 있는 와중에서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정치 풍토이다. 정치논리가 항상 경제논리에 우선하고 있어 경제논리에서 벗어난 정책 결정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국민은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되는데도 그 책임을 물을 곳이 없다. 인터넷을 통해 보는 세상은 보다 넓어지고 무한해졌는데 우리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인 정치인 중에서 고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정치가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는 등대로서가 아니라 발전을 가로막는 족쇄가 된다면 국민은 저항하게 될 것이다.

지금 불어오는 새바람의 훈풍을 느끼지 못하고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는 마당을 펼치지 못하는 정치는 제일 먼저 퇴출되어야 한다. 새로운 정치풍토 마당은 이제 우리가 이미 식상한 정치인들의 몫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몫이다.

새 세기, 새 천년을 맞이하는 새해에 우리는 국회의원 선거를 해야 하기에 우리의 각오가 새롭다.

윤계섭(서울대학교 경영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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