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천년을 여는 첫 번째 달이다.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가지만 특히 외환위기가 닥쳤던 97년 말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2년이라는 기간을 돌이켜보면 ‘우리 경제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물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지난 2년 동안 우리가 겪었던 고통은 참으로 컸고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구조조정의 아픔 속에서 많은 가정이 파괴됐고 우리사회를 지탱해온 중산층이 사라져 갔다. 직장에서 밀려난 가장들, 추운 겨울거리의 노숙자들, 보육원에 맡겨진 아이들…. 참으로 아픈 기억들이다.
다행스럽게도 이제 새 천년의 첫 달을 맞고 있는 우리는 끝이 보이지 않던 고통과 절망의 터널을 막 빠져 나오려 한다. 작년 한해 동안 우리 기업들은 사상최대의 흑자를 기록했다. 우리경제 전체로는 무려 10%를 넘는 높은 성장을 이룩했고 경상수지 흑자도 240억달러를 넘었다. 이러한 경제 회복을 바탕으로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도 회복돼 가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경제회복이 미래의 경제안정과 성장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이로니컬하게도 급속한 경제회복은 오히려 우리경제가 지닌 많은 구조적 문제들에 대한 해결 의지를 약화시키고 있다. 경제위기극복의 과정을 통해 우리경제의 구조적 문제들을 직시하고 이를 고칠 수 있다면 그 동안의 고통은 더 나은 미래와 발전을 위해 지불한 가치있는 비용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아직 그간의 고통에 대한 참된 대가를 거두어들이지 못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또 다른 위기의 씨앗을 우리 스스로 뿌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구조조정은 아직까지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다. 향후 투신권을 포함한 또 한차례의 금융구조조정에 국민세금이 얼마나 더 투입돼야 할지 모른다. 기업부문의 개혁도 마찬가지다. 외환위기를 불러왔던 주요 이유인 재벌기업들의 부실한 지배구조와 선단식 경영관행은 실질적으로는 거의 고쳐지지 않고 있다. 작고 효율적인 정부의 구축을 위해 추진했던 정부구조개혁의 실패에서 보듯이 공공부문의 개혁 또한 구호에 그치고 있다.
실상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경제의 구조적 문제들은 작년의 높은 경제성장과 크게 상승한 주가에 묻혀버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제 위기가 완전히 끝났다고 믿는 듯하다. 한술 더 떠 우리경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국제투기세력 때문에 외환위기를 겪었다는 주장이 우리사회에서 힘을 얻어가고 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우리경제가 문제가 있다면 기업들이 어떻게 사상최대의 흑자를 내고 어떻게 경제가 이같이 높은 성장을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사상최대라는 기업부문의 흑자와 높은 경제성장의 이면을 살펴보면 왜 우리가 언제 깨어질지 모르는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는지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작년에 경험한 기업부문의 대규모 흑자와 높은 경제성장은 경기부양을 위해 정부가 인위적으로 한자릿수로 낮춘 금리와 달러 당 30% 가량 높아진 환율이 주요인이지 우리기업 및 경제의 기본체질변화가 주요인이 아니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즉 작년의 호황은 우리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품질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급속히 좋아진 거시경제환경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문제는 거시경제환경은 언제라도 나빠질 수 있다는 데 있다. 따라서 만약 우리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전에 거시경제환경이 나빠진다면 경제성장은 지속될 수 없고 우리는 또 다른 경제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구조개혁 멈춰선 안돼
멕시코를 비롯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신청했던 대부분의 국가들이 IMF 구제금융을 받은 이후 짧은 호황을 경험했지만 그후 또 다른 위기를 맞았고 IMF의 문턱을 지금도 넘나들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왜 작년의 호황에 현혹돼서는 안되고 우리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에 대한 개혁을 멈추어서는 안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조명현〈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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